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86화 (86/243)

86화 낙천가

대진 밖에 있는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절망하고 있었다.

고해가 천도해 전체 종문의 원수가 되려고 작정한 거 아니야?

원형 격투장 밖에서 풍령을 보살피고 있던 몽태의 눈까풀이 심하게 요동쳤다.

또 다른 처마 밑에 있던 구공자는 석탁 앞에 앉아 차를 마시며 저 멀리에 있는 대진을 느긋이 바라보았다.

“콜록콜록! 내가 없는 동안 수련자들이 바보 멍청이가 된 것 같군. 사람이 많으면 그만인가? 아직도 이해를 못 하다니. 사람이 많을수록 죽는 사람도 많아진다는 걸 왜 아직도 모르나 그래? 콜록콜록!”

구공자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들었다.

천도생사국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고해는 용귀전 앞에서 거대한 영석으로 만든 바둑판을 조종하며 진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그의 뒤에는 고선무와 상관흔, 도파가 서 있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어. 참으로 안타깝구나!”

고해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도파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대인, 안타까워할 필요 없습니다. 오늘 들어온 놈들은 전부 도적놈들입니다. 우리 악인곡 식구들은 원한이 있어도 이 도적놈들처럼 행동하지는 않잖습니까?”

고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파가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

“금각과 은각은 천도해의 도적들입니다. 저들은 해적처럼 다른 섬에 가서도 물건을 빼앗는다고 합니다. 저 두 형제와 함께하는 자들도 많은 자들이 도적질에 길들여진 자들입니다.”

“도적질을 자주 한단 말이지?”

“예, 대인. 백성들을 해치는 자들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에 종문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놈들도 도적들과 함께하고 있으니 다를 바가 없습니다. 대인께서 팻말까지 걸고 경고를 했는데, 자기 발로 들어온 놈들을 어떻게 막습니까?”

고해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금각과 은각의 실력이 이위보다도 못하니 아쉬울 뿐이다. 괜히 열심히 준비했나 싶구나.”

도파의 눈이 동그래졌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상관흔도 고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약하다니요? 대인께선 저들이 대진을 깨버리기를 바라십니까?”

고해가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몽태가 그러기를 바라고 있잖아?”

* * *

천도생사국 밖에 있던 수련자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고해가 선천잔국계의 천지 법칙 없이도 진을 칠 수 있다니.”

“저 안에 이만 명이 들어갔지? 설마 저들이 꼼짝도 못 하고 당하는 건 아니겠지?”

“얼른 고부에 간 사람들에게 전해라! 함부로 고부를 건드리지 말라고 해!”

수련자들은 다급히 사람을 고부로 보내고는, 혼이 빠진 듯한 얼굴로 비명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

한편 몽태는 풍령을 안고 대진 쪽을 바라보며 짜증을 냈다.

“멍청한 놈들! 원영경이라는 놈들이 방향도 제대로 잡지 못하다니. 방향을 잃었으면 표시를 하면서라도 방향을 찾아야 할 거 아니야? 바보 놈들!”

몽태와 달리 구공자는 한 처마 밑에서 차를 마시며 상황을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부하 하나가 다가와 말했다.

“구공자님, 낙천가가 왔습니다. 오라고 할까요?”

구공자는 그 말에 짜증을 냈다.

“내가 말했잖느냐? 난 여기에 온 적이 없다고. 낙천가를 나에게 데려와서 뭐 하려고?”

부하가 흠칫하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 예! 알겠습니다.”

* * *

원형 격투장 밖에 있는 한 산봉우리에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의 뒤에는 다섯 갈래의 쇠사슬이 요동치고 있었는데,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문어 발처럼 보였다.

하얀 옷을 입은 남자 뒤에는 열댓 명의 부하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눈에 불을 켜고서 대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옷을 입은 남자도 대진을 보고 놀란 듯했다.

“천도생사국? 세상에!”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은 그 남자가 낙천가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낙천가야. 천도해 동해의 해적왕.”

“내가 듣기로는 낙천가의 손에 죽은 원영경이 한둘이 아니라던데.”

“아니, 낙천가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수련자들은 안절부절못했다.

아무래도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들 건드린 것 같았다.

하얀 옷을 입은 낙천가는 잘생긴 외모에 머리가 길었다.

그의 두 눈에는 사악한 기운이 배어 있었다.

낙천가는 저 멀리에 있는 대진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구공자의 부하와 눈을 마주쳤다.

구공자의 부하는 머리를 저으며 구공자의 뜻을 전했다.

낙천가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냉랭히 코웃음 쳤다.

“흥! 내가 자격이 없다는 건가? 관기 노인의 부탁이 아니었으면 내가 대역을 하지도 않았어. 이거 왜 이래? 흥! 어디 두고 보자!”

낙천가의 눈에 오기가 가득 찼다.

* * *

“아! 형님, 방법이 있습니다. 비가 하늘에서 떨어지니 비가 내리는 방향을 따라 찾아가면 빠르지 않을까요?”

은각의 소리가 들려왔다.

금각은 일단 대진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그러자꾸나!”

그때 저 아래쪽에서 고함 소리와 비명이 들렸다.

“어딜 도망가!”

“으아악!”

“모두 도망쳐!”

화들짝 놀란 두 사람은 하늘로 올라갔다.

“빠져나왔어! 하하하하하!”

금각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각과 은각의 옷은 전부 찢어져서 너덜너덜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백 명의 악인들이 천도를 들고 쫓아왔었다.

대진 밖에서는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악인들이 대진 안에서는 천도를 들고 이 둘을 쫓아온 것이다.

금각과 은각은 어쩔 수 없이 도망치려 했으나 방향을 잃고 빠져나갈 구멍조차 찾지 못했다.

그러다 하늘로 솟구쳐서 겨우 대진을 벗어난 것이다.

하지만 대진을 겨우 빠져나온 두 사람의 표정은 이루 말할 것도 없이 어두웠다.

대진 안에서의 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있었다.

설마 이만 명의 수련자들이 전멸한 건 아니겠지?

금각과 은각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렸다.

“그만 가자, 은각아.”

“예, 형님.”

두 사람이 막 떠나려고 하던 그 순간!

화라라라라!

두 갈래의 쇠사슬이 날아왔다.

“뭐야?”

화들짝 놀란 두 사람은 칼로 맞대응했다.

쩡! 쩌정!

쇠사슬과 칼이 부딪치자 금각과 은각이 튕겨 나갔다.

펑!

두 사람은 바닥에 쓰러져 피를 토하면서 쇠사슬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낙천가도 산봉우리에 서서 쓰러져 있는 두 사람을 응시했다.

“이게 원영경? 너무 약한 거 아니야?”

금각과 은각이 낙천가를 알아보고 눈을 부릅떴다.

“낙천가?”

“동해적왕?”

스르르륵!

순간, 두 갈래의 쇠사슬이 금각과 은각 앞으로 날아왔다.

살의로 가득 찬 쇠사슬은 주변의 온도마저 떨어뜨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은 멍청하나 원영경이니 기회를 한 번 주도록 하지! 지금 바로 굴복하거라!”

낙천가가 냉랭하게 말했다.

은각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굴복하라고? 어림없다!”

금각은 그래도 상황을 인지하고 사정했다.

“동해적왕, 우리 사정도 좀 봐주게! 우리 그래도 원영경이 아닌가?”

“흥!”

낙천가가 냉랭히 코웃음 치고는 손을 놀렸다.

촤아아악!

쇠사슬이 순식간에 길어지더니 두 사람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조심해!”

두 사람이 깜짝 놀라면서 손에 있던 칼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칼이 대기를 가르면서 쇠사슬과 뒤엉켰다.

쾅! 쩌저정!

두 갈래 쇠사슬이 강철용처럼 변하면서 울부짖었다.

쾅!

두 형제의 칼이 깨지더니, 이내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먼지를 일으켰다.

바닥에 있던 흙과 돌이 회오리바람에 흩날렸다.

두 갈래의 쇠사슬이 방향을 틀더니 금각과 은각의 목을 파고들었다.

푹! 콰직!

쇠사슬을 타고 두 형제의 피가 흐르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금각과 은각은 숨이 끊어진 듯 잘게 경련했다.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이 숨을 멈추고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낙천가를 쳐다보았다.

낙천가가 냉랭히 코웃음 쳤다.

“흥! 죽을지 살지도 모르고 함부로 덤비다니! 기회를 줬을 때 받았어야지!”

스르르르릉!

쇠사슬이 빠르게 회수되면서 제자리로 돌아갔다.

투둑!

금각과 은각의 시체가 땅에 떨어졌다.

낙천가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곧바로 고해의 대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고해, 맞지?!”

낙천가가 대진 앞에서 외쳤다.

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었다.

“나 낙천가가 치우라고 할 때 치우는 게 좋을 거다! 안 그러면 내일이 되기 전에 전부 죽고 말 것이다!”

낙천가가 거칠게 말했다.

사방에 있던 수련자들도 깜짝 놀라면서 눈까지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낙천가의 무서움을 알기에 그 누구도 끼어들지 못했다.

몽태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몽태는 멀리 있는 낙천가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드디어 사람 같은 놈이 왔군.”

구공자도 낙천가를 보았다.

“잘난 척은 했으니 이제 능력을 봐야겠지.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꾸나!”

낙천가는 계속해서 쩌렁쩌렁 소리를 질러댔다.

낙천가의 목소리를 들은 악인들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이들 대부분은 동해적왕의 소문을 들은 바가 있었다.

용귀전 앞도 긴장감이 흘렀다.

도파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대인, 저자가 동해적왕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알아, 진천산이 이미 말했다.”

낙천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고해! 얼른 대진을 걷어라! 나를 화나게 만들지 마라!”

고해가 앞을 보면서 냉랭하게 말했다.

“어디 한번 해봐! 시끄럽게 하지 말고! 들어올 용기가 없으면 찌그러져 있든가!”

고해의 커다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대진 밖에 있던 수련자들이 화들짝 놀랐다.

“고해 미친 거 아니야? 선천경이 겁도 없나 봐!”

“낙천가가 수많은 종문의 진을 깼다고 들었는데…….”

수많은 수련자가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봤다.

낙천가의 눈에서 독기가 번뜩였다.

“내가 시끄러워? 육오도에 있던 종문도 괜히 고집 피우다가 내 손에 무너진 걸 모르나!”

낙천가가 겁을 주려 했지만, 고해의 목소리만 더 높아졌다.

“허튼소리! 사대 부장! 저놈 말은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라!”

“예!”

“흥!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얼굴이 붉어진 낙천가가 차갑게 말했다.

스르르륵-

순간, 낙천가의 뒤에서 다섯 갈래의 쇠사슬이 나타나더니 불꽃을 피웠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쇠사슬이 분노한 화룡처럼 천도생사국을 향해 날아갔다.

다섯 마리 화룡은 순식간에 대진 위로 날아가더니 고해가 펼친 대진을 휘감았다.

“돌파해라!”

낙천가가 소리 높이 외쳤다.

콰르르릉!

화룡이 불을 토해냈다.

마치 금방이라도 대진 전체를 태워버릴 것만 같았다.

화룡이 뿜어낸 화염은 빙글빙글 돌면서 천도생사국이 펼쳐진 구름을 녹여갔다.

거기다 다섯 갈래의 쇠사슬이 동시에 전체 대진을 꽉 묶자, 대진이 마치 여섯 조각으로 찢기는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츠르르륵!

천도(天刀)들이 끝도 없이 나타나서 하나로 뭉치더니 쇠사슬을 막고 나섰다.

쿠구구구궁!

수천 자루의 천도가 쇠사슬의 공격을 버텨냈다.

쇠사슬에서 피어난 불길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 광경을 본 악인들은 화들짝 놀랐다.

“큰일이야! 용귀전에 가서 대인께 말씀드려라!”

악인 몇 명이 다급하게 용귀전으로 달려갔다.

고해는 용귀전 밖에서 대진을 조종했다.

조금 전의 쇠사슬도 고해가 천도를 움직여서 막은 것이었다.

고해의 안색이 굳어져 있자 옆에 있던 사람들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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