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진중진(陣中陣)
진천산이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인, 낙천가의 화룡 사슬이 보통 아닙니다. 낙천가가 매년 이 법보로 천도해 종문을 두드리고 있다 들었습니다.”
고해는 무겁게 굳은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츠르르르륵!
순간, 하늘에 있던 천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화룡 사슬의 힘이 워낙 강해서 천도생사국도 버티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입술이 바짝 마른 진천산이 당황해서 고해를 바라보았다.
“대인, 제가 듣기로는 낙천가가 저번에도 저 화룡으로 종문 하나를 부숴버렸다고 합니다.”
그 말에 주변의 악인들도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러자 고선무가 진천산을 자제시켰다.
“그만하십시오. 대인께서는 상대할 방법이 있으실 겁니다!”
지금은 악인들의 사기를 북돋아야 했다.
사기를 떨어뜨리는 말은 최대한 삼가야만 했다.
고해는 여전히 차갑고 무거운 표정으로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화룡 사슬이 화염을 토해낼수록 대진 속에 있는 구름이 부글부글 끓으면서 점점 흩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밖에서도 대진 내부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대진 안에는 무수히 많은 시체가 사방팔방에 쓰러져 있었다.
밖에 있던 수련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부릅떴다.
“맙소사! 이만 명이 들어갔는데, 거의 다 죽었어!”
“그래 봤자야! 천도생사국이 곧 깨지게 생겼잖아!”
“그러네! 점점 더 잘 보여! 천도생사국에 균열까지 생겼어!”
“대진이 곧 깨질 것 같아!”
“역시 낙천가의 화룡 사슬이야!”
“저러다 고해가 죽는 거 아냐?”
주변의 수련자들도 고해보다는 낙천가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들 대부분은 고해의 천도생사국이 낙천가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깨질 거라 생각했다.
구공자는 차를 마시며 눈앞에서 펼쳐지는 고해와 낙천가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낙천가가 제법이군. 역시 잘해!”
한쪽에선 몽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몽태의 시선은 고해가 아닌 쓰레기장 쪽을 보고 있었다.
“뭐야? 발견한 거야? 하지만 고해도 결계는 깨지 못할 거다. 그런데 저렇게 깊고 큰 웅덩이를 낙천가가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몽태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던 그가 고개를 돌려 풍령을 바라보았다.
“풍령, 힘들지? 좀 쉬어.”
“저……!”
풍령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호~!
몽태는 풍령의 얼굴에 입바람을 넣었다.
“고생 많았어. 좀 더 자.”
풍령이 흐릿한 정신으로 말했다.
“너무 졸려요.”
“그래, 졸리면 얼른 자.”
“네.”
풍령이 스르르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몽태는 조심스럽게 풍령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한편, 산봉우리에 있던 낙천가가 흉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도생사국이라. 제법이구나. 육오도 종문을 박살 내버릴 때에도 이 정도까지 버티지 못했는데 말이야. 흥! 어디 언제까지 버티나 두고 보자! 화력을 강화하라!”
쿠궁!
화룡이 다시 눈부신 빛을 뿜어냈다.
마치 화산의 용암처럼 활활 타오르며 천도생사국 전체를 녹여버릴 것만 같았다.
점점 더 많은 천도가 산산조각 나버렸다.
안에서 봐도 용암이 흐르면서 천도를 녹여버릴 것만 같았다.
악인들이 겁에 질려서 벌벌 떨었다.
하지만 고해는 의젓한 자세로 서서 바둑판 모양의 진법 진원을 들고 있었다.
하늘을 뒤덮었던 구름이 절반 넘게 흩어지면서 고해의 모습도 서서히 드러났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는 용귀전 앞에 우뚝 서서 싸늘한 눈빛으로 낙천가를 응시했다. 그의 눈에서는 그 어떤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낙천가는 그 모습에 더 화가 났다.
“흥! 건방진!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놈이로구나! 화룡 사슬아! 더 커져라!”
낙천가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콰아아아아!
화룡 사슬의 불꽃이 폭발하더니 열기가 극에 도달했다.
퍼버버버벅! 쩌저저저정!
쇠사슬에 휘감긴 천도가 와르르 깨져 나갔다.
화룡 사슬은 천도를 깨고 천도생사국을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화염이 빙글빙글 돌며 주변을 불태웠는데,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 모습을 수련자들이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천도생사국이 깨졌어! 고해도 이제 끝장이구나!”
바로 그때, 그림자 하나가 순식간에 불꽃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누구의 그림자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은 그 그림자를 똑똑히 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밖에 있던 구공자였다.
“뭐야? 몽태잖아?”
그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 다른 한 사람은 고해였다.
“드디어 들어갔구나!”
고해의 눈이 번뜩였다.
그의 얼굴에 일말의 기대감이 떠올랐다.
낙천가는 화룡 사슬을 움직여서 고해를 쓸어버리려 했다.
스르르륵!
화염들이 빙빙 돌면서 고해가 있는 용귀전을 향해 날아갔다.
낙천가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채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는 화룡 사슬에 법력을 넣어주면서 대진을 불태우려고 했다.
“하하하하! 얼마나 더 버티는지 보자, 고해!”
그는 통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고해가 고개를 들고 낙천가를 바라보며, 그의 웃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아직 만족할 것 없다! 넌 우리 대진을 깰 수 없어! 시끄러우니 조용히 있거라!”
낙천가의 눈이 역팔자로 꺾어졌다.
“네놈의 대진은 곧 깨질 거다! 대진이 깨지는 순간 네놈도 죽게 될 것이야!”
버럭 소리친 그가 악인들을 향해 외쳤다.
“누구든 고해의 목을 따오는 자는 내가 살려줄 것을 약속하마!”
악인들에게 배신하라는 말이었다.
고선무, 진천산, 도파, 상관흔이 고해를 보호했다.
악인들도 술렁거리긴 했지만, 곧 그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
고해는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낙천가를 보고 있었다.
그는 낙천가를 보고 있으면서도 정신은 쓰레기장에 집중했다.
그는 밀리는 척하면서 낙천가의 공격을 쓰레기장 쪽으로 향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츠츠츠츠츠!
순간, 쓰레기장 쪽에서 무언가가 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직후 쓰레기장 쪽 어두운 곳에서 한 소리 외침이 들려왔다.
“대인! 결계가 열렸습니다!”
“뭐?”
몽태는 화들짝 놀라서 눈을 치켜떴다.
그는 자신이 이런 식으로 당할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좋았어!’
고해의 눈이 반짝거렸다.
드디어 몽태를 속여 결계를 열었다.
그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됐다! 해적왕 낙천가! 네 덕분이다! 지금 너와 놀아줄 시간이 없는 게 아쉽구나!”
“뭐라고?”
낙천가는 눈을 홉뜨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놈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 순간, 고해가 손을 휘저었다.
펑!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금방 깨질 것 같던 대진에 하얀 구름이 나타나더니 이내 하늘 전체를 뒤덮을 것처럼 뭉치기 시작했다.
쿠구궁! 콰광! 쩌정!
구름이 뱅뱅 돌더니 순식간에 화룡 사슬을 끊어버렸다.
이번에 나타난 구름은 조금 전의 구름보다 훨씬 더 빽빽하고 짙었다.
쇠사슬도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끊어져 버렸다.
낙천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은 상황을 이해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맙소사! 고해가 낙천가를 속였던 거구나!”
“뭐야? 그게 정말이야?”
“그럼 조금 전에 낙천가가 깬 건 뭐야? 가짜 진이란 말이야?”
“대진이 깨졌는데 어떻게 저리 금방 다시 뭉친 거지?”
구공자의 얼굴도 와락 일그러졌다.
“어떻게 저런 일이! 천도생사국의 위력이 조금 전보다 더 강해질 수는 없어! 고해는 선천경이야! 선천경이 화룡 사슬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게 말이 돼?”
옆에 있던 부하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고해가 금단경을 수련한 것 아닐까요? 그래서 천도생사국의 위엄이 더 강해진 거 아니겠습니까?”
“고해는 선천경이 확실해! 저렇게 갑자기 강해질 수는 없어!”
경악한 구공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진을 노려보았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답답한 사람은 낙천가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흥에 겨워 날뛰던 낙천가였다.
그런데 자신이 고해를 도와줬다고?
도대체 저 산골짜기에 뭐가 있었던 것이야? 도대체 뭐가 깨졌고 뭐가 내 덕분이지?
고해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그로선 분노만 솟구쳤다.
“저 빌어먹을 놈이……!”
화룡 사슬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낙천가는 손을 휙 저어서 화령 사슬로 다시 한번 대진을 공격했다.
화룡 사슬이 대진으로 돌진했다.
펑! 콰광!
그러나 대진은 끄떡도 없었다.
낙천가는 눈까지 빨개졌다.
뭐야! 막을 수 있는데 막지 못하는 척 연기했던 거란 말인가? 감히 나를 조롱했던 것이었어?
분노한 낙천가가 악을 썼다.
“이런! 고해! 네놈을 죽이고 말겠다!”
쿵! 쿠구궁! 콰과광!
화룡 사슬이 미친 듯이 대진에 충돌했다.
계속된 충돌에 땅까지 흔들거렸다.
구름 속에서 고해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됐다, 낙천가! 그만 멈춰라! 멈추지 않으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야!”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낙천가는 멈추지 않고 대진을 공격했다.
“흥! 어디 한 번 덤벼봐라! 무섭지 않으면 덤벼보란 말이다, 이놈!!!”
바로 그 순간,
고해가 외쳤다.
“역발산혜기개세!”
-힘으로 산을 뽑고, 기운이 세상을 뒤덮는다!
쿠구궁!
거대한 굉음이 고해의 대진에서 울려 퍼졌다.
스윽!
순간, 대진에서 거대한 방천화극이 나타나더니 벼락처럼 화룡 사슬을 향해 떨어졌다.
콰과과과광!
다섯 번의 굉음!
“으아아악!”
방천화극이 화룡 사슬 다섯 개를 전부 끊어버리자, 낙천가가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펑!
끊어진 쇠사슬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법보까지 훼손된 낙천가는 창백한 얼굴로 다급히 몸을 날려 피했다.
화룡 사슬이 끊어지다니!
“어, 어떻게……!”
낙천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망연한 표정이었다.
수련자들도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기억났어! 선천잔국계에서 고해가 들고 나왔던 그 천군만마!”
“저게 천군만마라고?”
“이십팔 천지종횡대진 말이야?”
“그럼 저게…… 천도생사국이 아니라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이란 말인가?”
수련자들이 수군거렸다.
특히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을 경험해 봤던 사람들은 등골까지 오싹해졌다.
이십팔 천지종횡대진!
그 천군만마는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걸 영석으로 만들다니!
“이십팔 천지종횡대진?!”
멀리 처마에 있던 구공자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벌떡 일어섰다.
그 역시 다른 사람처럼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 선천잔국계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부하 역시 파랗게 질린 표정이었다.
“구공자님, 영석으로도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을 만들 수 있습니까? 고해가 우리한테서 도대체 뭘 알아간 겁니까?”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이면 낙천가가 설마 죽기라도……?”
“그 입 다물어!”
구공자가 펄쩍 뛰며 말했다.
뒤에 있던 부하들은 입도 뻥긋 못 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낙천가는 고개를 홱 돌렸다.
구공자의 음침한 얼굴을 발견한 그는 표정이 돌변하더니 다시 한번 날아올랐다.
뒤에 있던 쇠사슬도 함께 날아올랐다.
츠르르르륵!
날아오른 쇠사슬이 거대한 그물망을 형성하고 화염을 토해냈다.
“화룡망(火龍網)! 공격하라!”
낙천가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