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골조(骨祖)
우르르릉!
고해의 천도에 끊어졌던 쇠사슬이 다시 화염을 내뿜으면서 대진을 향해 날아갔다.
쾅-!
화룡망과 대진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아까보다 더 큰 화염이 대진을 뒤덮었다.
고해가 그 모습을 보고 냉랭히 코웃음 쳤다.
“흥! 우리 대진이 아까보다 몇십 배는 더 강해진 걸 모르나 보군! 놈! 죽고 싶다면 죽여주마!”
“죽어라!”
대진에서 거대한 외침 소리가 들려오더니, 구름 사이에서 흉포한 인상의 장군이 거대한 방천화극을 들고 화룡망을 향해 돌진했다.
장군이 방천화극을 휘두르자, 엄청난 칼바람이 무섭게 휘몰아치며 화룡망에게로 날아갔다.
쾅-!
방천화극이 휘둘러진 곳은 모든 것이 절반으로 갈라졌고 화룡망도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났다.
“으악!”
낙천가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쉬아아악!
방천화극이 순식간에 낙천가의 가슴을 베었다.
낙천가는 전력을 다해 방천화극을 막았다.
푸허헉!
낙천가는 입을 쩍 벌리고 피를 토했다.
방천화극은 그의 이마에서부터 가슴을 타고 배까지 단숨에 베어버렸다.
털썩!
낙천가가 땅으로 툭 떨어지니 주위가 온통 핏자국이었다.
비록 외부에 입은 상처이긴 하나 낙천가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아마 그가 조금만 더 약했더라면 몸이 세로로 갈라져 두 쪽이 났을 것이다.
“쿨럭, 쿨럭! 푸허헉!”
피를 연속 토해낸 낙천가는 힘겹게 기어가면서 대진을 돌아다보았다.
공격은커녕 이제는 그의 눈에도 공포가 드리워졌다.
주변에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십팔 천지종횡대진. 정말 무섭구나!
“천도해의 동해적왕이 저렇게 무너지다니!”
“화룡 사슬과 화룡망이 모두 깨졌어!”
쑥덕거리던 수련자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은 대진에 들어가지 않은 걸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어쨌든 대진에 평온이 찾아왔다.
그러나 짙은 구름과 안개 때문에 밖에서는 대진 내부를 볼 수조차 없었다.
그때 대진 내부는 구름이 다시 뭉치면서 방천화극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몽태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분노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해가 손에 방천화극을 들고 운수를 조종하면서 분노에 차 있는 몽태를 보고 있었다.
“고해! 자네……. 하! 하! 자네 정말……! 하!”
몽태는 얼마나 격노했는지 할 말을 잃었다.
“몽 타주님, 제가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다른 몽태도 나를 속이려다가 내 손에 죽었다고 말했잖습니까? 밖에 있는 놈들도 몽 타주님이 꾸민 일이죠? 음모를 꾸미려다가 오히려 당한 기분이 어떻습니까? 흥!”
고해가 말하고는 냉랭하게 코웃음 쳤다.
그때, 구름 속에서 앙천대소, 아니 앙천광소가 들려왔다.
“와하하하하하하!”
몽태가 열었던 결계 안쪽, 화산구 위에 눈이 먼 노인이 갇혀 있었는데, 지금 막 정신을 차린 듯했다.
“내 제자 몽태도 당하는 날이 있구나! 잘했어! 잘했어! 하하하!”
노인이 크게 웃었다.
몽태가 흉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고집만 피우지 않았어도 거기에 갇혀 있을 이유는 없었어! 당신의 자업자득이야!”
눈이 먼 노인은 싸늘하게 웃었다.
“흥! 내 고집 아니었으면 너는 풍령, 이위, 그리고 월요까지 죽여버렸을 것 아니냐? 아닌가? 내가 왜 너를 제자로 받아들였는지 모르겠구나!”
눈이 먼 노인, 위양은 처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다 감정이 격해졌는지 그의 입에서 분노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용맥을 풀기 위해서 풍령과 이위로 나를 협박해? 흥! 내가 네놈한테 알려주면? 욕심이 끝도 없는 네가 우리 모두를 죽이지 않았을까? 풍령, 이위, 월요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네놈한테 알려줄 수는 없었느니라! 이 못난 놈아!”
몽태는 하늘에 있는 고해와 땅속에 있는 위양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흥! 당신이 고집만 접었어도 내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고는 위양을 공격하려고 했다.
놔두면 위양을 죽일 터, 고해는 늦지 않게 운수를 조정했다.
방천화극이 하늘을 가로질러 몽태를 향해 날아갔다.
“헛!”
깜짝 놀란 몽태가 뒤로 튕겨 나갔다.
“고해! 정말 해보자는 거냐?”
몽태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고해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몽 타주! 대봉방은 이제 내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죽기 싫으면 내 눈앞에서 사라지세요!”
방천화극이 또다시 몽태를 가리켰다.
몽태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여서 고해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흥! 고해! 좋아! 내가 얻을 수 없는 건 너도 영원히 얻지 못할 거야! 넌 자격이 없어! 하하하하!”
몽태가 얄밉게 웃으면서 하늘을 날아 대진을 벗어났다.
“대인, 왜 그냥 풀어주는 겁니까?”
옆에 있던 고선무가 물어보았다.
고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이 강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선천잔국계에서의 천군만마는 하늘의 법칙을 움직여 나온 것이고, 지금은 단지 영석으로만 불러낸 것이었다.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은 많은 영석을 필요로 하는데, 지금의 영석으로는 몽태를 상대하기에 벅찼다.
스르르륵.
상관흔 등은 재빨리 위양한테로 달려갔다.
그들은 쇠사슬을 풀고 위양을 구해냈다.
고해는 잠시 항우를 거둬들였다.
항우가 소모하는 영석도 엄청나서 불필요하게 존재를 계속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고해가 위 대인께 인사 올립니다.”
고해가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위양은 보이지 않는 눈을 끔뻑거리며 자신을 살려준 고해에게 인사를 건넸다.
“고맙네, 고 선생. 내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고해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전부 말해주었다.
“뭐? 몽태가 풍령과 결혼하고 월요를 죽였다고? 그리고 이위는 식물인간?”
위양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예, 그러나 제가 이위가 만들어 놓은 가면을 쓰고 있어서 부득이하게…….”
위양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고 선생, 무슨 말인지 알겠네. 내가 눈은 멀었어도 마음은 살아 있다네. 이위가 식물인간이 된 것도 그놈의 마음이 죽었기 때문이야. 썩을 놈! 어휴! 내가 써준 편지를 아무래도 몽태가 본 것 같군.”
고해는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돌려서 용암이 흐르는 웅덩이 안을 내려다보았다.
용암 위에는 황금색의 용 꼬리가 떠 있었고, 용 꼬리 위에는 거대한 거북이 껍데기가 있었다.
그리고 거북이 껍데기 위에는 바둑판처럼 생긴 물체가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이 거북이의 껍데기가 밑에 있던 용의 꼬리를 봉인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용 꼬리 위에는 검은색 기운을 뿜어내는 골도(骨刀)가 있었다.
마치 나사처럼 생긴 뾰족한 골도가 용의 꼬리에 박혀서 용 꼬리를 통제하는 것 같았다.
궁금해진 고해가 위양에게 물었다.
“위 대인, 밑에 있는 용의 꼬리와 골도(骨刀), 그리고 거북이 껍데기는 어찌 된 것입니까??”
그런데 위양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골도? 그게 뭔가?”
“……?”
고해는 굳은 얼굴로 위양을 바라보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위양한테 웅덩이 안쪽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해 줬다.
위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골도(骨刀)? 예전에는 없었는데…… 아! 설마…… 설마 십 년 전에……?”
“십 년 전? 무슨 말씀이신지요?”
“십 년 전, 내가 여기에 갇혀 있을 때, 대지용맥의 뜨거운 기운 때문에 더워서 죽는 줄 알았네. 그러나 어느 순간 찬바람이 들어오면서 혹독하게 추워진 적이 있었지. 그때 지옥의 문이 열리면서 어떤 소리가 들렸었어.”
위양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소리요?”
“맞아. 나는 환청인 줄 알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환청이 아니었나 보구먼. 그때…… ‘골조(骨祖)는 이미 가루가 되어버렸으니 이 천하는 내 것이야! 하하하하하!’라는 소리가 들려왔지 뭔가? 그러다가 갑자기 바람이 사라지면서 원래 상태로 돌아갔어.”
고해는 위양을 뚫어지게 살펴보았다.
위양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려는 듯.
위양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거북이 껍데기는 우리 대봉방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봉인 방법이네. 전에 각주님께서 남겨주셨는데, 우리 대봉방이 가지고 있었지.”
고해가 흠칫하며 물었다.
“각주라시면……? 혹, 관기 노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네. 우리 대봉방의 유훈이기도 하지. 대봉방 제자들도 훔치지 못하고 인연이 나타나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네.”
듣고만 있던 고선무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인연이오? 무슨 인연 말입니까?”
위양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겠네. 각주께서도 그 이상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으니까.”
고해가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거북이 껍데기에 있는 바둑판을 푸는 것과 관련 있는 것입니까?”
“모르겠네. 사실 나도 푸는 방법은 몰라. 그런데 몽태는 내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 나는 모르면서도, 아는데 알려주기 싫은 척했던 거고. 그러니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거야.”
“감사합니다. 위 대인.”
고해가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위양이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
“이위를 구해줬으니 됐네. 거기다 나까지 구해줬으니 고마워할 필요는 없네.”
고해는 위양을 보면서 잠시 생각하더니,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진천산에게 말했다.
“진 부장, 위양 대인을 이위한테 모셔다 드려라.”
“예. 위 대인, 제가 모시지요.”
진천산이 대답하고는, 눈이 먼 위양을 데리고 이위에게로 향했다.
고해는 멀어지는 위양의 뒷모습을 복잡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 * *
고해, 도파, 상관흔, 고선무는 깊은 웅덩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거북이 등 껍데기에 내려서서 거대한 바둑판을 쳐다보았다.
거북이 등 껍데기는 투명한 수정 같았고, 머리가 있을 자리에는 용의 꼬리가 있었다.
잠시 살펴보던 상관흔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인, 이 용 꼬리는 저희 힘으로 수거할 수가 없습니다.”
“뭐?”
고해가 의아한 눈빛으로 상관흔을 쳐다보았다.
“용맥이 좋은 건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맥의 힘이 얼마나 강대한지 알고 계십니까? 봉인을 해제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힘이 있어야 잡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용 꼬리 같은 경우에는 봉인을 해제하면 바로 도망쳐버릴 것입니다. 용의 꼬리는 선천적으로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기에 인간의 힘으로는 강제할 수가 없습니다!”
고선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상관 부장님, 대인의 저 운수로도 불가능한 것입니까?”
상관흔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용맥은 구오도뿐만이 아니라, 아마도 천도해와 무수한 해역, 섬 등이 합쳐서 형성된 것이네. 그러니 이 용맥을 잡으려면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한지 알아?”
“얼마가 필요한데요?”
“최소한 ‘섬을 받들 수 있는 힘’ 정도는 있어야 할 거네.”
고선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 섬을 받들 수 있는 힘이오? 설마…… 구오도를 들 정도의 힘을 말하는 겁니까?”
상관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듣고 고해의 눈빛이 흔들렸다.
구오도를 들 수 있는 힘?
구오도는 지구와 거의 비슷한 크기인데?
그러고 보면 상관흔은 꽤 신비로운 사람이다.
마치 모르는 게 없는 사람 같았다.
고해는 더 이상 자세하게 묻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흔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만은 눈치챌 수 있었다.
‘당장 얻을 수 없는 걸 억지로 얻겠다고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불가능한 걸 하려기보다는 가능한 것부터 하는 게 나아.’
결정을 내린 고해는 용맥을 무시하고, 손을 내밀어서 큰 뼈를 잡았다.
그런데……
우우웅!
거북이 등 껍데기의 봉인이 고해의 행동을 막았다.
‘뭐지?’
고해의 안색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