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늑골이 많아지다
다른 사람들도 손을 내밀어 뼈를 잡으려 했지만 잡히지 않았다.
거북이 등 껍데기가 지닌 봉인의 힘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상관흔이 그걸 보더니 말했다.
“이 거북이 등 껍데기 봉인은 용귀의 거북이 등 껍데기입니다.”
“용귀(龍龜)?”
“그렇습니다. 게다가 용으로 진화한 용귀입니다. 용귀는 용의 머리와 거북이 몸으로 이루어졌고, 용의 혈통이며, 용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용귀가 이 용맥을 먹어버리면 용으로 진화하고, 그 진화 과정에서 등 껍데기를 벗게 됩니다.
그러니 이 거북이 등 껍데기는 용으로 진화한 용귀가 남긴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관기 노인이 수련하여 지금의 법보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상관흔의 말에 고해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지난날 바다에서 만났던 용귀가 설마 용맥을 감지하고 구오도로 온 것일까?
거북이 등 껍데기와 용맥을 번갈아 보던 고해는 최종 시선을 검은 기운을 내뿜는 큰 뼈에 두었다.
그리고 시선을 다시 옮겨서 거북이 등 껍데기의 바둑판을 바라보았다.
“종횡 이십구 도선?”
고해는 잠깐 멈칫거렸다.
거북이 등 껍데기의 바둑판에는 가로세로 각 이십구 줄이 그어져 있었다.
옆에는 검은색 바둑알이 놓여 있었는데, 마치 바둑을 둘 사람을 기다리는 듯했다.
“참 복잡한 바둑판이군요!”
고선무가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도 바둑을 둘 줄 알기에 그 바둑판의 바둑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고해는 생각에 잠겼다.
다른 사람에게는 엄청나게 심오한 바둑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의 눈에는 어렵게 보이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만 주어지면 풀 수 있는 바둑.
아니나 다를까, 잠시 생각하던 그가 눈빛을 반짝였다.
“좋은 바둑이다. 좋은 진법이야.”
그는 검은색 바둑알을 들고 바둑판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착!
소리와 함께 바둑알이 놓여졌다.
그 순간, 거북이 등 껍데기 바둑판 위에 흰색 바둑알이 나타났다.
착!
마치 누군가가 고해와 대결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시각 용귀전.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진천산이 다른 전각을 향해 날아갔다.
와르르!
그가 부딪친 전각의 벽이 무너졌다.
“부장님, 괜찮으십니까?”
놀란 악인들이 달려오며 물었다.
“위 대인, 뭐 하는 짓입니까?”
폐허 속에서 진천산이 일어나며 물었다.
그때 눈이 먼 위양이 식물인간이 된 이위를 잡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고해한테 전하게. 나를 구해주셔서 고맙다고. 그리고 내가 얘기했던 모든 것은 진실이었다고.
하지만 봉인을 해제하는 건 신중해야 하네. 그곳에 있는 바둑을 무조건 이겨야 하네. 한 번만 실수해도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까!”
날아오른 위양이 크게 소리쳤다.
그러고는 이위를 데리고 대진을 벗어났다.
“한 번 실수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진천산의 안색이 굳어졌다.
몽태가 바둑을 풀지 않은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바둑 실력이 안 돼서가 아니라, 두기가 무서웠던 것이다.
“부장님,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부하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지만, 진천산은 자신의 몸을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괜찮아. 비켜라! 큰일 났다. 대인께서 위험해!”
진천산은 위양을 쫓지 않고 바로 용맥이 있는 산골짜기를 향해 날아갔다.
그 시간에도 고해는 계속 바둑을 두고 있었다.
착, 착…….
바둑으로 진검승부가 펼쳐지고 있었는데, 고해도 밀리지 않았다.
“좋아!”
고해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해졌다.
착!
고해는 다시금 바둑을 두었다.
“대인, 하나 끌고 가세요!”
고선무의 눈빛이 반짝였다.
갑자기 흰색 바둑알 하나가 끌려 나왔다.
우르르!
마치 봉인이 조금 풀린 듯 용맥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변도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때 진천산이 달려오며 말했다.
“대인, 바둑을 그만두셔야 합니다.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고해는 더 이상 바둑을 두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봉인이 조금 풀렸고, 용맥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해는 큰 뼈에 점점 가까워져서, 이제는 거의 잡을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
이런 바둑을 둘 기회는 다시 오기 어렵지만, 고해는 사리 분별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바둑 두는 걸 미루고, 먼저 큰 뼈를 꺼내려고 했다.
큰 뼈에 가까이 다가선 고해는 자세하게 훑어보았다.
큰 뼈에 거미줄처럼 촘촘히 갈라진 흔적이 있었다.
깨진 뼈 같은데?
‘위양이 말한 것이 사실일까? 뼈는 이미 산산조각 났는데, 용맥의 힘으로 조금이나마 복구된 것일까?’
뼈를 바라보는 고해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때 진천산이 뛰어 내려오며 다급히 상황을 보고했다.
“대인, 위양이 이위를 데리고 도망쳤습니다!”
고해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나도 알아. 내가 놓아준 것이다.”
“예?”
“처음 만났는데 위양이 나를 믿었겠느냐? 위양이 몽태 손아귀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그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야.
하지만 나와 위양은 원수 사이도 아닌데 잡아둘 필요가 뭐 있겠어? 그래도 위양과 몽태는 원수니 몽태를 잡아둘 수는 있겠지.”
진천산은 멍하니 서서 듣기만 했다.
도대체 대인은 어디까지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걸까?
자신으로서는 고해의 깊은 생각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대인, 조심하십시오. 그 뼈는 액운이 가득합니다.”
상관흔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고해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뼈를 잡았다.
순간, 뼈 위에 무수히 많은 검은 기운이 나타나더니, 고해를 강하게 밀어냈다.
“들어!”
쿵!
고해는 천근 무게처럼 느껴지는 뼈를 서서히 뽑아 들었다.
후아앙!
갑자기 지하 용맥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박혀 있던 뼈가 없어지니 한결 활발한 반응을 보였다.
우르르!
용의 꼬리가 강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봉인을 해제하고 도망치려는 것 같았다.
용암이 튀자, 사람들은 신속하게 진기로 몸을 감쌌다.
“아!”
고해가 갑자기 고통스런 신음을 냈다.
“대인!”
사람들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고해의 주변은 뼈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악의 기운처럼 생긴 검은 기운이 뼈에서 뿜어져 나와 사람들로 하여금 가까이 갈 수 없게 했다.
뼈는 의식이라도 있는 듯 자신을 잡은 고해를 향해 반격했다.
뼈가 갑자기 고해의 손바닥을 찌르더니, 어떻게 할 틈도 없이 그의 체내로 스며들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고해의 온몸에 전해졌다.
“이놈!”
고해는 다급히 왼손으로 뼈를 잡고 뽑으려 했다.
하지만 뽑을 시간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고해는 재빨리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았다.
그의 얼굴에 경악한 표정이 떠올랐다.
뼈가 자신의 몸속을 마구 헤집어놓는 듯했다.
<하하하하하, 죽일 놈! 내가 지금 용맥을 회복 중인데, 감히 내 일을 방해해? 방해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너를 먹어버려야겠다!>
머릿속에서 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응? 기초가 제법 단단하네? 호오, 몸이 정말 좋구나! 그렇다면 너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너로 변신해야겠다! 하하하하하!>
뼈의 의식은 곧바로 고해의 머리로 향했다.
고해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뼈의 의식을 막으며 악의가 머리에 스며드는 것을 막았다.
<정말 의지가 굳건한 놈이구나! 어이, 인간. 당신 참 괜찮은 놈이야. 하지만 나를 만난 것이 불행이구나. 내가 비록 힘을 다 쓰는 바람에 극도로 허약해졌지만, 너 정도 인간은 내 상대가 아니다. 난…… 신이거든!”
뼈에 깃든 악의 목소리가 고해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쿵! 쿵! 쿵!
강렬한 충격이 고해의 머릿속을 강타했다.
고해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는 처음으로 죽음이 코앞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는 절대 다시 그 뼈를 뽑지 않을 생각이었다.
와르르!
뼈는 강렬한 의지로 노래를 부르며 고해의 봉쇄를 하나하나 무너뜨렸고, 그의 눈썹 사이로 돌격했다.
쿵!
마치 커다란 해골 하나가 눈썹 사이를 강타한 것 같았다.
그 바람에 모든 방어력이 뚫리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콰아아!
고해의 눈썹 사이에 있던 흑돌이 광채를 발하며 해골을 들이받았다.
해골이 놀라서 소리쳤다.
<뭐지? 너한테 왜 영보가 있는 거지? 너 같은 일반인이 어떻게 영보를……? 아니 그보다, 내가 전승을 할 동안에는 영보가 나를 해칠 수 없을 텐데?”>
검은 기운의 해골이 놀라서 소리쳤다.
콰광
굉음과 함께 묵광이 검은 기운의 해골과 충돌했다.
무수히 많은 해골 조각이 고해의 눈썹 사이 공간에 떠 있었다.
고해는 심장이 덜컥할 정도로 놀랐다.
하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해골 조각을 향해 돌진했다.
와르르!
고해의 의식은 신속하게 해골 조각을 삼켜버렸다.
“안 돼, 안 돼, 날 삼키면 안 돼. 나의 의식, 나의 의식. 나는 가장 위대한 골조야! 신들도 나를 어쩌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일반 인간에게 먹힐 수 있지? 아닐 거야. 안 돼!”
해골 조각 속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해골은 결국 흑돌에 맞아 부서졌다.
더 이상 저항할 힘조차 없었다.
고해의 의식은 신속하게 그것을 삼켜버렸다.
우르르!
의식은 해골 조각과 검은 기운을 모두 삼켜버린 후 다시 눈썹 사이의 공간으로 돌아갔다.
고해의 몸 주변에서는 여전히 검은 기운이 맴돌았고, 사람들은 도저히 그에게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검은 기운 속에서 고해가 서서히 두 눈을 떴다.
검은 기운은 고해의 가슴속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그는 가슴 쪽 옷을 찢어버렸다.
가슴 왼쪽 밑이 까맣게 물들어 있었고, 심장은 쿵쿵 뛰고 있었다.
고해는 왼쪽 가슴을 어루만졌다.
‘이게 뭐야? 나 늑골이 하나 늘었는데? 게다가 나의 신체 일부분이 되었다는 느낌마저 드는군. 나의 의식으로 이 늑골을 제어할 수 있을 것 같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침을 삼키고 느낌에 따라 오른손을 내밀었다.
치익!
갑자기 그의 가슴 위에 구멍이 뚫렸다.
가슴팍 내부의 뼈가 그의 가슴을 뚫더니, 날카로운 뼈의 손잡이가 서서히 드러났다.
고해는 놀라움을 참고 자신의 가슴에서 뼈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뽑아낸 뼈는 자동으로 일(一)자가 되었고, 흉악한 검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아!”
고선무 등은 그 검은 기운으로 인해 뒤로 물러나더니, 놀라서 소리쳤다.
퍽!
뼈는 길이가 사 척 정도 되었고, 검은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이했다.
뼈 위에는 무수히 많은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아까 용맥에서 뽑아 손바닥에 스며들었던 뼈였다.
하지만 이 순간, 고해는 자신과 뼈의 혈맥이 서로 연결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뼈가 마치 자신의 신체 일부분 같았다.
뼈를 삼키면서 의식에 새로운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더구나 그 의식은 자신이 조정할 수 있었기에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뭐지?’
뼈를 잡고 있던 고해는 무엇이든 베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을 막을 자가 없을 것만 같았으며, 그 어떤 경우에도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