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보루
고해가 명령을 내렸다.
“진천산, 넌 지부를 거느리고 청하종에 가서 상황을 조사해 봐라. 난 집에 가 있을 것이니,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집으로 찾아와라.”
“예. 감사합니다, 대인!”
“감사할 것 없다. 청하종도 나한테 큰 도움을 줬으니까. 이 송갑종 제자들은 네가 데리고 가라.”
“예!”
수백 명의 지부 악인들은 진천산의 명령 하에 송갑종 제자들을 데리고 삼림 속으로 들어갔다.
고해는 영석광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동굴 하나가 있었다.
동굴 벽에는 파헤친 흔적이 있었고 일반 영석들이 벽에 박혀 있었다.
도파가 그걸 보고 고해에게 설명해 주었다.
“대인, 이것은 제일 일반적인 영석광이고 제일 번거로운 영석광입니다. 천천히 파서 영석을 뽑아야 합니다. 혹시라도 힘을 너무 많이 쓰면 영석이 깨집니다. 깨진 영석은 전혀 가치가 없습니다.”
“파낸 영석은 잘 살펴보고 모두 회수해라. 그리고 너희들은 동굴 밖에서 나를 기다리도록 해라.”
“네!”
고해가 명령을 내리자, 사람들은 주변의 영석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고해는 손을 가슴에 올려서 절생도를 꺼내 들었다.
스스스.
절생도는 세상 밖으로 나오자 검은 기운을 내뿜었다.
“네가 영석의 기운도 삼킬 수 있느냐? 한번 해보자꾸나.”
고해는 동굴 벽에 절생도를 꽂았다.
후!
절생도가 검은 기운을 내뿜으며 벽면으로 스며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벽에 박혀 있던 영석들이 가루로 변해버렸다.
영석의 기운은 전부 절생도로 흡수되었다.
한참 후, 검은 기운이 다시 절생도 속으로 스며들었다.
고해는 절생도를 거두었다.
강한 힘을 흡수한 절생도가 고해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고해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몸이 조금씩 흔들렸지만 수련 단계를 돌파하지는 못했다.
“영석이 너무 적은 거 아닌가?”
고해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동굴을 나왔다.
고해가 밖으로 나간 순간, 영석의 기운이 사라진 산이 무너져내렸다.
콰르르르릉.
주변의 악인들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고해는 못 본 척하고 지시를 내렸다.
“가자. 앞쪽 마을에 가면 나의 마장이 있다. 말을 타고 가면 삼 일 후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거다.”
“예, 대인!”
사람들은 무너진 산을 힐끗거리며 고해를 따라 그곳을 떠났다.
* * *
호뢰관에도 대봉방의 소식이 전해졌다.
고해의 집을 지키고 있던 수련자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너, 너, 농담하는 거지? 고해가 삼천 악인을 항복시켰다고?”
“뭐? 고해가 대봉방을 무너뜨렸다고?”
“젠장! 내가 바보로 보이냐? 아니면 이만 명의 수련자들이 멍청이야? 고해가 죽이고 싶으면 죽일 수 있는 줄 알아?”
수많은 수련자들은 당황했다.
이전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었다.
대봉방에서 벌어진 소식이 전해졌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몇 달 전만 해도 고해는 그저 후천경의 수련자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문은 사실인 걸로 드러났다.
사람들은 기겁했다.
고해를 납치하고 금반도를 뺏으려 했는데, 이제는 자신들의 목숨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고해는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이만 명이나 죽인 흉악한 자였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그곳에서 떠나갔다.
하지만 일부는 남아서 이를 갈았다.
“나의 형이 천도생사국에서 죽었다는군. 난 형을 위해 복수할 거야.”
“나의 사제도 대진에 들어갔다가 죽었대. 고해는 나의 사제를 죽였으니 난 고해의 아들을 죽일 것이야!”
* * *
달빛이 고부를 내리비췄다.
고부는 이미 수없이 확장되어서 건축물을 세기도 힘들었다.
그중 가장 특이한 건축물은 성루처럼 만들어진 원형 건축물이었다.
고진과 고한은 보루 옥상에 서서 밤바람을 쐬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보루 주변에는 꽃과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고진과 고한 두 형제는 난간을 잡고 주변을 살폈다.
그들의 뒤에서 부하가 들려오는 소식을 전했다.
소식을 듣던 고한의 표정이 밝아졌다.
“의부가 돌아오시는군요. 이만 명의 수련자를 죽였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니, 우리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도 지금은 두려움에 떨고 있겠죠?”
고진도 덩달아 기뻐했다.
“그래, 의부가 돌아오시는구나. 게다가 삼천 명의 악인을 거느리고 오신다 하니, 지금쯤 이곳에 있던 자들의 욕심도 모두 무너졌을 거야.”
“하지만 형님,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바보같이 욕망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의부께서 곧 도착하실 거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조금만 더 버티면 돼. 게다가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위치는 의부가 알려준 방식대로 만들어진 거대한 보루이니 아무도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고한이 고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저희도 의부처럼 밖에 팻말을 걸어둘까요?”
“그것도 나쁘지 않아. 쳐들어오는 자는 죽음이다! 하하하.”
고진이 웃음을 터트렸다.
다음 날 아침.
고부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이 보루를 보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보루의 앞쪽에는 언제 걸어두었는지 모를 팻말이 걸려 있었다.
[고부에는 이미 진을 쳐둔 상황이다. 침범하려는 자는 죽을 것이다!]
팻말을 보고 있던 수련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무슨 헛소리야? 대진? 여기가 무슨 이십팔 종황대진인 줄 알아?”
“그건 고해만 할 수 있는 거야. 선천잔국계에서 배운 거라고. 고 씨의 집에는 있을 수가 없지!”
“안개도 없이 주변이 이렇게 잘 보이기만 하는데, 무슨 진이 펼쳐져 있다는 거야?”
대다수 수련자들은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감히 모험을 하지는 않았다.
대봉방 사건이 너무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일부 복수심이 가득한 수련자들도 멈칫거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저 멀리서 백 명의 흰옷 수련자들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송갑종의 제자들이잖아? 저들이 왜 왔지?”
누군가가 경악하며 말했다.
맨 앞에서 걷고 있는 송갑종의 제자가 싸늘한 눈빛으로 고부를 쳐다보았다.
사람들 무리에서 누군가가 신속하게 뛰어오더니, 마치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던 사람처럼 말했다.
“사숙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고진과 고한은 어디 있느냐?”
맨 앞에 있던 흰옷 수련자가 침착하게 물었다.
“예?”
사숙이란 자가 싸늘한 어조로 명을 내렸다.
“종주님의 명이다. 고해의 두 아들, 고진과 고한을 잡아라!”
그 말을 듣고 송갑종 제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숙님, 제가 여기서 삼 개월 동안 지키면서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고진과 고한은 저기 이상한 보루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보루에 걸려 있는 팻말을 보면 위험할 것 같습니다.”
주변의 수많은 수련자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송갑종의 제자가 왜 고진과 고한을 잡으러 온 거지?
그때 사숙이란 자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침범하려는 자는 죽을 것이다? 하하하하하, 웃기는군. 후천경에도 미치지 못하는 놈들이 이런 걸로 우리를 겁주겠다고?”
“사숙님, 대봉방에서 고해도 이렇게 팻말을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송갑종의 장로 백유의 눈빛이 흔들렸다.
대봉방 사건은 그도 들었다.
종주는 대봉방 사건 때문에 사람을 시켜 고해의 아들을 잡아오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눈앞이 훤히 다 보이는데 어떻게 진법이 있을 수 있지?
“웃기는군, 진법이 어디에 있느냐? 고해는 그렇다 쳐도, 감히 두 아들 따위가 우리를 겁주겠다는 것이냐?”
백 장로는 콧방귀를 뀌면서 송갑종 제자들을 집합시켰다.
보루에 있던 고진과 고한도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들은 보루 위에서 시끌벅적 떠들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형님, 저들이 안으로 들어오려나 봅니다.”
고한의 말에 고진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올 테면 오라고 해!”
고진과 고한은 두 손으로 보루 옥상의 난간을 잡고 싸늘한 시선으로 송갑종 제가들이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산들바람은 주변의 잔디를 춤추게 했고 마치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저기 보세요, 사숙님. 그들입니다. 고진과 고한!”
앞서가던 송갑종의 제자가 소리쳤다.
백 장로는 고개를 들고 보루에 서 있는 두 형제를 쳐다보고는, 싸늘한 어조로 소리쳤다.
“어서 저들을 잡아라!”
“예!”
송갑종 제자들이 대답하고는 몰려갔다.
앞에 걸려 있는 팻말이 무섭긴 했지만 눈앞에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들은 한시름 놓았다.
주위에 있던 수련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수군거렸다.
백 장로는 긴장감을 풀지 않았다.
그는 보루를 살피며 혹시라도 화살이 날아올까 봐 경계했다.
“아무 일도 없는데요? 사숙님, 아마도 고해의 두 아들이 사기를 친 것 같습니다!”
“하하하, 사숙님, 제가 저들을 잡겠습니다!”
“제가 잡겠습니다!”
송갑종 제자들이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달려갔다.
하지만 백 장로는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보루에서 고한이 싸늘하게 웃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때였다.
철컥!
송갑종의 제자가 무언가를 밟았는지 부싯돌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응?”
쿵!
굉음이 송갑종의 제자들 무리 속에서 들려왔다.
갑자기 들려온 폭발 소리에 외부의 수련자들은 대경하며 뒤로 물러섰다.
“무슨 일이야?”
“뭐가 폭발한 거지?”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이, 몇십 명의 송갑종 제자가 폭발로 의해 하늘로 붕 떠버렸다.
그들의 팔다리가 절단되고 짓이겨져서 사방에 피가 흩날렸다.
폭발한 곳에는 연기가 자욱했고 주변은 불바다가 되었다.
“아아악!”
“으아아아!”
“아아악! 살려줘!”
사방에서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송갑종 제자 중 몇십 명은 죽었고, 몇십 명은 중상을 입었다.
중상을 입은 제자들은 바닥에 누워 꿈틀거렸다.
자신의 잘린 팔과 다리를 감싸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화르르!
수많은 흙탕물이 폭발과 함께 하늘로 솟았다가 다시 떨어졌다.
수련자들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모두 숨을 죽이고 그 참혹한 현장을 지켜보았다.
한참 후 다시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침범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잖아!”
“이건 어떤 진법이지?”
“폭발을 하다니…….”
수련자들은 겁에 질려서 멀찌감치 뒤로 물러섰다.
“사숙님, 진짜 진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송갑종의 제자가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한편, 보루 위에서는 고진과 고한 두 형제가 이마를 찌푸리고 있었다.
고한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화약을 덜 묻었나 봅니다.”
고진은 그에 대해 탓하지 않았다.
“괜찮다. 주변에 많은 화약이 묻혀 있으니 쉽게 들어오지는 못할 거다. 가자, 우리도 가야 할 때가 됐다.”
두 사람은 보루 안쪽으로 들어가 사람들 시선에서 사라졌다.
송갑종의 제자들은 다급히 중상을 입은 사람들을 치료했다.
한참이 지났을 때, 제자 중 하나가 백 장로를 쳐다보며 물었다.
“사숙님, 어떻게 할까요?”
백 장로는 고부의 진입을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진입한다. 진기로 몸을 보호하고 계속 진입해! 뿔뿔이 흩어져서 각기 다른 곳으로 진입한다. 그 둘을 잡아라!”
“예, 사숙!”
송갑종 제자들은 다시 안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철컥! 쿵!
철컥! 콰광!
철컥! 콰과광!
고부 주변에서 계속 폭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송갑종 제자들은 진기로 몸을 감싸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폭발의 충격을 모두 막아낼 수 없었다.
고통스런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팔다리가 절단된 자들이 사방에 뒹구니 참으로 눈을 뜨고 지켜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대지의 연속된 폭발로 인해 고부 주변도 흔들렸다.
충격이 크다 보니 다른 곳에 은폐되어 있던 화약도 모조리 터져버렸다.
콰과과과과광!
쿠구구구궁!
거대한 굉음와 함께 수많은 폭발이 동시에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