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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94화 (94/243)

94화 애도(哀悼)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도 가까이 가고 싶었으나 한 무리의 악인들에게 둘러싸여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백 장로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지려는 순간, 빨간색 독기를 품은 뱀이 꼼지락거리더니 이내 숨을 멈췄다.

그러나 뱀들은 머리카락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말라버렸다.

악인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말해! 백유가 왜 저렇게 된 거지?”

고선무가 살아남은 송갑종 제자들을 보며 물어보았다.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목숨을 겨우 부지한 송갑종 제자들이 겁에 질려 말했다.

백 장로를 바라보는 고해의 안색은 지극히 어두웠다.

“대인, 이 사람은 요괴로 변한 것 같습니다!”

옆에 있던 상관흔이 입을 열었다.

고해가 상관흔을 보며 물었다.

“뭐 아는 거 있어?”

상관흔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인이 예전에 이런 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절반은 사람이고 절반은 요괴입니다. 그냥 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반은 사람이고, 절반은 요괴다?”

“예, 요괴가 사람의 혼을 먹은 후 요괴의 피를 사람의 몸에 주입했습니다. 그 피는 사람의 몸에 퍼지면서 점점 새로운 혼을 만들지요!”

상관흔의 말에, 옆에 있던 도파가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엥? 천혼(天魂)은 하늘에서 오고, 지혼(地魂)은 땅에서 오고, 인혼(人魂)은 부모님한테서 오는 거 아닙니까? 사람의 몸에 요괴의 혼이 들어갔으니 이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겠군요.”

고해는 뱀으로 가득 찬 머리카락을 다시 보았다.

“요괴의 피도 매우 진귀해서 쉽게 사람의 몸에 넣지 못합니다. 최소한 원영경 이상이어야 이런 피를 받을 수 있지요. 백 장로 머리에 있는 뱀을 보아하니 이미 요괴로 변한 것 같습니다.”

상관흔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고해가 물었다.

“요괴로 변하면 몸이 변하는 외에 또 뭐가 달라지지?”

“조금 전의 빨간색 기운이 바로 마귀의 기운입니다. 짧은 시간에 힘을 다섯 배로 키우기도 하지요. 이런 요괴들은 사람의 심장과 간을 즐겨 먹는다고 합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송갑종주의 제자도 질겁한 표정으로 백 장로의 괴물 머리를 바라보았다.

“뭐? 세상에! 여기로 오는 길에 우리와 함께 온 제자 두 명이 심장과 간까지 먹힌 채 죽어버려서 요수들의 습격을 받은 줄 았았잖아! 그런데 뭐야? 백 사숙, 백 사숙의 짓이었어?”

고해는 차가운 눈으로 백 장로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백 장로의 요괴화는 백 장로 혼자만의 일일까 아니면 송갑종의 많은 사람들도 요괴 머리를 하고 있을까?

잠시 생각하던 고해가 싸늘하게 말했다.

“태워라!”

“네!”

악인들이 대답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환희에 찬 목소리가 고해를 불렀다.

“의부!”

고진과 고한이 부하들을 이끌고 고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더 이상 그들의 길을 막는 수련자들은 없었다.

두 의붓아들이 걸어오는 것을 본 고해는 웃음을 지었다.

“의부님께 인사 올립니다!”

고진과 고한이 고해의 앞으로 와서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대인께 인사 올립니다.”

고가의 하인들도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조금 전 고해의 위력을 실감한 하인들은 겁에 질린 눈빛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집에는 아무 일 없었느냐?”

고해의 말에 고진이 웃으면서 입을 열려고 하자, 고한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의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부 의부님의 말씀대로 준비했습니다. 다만 요즘 위험한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저와 형님도 좀 늦었습니다. 아! 조금 전의 폭발이 대단했습니다. 하하하, 송갑종 제자들의 콧대를 제대로 꺾어버리셨군요. 하하하하!”

고한은 흥분해서 말했으나, 고진은 비교적 진중했다.

“의부, 주변에 나쁜 생각을 품은 수련자들 빼고는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고해는 엄숙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다보았다.

주변에 있던 무수한 수련자들도 고해를 예의 주시했다.

고해가 큰 소리로 말했다.

“곧 대진을 설치할 테니, 허락도 없이 들어오는 자들은 전부 죽을 것이다!”

“헉!”

주변의 수련자들이 눈을 부릅떴다.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이 시끌벅적하며 고해를 바라보았다.

진? 대진을 만든다고?

조금 전의 대진을 목격한 수련자들은 대진 안에 있었다.

그런데 고해가 또 진을 만든다고 하자 겁에 질렸다.

“천도생사국?”

“이십팔 천지종횡대진?”

“이만 명의 수련자들을 죽인 그 대진?”

수련자들은 안절부절못했다.

겁이 많은 자들은 슬금슬금 외부로 빠져나갔다.

고해는 주변에 있는 수련자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오히려 악인들을 바라보았다.

“고선무, 천부를 데리고 가서 고부 주변을 순찰하거라! 함부로 들어온 놈들은 죽여!”

“예!”

고선무가 대답하고 돌아섰다.

고해가 이번에는 고한에게 명령을 내렸다.

“고한아, 여기 고 부장님에게 순찰 범위를 알려주려무나. 그리고 여기 송잡종 제자들을 처리해!”

“네, 의부!”

“고진이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지낼 곳을 마련해!”

고진도 힘차게 대답하고 몸을 돌렸다.

한 무리 악인들의 거처도 마련되자, 거의 반년의 시간을 들여 만든 고부는 점점 더 커졌다.

그러나 고해는 여전히 자신이 서 있는 충천탑을 가장 좋아했다.

고해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후 무수히 많은 영석을 꺼내 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악인들도 고해를 도와 진을 만들었다.

“후!”

순간, 하얀 구름이 고부의 주변을 뒤덮었다.

“얼른 가자! 고해가 진을 치고 있어!”

“천도생사국! 천도생사국이 분명해!”

“아냐,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이야!”

고해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수련자들은 재빨리 대진 밖으로 빠져나갔다.

충천탑 위에 선 고해는 하늘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밖에서는 대진의 내부를 볼 수 없었으나, 대진 안에서는 밖의 상황을 훤히 볼 수 있었다.

“의부, 이건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입니까, 아니면 천도생사국입니까?”

고진이 두리번거리며 물어보았다.

고해는 머리를 저었다.

“둘 다 아니다.”

“네?”

“많은 영석이 있어야 진을 칠 수 있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그럼 이건 무슨 진입니까?”

고해가 숨을 들이쉬며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성계(空城计)!”

고진이 입을 반쯤 벌리더니, 이내 머리를 끄덕거렸다.

“역시 의부입니다. 전에 천도생사국과 이십팔 전치종횡대진을 경험한 저놈들은 쉽게 다가오지 못하겠군요.”

고해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 * *

고부와 멀리 떨어진 한 숲속.

스삭, 스삭!

숲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진천산의 지부에 소속된 악인들이었다.

진천산은 들것에 실려 있었다.

“콜록콜록! 빨리 걸어. 저기가 고부야. 콜록콜록!”

들것에 실린 진천산이 기침을 해대며 고부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진천산뿐만 아니라 중상을 입은 악인들도 들것에 실려 숲속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부장님, 청하종이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아니, 어떻게 함정을 만드냔 말입니다.”

한 악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진천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청하종을 돕기 위해 갔는데, 거꾸로 청하종 제자들이 함정을 파고 자신들을 공격한 것이다.

청하종주에게 무슨 일이 있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었다.

“콜록! 배신자! 저들은 배신자야! 송갑종 제자들과 함께하다니!”

몇몇 악인들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부장님, 죽이러 갑시다!”

진천산이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다.”

“부장님, 소인 열불 바쳐서 속이 내려가지 않습니다. 한 번에 삼백 명이 넘는 사람이 다쳤고 열다섯 명이 죽었습니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당한 적이 있습니까?”

진천산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알아. 콜록콜록!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저놈들의 덫에 걸려들었지. 고선무는 나보다 총명하고, 도파는 나보다 사납고, 상관흔은 나보다 아는 것도 더 많아. 나는 죽는 것이 무서워서 할 수 있는 게 없어. 대인께 말씀드리면 대인이 복수해 주실 거야!”

“휴우우.”

악인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진천산은 이를 갈았다.

“청하종은 망했고, 송갑종이 안팎으로 청하종을 관리하고 있어. 심지어 종주조차 생사를 확인할 수 없어. 게다가 놈은 일품당 당주까지 잡아 가뒀다. 송갑종주 송생평!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단순히 청하종주에게만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송생평이 청하종에 있던 일품당주 용완청을 잡아가둔 것이다.

그녀를 지키던 유년대사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일품당 당주가 어떻게 붙잡힐 수가 있지요? 송생평이 왜 그러는 걸까요?”

“모르겠다. 이 길 따라 쭉 가면 돼. 얼른 가서 대인을 만나야 한다. 서둘러라.”

“네!”

악인들은 굳은 표정으로 숲속을 나섰다.

* * *

고부 옆에 있는 작은 산골짜기에도 구름이 뒤덮이면서 밖에 있는 수련자들은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었다.

작은 산골짜기는 꽤 아늑하고 조용했다.

작은 개울이 졸졸 흐르고 주변에는 도견화로 가득 차 있었다.

산골짜기의 고요함을 깨지 않기 위해 외부인의 출입도 금지했다.

고해는 음식을 들고 작은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두견 숲을 지난 그는 한 묘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작은 묘 앞에는 석패가 세워져 있었다.

보아하니 일반 사람의 묘비인 것 같았다.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 진선아의 묘]

고해는 손에 음식을 들고는 묘비 앞에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접시에 떡을 담았다.

“녹두떡, 고구마떡, 팥떡. 전부 네가 좋아하던 떡이야. 한동안 못 해줘서 미안해. 맛이 변했나 한번 먹어 봐.”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듯 말을 건넨 고해는 천천히 앉더니, 이내 묘비에 기대고 있었다.

“선아야. 내가 왔다.”

묘비에 기대어 하늘을 보는 고해의 마음은 몹시 편안해 보였다.

밖에서는 흉악하고 사납던 고해가 묘비 앞에서는 모든 경계를 내려놓고 소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 보여? 이제는 늙은이가 아니라 젊어졌어. 나 선천경 칠단계도 이루었어. 내가 말했잖아. 남들이 하는 건 다 할 거라고. 앞으로 금단경도, 원영경도 이루어서 점점 더 강해질 거야. 더 강해져서 우리를 괴롭혔던 사람들을 혼내줄 거야. 천천히 그들을 모조리 씹어 먹어버리겠어!”

고해는 담담하게 말했으나 눈빛에서는 굳센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내 걱정은 하지 마. 남들보다 더 잘살 거야. 우리를 무시했던 사람들보다 더 잘살 거야.”

고해는 녹두떡을 손에 들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참을 지나서야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 그놈들이 구오도에 온 이유는 용맥을 찾기 위해서인 것 같아. 하지만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어. 내가 천천히 찾아낼 거야. 내 사랑하는 아내, 선아를 위해서.”

고해는 녹두떡을 한입 떼어서 입에 넣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몇 개월 전, 선천잔국계에서 들었어. 사람은 천지인 세 개 혼이 있다고 하더군. 천혼은 하늘에 속하고, 지혼은 세상으로 돌아다니고, 인혼은 묘비 옆에 있다고 했어. 선아야, 너의 인혼도 여기에 있어? 내가 보여? 내 목소리는 들려?”

고해의 눈에서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 보고 싶어, 선아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고해는 묘비 앞에서 슬며시 잠들어버렸다.

꿈속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부군님은 영웅입니다. 한 나라의 백성들을 구하셨습니다.”

“우리 부군님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착한 사람입니다.”

“부군님, 이 강아지 너무 귀엽지 않습니까?”

“부군님, 부군님의 아이를 갖고 싶습니다.”

“우리 부군님은 강하니까 나를 보호해 주겠지?”

“부군이 있는 한 누구도 나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꿈속에 나온 말들은 전부 예전의 추억이었다.

고해는 묘비에 기대어 잠이 들었으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 * *

쿵쾅!

진천산과 악인들이 고부에 들어왔다.

그들을 본 모든 사람이 왜 저렇게 됐는지 알고 싶었으나 아무도 나서서 물어보지 못했다.

달려 나온 고선무가 화들짝 놀란 채 진천산을 내려다보았다.

“진 부장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대인은? 얼른 대인한테로 데려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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