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95화 (95/243)

95화 전서(戰書)

사대 부장과 고진, 고한이 함께 서 있었다.

그러나 진천산은 다급하게 고해만 찾았다.

고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진천산에게 말했다.

“진 부장님, 의부님께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애도하고 계시니 누구도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뭐? 정말 지급을 요하는 사안이야!”

“먼저 저희한테 말씀하시죠. 저와 큰형님도 지금은 의부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엥? 대인께 아내분이 계셨어?”

고진과 고한은 입을 굳게 닫았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는 더 묻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상관흔이 물었다.

“진 부장, 대체 무슨 일인가?”

진천산이 탄식을 하며 씁쓸하게 말했다.

“하아. 청하종에 갔다가 덫에 걸렸네.”

“청하종에 가서 덫에 걸렸다고?”

많은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 * *

수일 뒤, 청하종 한 정자.

송갑종주 송생평이 제자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고해가 돌아왔다고? 보아하니 백 장로가 실패한 것 같구나.”

송생평의 말에 제자 하나가 답했다.

“예, 백 장로가 변신까지 했는데, 악인들의 손에 죽었다고 합니다.”

“흥! 미친놈. 그렇게 겉치레에 신경을 쓰더니! 흥!”

“종주님, 그렇지만 이 악인들이……!”

“이위도 멍청한 놈이야. 그러니까 악인들의 손에 빼앗기지! 그 악인들? 흥! 걱정할 필요 없다. 지금은 누구나 다 변신하잖느냐? 지금도 더 발전하고 있고. 그따위 악인, 무서워할 필요 없다!”

“네, 소인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송생평은 제자들을 잠시 다그치고는 낮은 소리로 물었다.

“심문은 어떻게 됐느냐?”

제자 하나가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아직 별다른 소식은 없습니다. 청하종주의 의지가 굳건해서 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송생평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반드시 유년대사의 행방을 캐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예,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 * *

고부의 어느 한 대청.

고해는 묘비에서 돌아온 후 사납고 거칠게 변했다.

그는 금포를 입고 대청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양쪽에는 고진, 고한, 조선지, 도파, 상관흔과 진천산이 자리했다.

고해는 차를 마시며 진천산의 말을 들었다.

“너희가 청하종에 도착하자 청하종 제자들이 산골짜기로 데리고 갔고, 갑자기 청하종과 송갑종 제자들이 몰려와서 너희들을 죽이려고 해서 도망가려던 찰나 송갑종주를 보았고, 열다섯 명의 지부 제자들이 덫에 걸려 죽었다?”

진천산이 씁쓸하게 말했다.

“네, 추살까지 당해서 삼백여 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나마 우리 지부 악인들이 정예여서 겨우 저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송갑종 제자를 붙잡아서 물어봤더니, 송갑종주가 대봉방에서 돌아가자마자 청하종을 공격하여 굴복시켰고, 종주는 행방불명 상태라고 합니다. 아, 일품당주도 붙잡혔다고 했습니다.”

고해가 흠칫하며 물었다.

“뭐야? 일품당주가 붙잡혀?”

“예.”

“붙잡아온 사람이 있다고 했지?”

“데리고 왔습니다. 대인, 실례 좀 하겠습니다.”

진천산이 곧바로 대청을 뛰어나갔다.

곧 몇몇 악인들이 청색 옷을 입은 남자를 데려왔다

그 남자가 진천산을 보면서 사정했다.

“저 좀 살려주십시오! 저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고해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상관흔을 바라보았다.

상관흔이 머리를 끄덕거리더니, 앞으로 걸어가서 청색 옷을 입은 남자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쾅!

순간, 청색 옷을 입은 남자의 몸에서 빨간색 기운이 감돌았고, 그 남자의 눈알도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스으윽!

그 남자의 머리카락이 전부 작은 뱀으로 변해버렸다.

“으악!”

청색 옷을 붙잡고 있던 악인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그 남자의 몸에서 손을 뗄 뻔했다.

“하앗!”

상관흔이 미간을 꾹 누르자, 청색 옷을 입은 남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머리에 있던 뱀들도 꼬리를 내렸다.

그 남자는 녹초가 되어버린 듯 축 늘어졌다.

진천산이 대경해서 물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놈이 변신해도 도망치지 못할 것 같으니 진 부장을 속이려고 했던 것 같소. 흥!”

상관흔이 말하고는 차갑게 코웃음 쳤다.

도파가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백 장로뿐만 아니라 송갑종의 많은 사람들도 요괴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항복한 사람들까지 변한 것 같군요.”

고선무가 직접 나서서 심문했다.

“너희들 어쩌다가 요괴로 변하는 거지? 또 누가 있어?”

“저, 저, 저……!”

그 남자는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고선무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다그쳤다.

“말하지 않으면 죽는다!”

“마, 말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저의 선배가 송갑종에 항복하자고 해서 송갑종으로 갔더니,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정신을 잃게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렸더니 제가 고개도 돌리지 못할 정도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청색 옷을 입은 남자가 겁에 질린 채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상관흔이 말했다.

“송갑종 내부에서 직접 개조한다고? 그 말은 대왕 요괴가 송갑종 내부에 있다는 말이잖아?”

진천산이 눈을 부라리며 남자에게 물어보았다.

“아무리 안팎으로 공격을 했다 해도 청하종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리 없거늘. 어쩐지……. 그런데 종주는 반격을 안 했느냐?”

남자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날 스승님이 송갑종주와 흑포를 입은 사람을 데리고 청하종이 지키는 대진 내부로 들어왔습니다. 그 후 송갑종주가 종주님과 사숙, 그리고 일품당 사람들에게 독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반응이 없었는데, 흑포를 걸친 사람이 손을 휘젓자 빨간색 기운이 퍼지면서 모든 사람이 독에 당해서 쓰러졌습니다.”

그 후 송생평은 청하종주와 용완청을 잡아서 가두었다고 했다.

조용히 듣기만 하던 고해가 물어보았다.

“청하종주와 일품당 당주는 청하종에 갇혀 있느냐? 그럼 유년대사는?”

다른 사람은 경각심을 잃었을 수 있어도 유년대사는 달랐다.

자신이 직접 접촉한 적이 있기에 실수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유년대사는 없었습니다. 어디 갔는지도 모르고요. 송생평도 유년대사를 찾으려고 청하종 제자들을 심문하고 있습니다.”

청색 옷을 입은 남자가 덜덜 떨면서 말하자, 고해가 눈살을 찌푸렸다.

“유년대사가 없었다고?”

반면 진천산은 다른 말에 더 신경이 쓰였다.

“청하종의 제자들이 살아 있다고?”

청색 옷을 입은 남자는 머리를 숙인 채 진천산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말해!”

진천산이 눈을 부릅뜨고 다그치자, 청색 옷의 남자가 겨우 입을 열었다.

“거의 다 죽었습니다. 송생평이 유년대사의 행방을 말하지 않으면 살아 있을 의미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거의 죽었다고?”

“아마도요.”

진천산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상관흔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죽은 거야? 먹힌 거야?”

“뭐?”

옆에 있던 진천산이 화들짝 놀랐다.

먹힌다고?

청색 옷의 남자는 머리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천산이 상관흔을 바라보며 물었다.

“상관흔, 무슨 말인가? 먹히다니?”

“다음에 설명하도록 하지!”

상관흔은 답을 미루고 청색 옷의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럼 일품당 당주는? 일품당 당주를 붙잡은 이유는 뭐라 하더냐?”

“저도 잘 모릅니다. 다만 흑포를 입은 사람이 일품당 당주를 끌고 송갑종으로 왔습니다.”

눈을 가늘게 좁힌 고해가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흑포를 입은 사람이…… 대왕 요괴?”

고한이 그를 바라보았다.

“의부, 전에 송생평이 사람을 보내 저희 형제를 붙잡으려던 이유도 의부를 압박하려고 그랬던 것 아닙니까? 이번에는 진천산이 도망쳤으니, 송생평이 직접 나타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봉방에 대한 복수와 함께 우리 고부를 멸종시키려고 말입니다.”

고해가 차갑게 말했다.

“송생평이 올 필요도 없다! 내가 직접 갈 것이니!”

청색 옷을 입은 남자가 무릎을 꿇은 채 애걸복걸했다.

“고 타주님, 제가 아는 건 전부 다 말했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착하게 살겠습니다!”

스윽!

옆에 있던 상관흔이 칼을 휘두르자 그 남자의 미간을 관통했다.

남자는 말도 하지 못한 채 숨이 끊겼다.

상관흔이 검을 거두고 낮은 소리로 명을 내렸다.

“끌고 가서 태워버려라!”

“네!”

악인이 나서서 남자를 끌고 나갔다.

“상관 부장, 혹시……!”

진천산은 참지 못하고 바로 물어보았다.

상관흔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 부장님, 저놈의 말은 듣지 말게나. 이미 요괴로 변한 이상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네. 사람들 잡아먹는 건 시간문제네.”

“사람을 먹는다고? 무슨 말인가?”

“요괴로 변한 사람들은 새로운 본능이 생기네. 조금 전에 눈앞에 있던 놈도 뱀으로 변했잖아? 그놈들은 사람의 심장과 간을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든다네.”

진천산이 깜짝 놀라서 눈이 커졌다.

“사람의 심장과 간을 먹는다고? 그럼 우리 청하종 제자들이 설마……?”

“맞네. 수련자들의 심장과 간은 저놈들에게 더 없는 진미지.”

진천산은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감정을 느끼면서 차가운 눈빛으로 괴물이 끌려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상관흔이 한마디 덧붙였다.

“요괴가 사람을 먹는 건 악이고, 사람이 사람을 먹는 건 마(魔)네. 반드시 죽여야 해.”

그때 고선무가 고해를 보며 말했다.

“대인, 송생평이 무턱대고 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대인께서 펼친 대진의 위력에 대한 소문이 자자한데 무작정 달려오겠습니까?”

옆에 있던 고진의 표정이 굳었다.

그 이유는 밖에 있던 대진이 텅텅 빈 공성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진!”

고해가 조용히 고진을 불렀다.

“네!”

“가서 빈 배첩(拜帖)을 가져와!”

“네!”

밖으로 나간 고진은 곧바로 정교한 배첩을 들고 왔다.

고한은 옆에서 먹물과 붓을 준비했다.

고해는 붓을 들어서 겉에 전서 두 글자를 썼고, 배첩을 펼쳐서 글을 썼다.

[일품당과 그 제자를 건드린 자는 죽어 마땅하다!

송생평! 삼천 일품당 제자들이 청하종에 가서 너와 생사혈전을 벌일 것이다.

-일품당, 수타, 고해.]

후!

먹으로 쓴 글씨가 마르도록 후~ 불었다.

팍!

고해가 전서를 덮었다.

사람들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해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고한을 불렀다.

“고한!”

“네!”

“주변에 있는 놈 중에서 누가 송갑종 제자인지 알고 있느냐?”

“의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수련자들이 사층 술집에 머무르고 있어서 그들의 기록이 전부 남아 있습니다. 세 명의 송갑종 제자들이 남아서 우리 고부를 감시하고 있지요.”

“이 전서를 송갑종 제자한테 주면서 송생평에게 전해주라고 하거라.”

“네!”

고한이 조심스럽게 전서를 받아들고는 이내 대청을 나갔다.

“대인, 정말로 청하종에 들어갑니까? 언제 갑니까?”

진천산이 다급히 물어보았다.

청하종이 멸하고 청하종주가 붙잡혀 있으니 복수심이 들끓었다.

고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청하종에 안 간다.”

“네?”

“송갑종으로 간다.”

“송갑종이오?”

“맞아. 내가 이 전서를 보내는 이유는 경거망동할 수 없도록 붙잡아두기 위해서다. 시간을 좀 끌다가 용완청부터 구할 거야.”

“아, 네…….”

진천산은 억지로 대답했다.

고해가 그런 진천산을 보며 말했다.

“진나라와 송나라의 전쟁에서 내가 진양의를 도와서 싸워줬으니 너의 말도 듣겠지?”

진천산이 눈을 부릅뜨고 답했다.

“물론입니다. 그놈도 저 때문에 왕좌를 지켰습니다. 제 말을 당연히 듣지요!”

“그럼 됐다. 얼른 이 편지를 진양의한테 전해라. 그리고 빈 성지 백 장을 준비하라고 해. 반드시 옥새가 찍혀 있어야 한다. 서둘러!”

진천산이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옥새(玉璽)를 찍은 성지 백 장 말입니까?”

“당분간 내가 직접 진나라를 관리할 것이야. 성지를 만천하에 알리고, 성지의 내용은 내가 직접 쓰도록 하지! 얼른 가거라!”

“네? 네!”

진천산은 엉겁결에 대답하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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