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송갑종 진입 계획
한참이 지난 후, 혈지에 있던 사람들의 피가 전부 사라졌다.
흑포를 걸친 자가 그제야 말했다.
“끌고 가!”
“네!”
한 무리의 괴물들이 대답했다.
흑포를 걸친 자는 옆에 있던 산으로 날아갔다. 산 위에는 궁전, 송갑전이 있었다.
“시조(始祖)님!”
송갑전 문 앞에서 한 무리의 괴물들이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흑포를 걸친 자가 물었다.
“뭐 좀 알아냈느냐?”
송갑종의 한 제자가 이마에서 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들 몸에 용 모양의 부적이 있어서 쉽게 손쓸 수 없었습니다.”
흑포를 걸친 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용형부적? 저들은 용완청 외할아버지의 친위대 아니더냐? 그 친위대를 용완청한테 넘겼다고? 용완청의 외할아버지도 저놈들의 상황을 알고 있으니 저들을 죽게 해서는 안 된다!”
“아…… 그렇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것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한테 효과 타령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일이야! 내가 너희들한테 준 능력은 원망이나 하라고 준 것이 아니니라!”
“예…… 알겠습니다.”
그 제자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그런데 송생평 쪽은 왜 아무 소식도 없는 것이냐?”
“종주님께서는 아직도 그 스님의 행방을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흑포를 걸친 자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손을 저었다.
“됐다. 가 보거라. 인혼 연습을 해야겠다.”
“예.”
한 무리의 송갑종 제자들이 물러났다.
흑포를 걸친 자는 송갑전에 들어가서 문을 닫아버렸다. 그러고는 가부좌로 앉더니 비웃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멍청한 인족(人族)! 하!”
* * *
송갑종 밖.
고해는 저 멀리 송갑종 내부로 끌려 들어가는 백성들을 바라보았다.
“대인, 여기 금갑 수정대진에는 단 하나의 출입구밖에 없습니다. 어떡할까요?”
진천산이 복잡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고선무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입구가 한 곳밖에 없는데, 정말로 우리가 저곳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런데 고해가 고선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아니라, 너야!”
“네?”
고선무가 멍하니 고해를 바라보았다.
“들어가서 용완청을 찾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쥐도 새도 모르게 찾아야 한다!”
“그렇지만 저렇게 검문을 하고 있는데, 과연 들어갈 수 있을까요?”
옆에 있던 도파도 걱정스러운 듯 옆에서 거들었다.
하지만 고해가 걱정하는 것은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들어가는 건 쉬워. 다만 저 괴물들을 막는 것이 힘들 뿐. 반드시 저 괴물들을 밖으로 불러내야 한다.”
진천산의 눈이 커졌다.
“네? 대인, 무슨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고해는 고선무를 바라보았다.
고선무는 멍하니 있다가 고해의 말뜻을 이해하기라도 한 듯 말했다.
“대인, 혹시 진을 배치하실 겁니까? 혹시 송갑종 대진과 싸우기라도……?”
고해가 옅은 웃음을 보였다.
“맞아.”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입니까?”
고해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고선무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그러면 영석이 필요하겠군요. 수많은 영석이.”
“맞아. 영석이 필요하지.”
그 말을 듣고, 진천산이 멀지 않은 곳을 가리켰다.
“영석이라면, 저기에 송갑종에서 가장 큰 영석광산이 있습니다. 그것도 수정대진 밖에 있지요.”
고해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뭘 더 꾸물거려? 얼른 가자.”
“예!”
악인들이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 * *
금갑 수정대진 밖. 송갑종 제자가 지키는 한 숲속.
고해 일행은 조용히 다가가서 숲속 입구를 응시했다.
“빨리 움직여! 이놈들은 지금 막 잡은 놈들이야! 전부 젊은 녀석들이라 심장과 간도 맛있을 것 같아!”
“나도! 나도 하나만 줘!”
“내 거 뺏지 마!”
소규모 단체가 조금 전에 잡아 온 진나라 백성들을 긁어먹고 있었다.
악인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상관흔도 이를 갈았다.
“저것이 제가 저 괴물들을 죽이려는 이유입니다. 저들은 먹으면 먹을수록 더 많은 심장과 간을 찾을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목격했던 흡혈귀와 똑같습니다. 피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 흥분한 상태였지요. 저런 괴물들은 반드시, 전부 죽여야 합니다!”
그때 고선무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대인, 이 근처에 팔백여 명의 송갑종 제자들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작은 궁전들도 있는데, 보아하니 채굴한 영석을 전부 그곳에 쌓아두는 것 같습니다.”
고해가 명령을 내렸다.
“고선무, 너는 천부를 데리고 기회를 보다가 송갑종으로 들어가라. 가서 용완청을 구해내거나, 용완청에 관한 확실한 소식을 가져와라.”
“예.”
“상관흔, 황부를 데리고 가서 진을 배치하거라. 대봉방에서 가르쳐준 것 기억하느냐? 좀 있다가 내가 도안을 주도록 하지.”
“예, 대인.”
“진천산과 도파는 지부와 현부를 데리고 저기 있는 팔백 명을 처리하도록 해. 둘이서 한 명을 처리하는 일이니 가능하지?”
두 사람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대인,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해가 주의를 주었다.
“절대 그 어떤 소리가 나서도 안 된다.”
“네…….”
진천산과 도파는 대답을 하면서도 조금 걱정스러웠다.
팔백 명을 소리 없이 죽일 수 있을까?
그런데 고해가 말했다.
“아직 하루의 시간이 있으니 목표물을 정확히 정해라. 사전에 목표물을 확정한 다음, 저녁에 우왕좌왕하지 말고 바로 덮쳐버리면 된다.”
그제야 두 사람이 밝아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네!”
고선무는 천부의 악인들과 재빨리 떠났다.
고해는 연필과 종이를 꺼낸 다음, 빼앗은 영석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상관흔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삼천 명이라는 숫자는 역시나 너무 많았다. 그들은 하마터면 송갑종 제자들의 눈에 발각될 뻔했다.
다행히 송갑종 제자들이 위기감을 느끼지 못해서 겨우 눈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서서히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송갑종 제자들의 행동도 느슨해졌고, 하나둘씩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고해는 산봉우리에 서서 눈을 가늘게 좁혔다.
“때가 됐군.”
순간, 손에 있던 돌을 저 멀리 던졌다.
툭!
돌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사방에 숨어 있던 악인들이 송갑종 제자들을 향해 달려갔다.
“누구야……!”
“으……!”
“사, 살려……!”
악인들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그들은 송갑종 제자들이 소리를 지르기 전에 죽여버렸고, 변신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영석광산을 지키고 있던 송갑종 제자들이 순식간에 모두 죽었다.
상관흔은 황부 악인들과 함께 재빨리 대량의 영석을 가져왔다.
“내가 말하는 대로 진을 배치해라.”
상관흔이 명령하자, 부하들이 그의 말대로 움직였다.
그들은 거침없이 영석으로 진을 쳤다.
고해는 영석광산으로 내려와서 악인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불과 한 시간 후, 상관흔이 뛰어와서 말했다.
“대인, 끝났습니다!”
고해가 고개를 끄덕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나오거라.”
슈우욱!
순간, 영석광산 주변에서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둠이 깔린 밤이어서 안개가 눈에 띄지 않았다.
일단 기초적인 진법을 배치한 후, 고해는 악인들을 움직여서 더욱 강한 진을 배치했다.
악인들도 고해의 명령을 들으며 더욱 바삐 움직였다.
다음 날 아침.
고선무는 송갑종 제자의 옷으로 갈아입은 후, 손에는 채찍을 들고 한 무리의 ‘백성’을 끌고 왔다.
송갑종 입구에 다다르자, 고선무는 백성들 속에 뒤섞였다.
다른 송갑종 제자들도 백성들을 끌고 왔다.
아침이 되자 한 줄기의 햇빛이 여기저기를 환하게 비추었다.
“엥? 저기 봐봐! 무슨 구름이 저렇게 많아?”
“혹시 진법 아니야?”
“진법? 저기에 진법이 있을 리가?”
많은 송갑종 제자들은 고해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수상하게 느껴졌다.
“가보자!”
송갑종 제자 몇 명이 그곳을 향해 뛰어갔다.
고선무가 한쪽을 보며 눈짓을 하자, 악인 하나가 ‘백성’을 끌고 문 앞으로 다가갔다.
“형님, 지금 막 잡은 놈들입니다. 오백 명 정도 되는데 맛이 끝내줄 것입니다!”
악인이 득의양양하며 말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송갑종 제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악인을 바라보았다.
“어디 소속이냐? 왜 이렇게 낯설지?”
바로 그때, 저 멀리에 있는 대진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으악!”
“아아악!”
심장이 터질 듯한 비명 소리가 울리자, 사방에 있던 송갑종 제자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들은 고개를 돌려 비명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 * *
이른 아침, 한 줄기 아침햇살이 내리쪼이자 송갑종의 제자들도 고해가 배치한 대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보자! 영석광산에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무슨 구름이 저렇게 많아? 이거 설마…… 대진이 펼쳐진 건가?”
열댓 명의 송갑종 제자들이 대진 쪽으로 뛰어갔다!
가까이에 이르자, 대진 밖에서 험상궂은 표정으로 서 있는 남자들이 보였다.
“저 새끼들은 누구야!”
“설마…… 적?”
“이런! 큰일 났다!”
그때 악인들이 그들을 순식간에 덮쳤다.
스르르르륵!
송갑종 제자들이 변신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뱀 머리가 되고 몸에서도 힘이 솟았다.
하지만 악인들은 개의치 않고 전면적으로 공격해서 순식간에 그들을 제압했다.
“뭐, 뭐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송갑종 제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동료를 돕기 위해서 달려갔다.
그 순간, 도파가 나타나서 큰 소리로 외쳤다.
“놈들을 죽여라!”
악인들이 마주 달려가며 송갑종 제자들을 공격했다.
열댓 명의 송갑종 제자들이 한순간에 죽어버렸다.
“습격이다!”
“적이다! 안에 알려라!”
송갑종 제자가 울부짖듯 소리쳤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송갑종 제자들은 입구 근처를 왔다 갔다 하면서 안절부절못했다.
수많은 송갑종 제자들이 입구 근처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칼을 들고 사나운 눈빛으로 대진 쪽을 응시했다.
“영석광산이 털렸어! 왜 아무도 몰랐던 거지?”
“그러게 말이야! 내 동생도 거기에 있었다고!”
“도대체 어떤 놈들이야?”
고해는 산봉우리에 올라서서 그 상황을 내려다보았다.
한참 바라보던 그가 냉랭히 명을 내렸다.
“던져라!”
“네!”
진천산과 상관흔이 대답했다.
악인들이 어젯밤에 죽였던 팔백여 명의 괴물들을 전부 내던졌다.
시체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팔백여 구의 시체가 날아오자 공격을 개시하려던 송갑종 제자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들은 하나둘 시체를 확인하고 놀라서 몸을 떨었다.
“설마…… 내 동생?”
“형님이야! 형님!”
“스승님!”
“아악! 저들이 영석광산 사람들을 전부 죽였어!”
“이런 악마들!”
송갑종 제자들이 울부짖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받은 충격에 할 말을 잃은 제자들도 있었다.
팔백여 명의 송갑종 제자들이 전부 죽었다니!
도대체 대진 안에 누가 있단 말인가!
그 와중에도 점점 더 많은 송갑종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제자들의 얼굴은 흉악하기 그지없었다.
모두가 죽일 듯한 표정으로 대진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어떤 놈이냐! 정체를 밝혀라!”
송갑종의 한 제자가 소리 높이 외쳤다.
그때였다.
치이이익!
대진 하늘에 있던 구름이 흩어지면서 고해의 모습이 드러났다. 상관흔과 진천산이 그 뒤에 서서 송갑종 제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고해? 고해 맞아?”
누군가 소리쳤다.
“사라진 거 아니었어?”
“천도생사국?”
“아니, 이건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