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교룡(蛟龍)
공격을 개시하려던 송갑종 제자들은 멈칫했다.
고해의 모습을 본 이들은 대봉방에서의 일이 떠올라서 화들짝 놀랐다.
“고해! 감히 겁도 없이 우리 송갑종 식구를 죽이다니! 우리 종주님께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송갑종 제자들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고해는 산봉우리에서 냉랭한 웃음을 지었다.
“네가 말한 송갑종주가 송생평이냐? 기대도 하지 마라! 송생평은 청하종에서 내가 배치한 진에 죽었다!”
“뭐?”
“거짓말!”
주변에 있던 송갑종 제자들의 안색이 파리하게 굳어졌다.
고해가 다시 크게 소리쳤다.
“송갑종! 겁도 없구나! 청하종과 원수를 맺었으면 그만이지! 감히 우리 일품당을 건드려? 일품당 당주님은 어디 계시냐?! 어서 모셔 와라! 그렇지 않으면 오늘 너희들 전부 피를 보게 될 것이니라! 도망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송갑종의 제자가 마주 악을 썼다.
“종주님을 죽였다고? 허튼소리! 우리 종주님이 원영경이신데, 너 따위가 종주님의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느냐, 고해!”
“원영경? 푸하하하! 원영경도 별거 없다! 내가 죽이려고 마음먹은 놈은 반드시 죽는다! 우리 당주만 없었으면 너희들은 이미 어젯밤에 죽었을 거다!”
“저놈 말 믿지 마! 종주님께서 돌아가셨을 리 없어!”
누군가가 말했다.
하지만 고해의 말에 흔들린 자도 많았다.
“그렇지만…… 고해가 전에도 원영경을 이긴 적이 있다고!”
“가서 저놈의 대진을 깨버리자!”
“너 혼자 가! 천도생사국에서 이만 명의 수련자가 죽은 걸 알기나 해?! 비록 나도 다섯 배로 강해졌지만…… 그렇지만……!”
점점 더 많은 송갑종 제자들이 몰려왔다. 그러나 진의 곁으로는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들은 초조한 듯 발만 동동 구르며 도움을 요청했다.
“얼른! 얼른 가서 시조님께 알려라! 서둘러!”
* * *
송갑종 진세 밖.
일부 송갑종 제자들이 초조한 듯 서 있었는데, 잡혀 온 백성들이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러웠다.
고선무는 백성들 속에 숨어서 송갑종 제자로 변신한 악인에게 눈짓을 보냈다.
악인이 경비병에게 다급히 말했다.
“저기, 형님, 이놈들 데리고 들어가게 해주시지요! 고해까지 왔다고 하는데 얼른 가서 대장님께 알려야겠습니다!”
문 앞을 지키던 경비병도 초조하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해가 왔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거기다 제자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고, 백성들도 하나같이 울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치니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경비병은 결국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들어가! 얼른!”
“예, 감사합니다. 가자!”
악인이 기다란 채찍을 휘두르자, 고선무와 백성들이 금갑 수정대진으로 들어갔다.
* * *
송갑종, 송갑전 입구.
“시조님, 큰일입니다. 고해가 왔습니다!”
괴물로 변신한 제자가 문 앞에서 다급히 말했다.
“고해?”
대전 안에서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일품당 수타주입니다. 말로는 종주를 죽이고 일품당 당주를 구하러 왔다고 합니다!”
제자가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순간, 대전 문이 쾅!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왼쪽 눈에 칼자국이 있는 흑포인이 제자를 보면서 말했다.
“일품당 수타? 무슨 능력을 지니고 있느냐?”
“아, 아마 선천경일 것입니다!”
짝!
흑포인이 송갑종 제자의 뺨을 치며 말했다.
“그놈 말을 믿는단 말이냐? 선천경이 송생평을 죽였다는 게 말이 돼? 빨리 가서 잡아 와!!”
그 제자는 얼굴을 만지며 고해에 대해 말했다.
“시조님, 고해는 보통 놈이 아닙니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선천경이던 사람이 대진을 배치할 줄도 압니다. 심지어 원영경과도 싸운 적이 있고요. 그래서…… 그래서 시조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겁니다요.”
흑포인은 이마를 찌푸렸다. 사실이라면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앞장서!”
“예!”
송갑종 밖.
흑포인이 나오자 수천 명에 달하는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칼을 들고 흑포인을 보호했다.
옆에 있던 제자 하나가 고해에 대해서 다시 흑포인에게 말했다.
흑포인은 두 눈을 끔뻑이면서 저 멀리에 있는 고해를 노려보았다.
상관흔이 흑포인의 기를 느끼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악귀가 장난이 아닙니다. 대인, 조심해야 합니다!”
고해도 흑포를 응시했다.
고해는 흑포의 왼쪽 눈에 있는 칼자국을 보고 어딘지 모르게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놈이 송생평을 죽였다고 했느냐!”
흑포인이 싸늘하게 말하며 하늘로 떠올랐다.
순간. 주변에서 검은 기운이 맴돌았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앞에 있는 구름 대진을 주시했다.
그때 고해도 흑포인의 정체를 떠올렸다.
“누군지 생각났다!”
고해는 굳은 얼굴로 흑포를 바라보았다.
“뭐? 나를 알아?”
흑포인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해가 그런 흑포인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네가 누군지 모르지만, 너의 얼굴에 난 칼자국은 기억하고 있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네놈이 사요(蛇妖)인 줄 알았는데…… 하! 네놈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구나!”
진천산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인, 저놈이 사요 아닙니까?”
그런데 고해의 말을 듣고 흑포인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천한 네놈 따위가 나를 알 리 있느냐! 죽고 싶어 환장했느냐!”
고해도 마주 소리쳤다.
“죽어야 할 놈은 네놈이다!”
“뭐?”
“내가 누군지 기억 안 나느냐! 하긴 당연히 기억 못 하겠지! 하지만 나는 너의 그 칼자국을 잊을 수가 없구나! 해수, 교룡(蛟龍)!”
진천산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교룡?”
선천잔국계에서 돌아오던 날, 바다에서 생긴 해난은 바로 교룡과 패하의 전투로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교룡이 그 교룡이라고?
진천산은 흑포인의 도파를 보면서 그날 봤던 교룡의 모습을 떠올렸다.
“교룡?”
상관흔은 상대의 정체를 알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요(蛇妖)라면 대진으로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자는 사요가 아니라 교룡이었다.
막을 수 있을까?
주변에 있던 송갑종의 괴물로 변한 제자들도 깜짝 놀라서 흑포인을 바라보았다.
“시조님이 교룡이라고?”
고해가 그런 상황에서 흑포인의 감정을 긁어댔다.
“바다에 처박혀 있던 교룡이 육지에 올라와서 무슨 짓을 하는 것이지? 남들 눈을 속이면서 말이야!”
“헛소리 그만해!”
흑포인이 노성을 내지르며 손을 휘저었다.
흑포의 소매 사이에서 빨간 독구름이 쏟아져 나오며 고해 쪽으로 밀려갔다.
후우우웅!
고해도 손을 휘저었다.
주변의 대진이 빙글빙글 돌면서 일대가 하얀 구름으로 뒤덮였다.
빨간색 독구름이 순식간에 하얀 구름 속으로 들어왔다. 마치 주변의 대진을 전부 빨간색으로 물들이려는 것 같았다.
* * *
한편, 송갑종 내.
고선무는 백성들과 함께 송갑종 대진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남아 있던 송갑종 제자들을 죽여버렸다. 백성들도 송갑종 제자들을 공격했는데, 그들은 백성들로 변장한 악인들이었다.
“부장님, 죽였습니다!”
한 악인이 달려와 보고했다.
고선무가 조용하게 말했다.
“대인께서 밖에서 시간을 끌고 있다. 대부분의 괴물들도 입구 쪽으로 달려갔고, 저놈들의 대장도 함께 나갔다.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이다. 최대한 빨리 당주님을 찾아라!”
“어디 가서 찾습니까?”
“송갑종의 가장 핵심적인 곳부터 찾아봐! 종주 대전, 송갑전 방향으로 찾아봐! 백 명이 한 조로 깔끔하게 움직인다! 수색해!”
고선무가 낮은 소리로 명령을 내리자, 악인들이 좌우로 흩어졌다.
* * *
“여기 첩자……!”
한 송갑종 제자가 소리를 지르려던 순간!
슉!
화살이 날아오더니 송갑종 제자의 목을 관통했다.
“조심해.”
고선무가 낮은 소리로 주의를 주자, 악인 하나가 미간을 좁히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부장님, 이곳 경비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마 찾은 것 같습니다!”
고선무가 다급하게 말했다.
“서둘러! 시간 없어!”
“네!”
한편, 이십팔 천지종횡대진 근처는 화살비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쏴라!”
도파가 높은 소리로 외쳤다.
슈슈슈슈슉!
하얀색과 빨간색으로 뒤섞인 구름 사이로 천 개의 화살이 솟구쳐서 흑포인을 향해 날아갔다.
“놈들이 적지 않구나! 막아!”
흑포인이 차갑게 말하면서 손을 휘젓자, 거대한 기운으로 이루어진 벽이 화살을 튕겨냈다.
“계속 쏴!”
도파가 악을 쓰며 부하들을 재촉했다.
화살이 쉴 틈 없이 쏟아져 내렸지만 흑포인은 손을 뻗어서 전부 막아버렸다.
그러고는 음침한 표정으로 대진을 바라보았다.
고해가 펼친 대진의 구름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런데 흑포인이 보낸 독구름이 그 하얀 구름을 뚫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오히려 독구름이 뱅뱅 돌면서 사방으로 퍼졌는데, 심지어 송갑종 제자가 있는 곳까지 흩어졌다.
“켁켁켁켁! 으악!”
일부 송갑종 제자들은 입을 막으며 고통을 호소했고, 일부는 얼굴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백성들은 독기가 닿자 몸이 보라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거품을 토해내며 숨을 멈추었다.
순식간에 수백 명의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시조님! 저 중독되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시조님!”
한 무리의 송갑종 제자들이 소리 질렀다.
“너희들은 내 정혈을 받은 놈들이라 죽지 않아! 멍청한 것들! 흥!”
흑포인이 짜증 내듯 말했다.
그의 마음도 좋지만은 않았다.
괴상하기 그지없는 대진에서 끊임없이 화살이 날아들고 있었다.
“흥! 개미 같은 놈들이 주제를 알아야지! 천상! 비야! 내리거라!”
흑포인이 하늘을 향해 외쳤다.
콰르르릉!
순간, 하늘을 가리면서 몰려온 구름이 순식간에 대진을 뒤덮었다.
쿠구국궁! 콰광!
먹구름 속에서 천둥 번개가 번쩍거렸고,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폭우가 마치 폭포수처럼 세차게 쏟아져 내렸다.
“정말로 교룡이란 말인가?”
대진에 있던 상관흔은 그 광경을 보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폭우의 습격이 몰려오자, 고해는 바둑판을 움직이며 대진을 조종했다.
화아아아악!
빗물은 바깥에서 차단되어 고해의 대진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다만 주변 산골짜기의 물살이 점점 거세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흑포인이 그걸 보고는 차갑게 말하며 웃었다.
“훌륭한 진법이야! 좀 하는 놈이구나! 내 이름을 알 자격이 충분해! 기억해라! 내 이름은 부혈이다! 일품당 당주는 벌써 죽었느니라! 와하하하!!”
흑포인 대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허공에 빨간색 장강(掌罡)이 뭉치면서 고해의 대진을 압박했다.
장강이 뭉치자 강력한 돌풍이 불고, 폭우가 사방으로 쏟아져 내렸다.
멀리 서 있던 송갑종 제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조님이 저렇게 사나웠다고?”
“종주님의 몸에서도 저런 기세는 본 적이 없어!”
“대진을 깰 수 있을까?”
쾅!쾅!
흑포인의 장강이 곧 대진을 때려 부술 것만 같았다. 돌풍과 폭우가 휘몰아치면서 대진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역발산혜기개세!”
대진에서 거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천화극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스윽!
쿵!
거대한 괴성과 함께 방천화극이 빨간색 장강을 부숴버렸다.
방천화극의 흉악한 기세는 곧바로 흑포인을 향해 돌진했다.
“뭐야?”
부혈의 안색이 굳어졌다.
쿵!
방천화극이 옆으로 지나가자 부혈도 뒷걸음질 쳤다.
교룡이 물러섰다고?
진천산이 그 모습을 보고 환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대인! 놈이 물러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해는 안심할 수가 없었다.
“잔말 말고 얼른 가서 사람들을 독촉해! 저 부혈의 능력이 몽태보다 더 강하단 말이다!”
“네!”
진천산이 대답하고는 악인들을 재촉했다.
뒤에 있던 한 무리의 악인들이 광산 안으로 들어갔다.
고해는 천천히 백 장 높이의 항우(項羽) 운수에 올라탔다.
우윙!
항우 운수는 손에 방천화극을 들고 천천히 날아오르더니, 이내 맞은편에 있는 부혈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