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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99화 (99/243)

99화 겁먹다

뒷걸음질 치던 부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쾅!

순간, 포효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하늘의 먹구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천둥과 번개가 항우 운수를 향해 돌진했다.

콰광!

항우가 울부짖으며 하늘로 치솟았다. 그러고는 천지개벽의 기세를 뿜어내더니 이내 허공에서 천둥 번개를 터뜨렸다.

부혈이 포효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더니, 순식간에 오백 장 크기의 검은 교룡으로 변신했다.

“크아아아아!”

교룡은 하늘로 올라가면서 항우를 향해 울부짖었다.

순간, 교룡 주변에서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듯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자, 송갑종 제자들은 겁에 질린 채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고해가 부혈을 보며 말했다.

“몇 달 전에도 너의 그 못생긴 면상을 봤었지! 멍청한 놈! 오늘이 너의 제삿날이다!”

쿠궁!

교룡이 꼬리를 흔들자, 하늘에서 다섯 개의 천둥 번개가 항우를 향해 떨어졌다.

“항우! 부숴버려!”

항우 운수가 눈을 부릅뜨고 울부짖었다.

방천화극이 하늘을 갈랐다.

콰광!

천둥 번개가 터졌다.

방천화극이 교룡의 기세에 꺾이지 않은 채 교룡의 꼬리와 부딪쳤다.

펑!

커다란 충격으로 사방이 흔들렸다.

용의 꼬리와 방천화극도 충돌하면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고해는 여전히 화난 눈으로 서 있었고, 교룡 역시 자신의 꼬리를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조금 전의 충격으로 용의 꼬리에 상처가 생긴 것이다.

상처가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났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눈을 부릅뜨고 고해를 노려보는 교룡의 마음은 복잡했다.

고해의 대진이 강하다는 건 알았으나 이 정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더구나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낼 정도라니!

고해 역시 흉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마음은 초조했다. 교룡의 힘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몽태, 이위와 같은 원영경과 맞서 싸워도 칼 한 방이면 끝나버렸는데, 교룡의 몸에는 작은 상처 하나만을 남겼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더 중요한 건, 현재의 영석으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때 교룡이 노성을 내질렀다.

“으와아아아악!”

거대한 울부짖음이 힘을 싣고 고해를 향해 밀려갔다.

고해는 정신을 가다듬고 마주 섰다.

“간신배 같은 놈이 오만방자하구나!”

항우 운수도 울부짖었다.

쿠구구궁, 쾅!

방천화극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간, 마치 도천벌(道天罰)처럼 교룡과 천둥 번개가 있는 쪽을 향해 날아갔다.

쿵쾅!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사방에서 먼지가 불면서 전장은 순식간에 혼탁해졌다.

교룡은 교룡만의 흉악함이 있었다. 상처가 생길수록 점점 용맹해지더니,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며 고해의 항우 운수를 향해 돌진했다.

항우 운수의 방천화극 역시 나풀거리면서, 마치 분쇄기처럼 천둥 번개로 교룡의 몸체를 도려냈다.

쌍방의 전투는 점점 더 치열해졌다. 주변의 산봉우리가 터져나갔다.

거기다 폭우가 멈출 줄 모르고 쏟아지면서 주변은 온통 물바다로 변했다.

“으악! 물러서!”

“얼른 물러서!”

송갑종 제자들이 끊임없이 뒷걸음질 쳤다.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에 들어갈 수도 없고, 대진에서는 수없는 화살이 날아왔다.

교룡과 고해의 싸움인데 그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빗나가고 있었다.

“고해! 고해가 정말 보통이 아니구나!”

“저쪽으로 가지 않기를 잘했지!”

“저놈의 간을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무조건 맛있을 것 같아!”

송갑종 제자들은 뒤로 물러나면서도 경탄을 금치 못했다.

쿵!

전장에서 먼지가 일고 자갈이 흩날리며 혼잡했다.

교룡이 흉악해질수록 고해는 점점 초조해졌다. 전투가 계속될수록 영석의 소모량도 점점 더 많아졌다.

모든 영석을 써버리면 대진이 깨지면서 고해 자신도 끝장나게 된다.

하지만 교룡 역시 몸에 생긴 수백 개의 상처를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비록 타박상이긴 해도 이렇게 치열한 싸움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마음속의 걱정을 떠안고 전투를 이어갔다.

한편, 금갑 수정대진 근처에 있던 고선무와 부하들은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출구 주변은 들어갈 때보다 더 시끄러웠다. 먼지가 일고 자갈이 흩날리면서 송갑종 제자들도 야단법석이었다.

고선무는 송갑종 제자의 옷을 갈아입은 채 조용히 떠나갔다.

송갑종 제자들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로를 신경 쓰지 않았다.

덕분에 고선무 일행도 빠져나오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밖으로 나온 순간, 고선무와 악인들도 전장을 볼 수 있었다.

고해와 부혈의 싸움을 목격한 그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대인의 대진이 이 정도라고?”

“저, 저 방천화극은 정말 강력하구나!”

그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고선무가 나직하게 악인들을 재촉했다.

“잔말 말고 따라와. 빨리 대인과 만나야 해!”

그제야 악인들도 고선무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한 무리의 사람이 달려가자, 송갑종 제자들의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고선무의 지휘에 따라 그들을 어렵지 않게 따돌리고는 금갑 수정대진에서 멀어졌다.

쿠구구구궁! 콰광!

또 반 시간이 흘렀다. 고해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대진이 곧 깨질 것만 같았다.

바로 그때, 저 멀리 있는 산봉우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천둥 번개가 치고 치열한 전장에서 연기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극소수의 사람들만 연기를 발견했으나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고해는 연기를 보자마자 고선무가 피워 올린 연기라는 것을 바로 알았다.

우와와악!

순간, 항우가 울부짖었다.

“나의 강동아랑, 나의 천군만마여! 나를 따라 저놈을 죽여버려라!!”

우왁! 우왁! 우왁!!

대진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마치 천군만마가 나타날 것만 같았다.

미친 듯이 날뛰던 교룡이 몸서리쳤다.

“으윽!”

쿵!

항우와 교룡이 순식간에 부딪쳤다. 교룡이 몸을 가누면서 저 멀리 튕겨 나갔다.

후!

항우도 돌격을 멈추었다.

구름 속에서 거대한 사령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마치 병마들을 소환하는 것처럼 보였다.

교룡 역시 송갑종의 제자로부터 천군만마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한 마리의 운수도 상대하기 벅찬데 천군만마까지 나온다고? 나보고 도망가라는 말이야?

“이건 무슨 진법이란 말이냐!”

교룡은 으르렁거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천군만마는 나타나지 않았고, 항우도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항우는 눈을 끔뻑이며 교룡을 바라보았다.

“멍청한 놈! 능력 있으면 도망가지 말고 공격하렴! 삼백 수는 겨뤄야 하지 않겠어?”

교룡이 눈을 끔뻑거리며 말했다.

“죽이러 오지 않고 거기서 뭐 하는 거야?”

고해가 큰 소리로 외쳤다.

“미친놈아! 무섭지 않으면 어디 한번 와봐!”

교룡이 대진을 한 바퀴 돌았지만, 항우는 나오려고 하지 않았고 대진 안에만 있었다.

“진법은 영원히 진법으로 끝나는 거지! 흥!”

교룡이 싸늘하게 말하며 코웃음 쳤다.

하지만 몸에 수백 개의 상처가 생긴 교룡도 대진의 무서움을 알고 있었기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흥! 나약한 놈!”

으르렁!

항우는 고해를 태우고 천천히 사람들 앞에서 사라졌다.

교룡도 몸을 부르르 떨더니 사람으로 돌아왔다.

비록 흉악하긴 해도 머리는 잘 돌아갔다. 득이 되지 않는 싸움을 계속할 이유가 없었다.

고해가 항우에서 나오자 도파 등 사람들이 몰려왔다.

“대인, 영석이 별로 없습니다.”

도파가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해가 물었다.

“내가 시킨 일은 어떻게 됐어?”

도파가 흥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뚫었습니다. 어젯밤부터 이 광석 동굴에서 땅을 파기 시작했더니 결국 뚫렸습니다!”

“교룡이 아직 반응하지 않고 있어. 빨리 가자!”

“예, 대인.”

악인들은 고해와 함께 광석 동굴로 들어갔다.

순간, 대진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사라졌다.

밖에서 부혈은 대진을 부숴버릴 방법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고 오히려 머리만 아팠다.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이 선천잔국계에서 왔다고? 관기 노인, 역시 관기 노인이야! 제길!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지 모르겠군.”

부혈은 어두운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그때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조님, 큰일 났습니다. 시조님!”

부혈은 고개를 돌려 금갑 수정대진을 응시하자, 피투성이가 된 제자가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

“누군가 종 내로 들어와서 감옥으로 간 것 같습니다!”

그 제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뭐?”

부혈의 안색이 굳어졌다.

슥!

부혈이 손을 내밀어 그 제자의 목덜미를 잡았다.

“용완청의 하인이 도망갔다고?”

부혈이 싸늘하게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들은 아직 있습니다. 시조님의 진법 사슬에 묶여 있어서 아무도 데려가지 못했습니다.”

“중점만 말해!”

부혈이 눈을 부릅뜨고 다그쳤다.

제자가 겁에 질린 채 말했다.

“소인이 보기에는 고해의 부하 고선무 같아 보였습니다. 고선무가 부하들을 데리고 와서 경비병들을 전부 죽여버렸습니다. 다행히 소인은 죽지 않고 잠시 정신을 잃고 있었는데, 눈을 떠보니 그들은 온데간데없었고 감옥의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감옥에 있는 사람과 만난 것 같습니다.”

부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고해의 부하? 그럼 뭐야, 시간을 끌기 위해서 나를 흔들어 놓은 것이었던 건가? 속임수였다고?”

“그런 것 같습니다.”

“죽어, 이놈!”

분노한 부혈이 소리치자, 제자의 몸뚱이가 터져버렸다.

제자를 죽인 부혈은 곧장 이십팔 전지종횡대진을 향해 돌진했다.

“부숴버려!”

거대한 괴성을 지른 그가 대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굳건하던 대진이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하지만 산골짜기 주변은 텅텅 비어서 아무도 없었다.

“아니…… 어떻게?”

주변의 수련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때 부혈이 손을 휙 저었다.

펑!

주변의 땅이 갈라지면서 영석으로 가득 차 있는 구덩이가 나타났다. 그러나 영석이 아닌 가루만 보였다.

수많은 영석이 전부 가루가 된 것이다.

그리고 세 개의 구덩이에는 겨우 백 개 남짓한 중품 영석만 남아 있었다.

“고해가 나를 속인 거야! 놈도 막다른 골목에 처해 있었어! 내가 한 번만 더 공격했어도 대진이 깨졌을 텐데……!”

부혈은 이를 갈며 후회했다.

* * *

청하종.

송생평은 정자에 앉아서 제자가 전하는 소식을 듣다가 이마를 찌푸렸다.

“아무런 소식도 없다고?”

“네, 고해와 삼천 명 악인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멍청한 자식들! 고해가 내 앞에 나타나서야 고해가 왔다고 보고할 것이냐? 찾아! 찾아내!”

송생평이 화를 내자 제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예!”

고해의 전서를 받은 이후부터 송생평은 주변의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고해는 위험한 놈이야! 송나라, 대봉방조차 저놈의 손에 무너졌다고!

고해가 일을 벌이려고 하는 걸 알면서도 고해의 행방조차 찾을 수 없으니, 송생평이 어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때 고해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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