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직접 성지를 쓰다
* * *
부혈은 화를 내면서 광석 동굴을 노려보았다.
동굴은 이미 터져버려서 길이 끊어진 상태였다. 이 광석 동굴만으로는 고해의 뒤를 쫓을 수 없었다.
짜증이 난 부혈은 송갑종 제자들을 다그쳤다.
“찾아내! 삼천 명이 이렇게 사라질 수는 없어! 얼른 찾아!”
“네!”
송갑종 제자들은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부혈은 분노를 감추지 못한 채 종 내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종 내의 한 동굴 근처에 도착했다.
주변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제자들이 시체를 옮기고 있었다.
“시조님!”
제자들이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부혈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안쪽으로 들어갔다.
제일 끝에 세 개의 제단이 있었고, 제단 위에는 세 남자의 몸을 뚫고 지나가는 빨간색 빛줄기로 된 에너지 그물망이 있었다.
세 남자의 윗옷은 벗겨져 있었는데, 등에는 금룡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세 사람은 부혈의 제자가 아니라 용완청을 따르던 하인들이었다.
부혈이 안으로 들어가자 세 사람이 헛웃음을 지었다.
짝!
부혈은 한 남자의 뺨을 가격했다.
“말해! 너희들 뭐라고 말한 거야?”
그 사람은 피를 토해내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십 년 전에 뭘 얻은 거야? 용맥은 어디에 있어!”
부혈이 눈을 부라리며 다그쳤다.
하지만 뺨을 얻어맞은 자는 냉랭히 코웃음을 쳤다.
“흥! 능력 있으면 우리를 죽여보던가! 하하하! 너의 무덤을 네가 직접 판 거야! 하하하! 우리 주인님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 우리 주인님께서 명령하기만 하면 네가 숨을 곳은 어디에도 없어!”
짝!
부혈은 또 뺨을 때렸다.
세 사람의 입은 거대한 바위처럼 무거워 절대 열리지 않았다.
부혈은 이들과 말싸움을 벌일 시간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부혈은 동굴을 나와 수색 결과를 기다렸다.
* * *
송갑종 밖.
성지 외곽의 연병장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은 고해 일행을 발견하고 곧바로 몰려들었다.
“멈춰라! 여기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진천산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눈깔이 삐었느냐? 내가 누군지 모른단 말이냐?”
“뭐? 누, 누구냐?”
병사가 당황하자, 고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성지를 꺼내!”
“네!”
진천산이 대답하고는, 성지를 꺼냈다.
“이건 진양의의 성지다! 잘 봐둬! 얼른 주변의 성주들한테 통지하거라! 이곳에 악귀들이 득실거리니 백성들은 반드시 북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병사가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네? 요즘 일부 마을 사람들이 실종되었는데, 그것도 아십니까?”
진천산이 눈을 부라렸다.
“잔말 말고 성지대로 해!”
병사는 의심이 갔는지 성지를 들고 자세히 확인해 보더니, 표정이 달라졌다.
진짜 성지였다.
“예!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병사가 뛰어가자, 도파가 고해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대인, 부혈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고해가 눈을 번뜩였다.
“아마 찾지 못할 거다! 다만……!”
그가 말꼬리를 늘리자, 고선무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대인께선 부혈이 분노를 식히지 못한 채 고부에 쳐들어올까 봐 걱정이십니다. 두 공자님도 고부에 계시잖습니까.”
진천산이 답답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떡합니까? 우리가 아무리 빠르게 말을 채찍질하여도 교룡인 부혈의 속도를 따를 수는 없습니다.”
고해도 미간을 찌푸렸다.
“전서구를 날리기에도 늦었어. 그렇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진천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부혈보다 빠른 방법이 있다고요?”
부혈은 원영경보다 더 강력한 교룡이다. 그런데 교룡보다 빠른 방법이 있다고?
“봉화대는 어디에 있느냐!”
고해가 한 장수를 보며 묻자, 장수가 뚱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반면 진천산은 눈이 번쩍 뜨였다.
“봉화? 맞아! 봉화로 소식을 전하면 가장 빠른 속도로 호뢰관까지 가겠군!”
봉화는 전쟁 중에 소식을 전하는 가장 빠른 수단이다. 낮에는 봉화를 피우고 저녁에는 봉화를 올린다.
각 성지에 봉화대가 있는데, 한 봉화대에서 연기가 올라가면 다른 성지에서도 봉화하기에 소식을 바로바로 전할 수 있다.
“봉화대는 국가 재난 상황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장수가 제법 고집을 피웠다.
하지만 고해 일행은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고선무가 눈을 부라리며 다그쳤다.
“봉화대가 어디에 있냐고 하지 않느냐!”
“봉화대는 국가의 중요한 시설입니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봉화대를 사용하겠다는 것입니까? 장군님이나 폐하의 성지 없이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장수가 큰 소리로 말하자,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몰려왔다.
진천산이 그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네놈들이 감히 어디서……!”
하지만 장수도 만만치 않았다.
“봉화대에 불을 지피고 싶으면 나를 밟고 가시오!”
고해가 그 장수를 보며 웃었다.
“하하하, 그런 굳센 의지도 좋지! 다음에 우리 고부에 오면 말하라! 받아줄 테니까!”
그러고는 고선무를 향해 말했다.
“성지가 필요하다고 했지? 고선무야, 네가 쓰거라!”
“예, 대인!”
고선무가 백지로 된 성지를 꺼냈다.
옆에 있던 부하가 먹을 갈았다.
고선무는 곧바로 성지에 글을 썼다.
장수는 멍하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로선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 그건 가짜 성지 아니오?”
장수가 분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팍!
고해는 장수한테 성지를 던져주고는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악인들이 길을 텄다.
“비켜라, 이놈들!”
“어허! 어느 분의 앞을 막는 것이냐! 비켜!”
병사들의 힘으로는 악인들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고선무가 던진 성지를 받아든 장수는 급히 성지를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곧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옥새는 진짜인데…… 아니, 어떻게……?”
고선무는 봉화대에 올라가서 봉화를 피어올렸다. 검은 기둥에서 연기가 나더니 이내 하늘로 올라갔다.
곧 저 멀리에서 대답이라도 한 듯 봉화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리고 곧장 호뢰관 방향으로 전해졌다.
고해가 고선무에게 또다시 명령을 내렸다.
“고선무, 또 성지 열 부를 쓰거라! 저들이 성지를 들고 주변 성에 가서 백성들을 이동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해!”
“예!”
고선무가 대답하고 다시 성지를 썼다.
뒤따라온 장수가 멍하니 보는 와중에, 고선무는 옥새가 찍혀 있는 성지 열 부를 꺼냈다. 그야말로 조금의 거짓도 없는 진나라의 성지였다.
“아,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그 장수는 머릿속이 텅 빈 표정으로 멍하니 그 광경을 보기만 했다.
고선무가 성지 열 부를 다 쓰자, 고해는 삼천 명의 악인들과 함께 빠르게 고부를 향해 달려갔다.
성지를 들고 있는 장수는 멍하니 멀어져 가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 * *
송갑종, 송갑전.
“없어? 이틀이나 지났는데 아무것도 없다고?”
부혈은 눈을 부릅뜨고 한 무리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마치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졌습니다.”
제자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멍청한 것들! 멍청이들!”
부혈은 눈을 부라렸다.
그의 제자들은 조용히 서서 눈치만 봤다.
부혈이 눈을 씰룩이며 말했다.
“저놈들이 뭐라도 알아낸 거 아니야? 고해를 반드시 잡아 와야 해!”
그때였다.
“소인이 고해의 집은 알고 있습니다. 고해의 가족을 잡아오……!”
제자 하나가 눈치를 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뭐?”
부혈의 눈이 번쩍거렸다.
“지금부터 산을 봉인하거라! 금갑 수정대진을 배치하고 그 누구도 나가지 못할뿐더러 들어오지도 못하게 해라!”
“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돌아오면 어떡합니까?”
“전에도 그놈들이 들어온다고 해서 고해한테 당하지 않았느냐! 밖에서 기다리라고 해! 너희들은 사람의 심장과 간을 원하지 않았더냐? 가서 잡아 오게 해!”
“네!”
괴물제자들이 즐거워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부혈은 조금 전에 말한 제자를 바라보았다.
“너는 나와 함께 지금 즉시 고부에 가야겠다!”
부혈은 제자를 데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송갑종을 벗어났다.
송갑종을 나온 부혈은 곧장 북쪽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날아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봉화를 발견했다.
“시조님, 저 봉화가 설마……!”
제자가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멍청한 놈아! 나도 눈이 있어! 길이나 가리켜!”
“네!”
* * *
한 관도 위를 삼천 필의 말들이 달리고 있었다.
고해는 말을 타고 가면서 옆에 있던 고선무를 보며 물어보았다.
“고선무, 그들이 확실해?”
고선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네, 대인. 들어가서 당주의 세 하인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짧아서 당주님은 찾지 못했습니다. 겨우 그들을 설득해서 얘기를 나눴더니 유년대사님을 찾아가라고 했습니다!”
“유년대사는?”
“그들의 말로는 얼마 전에 미생인이 와서 유년대사와 함께 저승으로 갔다고 합니다. 저승에 가서 당주 어머니의 영혼을 찾으려고 당주님과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저승?”
“미생인이 음양과 소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선천잔국계에서 미생인이 사라졌던 것도 저승으로 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이생에서 달리고 미생인은 저승에서 달리기 때문에 미생인이 가는 길을 저희는 갈 수 없었습니다!”
“용완청 어머니의 지혼을 찾으러 간 건가?”
“하인들의 말로는 당주님이 살던 곳에 작은 돌이 있는데, 그 돌을 부숴버리면 미생인과 유년대사도 큰일이 났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하인들이 저희들 보고 돌을 부수라고 했습니다.”
고해는 머리를 끄덕이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대진으로 부혈을 극복한 것도 천행이었다. 마지막에 심리전을 벌였기에 그나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영석도 없이 부혈과 송생평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유년대사를 불러온다면…!
그 와중에도 고해 일행이 탄 말들은 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멀리 봉화의 연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하나가 네 개로 변하고, 네 개가 열여섯 개로 변하면서 만천하에 연기 기둥이 피어올랐다.
* * *
진왕궁.
군신들이 황궁에 모이더니, 이내 대전 입구에서 황제 진양의를 만났다.
“폐하! 봉화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니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닙니까?”
군신들이 다급하게 말했다.
진양의는 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말게. 짐도 알고 있네.”
“폐하께서도 아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봉화가 이렇게 피어오르는데 왜 아무 걱정도 안 하십니까? 폐하!”
“폐하! 봉화가 피어오르니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확실합니다. 빨리 대책을 세우셔야 합니다!”
군신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진양의는 짜증만 났다.
“짐도 알고 있네! 그만 말하게나!”
“네……!”
군신들은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진양의도 불안한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에 청하종이 멸문했는데, 이는 곧 진나라의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진천산이 고해와 함께 다니면서 성지 백 장을 요구했는데, 진양의는 백 부가 아니라 천 부라도 흔쾌히 주고 싶었다.
그로선 그저 고해가 다시 한번 기적을 만들어주기만을 바랐다.
* * *
봉화는 호뢰관 외곽까지 전달되었다.
호뢰관에 있던 고진과 고한도 저 멀리서 솟아오르는 봉화를 보고 있었다.
고한이 그걸 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 의부께서 떠나시기 전에 봉화가 피어오르면 의부의 예상을 빗나갔으니, 곧 위험이 닥칠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고진이 이마를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자. 일단 가서 몸을 숨기자.”
“예, 형님.”
두 사람은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반나절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