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스승을 모시다
영생대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 기억으론 고 선생한테서 익숙한 기운을 느낀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지금에서야 그 기운의 시작을 알게 된 것 같소이다. 그래서 뻔뻔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고 선생의 사람을 하나 내 옆에 두고 싶소이다.”
“그게 누구인지요?”
고해가 의아해하며 묻자, 영생대사가 고한을 가리켰다.
“고한?”
“맞소. 고한을 내 제자로 삼고 싶소.”
“네?”
고해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대사님, 무슨 뜻입니까?”
고한 역시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고한, 너도 나한테서 익숙한 느낌을 받지 않았느냐?”
영생대사가 웃으며 말했다.
고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됐다. 너를 찾는 데 시간이 꽤 많이 들었어.”
“대사님의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고해와 고진도 영생대사를 바라보았다.
“천이백 년 전, 세 명의 스님이 매일 삼불을 읽고 있었지, 그러나 세 사람은 점점 오늘날의 불도(佛道)가 세 스님의 마음속에 있는 부처와 큰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네.
부처는 마음 상태를 탈바꿈하고, 세속을 바꿔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부처님의 지혜를 얻으려고 했어. 그러나 부처는 무심하고 무정했지 뭔가.
모든 중생이 괴로워서 부처님께 보도(普度)를 구했으나 무정한 부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어. 백성들조차 싫어하는데 부처가 존재할 의미가 있겠나?”
영생대사의 말에 고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지만 영생대사는 자신의 말만 이어갔다.
“그래서 이 세 스님은 영산 성지에 가서 불조(佛祖)를 만나 뵙고 해답을 찾으려고 했어.”
“불조요?”
“그러네. 그러나 아쉽게도 해답을 찾지 못했지. 해답은커녕 오히려 부처를 비방한다는 소리를 들었지 뭔가. 남은 두 스님은 영문도 모르는 재난을 당했고, 남은 한 스님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
영생대사가 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그 살아남은 사람이 영생대사님?”
고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영생대사는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고한을 바라보았다.
“그래, 두 절친한 친구가 죽었고, 너희들이 그들의 지혼이었어. 그래서 나를 보면 익숙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야. 그때 너도 나와 함께 참례를 드렸고 불조님을 찾아가기도 했지.”
고한은 안색이 굳어진 채 인정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대전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고해는 영생대사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영생대사가 강제적으로 고한을 데려간다고 해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영생대사는 진심으로 고한을 제자로 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 후, 고해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고한아,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의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의부 옆에 있고 싶습니다.”
고한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해는 침묵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수련 세계에 진입한 후부터 온갖 일을 다 겪었다. 사람은 나가서 많은 것을 봐야 해. 고한아, 이건 너한테 온 기회다. 의부 생각에는 영생대사를 스승님으로 모시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제가요?”
고한의 눈빛에는 서운함이 가득 차 있었다.
고진은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생대사는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한은 고해의 눈을 바라본 다음, 숨을 길게 내쉬고 대답했다.
“의부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고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스승님께 인사를 올리거라.”
고한은 영생대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스승님, 제자의 삼배를 받으시지요.”
고한은 극히 공손하게 절을 세 번 올렸다.
“좋아, 고한아. 이제부터 나와 함께 계속해서 참배를 올리자. 스승이란 사람이 아무것도 없구나. 이건 복마권(伏魔圈)이다. 네가 가지고 있거라.”
영생대사는 말을 하면서 팔찌 하나를 내밀었다.
고한은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른이 주시는 건 거절하는 법이 아니다. 스승님께서 주는 것이니 받거라.”
고한은 조심스럽게 영생대사가 내민 것을 받았다.
영생대사가 웃으며 말했다.
“이 복마권에 작은 공간이 탑재되어 있으니 물건들을 넣거라.”
“네.”
고한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영생대사가 고해를 보며 말했다.
“고 선생, 고맙네. 고한이를 제자로 받아들였으니 나도 이제 가보겠네. 또 다른 친구가 서쪽에 있을 것 같구먼. 그 기운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고 그러네. 지금 바로 고한이를 데리고 가봐야겠어.”
고해가 정중하게 말했다.
“수고스럽지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고한이도 떠나가니 짐도 정리하고 따로 당부할 것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시게.”
영생대사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고진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고한의 짐을 정리했다.
그동안 고해와 고한은 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부, 어떻게 저한테 스승님을 모……!”
고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고해가 손을 뻗어 고한의 말을 가로챘다.
고해는 머리를 저으며 옆에 있던 필묵을 가리켰다.
고한의 표정이 변하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고한아, 영생대사님은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다. 내가 만나본 사람들 전부 똑같이 말했다. 게다가 몇 번이나 나를 도와주지 않았느냐? 사람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맞을 거다.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영생대사님을 따라 배우거라.”
동시에 고해는 필묵으로 종이에 몇 자 적었다.
[만난 적이 적으나 영생대사에 대해 잘 모르겠다.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직접 판단하거라. 그러나 진심으로 너를 제자로 삼고 싶어 하니 잘 따라 배우거라. 너 자신의 힘도 기르고. 네 어머니와 같은 재난이 우리 고부에서 발생해서는 절대 안 된다.]
“네, 아버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고한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곧 떠나게 될 텐데, 너의 형한테 많은 물건을 준비하라고 시켰다. 가서 하나씩 열어봐라. 적어도 생활하는 데 많은 편안함을 줄 거다.”
고해는 말을 하면서도 필묵으로 몇 자 적었다.
[기억하거라.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욕구가 있다. 난 진정으로 무욕무구한 사람이 있다는 걸 믿지 않는다. 절대 완전히 믿어서도 안 되고, 완전히 불신해도 안 된다. 반드시 모든 일은 세 번 생각해 보고 행동에 옮겨라.]
고한이 공손하게 머리를 끄덕거렸다.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명심하겠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고, 고진이 들어왔다.
“의부님, 아우의 물건을 전부 준비했습니다.”
고해는 고개를 끄덕이고 고한에게 말했다.
“고한아,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나중에 신주대지에서 다시 만나자.”
동시에 또 몇 자 적었다.
[부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이 여섯 글자는 기억하거라. 앞으로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 스스로 깨닫게 될 거다.
옴마니반메훔.]
글을 쓴 후, 고해는 곧바로 종이를 화로에 태워버렸다.
옴마니반메훔?
고한은 망연한 눈빛을 지었으나, 이내 공손하게 머리를 끄덕거렸다.
“네.”
모든 종이가 탈 무렵, 일행은 방문을 나섰다.
밖에 있는 정원에는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영생대사는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한은 손을 들고 모든 물건을 자신의 복마권에 집어넣었다.
“고 선생, 그럼 고한이를 데리고 가겠네!”
영생대사가 고해를 보며 웃었다.
고해도 머리를 끄덕거렸다.
고진이 아쉬워하며 말했다.
“아우, 몸조심해!”
고한은 고해를 보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절을 세 번 올리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가자꾸나.”
영생대사가 손을 뻗어 휙 저었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고진이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의부, 청하종 문제는 왜 영생대사의 도움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고해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는 신세를 져야 하는 일이 있고, 신세를 지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단다.”
“네?”
고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고해가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청하종 문제는 굳이 영생대사님이 아니라도 해결할 수 있는데, 굳이 신세를 질 필요가 없지 않느냐?”
“청하종 밖에 있는 영석도 전부 송생평이 가져갔을 것이고, 영석을 채굴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영석 없이 어떻게 진을 배치하려고 그러십니까?”
“영석은 생길 거야!”
“네?”
“우리 고부가 뭐 하는 곳인지 잊었느냐?”
고해가 말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고진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표정이 변했다.
“우리 고부요? 상인…… 아! 닭을 빌려 알을 낳는다?”
“그래, 세상의 도리들은 서로 통하기 마련이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빌리기라도 해야지. 대신 충분한 이자를 주면 되지 않겠느냐?”
고해가 그리 말했음에도 고진은 아직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렇지만 누구한테서 빌려야 합니까? 저희…!”
그러다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의부의 뜻은 우리를 훔쳐보는 수련자들을 말씀하십니까? 저 금반도를 빼앗으려는 수련자들한테서요?”
“못 할 것도 없지.”
고해의 웃음이 짙어졌다.
고진도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아, 네…….”
“이것 역시 하나의 매매로 보거라. 만약 청하종을 손아귀에 넣으면 영석이 끊임없이 나오지 않겠느냐? 그때 가서 빌린 영석을 두 배로 갚으면 된다. 그래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야.”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알았으면 가서 영석을 빌려 오거라. 금반도를 가지고 가서 내 이름으로 빌려, 그리고 일품당 이름으로도 빌리거라. 내가 금반도를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을 것이야.”
이제는 고진도 확실하게 알았는지 밝은 표정으로 답했다.
“예, 의부님!”
한 시간 후!
고부 외곽에 있던 수련자들이 고부에서 온 전문을 받았다.
“빨리! 얼른 와봐! 금반도야! 고해가 금반도를 꺼냈어!”
한 수련자가 소리치자, 수많은 수련자가 몰려들었다.
여전히 많은 구름이 고부를 뒤덮고 있었다.
그런데 대진 변두리에 커다란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복숭아가 보였다.
금반도는 무척이나 가까운 곳에 있었다. 수련자들이 껑충 뛰기만 해도 손에 닿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선뜻 달려가서 뺏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복잡한 표정으로 앞에 있는 금반도를 바라볼 뿐이었다.
“금반도! 정말로 금반도 맞아?”
“방금 온 사람이 그러는데, 고해가 우리한테서 영석을 빌리겠다고 했대. 딱 한 달! 한 달 후에 두 배로 갚겠다고 그랬다는군.”
“장난해? 고해가 우리한테서 영석을 빌려간다고?”
“한 달 후에 두 배로 갚는다는 게 정말이야?”
“일품당의 신용이라면 틀림없을 거야. 그런데 빌릴 수 있을까?”
수련자들이 놀란 표정으로 금반도를 바라보았다. 눈에는 탐욕이 가득 차 있었으나 아무도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오늘에서야 수련자들도 자기들이 뺏고 싶다 해서 뺏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해가 대봉방에서 그렇게 많은 영석을 빼앗았는데 그것도 부족하다는 건가?”
“난 절대 안 빌려줄 거네.”
대부분 빌려주려고 하지 않았으나, 빌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고부의 대진 밖에는 책상들이 놓여 있었고, 고부의 하인들이 책상 앞에 서서 차용증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 악인들이 옆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정말입니까? 한 달 후에 두 배로 갚는다는 거지요?”
한 수련자가 책상 앞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던 늙은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 주인님은 말하면 말한 대로 하시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