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절생도(絶生刀)
밖에 있던 송생평은 펄쩍 뛰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고해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저런 멍청한 놈들! 고해 한 명도 처리하지 못하다니!”
송생평은 소리를 내지르면서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송생평! 얼른! 얼른 가게!”
이청하가 다그쳤다.
송생평은 펄쩍 뛰면서도 여전히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걸 꺼렸다.
바로 그때, 대진 안에서 고해가 드디어 금단경 수련자를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쾅!
아직은 금단경에 미치지 못하는 듯 고해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하하! 이젠 힘들겠지? 내가 너를 죽여주마!”
금단경 괴물 수련자가 흉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아!”
고해는 또 공격을 가했다. 이번에는 절생도를 앞세웠다.
“부숴버렷!”
절생도가 날아가자, 금단경 괴물 제자가 포효하듯 소리쳤다.
“흥! 송갑검, 나와라!!”
쾅!
두 사람이 다시 맞붙자, 이번에는 금단경 괴물 제자의 장검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이, 이런……. 그건 무슨 칼이지?”
금단경 괴물 제자가 화들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스스슥! 쉬악!
괴물 제자의 칼이 고해의 다리를 베었다.
절생도도 괴물 제자의 오른팔을 베어버렸다.
고해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거리를 벌렸다.
“거기 서!”
금단경 괴물 제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검은 기운이 그를 감싸더니 상처 속으로 스며들었다.
“으악! 안 돼!”
금단경 괴물 제자가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악!”
츠츠츠츠츠!
그의 몸이 순식간에 백골로 변해버렸다.
안개 속에 이백 구의 백골이 널브러져 있었다.
일부 괴물 제자들이 산으로 올라오긴 했지만 대부분의 괴물 제자들은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제자들이 도망치는 것을 본 송생평이 분노의 표정으로 입술을 씹었다.
“멍청이들! 그렇게 많은 놈들이 고해 하나를 처리 못 하다니!”
이청하가 송생평을 다그쳤다.
“송생평! 시간을 끌면 끌수록 우리만 불리해진다네! 얼른 가서 죽이란 말이야! 고해 혼자만 있는데 뭐가 걱정인가!”
송생평의 마음도 복잡했다.
그는 멋모르고 나섰다가 죽는 걸 원치 않았다.
쉬이이익!
그때 진세를 뒤덮은 구름이 흔들렸다.
“엇! 영석이 전부 소모되었어!”
고해가 한 괴물 제자를 찔러 죽이려는 순간, 표정이 확 변했다.
영석이 소모되자 대진이 사라졌고, 구름도 점점 흩어지고 있었다.
산 아래로 도망가던 사람들과 산으로 향하던 사람들이 멈칫하더니, 곧바로 고해를 발견했다.
고해는 삼천 개의 석상 옆에 있었다.
그의 손에는 가늘고 긴 칼이 있었고,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다.
옷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몸에 난 다섯 곳의 상처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게다가 고해의 몸을 감돌고 있는 검은 기운은 마치 요괴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그가 서 있는 삼천 개의 석상 주변에는 하얀 뼈들이 흩어져 있었고, 죽기 전에 입었던 옷조차 없어진 상태였다.
송생평, 이청하, 한 무리의 괴물 제자들은 눈을 부릅뜨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시체는? 형님, 동생, 스승님의 시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시체는 없고 백골만 남았다고?
백골을 본 사람들은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아니, 저기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괴물 제자들은 사람의 심장과 간도 먹으면서, 정작 눈앞에 있는 백골을 보고 있으니 간담이 서늘해졌다.
산으로 향하던 괴물 제자들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송생평 역시 고해를 감싸고 있는 검은 기운을 보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얼른! 빨리 가!”
이청하가 소리쳤다.
“좋아!”
결단을 내린 송생평이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비록 두렵긴 했으나, 고해는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래, 먼저 고해부터 없애버리자!’
바로 이때,
스르르르르, 졸졸졸. 좔좔좔.
고해의 근처에서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이 나타났다.
“뭐지?”
고해가 웃음을 되찾았다.
“뭐야? 설마 유년대사가 돌아오기라도 한 거야?”
송생평의 얼굴은 굳어졌다.
송생평은 이를 악물고 물결 근처로 향했다. 유년대사가 나오면 나오자마자 죽여버릴 속셈이었다.
“안 돼!”
고해가 다급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송생평이 유년대사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절생! 죽여!”
고해가 소리를 지르며 하늘로 날아올라 송생평을 향해 돌진했다.
고해는 이번 공격에 자신의 모든 힘을 집중시켰다.
검은 기운이 용솟음치면서 송생평을 향했다.
송생평도 이를 악물고 칼을 막았다.
쾅!
송생평의 칼과 절생의 기운이 맞붙었다.
그러나 송생평의 강력한 힘에 고해가 저 멀리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펑!
멀리 날아간 고해는 작은 집에 부딪히면서 무너져 내린 폐허에 파묻혔다.
고해는 허리를 굽히고 피를 토해냈다.
바로 그때, 잔잔한 물결이 천천히 갈라지더니, 그 틈새로 하얀색 옷이 보이기 시작했다.
“죽어라!”
송생평이 괴성을 지르며 칼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강력한 검의 기운이 하얀색 옷을 향해 날아갔다. 지금 막 나오고 있는 유년대사를 단칼에 죽여버릴 것 같은 기운이었다.
순간, 틈새에서 오른손이 번쩍 나오더니 곧바로 하나의 장강(掌罡)을 응집시켰다.
촹!
장검이 허공에 붕 뜨면서 장강에 가로막혔다.
“뭐야?”
송생평의 표정이 굳어졌다.
송생평은 힘껏 검을 뽑으려고 했으나 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잔잔한 물결의 틈새 사이로 하얀색 승복을 입은 유년대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살기가 대단한 검이군! 내가 조금만 빨리 나왔어도 내 몸을 찔렀겠어.”
유년대사가 냉랭하게 말하고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쩌정!
송생평의 장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유년?”
송생평이 손을 가로로 폈다.
커다란 손바닥에서 장강이 뭉치더니, 푹풍우가 휘몰아치듯 거센 바람이 불어댔다.
“흥!”
유년대사가 코웃음을 치며 오른손 식지를 내밀더니 거칠게 밀어냈다. 허공에서 강기가 손가락 끝에 모여들었다.
쾅!
순간, 송생평의 장강이 터져 나갔다.
지강은 기세를 몰아 송생평 앞까지 뻗어나갔다.
“안 돼!”
안색이 해쓱해진 송생평이 반사적으로 팔꿈치를 올려서 지강을 막았다.
쾅!
송생평의 몸이 나뭇잎처럼 허공을 날아갔다. 그로서는 역부족이었다.
푸헉!
허공에서 피를 토한 송생평은 아연실색했다.
유년대사의 실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로 강할 줄이야!
“가자!”
송생평이 잇새로 소리치고는, 머리를 돌려 이청하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이청하를 어깨에 걸친 그는 순식간에 저 멀리 도주했다.
“종주님이 도망쳤어!”
“종주님도 상대가 안 돼!”
“우리도 도망가자!”
송생평의 괴물 제자들은 당황해서 황급히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유년대사는 그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어딜 가려고? 흥!”
차갑게 코웃음 친 그가 왼손을 내밀었다.
왼손에 염주를 씌운 그는 이내 하늘을 향해 휘저었다.
위이이잉!
순간, 염주에서 허영(虚影)이 나오더니, 주변에 있던 괴물 제자들을 비추었다.
“아아악!”
“으아아악!”
“끄아아아아악!”
괴물 제자들은 염주에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이지 못한 채 비명을 내질렀다.
“풀어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대사!!”
공포에 질린 괴물 제자들이 간절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염주가 이번에는 저 멀리 도망치고 있는 송생평과 이청하를 비추었다.
송생평은 기겁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 쳐 냈다.
쾅!
염주의 허영이 순식간에 깨졌고, 그는 점점 더 빠르게 날아갔다.
유년대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옆에는 삼천 개의 석상이 있었고, 멀지 않는 곳에는 수많은 상처를 입은 고해가 검은 기운을 뿜어내며 쓰러져 있었다.
게다가 바닥에는 백골이 널브러져 있어 청하종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유년대사는 그만이 지닌 감지능력으로, 청하종 사람들의 배가 갈라져 있고, 심장과 간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 눈앞에 있는 괴물들은 하나같이 뱀의 머리를 하고 있었으며, 흉악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당주님은?”
유년대사가 고해를 보며 물었다.
고해가 송생평이 날아간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주님이 갇혀 있습니다. 빨리 저들을 잡아야 합니다. 도망치게 놔두면 안 됩니다!”
“뭐야?!”
유년대사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이내 몸을 돌려 송생평이 날아간 곳으로 향했다.
슈웅!
유년대사는 순식간에 저 멀리까지 날아갔다.
“켁켁켁!”
고해는 피를 토해내며 힘겹게 일어섰다.
땅바닥에는 이삼백 개의 백골이 널려 있었고, 염주에는 오백 명의 괴물 제자들이 묶여 있었다.
숨을 깊이 들이쉰 고해는 날카로운 눈빛을 지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송생평의 괴물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뭐, 뭐 하려고?”
괴물 제자 하나가 깜짝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으르릉! 크으으!
뱀의 머리를 쓰고 있는 괴물들이 고해를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고해는 입가의 피를 닦으며 차가운 냉소를 지었다.
슥!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칼로 괴물 제자의 몸을 찔렀다.
퍽!
검은 기운이 나오더니 해골들이 곧장 괴물 제자의 피와 살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괴물 제자가 비명을 질렀다.
고해가 칼을 빼는 순간, 괴물 제자는 뼈대밖에 남지 않았다.
촥!
염주의 허영이 사라지더니 백골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괴물 제자들은 겁에 질려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고해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가 사람이라면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에 불과해! 흥! 사람의 심장과 간이 맛있더냐? 맛있었어?!! 너희는 이제 사람이 아니라 괴물일 뿐이다! 죽어!”
“아아악!”
“으악!”
“사, 살려줘!”
고해의 절생도에서 나온 해골이 괴물들의 살과 피를 갉아먹었다.
이 순간 고해는 티끌만큼도 가엾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저들을 죽이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저들에게 먹힐 뿐이다.
“죽어라, 괴물 놈들!”
스스스스스슥!
바닥에 점점 더 많은 뼈가 떨어졌다.
송생평의 괴물 제자들은 모두 고해의 칼에 찔려 죽었다.
피와 살이 절생도에 먹히면서 절생도의 힘도 점점 더 강해졌고, 그 힘은 고해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지금 고해에게 필요한 건 힘이었다.
덕분에 상처도 모두 회복되었고, 수많은 힘이 단전에 쌓였다.
쾅!
어느 순간, 고해의 몸에서 거센 바람을 일어나 주변의 백골을 날려버렸다.
“선천경 팔단계?”
고해의 눈이 번쩍거렸다.
팔백 명의 괴물 제자들을 삼키고 선천경 팔단계를 이룬 것이다.
고해는 바닥에 떨어진 백골을 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사람을 먹는 놈들은 죽어야 해!”
“자네도 피차일반 아닌가?”
뒤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고해가 고개를 돌렸다.
유년대사가 돌아와 있었다.
“대사님?”
유년대사는 바닥에 널려진 백골을 바라보았다.
고해가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광경은 고해에게도 사악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셈이었다.
고해는 절생도를 들고는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유년대사를 경계하며 냉랭하게 말했다.
“대사님은 이런 사람을 먹는 괴물을 살려둬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