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달라진 송갑종
유년대사가 고해를 보며 말했다.
“죽여야지. 다만 이런 방법으로 죽이면 안 되네.”
“유년대사님의 방식과 저의 방식은 다르지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자신의 방식과 다른 사람을 나무라면 됩니까?”
유년대사는 뚫어지게 고해를 쳐다보며 한동안 침묵했다.
그러다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해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유년대사에게 그동안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유년대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조용히 물어보았다.
“어떻게 된 일인가?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거야? 당주님은 어디 계셔?”
고해는 정용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다만 유년대사가 하는 말로 봐서는 무언가 신비한 능력이 있는 기물(奇物)인 듯했다.
“정용환이오?”
“송생평한테 정용환이 있었어. 정용환(정용환)을 쓰며 도망쳤어.”
유년대사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고해가 유년대사를 보며 물었다.
“잡았습니까?”
유년대사는 고해를 보며 침묵했다. 화를 내며 고해를 꾸짖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고해가 말했다.
“하! 실수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대사님께서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해, 나와 당주님이 자네를 높이 평가하고 있네. 그러니 실수하지 말게나.”
이야기를 다 들은 유년대사가 분노에 찬 얼굴로 말했다.
“내가 떠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송생평이 감히! 하아!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었구나!”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당주님의 안전입니다.”
“당주님의 안위라……. 단기간 내에는 별일 없을 거네.”
유년대사의 말에 고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그 교룡. 내가 알지. 부혈이던가? 그놈이 당주님의 신분을 알아. 그놈이 죽고 싶어 환장하지 않은 이상 쉽게 당주님을 해치지는 못할 거네. 당주님을 해치면 그놈이 용맥을 얻는다고 해도 살아남긴 힘들 거야.”
유년대사가 확신하듯 말했지만, 고해는 여전히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의외의 사고가 있을 수도 있으니 반드시 당주님을 구출해야 합니다.”
유년대사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건 그대 말이 맞네.”
“대사님, 저의 삼천 명 부하들이 대사님을 지키려다가 이렇게 석상으로 변했습니다. 이들을 돌아오게 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고해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석상을 바라보았다.
유년대사는 삼천 개의 석상을 보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이들의 몸에 달라붙은 저주를 없애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네.”
“네?”
“이청하를 죽여야 하네. 이청하를 죽여야 저주가 풀려.”
고해는 유년대사의 말을 이해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대사님.”
“오히려 내가 고맙네. 이번에 자네가 아니었으면 언제 돌아올지도 몰랐지 뭔가. 요즘 구오도가 심상치 않아. 당주님한테 아주 작은 일이 발생하더라도 나는 책임을 면할 수 없네.”
“저승에서 찾으셨습니까?”
고해가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유년대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주변에 있는 귀신의 집에 갔는데 아직 찾지 못했네. 그래도 단서는 찾은 것 같아.”
“그래요?”
“당주 어머님을 따르던 한 하인의 지혼을 찾았는데, 그 하인과 당주 어머님이 함께 살해된 것 같네. 미생인이 계속 쫓고 있어.”
고해는 미간을 찌푸렸으나 계속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직 이생에도 적지 않은 일들이 쌓여 있었다.
“대사님, 저의 부하들을 이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 고부에 데려가도 괜찮겠습니까?”
“그렇게 하세.”
유년대사는 소매 속에서 날아다니는 거대한 배를 꺼냈다.
후우웅!
날아다니는 배는 소매에서 나오자 금방 거대해졌다.
유년대사가 이번에는 손을 휘젓자, 석상 밑에서 하얀색 구름이 나타났다. 그 구름은 석상을 들어 올려서 날아다니는 배에 실었다.
고해는 그동안 궁전 주변에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동시에 유년대사의 눈을 피해 절생도를 갈비뼈로 만들어 몸 안에 숨겼다.
“고 타주, 뭘 찾는가?”
유년대사가 물어보았다.
고해가 뻘쭘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사님 때문에 제가 영석을 좀 빌렸습니다. 영석을 갚아줘야 합니다.”
“뭐?”
유년대사는 고해가 했던 말을 곱씹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대진을 펼치려고 영석을 빌렸다고 했었다.
“시간 없으니 그만 찾게. 자네의 빚은 내가 대신 갚도록 하지. 어차피 나 때문에 벌어진 일 아닌가?”
“네?”
고해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팅팅팅!
유년대사는 손을 뻗어 대량의 상품 영석을 꺼냈다. 역시 유년대사도 작은 공간이 있었다.
고해는 사양하지 않고 영석을 받았다.
유년대사의 씀씀이는 대단했다. 받은 영석이 자신이 빌린 영석의 열 배나 되었다.
‘허, 스님이 부자네, 부자야.’
유년대사가 고해의 속마음을 눈치챈 듯 고해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만 가세.”
“예.”
고해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이고는, 유년대사와 함께 날아다니는 배에 몸을 실었다.
배는 곧장 고부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날아다니는 배 위.
고해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유년대사에게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유년대사도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그때,
치이이익!
배 위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두 사람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석상 하나가 심하게 요동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상관흔?”
고해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석상에서 검은 기운이 솟아오르더니,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후우우우.”
긴 숨소리가 들리고, 석상에서 상관흔이 나왔다.
고해도 어지간히 놀란 듯 커진 눈으로 물었다.
“상관흔, 괜찮은가?”
“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입니까?”
상관흔이 대답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청하종을 떠났다. 이분은 유년대사님이시다.”
고해가 대답하고는 옆에 있는 유년대사를 가리켰다.
상관흔이 급히 유년대사에게 예를 취했다.
“유년대사님께 인사 올립니다.”
유년대사가 상관흔을 보며 물었다.
“저주를 어떻게 풀었나? 왜 자네만 풀린 거지?”
상관흔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고해가 다시 물어보았다.
“상관흔, 다른 사람들의 저주도 풀 수 있느냐?”
상관흔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대인, 저는 특별한 원인이 있어서 풀린 것입니다. 아직 다른 사람들의 저주까지 풀 수 있는 정도는 아닙니다.”
“어쨌든 너라도 돌아왔으니 됐다. 이제부터 다른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남은 사람들을 잘 지키거라.”
“예.”
유년대사는 어찌 된 일인지 무척 궁금했으나, 고해가 추궁하지 않으니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다그칠 수도 없고…….
날아다니는 배는 불과 한 시간 만에 고부에 도착했다.
고부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이 한창 싸우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왜 나를 막고 난리야! 금반도가 저기 있잖아! 너희들이 갖기 싫으면 그만이지, 왜 나까지 막아서냐고!”
“꺼져! 너에게 금반도를 빼앗기면 내 영석은 어떡하고? 상품 영석을 빌려준 나는 어떡하라고!”
“내가 상품 영석 두 개 줄게! 그러니까 꺼져!”
“허튼소리! 상품 영석 두 개로 금반도를 먹겠다고? 꿈 깨!”
고부 주변은 난리도 아니었다.
“저들끼리 싸우는 거야?”
유년대사가 어이없는 듯 말했다.
고해는 담담한 표정으로 옅은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영석을 빌려준 사람과 빌려주지 않은 사람들 간에 분쟁이 생긴 것 같습니다.”
고해가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금반도 근처에 떨어졌다.
“누구야?”
“고해?”
수련자들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고해는 금반도가 담긴 상자를 덮고는 다시 거두어들였다.
“고해! 뭐 하는 짓이야?”
그 자리에 있던 수련자들이 분노했다.
고해가 그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영석을 잘 썼습니다. 차용증을 가지고 오면 영석을 돌려주겠습니다!”
“돌려주는 거야?”
수련자들의 눈이 번쩍거렸다.
콰르르르르!
그 순간, 하늘에서 날던 거대한 배가 천천히 고부의 대진 안으로 내려왔다.
“아니, 저 배는? 일품당 배 아니야?”
“나서지 않길 잘했네.”
“일품당 사람들이 고부에 온 거야?”
수련자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고해가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부의 늙은 총관이 책상을 펴고 영석을 돌려주기 시작했다.
“상품 영석 하나를 빌려줬군요. 여기 상품 영석 두 개입니다. 여기에 서명하세요.”
늙은 총관이 상품 영석 두 개를 건넸다.
“하하하! 정말 두 개야? 하하하!”
고부 밖에서는 싱글벙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영석을 빌려주지 않은 사람들은 질투의 눈빛으로 영석을 빌려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영석을 빌려준 사람들은 ‘더 많은 영석을 빌려줄 걸.’ 하며 후회하고 있었다.
수련자들은 하나같이 고부를 바라보며 고해가 또 영석을 빌려 갈 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 시각, 고해는 충천탑에 서서 하인들이 영석을 피우는 것을 바라보았다.
“주인님, 됐습니다!”
“주인님, 제 쪽에도 됐습니다!”
“주인님, 저도 마무리했습니다!”
사방에서 하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해는 손을 뻗어 옆에 있던 영석 바둑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배치하거라!”
콰르르르릉!
주변에서 구름과 안개가 몰려왔다.
고해가 고진을 보며 말했다.
“고진아, 너도 느껴보거라.”
지금은 고해가 아닌 고진이 영석 모양의 바둑돌을 만지고 있었다.
“의부, 이게 바로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입니까? 이렇게 강대한 힘을 제가 조종하고 있다니, 꿈은 아니지요?”
고해가 들뜬 표정을 짓고 있는 고진에게 말했다.
“네가 조종할 줄 알아야 한다. 나와 유년대사님은 곧 떠나게 될 테니, 네가 고부를 지켜야 해. 잘 모르겠으면 상관흔에게 물어봐라.”
“네!”
고진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 고해는 상관흔을 바라보았다.
“상관흔, 내가 없는 동안에도 이 석상을 신경 써야 한다.”
“네, 대인.”
모든 일을 당부한 고해는 고개를 들어 날아다니는 배를 바라보았다.
고해가 발을 굴렸다.
쿵!
하늘로 솟구친 고해는 바로 날아다니는 배에 몸을 실었다.
유년대사가 아래에 펼쳐진 진세를 보며 감탄했다.
“고 타주, 정말 훌륭한 진법일세.”
“과찬이십니다. 대사님, 서두르시지요. 당주님도 구해야 하고, 이청하를 찾아 부하들도 구하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유년대사가 머리를 끄덕거리고는, 손을 휘저었다.
날아다니는 배가 빠르게 송갑종을 향해 날아갔다.
* * *
두 시간 후, 배가 송갑종 밖에 도착했다.
“여기가 송갑종이라고요?”
고해의 미간이 움찔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보름 전에 본 송갑종과 많이 달랐다.
주변은 높고 험한 산이 아니라, 넓은 바다처럼 변한 상태였다. 산골짜기마다 수많은 물로 가득했다.
고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건? 설마 부혈이 이 강들을 뚫었단 말입니까?”
유년대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강이 아니라 바다네. 이곳은 지세가 낮고 바다와 멀지 않네. 아마도 부혈이 바닷물을 끌어온 것 같군.”
“바닷물이오? 왜죠?”
“부혈은 교룡이 아닌가. 교룡은 물을 만나면 더 강해지지. 저번과 똑같은 진법을 사용하면 아마 힘들 거네. 자네의 대진이 그의 공격을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