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직무태만
세 하인은 멀어져 가는 고해의 뒷모습을 보며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고해는 밖에서 용완청을 찾다가 갑자기 금갑 수정대진의 출구 쪽을 바라보았다.
“뭐지?”
고해가 눈을 끔뻑이며 출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편에서는 세 하인이 서로를 부축하고 천천히 동굴을 나오고 있었다.
동굴 밖으로 나온 세 하인은 입을 쩌억 벌리면서 하마터면 숨이 넘어갈 뻔했다.
“이…… 이건?”
세 하인의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백골산이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백골을 본 세 하인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들은 입을 벌린 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금갑 수정대진 밖.
이만 명의 백성과 수련자들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대진을 바라보았다.
쾅!
갑자기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폭발 소리? 아까도 폭발 소리가 들렸잖아! 도대체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 거야?”
수련자들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사방에서 먹구름이 일고 천둥 번개가 치고 있었다. 교룡과 유년대사는 아직도 대치하고 있었다.
“으아아! 이런 까까중 같으니라고! 정말 성가시게 하는구나!”
교룡이 분노해서 포효했다.
유년대사가 두 손을 모으며 냉랭하게 말했다.
“부혈! 다시 물어보마! 도대체 당주님을 어떻게 한 거냐? 송갑종에 계시기는 한 것이냐?”
말을 마치고 유년대사는 대진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고해를 발견한 유년대사는 어떤 상황인지 궁금했으나, 이내 고개를 돌려 교룡을 응시했다.
유년대사와 교룡이 대치하고 있는 와중에, 저 멀리에서 황금색 빛이 번쩍거렸다.
역시나 송생평이 이청하를 데리고 돌아오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황금색의 원을 밟고 날아오는 중이었다.
이청하는 뱀의 머리를 흩날리며 가부좌로 앉아 쉬고 있었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이청하의 상처는 아직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송생평은 두 눈을 깜박거렸다. 곧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송갑종에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냐?”
이청하도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콜록콜록!”
이청하는 연신 기침을 해대며 저 먼 곳을 바라보았다.
“유년대사?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지?”
송생평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유년대사한테 날아다니는 비주가 있어. 그래서 빨리 왔군.”
“유년대사와 부혈이 싸우는군.”
송생평이 이청하의 말을 듣고 문득 고해를 떠올렸다.
“고해는 없나? 하긴 오든지 말든지 이제는 상관없어. 삼천 명 악인도 없어졌고, 이십팔 천지종횡대진도 선천경에 불과하잖아?”
“부혈과 유년대사밖에 없는 건가?”
이청하의 말에 송생평이 살기 띤 눈빛을 번뜩였다.
“반드시 유년대사를 잡아야 하네. 부혈이 유년대사와 대치하고 있으니, 만약 우리까지 합세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송갑종 제자들은 어디에 있나?”
이청하가 물었다.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송갑종 제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이만 명의 백성들이 금갑 수정대진 출구 쪽을 눈이 빠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출구 쪽은 여전히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저기에 무슨 백성들이 저렇게 많지?”
송생평과 이청하는 빠르게 날아가더니 순식간에 출입구 상공에 도착했다.
후우우웅!
거센 바람이 불면서 이만 명의 백성들이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송생평! 송갑종주다!”
누군가 송생평을 알아봤다.
“이청하도 있어. 그런데 이청하도 괴물로 변한 거야? 아악!”
한 무리 수련자들이 화들짝 놀랐다.
선천경, 금단경 수련자들이 괴물이 되어버린 건 그렇다 쳐도 이청하는?
이청하는 원영경이라고!
두둥!
수련자들은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송생평은 다급한 나머지 밑에 있는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금갑 수정대진에서 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뭐야? 전부 죽은 거야?”
송생평이 분노했다.
송생평이 소리를 지르며 손을 휘저었다.
거대한 바람이 입구 쪽으로 향해 밀려갔다.
쾅쾅!
갑자기 산이 무너지면서 생긴 자갈들이 빠르게 어느 한곳으로 흡수되었고 주변에서는 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유년대사와 교룡도 그 광경을 발견했다.
“하하하! 까까중님! 송생평도 왔고 이청하까지 왔네! 하하하! 살려달라고 말할 때가 온 것 같구만! 하하하!”
교룡이 포효하며 말했다.
유년대사는 천천히 염주 하나를 빼내더니 하늘로 튕겼다.
염주가 하늘로 올라가더니, 갑자기 거대한 구체를 형성했다. 그리고 곧바로 먹구름을 향해 날아갔다.
쿠앙!
염주와 먹구름이 부딪치자 천둥과 번개가 흩어지고, 먹구름은 폭발해버렸다.
부혈이 놀라서 말했다.
“뭐야? 힘을 남겨놓은 거야?”
유년대사가 냉랭하게 말했다.
“부혈! 기회를 줄 때 말하거라! 당주님은 어디에 계시는 거냐?”
우르릉!
송생평이 출구에 있던 자갈들을 전부 흡수해 버렸다. 출구 쪽이 깨끗하게 정리되면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다 죽었어?”
송생평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터벅터벅!
먼지 속에서 터벅터벅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고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고해를 응시했다.
심지어 저 멀리서 싸우고 있던 유년대사도 궁금한 듯 눈을 돌렸다.
고해의 옷은 갈기갈기 찢겼고 몸에는 수백 개의 상처가 그어져 있었다.
고해는 가늘고 긴 골도를 잡고 냉랭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해?”
이청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송생평이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우리 송갑종 제자들은?”
고해가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훗, 다 죽었다!”
“뭐?”
송생평이 눈을 부릅떴다.
고해는 고개를 돌려 유년대사를 보며 힘주어 말했다.
“대사님, 언제까지 저를 시험해 보려는 겁니까? 지금 당주님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저와 힘겨루기를 하다니요? 일품당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저한테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무슨 말인가?”
“당주님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당주님을 보호하라고 부탁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대사님께서는 이런 식으로 당주님을 보호하십니까?”
“그건…….”
“그러고 보면 당주님이 붙잡힌 것도 완전히 대사님의 그 직무 태만 때문 아닙니까? 아직도 교룡의 주변을 맴돌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뭐야?”
“왜 저러지?”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다.
고해와 유년대사가 내분을 일으키는 거야?
송생평과 이청하도 멍하니 고해를 바라보았다.
반면 교룡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고해의 말이 사실이라면, 유년대사가 제대로 힘을 쓰지 않았다는 말 아닌가 말이다.
그때 유년대사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고해가 싸늘하게 유년대사를 보며 다시 말했다.
“대사님, 저를 그렇게 볼 필요 없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유년대사님의 태만함 때문이 맞지 않습니까? 저한테 당주님의 외할아버지에 대해 언급하셨지요? 비록 저는 그분에 대해 모르지만, 당주님의 외할아버께서도 유년대사님을 믿고 당주님을 맡기신 거 아닙니까?”
유년대사는 입을 꾹 닫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고해가 그런 유년대사에게 비수를 던지듯 한마디 더했다.
“만약 당주님한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분을 어찌 대하시렵니까?”
유년대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고해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마저 말을 이었다.
“더 이상은 저를 시험할 필요 없습니다. 오천 명의 송갑종 괴물들은 제가 전부 죽여버렸습니다. 이제는 대사님의 차례입니다.”
“뭐라고?”
이청하가 경악해서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송생평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악을 썼다.
“거짓말! 거짓말이야!”
고해가 삼천 명의 악인도 없이 혼자서 오천 명을 전부 죽였다고?
“주저하면 할수록 당주님은 더욱 위험해집니다. 대사님!”
고해가 싸늘하게 말하자, 유년대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탕!
그순간 유년대사는 손에 있던 열입곱 알의 염주를 전부 뿌렸다.
쾅!
열일곱 알의 염주가 흩어지더니 교룡, 송생평, 이청하를 향해 날아갔다.
“조심해!”
송생평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염주 열일곱 개 중 열 알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기 있었다.
염주는 고공에서 점점 더 커지더니 마치 열 개의 행성이 날아오는 것만 같았다.
송생평이 손을 뻗어 발밑에 있던 금환을 휘둘렀다.
위이이잉!
금환이 눈부신 황금빛을 발산하더니 번개처럼 날아가 염주와 부딪쳤다.
펑!
거대한 굉음과 함께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주변에 있던 바닷물이 하늘로 솟구쳤다.
풉!
송생평은 피를 토해내며 뒤로 한발 물러섰고, 금환도 다시 날아왔다.
이청하도 염주 한 알을 맞이했다. 염주는 마치 별이 떨어진 듯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막아랏!”
이청하가 두 손을 뻗어 맞받아쳤다.
쾅!
이청하의 양손이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그럼에도 염주는 힘을 줄이지 않고 순식간에 이청하를 들이박았다.
“안 돼!”
이청하가 비명을 질렀다.
쾅!
이청하의 몸이 순식간에 폭발했다.
옆에 있던 고해가 움찔했다.
유년대사의 염주가 막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다.
이청하 역시 부상을 입었으나, 원영경 수련자 아닌가.
염주 한 알이 고해가 펼친 대진의 방천화극과 맞먹는 힘이라니!
‘염주 한 알로 원영경을 없애버릴 정도일 줄이야…….’
하지만 이청하는 아직 죽지 않았다.
고해는 이청하의 몸뚱아리가 터지는 순간, 황금색 빛이 이청하의 머리를 비추는 것을 목격했다.
몸은 폭발했으나 머리에는 그 어떤 상처도 없었다.
이청하는 바닥에 머리를 붙이고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염주와 충돌한 순간 죽은 척한 것이다. 도망가기 위해서.
남은 염주들은 송생평과 교룡을 향해 날아갔다. 아마 이청하의 머리가 도망가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어딜 가려고!”
고해가 흠칫하더니 곧바로 쫓아갔다.
이청하의 머리는 유년대사에 들킬까 봐 땅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청하는 그 상태에서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풍덩!
뱀의 머리가 바닷물 속으로 잠겼다.
풍덩!
고해도 뛰어들어서 이청하의 뱀 머리를 죽이기 위해 쫓아갔다.
유년대사는 고해의 말에 자극받은 듯 진지하게 싸움에 임했다.
열여덟 알의 염주가 마치 열여덟 개의 별빛처럼 유년대사의 주변을 맴돌았다.
“정용환(금환, 定龙环)? 하하하! 송생평! 이런 수까지 읽은 거야?”
교룡이 눈을 부릅뜨고 광소를 터트렸다.
쿠구구구궁!
송생평이 손에 있던 금환으로 염주의 공격을 막으며 다급히 소리쳤다.
“부혈, 얼른 저 유년대사를 없애버리게! 시간이 없네!”
하지만 교룡은 분노해서 냉랭히 코웃음 쳤다.
“흥! 송생평, 어쩐지 송갑종 제자들을 나한테 넘긴다 했다. 여기서 기다렸다가 내가 대지용맥을 빼앗아 오면 그 정용환으로 나를 없애버리려고 했던 것이냐?”
“그런 것이 아니네!”
송생평이 변명을 하려 했지만 교룡의 분노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정용환은 선천잔국계에서 관기 노인이 만들어낸 법보 아닌가? 그 기물은 주로 아용족(亞龍族)을 짓밟는 일에 쓰였다는 걸 네가 모르진 않겠지? 하! 하! 송생평! 감히…… 감히!!”
“그런 거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일단 이 늙은 까까중부터 처리하고 이야기하세! 아니면 우리 둘 다 죽는다 말이네!”
“흥!”
교룡이 코웃음 치고는, 고개를 돌려 유년대사를 바라보았다.
“바닷물들아! 세차게 흐르거라!”
콰르르르릉!
바닷물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곧바로 유년대사를 향해 밀려갔다.
“구성연주(九星連珠)!”
유년대사가 손을 내밀면서 맞받아쳤다.
콰과과광!
아홉 알의 염주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바닷물과 부딪쳤다.
바닷물이 그 충격에 흩어져버렸다.
그러나 염주는 기세를 꺾지 않고 그대로 교룡을 향해 날아갔다.
교룡은 그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헉!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