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정용환(定龍環)
쿠궁!
아홉 알의 염주가 교룡을 짓눌렀다.
“으아악!”
거대한 힘에 짓눌린 교룡은 움직이지도 못했다.
“유년! 이게 무슨 법보냐!”
교룡이 놀라서 소리쳤다.
염주에 짓눌린 교룡은 숨을 헐떡거렸다. 상상도 못 했던 막강한 힘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유년대사는 교룡을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정용환을 향해 공격했다.
펑!
정용환에서 방패막이 생기면서 날아드는 염주를 막았다. 그러나 뒤에서 정용환을 조종하던 송생평은 힘에서 밀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
유년대사가 그를 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정용환! 역시 관기 노인이 만든 법보답구나. 하지만 송생평! 너는 아직 법보의 사용법을 완전히 터득하지 못한 것 같구나. 이 금갑 수정대진도 정용환으로 배치한 거 아니더냐?”
“어, 어떻게 그걸……?”
송생평이 놀라서 더듬거렸다.
“흥! 어떻게 알았냐고? 전적(典籍)에 적혀 있느니라! 관기 노인도 금갑대진을 조종해서 위엄을 떨쳤었다. 너의 대진과 상당히 유사했지. 그런데 아쉽게도 너는 정용환의 사용법을 잘 모르는 것 같구나!”
유년대사가 냉랭하게 말하면서 손을 내밀어 더욱 강하게 짓눌렀다.
푸헉!
송생평이 피를 토해내고는,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꼬리를 말고 사정했다.
“대사, 살려주시오! 저는 부혈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유년대사는 여전히 싸늘한 표정으로 다그쳤다.
“당주님은 어디 계시느냐? 설마 당주님을 해친 건 아니겠지?”
“제가 어찌 당주님을 해칠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당주님의 외할아버지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저희가 대지용맥 백 개를 얻는다 해도 결국에는 죽은 목숨 아니겠습니까? 당주님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흥! 네놈들이 감히 겁도 없이 당주님을 건드려?”
“아닙니다. 다만 이십 년 전의 일을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십 년 전에 일품당에서 용맥을 찾았다고 해서 용완청한테 물어보았으나, 그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습니다. 당주를 해칠 수는 없어서 하인들을 압박했지요. 정말입니다.”
바로 그때, 금갑 수정대진 입구 근처에서 용완청의 세 하인이 걸어 나왔다.
“보십시오! 아직 하인들도 살아 있지 않습니까? 흑흑흑!”
송생평이 말하고는 눈물을 흘리는 척했다.
“대사님, 오셨습니까?”
세 하인이 멀리서 유년대사에게 인사를 올렸다.
“당주님은 어디에 계시느냐?”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없으신 것 같습니다!”
“하아!”
한숨을 쉰 유년대사는 송생평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죽기 싫으면, 어서 당주님 계신 곳을 말해라!”
그의 눈빛에 겁을 먹은 송생평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정 타주, 정 타주가 당주님을 데려갔습니다. 정말 당주님을 해치려고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유년대사가 송생평의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일품당 화타주 정예?”
“예, 사실 그 일은 일품당 문제이니 저와는 무관합니다. 저는 당주님을 해치지도 않았고, 다만 당주님의 세 하인만 가뒀을 뿐입니다. 당주님의 외할아버지께서도 책임을 추궁하지 않으실 겁니다.”
유년대사가 차가운 표정으로 웃으며 호통쳤다.
“하하하하! 송생평! 머리 하나는 잘 굴리는구나! 네가 그런다고 이 일이 없는 일로 될 것 같으냐!”
“정예가 이 일의 내막을 저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정예 말만 들었을 뿐입니다!”
유년대사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정예가 반란이라도 일으키려는 건가?’
멀리 서 있던 세 하인도 송생평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유년대사가 다시 차가운 표정으로 송생평을 다그쳤다.
“송생평! 정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저…… 저…… 저……!”
송생평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걸 인지하고 말을 더듬었다.
“대사님, 제가 말하면……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유년대사가 부릅뜨고 더욱 강하게 다그쳤다.
“말해! 어서!”
그는 자신의 생각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주를 교룡과 송생평이 잡아갔다면 이렇게까지 복잡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용완청의 외할아버지만 봐도 공포에 떨던 놈들이라 쉽게 해치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정예라니.
일품당 내부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정예 역시 용완청의 외할아버지를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감히 용완청을 데리고 갔지 않은가 말이다.
‘뭔가가 있어. 앞뒤 안 가리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순간, 유년대사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설마…… 용완청 어머니의 죽음과 관계가 있는 일이 아닐까?’
사실이라면 용완청이 위험하다.
“말해! 정예는 어디에 있느냐?”
유년대사는 당장 때려죽일 것처럼 손을 들고 송생평을 압박했다.
송생평도 더 버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마, 말하겠습니다! 정예는…… 정예는……!”
그 순간!
쉬아아아앙!
저 멀리에서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황금색 물체가 빠르게 날아들었다.
“응?”
유년대사는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사이 황금색 화살이 코앞까지 날아왔다.
“안 돼!”
유년대사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황금 화살의 속도는 너무나 빨랐다. 유년대사가 미처 막기도 전에 염주 아홉 알의 기운을 뚫고 송생평에게로 향했다.
법보인 정용환도 황금 화살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안 돼!”
송생평이 눈을 부릅뜨고 비명을 질렀다.
펑!
황금 화살은 순식간에 송생평의 몸을 폭파시켰다.
산산조각이 난 송생평은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에서 사라졌다.
눈 깜짝할 순간에 송생평을 폭파시킨 황금 화살은 그 후로도 멈추지 않고 금갑 수정대진과 충돌했다.
쾅-!
금갑 수정대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언제든지 무너질 것만 같았다.
유년대사의 염주 아홉 알도 그대로 바닷물에 떨어졌다.
“으악!”
한쪽에서 교룡이 비명을 지르더니, 모든 힘을 한데 모아 나머지 염주 아홉 알을 쳐 냈다.
그러고는 도망치기 위해 몸을 날렸다.
유년대사가 그 모습을 보고 분노해서 소리쳤다.
“멈춰라, 이놈!”
그때였다.
저 멀리서 커다란 배가 빠르게 날아왔다. 뱃머리에 신기영주 이호연이 서 있었다.
조금 전의 황금 화살은 그가 쏜 것이 틀림없었다.
“유년대사님, 청하종이 폐허가 되어버렸던데,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용완청은 어디에 있습니까?”
척!
유년대사는 오른손으로, 떨어지는 정용환을 잡아채고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호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왼손에 염주를 들고 빠르게 교룡을 쫓아갔다. 반드시 정예의 행방을 찾아내 용완청을 구해야 했다.
‘이호연, 설마 일부러 죽인 것이냐?’
유년대사는 손을 뻗어 배를 불러냈다. 배에 오른 그는 더욱 빠르게 교룡의 뒤를 바짝 쫓았다.
교룡을 쫓아가는 유년대사를 보며, 이호연은 입가에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영주님, 정예가 시간을 딱 맞춰 소식을 보냈군요, 하마터면…….”
옆에 있던 부하의 말을 들으며, 이호연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 * *
한편, 고해는 뱀 머리로 변한 이청하의 머리를 쫓아갔다. 뱀 머리는 바닷물에서 나와 숲으로 숨어들었다.
“거기 서!”
고해가 쫓아가며 소리쳤다.
스으윽!
뱀 머리가 갑자기 길어지더니 입 안에서 독액을 뱉어냈다.
고해는 절생도를 휘둘렀다. 검은 기운이 고해를 감쌌다.
촤아악!
검은 기운에서 나타난 해골들이 순식간에 독액을 삼켜버렸다.
이청하의 뱀 머리는 당황해서 고개를 돌려 숲속으로 도망쳤다.
“고해! 그만 쫓아와라! 나 아니었으면 오늘의 너도 없었다!”
달리던 뱀 머리가 울부짖듯 사정했다.
“오늘의 나는 전부 용완청 덕분이다! 물론 너도 내게 힘을 보탠 적이 있었지. 그러니 나를 죽이려 하지만 않았다면, 아무리 괴물로 변했더라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흥! 대진이 없었더라면 나는 죽고 없었겠지! 그리고 네가 죽어야만 내 삼천 명 부하들이 살아난다!”
고해가 싸늘하게 말하면서 계속 쫓아갔다.
이청하는 머리만 남은 데다 힘도 빠져서 날아가는 속도가 느렸다. 그럼에도 고해는 전력을 다해야만 이청하를 쫓아갈 수 있었다.
둘은 정신없이 숲속을 날며 쫓고, 쫓겼다.
유년대사가 교룡을 쫓아간 후.
이호연이 배 위에서 싸늘한 표정으로 넓은 바닷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용완청의 하인들이 인사를 올렸다.
“신기영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이호연이 세 사람을 보며 물었다.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세 하인은 서로 마주 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이만 명의 백성들이 신기한 눈빛으로 배를 보고 있었고다.
바닷물에 뛰어든 수련자들도 언덕으로 올라와 신기영의 배를 바라보았다.
“가서 알아봐라.”
이호연이 옆의 수하를 향해 덤덤하게 말했다.
“네!”
신기영 부하들이 배에서 내려오더니 몇몇 수련자들을 잡아왔다.
이호연은 주변을 바라보며 결과를 기다렸다.
곧 신기영 부하들이 사실을 알아내고 이호연에게 말했다.
이호연의 안색이 급변했다.
“뭐? 또 고해야?”
선천잔국계에서부터 줄곧 고해의 이름을 들어온 터였다.
‘선천경 따위가 매번 나를 앞서다니!’
비밀이 밝혀지기 전에 송생평을 죽여서 즐거웠던 마음이 한순간에 식어버렸다.
기분이 상한 이호연이 냉랭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고해의 위치를 찾아내라!”
“네!”
신기영의 부하들이 배에서 내려와 사방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한편, 신기영 부하 두 명은 황금 화살을 들고 금갑 수정대진 변두리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쉬쉬쉭!
그들이 화살을 쏠 때마다 대진에 금이 갔다.
원영경도 거뜬하게 막아내던 대진이 결국 화살에 무너져 내렸다.
쉭!
화살이 다시 대진을 파고들었다.
펑!
마침내 금갑 수정대진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송갑종 내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쏴아아아아!
주변에 있던 바닷물이 산골짜기를 가득 채웠다.
“헉! 배, 백골이……!”
“이, 이건 도대체……?”
“시체는 없고 백골만 남아 있다니.”
백성들은 눈을 부릅뜨고 경악했다. 수련자들 역시 소름이 끼쳤다.
이게 전부 괴물 제자들의 백골이란 말인가?
살은? 저들의 피와 살은 왜 없는 거지?
정말 고해가 저들 전부를 죽였단 말인가?
근데 왜 벡골만 남아 있지?
신기영의 부하들도 화들짝 놀라서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호연 역시 만천하에 드러난 백골을 보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도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한 번도 이렇게 악독하게 죽여본 적은 없었다.
“고해, 그놈은 악마야! 악마!”
근처에 있던 용완청의 부하가 그 말을 듣고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영주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여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시면서 함부로 말씀하지 마시지요. 고해가 송생평의 괴물 제자들을 죽여서 우리 모두를 구해줬습니다.”
만약 고해가 아니었으면 유년대사도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들을 구해줄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흥!”
이호연이 하인의 말에 코웃음 쳤다.
그때였다.
세찬 바람이 불어오더니, 유년대사가 비주(飛舟)를 타고 날아왔다.
이호연이 그에게 물었다.
“대사님, 교룡은 어떻게 됐습니까?”
하지만 유년대사는 분노한 표정으로 이호연을 노려보았다.
“이호연, 송생평은 왜 죽였느냐?”
이호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답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혼자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 도와드렸을 뿐입니다.”
“흥!”
유년대사는 차가운 표정으로 이호연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