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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113화 (113/243)

113화 원영(元媖)은 혼백이다

* * *

한 산골짜기.

“내 눈을 봐!”

이청하의 뱀 머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위이잉!

뱀 머리가 눈을 끔뻑거리자 붉은색 빛이 번뜩였다.

고해는 잽싸게 고개를 돌리고는 칼을 휘둘렀다.

펑!

검은 기운이 이청하를 향해 날아갔다.

이청하는 빠르게 날아서 고해의 공격을 피했다.

“고해! 내 눈도 볼 수 없으면서 나를 잡겠다는 거냐?”

“벌써 닷새째군! 비록 아직 잡지는 못했지만, 종주도 기진맥진하지 않았나? 어디 언제까지 버티는지 두고 보자!”

쉬익!

절생도가 휘날리며 검은 기운을 뿜어냈다.

“흥! 고해! 오늘 네가 죽든 아니면 내가 죽든 끝장을 보자!”

이청하가 싸늘하게 말한 순간, 뱀 머리들이 커다란 그물처럼 퍼지며 고해를 향해 날아왔다.

이청하는 눈으로 고해의 시선을 차단하고 뱀 머리를 이용해서 절생도를 부숴버리려는 속셈이었다.

쾅!

수천 마리의 뱀들이 입을 찢으며 날아오는데도 고해는 절생도를 휘두르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고해! 죽어라!!”

이청하가 소리쳤다.

순간, 장검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이청하의 머리를 찔렀다.

수천 마리의 뱀들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이청하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저놈은 도를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칼의 기운이 자신의 머리를 관통했단 말인가.

그런데 고해가 이청하의 눈을 피한 채 조소를 지었다.

“뱀들이 오른손에 있는 절생도만 보느라 왼손에 있던 칼은 보지도 못하는군.”

이청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

“내 위치를…… 어떻게 알았지?”

그때 한 줄기 빛이 이청하를 비추었다.

고해의 오른손에는 절생도 외에도 거울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고해는 그 거울을 통해 반대편에 있는 이청하의 위치를 찾아냈던 것이다.

“거울? 아, 안 돼……!”

이청하는 절망 속에서 눈을 감았다.

그 시각 고부.

상관흔이 지키고 있던 삼천 개의 석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우우웅.

삼천 개의 석상은 빠르게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갔다.

“후우우!”

“헉, 헉, 헉.”

삼천 명의 악인들은 거친 호흡을 내쉬었다. 그들의 거친 숨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여긴 어디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눈! 맞아! 이청하의 눈!”

한 무리의 악인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상관흔은 악인들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환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몸으로 돌아온 진천산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상관 부장, 여기 어딘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상관흔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여긴 대인의 고부네. 그대들이 다시 돌아왔다는 건 대인께서 이청하를 죽였다는 뜻이지.”

악인들이 경악했다.

* * *

고해는 장검을 거두어들였다.

이청하의 머리는 아직도 원래 상태대로 있었다. 다만, 미간 사이에 움푹하게 들어간 구멍이 생긴 것이 다를 뿐이었다.

고해는 한참을 기다려서야 거울을 비추며 걸어가더니 이청하의 뱀 머리를 주웠다.

위이잉.

이청하의 뱀 머리에서 황금빛이 새어 나왔다. 얼마 전, 이청하의 몸이 폭발할 때 황금빛이 이청하의 머릿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황금빛은 이청하의 어린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아직 살아 있나?”

고해가 눈을 부릅뜨고 절생도를 들었다.

하지만 황금빛 영아는 옅은 광막(光膜)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영아는 고해를 보면서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나의 원영이야. 일백이기도 하지. 삼혼이 흩어지고 일백도 있을 곳이 없으니 이제 곧 원영도 흩어지고 말겠지.”

“원영? 원영경? 네가 바로 종주의 원영?”

“인간은 삼혼칠백이 있다. 천지인이 삼혼에 속하고, 백은 체백(體魄)을 말하는 거다. 실력이 강할수록 체백도 강해지지. 원영경에 오르면 형태를 이루면서 이처럼 원영이 되는 거야.”

“그럼 네가 이청하란 말인가?”

고해가 묻자, 원영이 씁쓸하게 웃었다.

“맞아. 혼은 힘의 원천이야. 내 삼혼이 머리에 집중된 덕분에 그나마 이렇게 멀리까지 도망치게 된 거지. 그러나 자네가 닷새 동안 따라오면서 내 혼은 점점 무기력해졌어. 그리고 조금 전 자네의 묵직한 칼이 내 혼을 찌르면서 삼혼도 빠르게 흩어졌지.

그나마 이것도 다행이야. 인혼은 부혈이 먹어버렸고, 천혼은 하늘로 돌아가고, 지혼은 저승으로 가니까. 사람을 먹어버리는 그런 괴물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 순간, 원영이 점점 사라질 기미를 보였다.

원영이 어색하게 말했다.

“고해, 고맙네.”

“고마워할 필요 없어.”

“나도 이렇게 변하고 싶지 않았어. 그렇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지. 이것도 다행이야!”

그 순간,

우우우웅!

원영이 황금색 안개로 변하더니 공중에서 흩어졌다.

고해는 침묵을 지키다가 중얼거렸다.

“삼혼칠백. 백은 체백? 원영경에서 백의 모양이 나타난다고? 그 백이 힘의 원천이고?”

이제야 뭔가 알 것 같다.

단전에 있는 진원이 바로 자신의 힘이었다. 나중에 이런 진원이 모여 생긴 형체가 바로 원영이란 말이다.

이청하가 죽었지만, 마지막에 깨달음이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후우우.”

고해는 옅은 한숨을 내쉬고 이청하의 머리를 잡았다. 그러다 갑자기 표정이 급변했다.

이청하 머리를 털어버리려던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혈관 경맥을 막아버렸다.

그러고는 저 멀리에서 기어오는 독사를 응시했다.

고해의 진원이 뱀 머리에 들어갔다.

우우우웅!

뱀 머리가 부르르 떨더니, 두 눈에서 붉은색 빛을 내보냈다.

스스스!

저 멀리에 있던 독사가 그 붉은색 빛을 보고는 순식간에 돌처럼 굳어 버렸다.

“이게…… 가능해?”

고해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손에 있는 뱀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뱀 머리를 잡았을 때 이상한 진원을 감지했다. 그래서 혹시 하는 마음으로 시험해 보았는데, 진짜 독사가 석상이 되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조금 전에 내보낸 붉은색 빛으로 이미 진원의 사분의 일을 소모해 버렸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뱀 머리를 세 번이나 더 쓸 수 있단 말이군.”

고해는 뱀 머리를 조심스럽게 영패 공간에 넣었다.

혹시 누가 알아? 나중에 쓸모가 있을지.

* * *

고해는 갈비뼈에 맞춰 절생도를 가슴에 넣었다.

개울물을 찾은 그는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길을 떠났다.

하루가 지나서야 고해는 한 성(城)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가 대금국(大金國)이란 말이지? 그럼 우리 고부와 같은 세속계에 있는 구역이니…… 그래, 여기는 고부의 서남 방향이군.”

고해는 성으로 들어갔다.

애초 그는 육 국에서 제일가는 부자였다. 대금국 역시 육 국 중의 하나. 그곳에 역시 그의 점포가 있었다.

점포의 총관이 고해를 알아보고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인사를 올렸다.

“주인님, 더욱 젊어지셨습니다.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고해도 늙은 총관을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자네도 젊어질 거야.”

“네네, 감사합니다. 저는 주인님 옆에만 있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주인님을 뵙지 못했는데, 이렇게 뵐 수 있다니…….”

총관이 기쁨에 겨워 말했다.

고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나도 반갑네.”

“아, 주인님, 얼마 전에 많은 선인들이 와서 미친 듯이 주인님의 행방을 찾고 다녔습니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들은 정용종(丁龍宗)에 갔다고 합니다.”

늙은 총관의 말에 고해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뭐? 정용종?”

정용종 역시 예전 오대 종문의 하나였다. 그러나 고해가 관심을 두는 것은 몽태의 기억이었다.

그때 정예, 송생평과 함께 감옥에 갇힌 몽태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아마 용완청의 어머니와 몽태는 이미 이십 년 전에 정용종에서 용맥을 발견한 듯했다.

어쩌면 정예가 황급히 대봉방을 떠난 것도 정용종으로 가기 위한 것일지 모른다.

정용종이라…….

정용종, 용맥, 정예…….

고해는 미간을 찌푸린 채 손으로 책상을 두드리더니 곧 사색에 잠겼다.

늙은 총관은 그의 옆에 공손하게 서서 그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한참 만에 고해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하아, 모든 수련자가 정용종으로 간다고 하니 나도 한번 가봐야겠군. 한동안 여기에 있어야겠어.”

“네? 아 네네!”

총관은 고해가 머문다는 말을 듣고 기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거렸다.

“붓, 먹, 종이, 그리고 벼루를 갖고 오게. 오 국의 모든 총관들에게 편지를 보내야겠어.”

“예.”

고해는 육 국 갑부였으나 송나라가 멸망하면서 이제는 오 국만 남게 되었다. 총관들은 고부의 일을 책임지는 자로, 말이 가장 잘 통하는 사람들이었다.

동시에 오 국 총관들한테 편지를 쓴다는 건 중요한 사항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늙은 총관은 곧바로 붓과 먹을 준비해 왔다.

고해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한 글자 한 글자 적기 시작했다.

“자네, 봐도 되지만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하네. 절대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네.”

고해가 조용히 말하자, 늙은 총관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 물론입죠.”

고해는 편지를 쓰고, 총관은 먹을 갈면서 편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편지 내용을 본 총관이 화들짝 놀라더니 얼굴이 새빨개졌다.

“주인님, 주인님이 천하를 통일하시려는 겁니까?”

늙은 총관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뭐?”

고해가 미간을 찌푸리며 총관을 바라보았다.

늙은 총관은 그제야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알고 끓어오르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비밀을 지키라고 했는데, 그 내용을 말하다니.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고 하지 않던가.

“죄송합니다. 소인은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아무것도 안 봤습니다.”

“입을 조심하게. 자네들은 나와 함께 세속계에서 싸워야 할 뿐만 아니라, 수행계에 가서 천하와 싸워야 할지 모르네. 선인(仙人)이면 또 어떠한가? 나중에는 다 자네의 부하가 되어 있을 게야.”

고해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늙은 총관은 가슴이 뛰었지만, 최대한 말을 아끼고 짧게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이 편지들은 고부의 방식대로 총관들한테 전달하게. 돈은 아까워하지 말고, 일만 잘 처리하게.”

“예.”

고해가 이번에는 다른 편지를 총관에게 내밀며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이 편지는 반드시 고진에게 줘야 하네. 이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니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네.”

늙은 총관도 일의 중요성을 알고 진중하게 대답했다.

“예, 걱정 마십시오. 우리 첫째한테 시켜서 반드시 대공자님께 전하라고 하겠습니다. 만약 실수라도 하면 저의 목을 베십시오.”

고해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편지를 쓴 그는 하루의 휴식을 취한 후 정용종으로 향했다.

* * *

팔 일 후.

호뢰관 고부에도 송갑종의 소식이 전해졌다.

고해가 혼자서 송갑종 제자들을 전멸시켰다는 말에 수련자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고해 혼자? 장난하나?”

“누가 장난해? 내가 현장에 있었다고! 내 눈으로 직접 봤어!”

수련자들은 하나둘 모여 송갑종 전투를 얘기했다.

백골을 보지 못한 수련자들은 송갑종에 가려고 했고, 송갑종에서 돌아온 수련자들은 다시는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십팔 천지종횡대진 속.

고진이 사대 부장들을 대청에 불러 모았다.

그의 앞에는 중년 사내가 서 있었는데, 그는 고진에게 편지 묶음을 내밀고 있었다.

“대공자님, 아버지께서 직접 대공자님께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고진이 머리를 끄덕이며 편지를 받아들고는 그만 가보라고 손을 휘휘 저었다.

사내가 나간 대청에는 고선무, 진천산, 도파, 상관흔이 남아 있었다.

“이건 아버님께서 사대 부장한테 보내는 편지고…… 흠, 내 편지는 여기에 있군요. 먼저 편지부터 보시지요!”

고진이 조용하게 말했다.

사대 부장은 호기심을 가득한 표정으로 편지를 읽었다.

하지만 곧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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