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114화 (114/243)

114화 정용종

도파가 먼저 말했다.

“대인께서 지금 세속계 천하를 통일하려고 이러시는 거 아니야?”

진천산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구오도의 오대 종문에서 대봉방, 청하종, 송갑종까지 제명되었으니 새로운 판을 짤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렇지만 뭡니까?”

고진이 진천산을 보면서 물었다.

진천산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구오도를 통일한다고 해도 일품당과 비교할 수 있을까?”

고진이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버님도 생각이 있는 분이십니다. 아마 진 부장님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진천산은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편지에 담긴 아버님의 지시를 이행하는 것입니다!”

고진의 말에 사대 부장들도 머리를 끄덕거렸다.

“진 부장님, 아버님께서 진양의를 설득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 남작(男爵)을 허락하셨으니 세습도 가능합니다. 우리 고부와의 교섭을 빠른 시일 내에 끝내지요. 가능하겠습니까?”

진천산이 머리를 끄덕이며 답했다.

“당연하지. 청하종의 지지가 없으면 다른 종문들이 치고 들어올 거네. 반드시 고부에 붙어야 한다고 진양의를 설득하겠네.”

“진 부장님의 임무가 막중합니다. 진양의를 설득해야 하고 또 주변에 있는 수련자들도 우리 쪽으로 끌어와야 합니다.”

그 말에는 진천산도 난색을 표했다.

“수련자들을 데려오는 건…… 이거 참…….”

“어려운 일인 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님께서도 구오도 주변에 떠돌아다니는 수련자들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데려오면 좋고, 데려오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제야 진천산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렇다면 한번 해보겠네.”

고진이 이번에는 고선무를 바라보았다.

“고 부장님, 아버님께서 고 부장님을 대장군으로 임명하고, 주변에 있는 병마를 모두 통솔하여 사 국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고선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알겠네.”

그 모습을 보고 고진이 미소를 지었다.

“쉽진 않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오 국에 고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다만 아버님께서 지금까지 싸우시기를 싫어하셨을 뿐이지요. 그러나 오늘 아버지의 명이 떨어졌으니 고부의 힘을 총동원하여 사 국을 통일할 것입니다.”

고선무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편지에서 이번 통일 목적은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고 부장님, 이번에 인재들을 많이 발굴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고진이 다음으로 도파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께서 예전부터 인재들을 모으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런 인재들이 여러 성지에 가서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도 부장님은 그들의 안전을 지켜 주십시오!”

“걱정하지 말게.”

도파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고진이 마지막으로 상관흔을 바라보았다.

“상관 부장님, 황부를 아버님께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알겠네. 곧바로 출발하겠네!”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제가 지금 곧 통관 문서를 사방에 보내겠습니다. 고부의 사람이라면 전적으로 협조할 것입니다.”

“그러지.”

상관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짧은 회의가 끝이 났다.

삼천 명의 악인, 고부의 모두가 바쁘게 움직였다.

고부의 총관들도 고해의 명을 받고는 눈치를 챈 같았다. 전부 하나같이 흥분된 심정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 * *

삼 일 후, 진왕궁.

진천산의 앞에는 진양의가 앉아 있었다.

“태할아버지, 이…… 이게 고해의 뜻이란 말씀이십니까?”

진양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진천산이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다.

“진양의, 이번에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마라. 고부의 지지가 없으면 진나라는 멸망하게 된다. 대인도 세습을 허락하셨다. 아직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느냐?”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진나라를 위해 고해가…… 아, 아니…… 대인께서 싸우신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일부 사람들이 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뭐?”

“우리 진나라에 오래된 귀족들이 있지 않습니까? 저들이 배신할까 봐 걱정입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너는 교접만 책임지면 된다! 배신하는 놈들은 우리가 책임지고 제거할 거다.”

진천산이 강하게 말하고는 눈을 부릅뜨자, 진양의도 결국 머리를 숙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제야 진천산이 다독이듯 말했다.

“양의야. 남작(男爵)이 작다고 생각하지 마라. 어쩌면 이것도 너의 복인지 모른다. 우리와 함께 수행계에 오르면 너의 수명은 백 년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야.”

진천산의 말에 진양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련자도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까?”

진천산이 웃으면서 말했다.

“거긴 신주대지라는 자연이다. 나라도 엄청나게 많지. 그곳에서 가장 강한 왕조는 너의 상상을 초월하니라. 그곳에서의 만 살이 진정한 만 살이지. 여긴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다.”

진양의의 입이 떡 벌어졌다.

“만 살이오? 천조 황제가 정말로 만 살까지 살 수 있다는 말입니까?”

“됐다. 이런 부질없는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번 일을 해결하도록 해라.”

진양의가 그제야 힘이 실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예! 태할아버지!”

* * *

정용종.

흰옷을 입은 용완청이 한 대전 안에서 혼자 바둑을 두고 있었다.

옆에는 지팡이를 짚은 할멈, 일품당 화타주 정예가 서 있었다.

정예가 미간을 찌푸린 채 용완청을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당주, 얼른 말하게! 인용옥(引龍玉)은 어디에 있나?”

용완청은 들고 있던 바둑돌을 내려놓고는, 고개를 돌려 냉랭한 웃음을 지었다.

“정예, 이런 죄를 범하고 난 후의 결과는 생각해 보았나?”

“용맥은 이미 찾았네. 밖에 있는 이십구 천지종횡대진을 열기만 하면 얻을 수 있지. 하지만 그전에 당주의 인용옥이 필요해. 당주, 벌을 받을 때 받더라도 일단 용맥부터 찾은 다음에 말하세!”

“인용옥이 왜 나하네 있다고 생각하지?”

“당주 어머님이 죽을 때 인용옥은 없었네. 그렇다면 반드시 당주, 혹은 당주 동생한테 있겠지. 그런데 동생은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니, 당주한테 있을 수밖에. 송생평 그놈은 멍청이라 잘 모르겠지만 난 잘 알고 있네!”

“우리 엄마가 돌아가실 때?”

용완청은 죽일 듯이 정예를 노려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원인을 알고 있단 말인가? 아니면…… 설마 네가 죽인 거야?”

정예가 미간을 찌푸렸다.

“당주, 난 죽이지 않았네. 얼른 인용옥을 내놓게. 그렇지 않으면 좋은 결과는 없을 것이야!”

용완청은 그녀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다시 물었다.

“알면서 왜 말하지 않는 거지? 설마 인용옥을 얻기 위해서?”

정예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침묵을 지켰다.

용완청은 미끼를 던졌다.

“우리 엄마가 죽은 원인을 알려주면…… 내가 인용옥을 주지.”

정예가 눈을 끔뻑거렸다.

“당주, 일부러 나한테 잡혀 온 건가?”

“뭐?”

“일부러 잡혀 와서 어머니의 사인을 알아내려고 했던 거 아니야?”

용완청이 싸늘하게 말했다.

“정예, 사람들이 자네를 늙은 여우라고 하던데, 역시는 역시야. 그렇다면 또 어떠한가? 적어도 이렇게 일품당 반역자를 발견하지 않았나? 안 그래?”

“반역자? 흥! 당주, 뭘 좀 알고 말하지? 내가 반역자가 아니라, 당신이 당주라는 게 웃길 뿐이야! 용완청, 머리 하나는 잘 굴러가는구나. 이 기회를 틈타 어머니의 죽음을 밝히려고? 당신의 능력도 교룡 부혈이 봉인해 버렸는데, 무슨 수로 알아내겠다는 거지? 치욕스런 일을 당하기 전에 인용옥을 내놔!”

“말하지 않는데, 내가 왜 줘야 하지?”

“멍청하고 어리석군!”

정예가 냉랭하게 말하고는, 손을 뻗어 용완청을 잡으려고 했다.

우우웅!

순간, 용완청의 주변에서 붉은색 빛이 나타났다.

쾅!

정예의 오른손이 붉은색 빛과 닿으니 화들짝 놀라면서 뒤로 자빠졌다.

“이건…… 인용옥?”

용왕천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난 내 몸은 스스로 지켜. 능력이 봉인되어도 나한테는 인용옥이 있지. 정예, 나한테 인용옥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야.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유만 알면 돼! 인용옥을 줄 테니 원인을 말해봐!”

용완청을 바라보는 정예의 눈이 불안감에 흔들렸다.

그녀는 불안감을 내비치지 않으려고 짐짓 냉랭하게 말했다.

“흥! 용완청, 인용옥이 있으면 또 어떡할 건데? 능력이 봉인되어 도망도 못 가잖아? 계속 여기에 있어, 그럼!”

“정예, 후회하지 마라! 나라도 되니까 너와 말이라도 하는 거야. 외할아버지가 이 일을 아신다면 너는 어떻게 될까?”

용완청의 외할아버지를 떠올린 정예가 흠칫했으나, 이내 무슨 꿍꿍이가 있는 듯 안정을 되찾았다.

“흥!”

코웃음 친 정예는 몸을 돌려 대전을 나갔다.

소매를 흔들자 대전 문이 세차게 닫혔다.

쾅!

정예가 경비병을 보며 냉랭히 말했다.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잘 지켜라!”

“예!”

멀지 않은 곳에서 정예를 발견한 백발노인이 복잡한 표정으로 빠르게 걸어왔다.

“사촌 이모.”

정예가 그 노인을 바라보았다.

“정동, 무슨 일이냐?”

백발노인, 정동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모가 일품당 당주를 잡아 오니 우리 정용종이 좀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그는 용완청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비록 정용종 종주이긴 했으나 용완청 앞에서는 얌전한 고양이일 뿐이었다.

예전에는 용완청을 독대할 자격도 없었는데, 오늘 그런 거물을 가둬놓고 있으니 불안할 만했다.

정예가 눈을 치켜뜨고 정동을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있으니 아무 일도 없을 거다!”

“그렇지만…… 용완청이…….”

“용완청은 무섭고, 나는 안 무섭느냐?”

정예의 차가운 말에 정동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라! 너한테 불똥이 튈 일은 없을 거다. 그리고 이번 거사는 잊었느냐?”

정동은 한동안 생각을 해보더니 결국 머리를 끄덕거렸다.

“알겠습니다.”

“여지는 금지구역이니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거라.”

“이미 말했습니다.”

“그리고 밖에서 잔국을 부숴버리는 건 어떻게 됐지?”

“백 판이나 깼습니다. 하지만 너무 힘이 듭니다. 잔국을 하나 부수는 사람에게 상품 영석 하나를 보상으로 준다고 하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부족해. 보상을 열 배로 줘라.”

정동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네? 잔국을 하나 부수는 데 상품 영석 열 개를 보상하라고요? 그럼 수련자들이 아주 좋아할 겁니다. 우리 정용종 제자들도 앞다투어 깨려고 하겠지요.”

정예가 차가운 목소리로 다그쳤다.

“삼천 잔국이다. 이제 백 개를 깼으면 아직도 이천구백 개나 남았다는 말 아니냐?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 영석이 다 뭐야? 있는 게 영석이다. 얼른 부숴버려!”

“아, 알겠습니다!”

* * *

고해가 정용종과 가까워지자, 수련자들이 그를 알아보았다.

“고, 고해다! 저 사람이 고해야!”

누군가 소리쳤다.

“대봉방에서 이만 명이나 죽였다며?”

“고해한테 금반도가 있다고 하던데!”

수련자들은 험상궂은 표정으로 고해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대봉방 사건을 기억하고 있기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고해의 뒤만 밟았다.

그러다 어느 산골짜기에 이르자, 그들은 참지 못하고 고해를 둘러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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