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관구
착! 착!
두 기왕도 뒤이어서 바둑판의 문제를 풀었다.
“남해기왕님도 풀었고, 북해기왕님도 풀었습니다!”
거의 동시에 세 사람이 다섯 개의 바둑 문제를 풀어낸 것이다.
정용종 제자들이 영석을 들고 왔다.
다른 수련자들은 신속하게 새로운 다섯 판을 세 사람에게 가져다주었다.
남해기왕과 북해기왕은 다시금 집중하여 바둑판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고해는 그런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상했다.
저 두 사람은 왜 땀까지 흘려가면서 자신과 대결하려는 것일까?
고해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판을 바라보았다.
한쪽에서는 수련자들이 세 사람을 보며 수군거렸다.
“네가 봤을 땐 세 명 중 누가 이길 것 같으냐?”
“남해기왕이 이기지 않을까? 그의 공세가 가장 강력하잖아.”
“내가 봤을 땐 북해기왕이 이길 것 같아. 그의 바둑이 가장 깔끔해.”
“아니, 내가 봤을 땐 고 선생일 것 같아. 그가 제일 안정적이야.”
* * *
멀지 않은 곳 다락방에서 구공자가 실눈을 뜬 채 상황을 바라보았다.
“공자님, 남해기왕과 북해기왕이 이길 수 있을까요?”
부하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구공자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들은 이미 졌다!”
“네?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요?”
“보아라. 세 사람의 정신 상태가 지금 어떠하냐? 남해기왕과 북해기왕은 필사적으로 땀까지 흘리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고해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표정 한 번 안 변했다.”
“하지만…….”
“남해기왕과 북해기왕은 단순히 바둑의 형태에만 집중할 뿐 바둑의 의미는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고해가 시작 전에 이미 설명을 했었지. 이 바둑 문제의 난이도는 거의 비슷하다고. 그는 이미 바둑의 의미를 알고 있는 게지.”
“바둑의 의미요?”
“삼천 잔국이라고 해도 그저 하나의 바둑일 뿐이다. 두 기왕은 아직도 그 의미를 풀지 못했으니 점점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고해에게는 식은 죽 먹기지. 비록 잔국을 풀고는 있지만 그의 마음은 전체 바둑판에 집중되어 있다. 참 비상한 사고능력이야,“
구공자의 말에 부하들은 전부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두고 보아라. 고해가 잔국을 푸는 방식은 변함이 없을 것이지만 남해기왕과 북해기왕은……!”
아니나 다를까, 고해는 여전히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두 기왕은 점점 더 힘들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천천히 할 수만 있다면 괜찮았을 텐데, 대결에서 질 수는 없으니 빨리 진행하려고만 했다.
착착착착착!
고해가 바둑돌을 올리니 다섯 판의 문제가 동시에 풀렸다.
두 기왕도 문제를 모두 풀었지만 고해보다는 한발 늦게 풀고 말았다.
“계속!”
북해기왕이 초조하게 말했다.
다시금 바둑 문제를 푸는 일이 시작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다섯 시간이 흘렀다.
다섯 시간 사이에 고해는 이백 판을 풀었고 남해기왕과 북해기왕 역시 각각 이백 판을 풀었다.
그때 누군가가 경악하며 말했다.
“혹시 너희들 눈치챘어? 고 선생님은 매번 바둑돌을 올리는 속도가 일정하고, 놓는 바둑돌의 개수가 일치한다는 걸?”
“어? 그, 그러네. 매번 마지막 바둑돌을 동시에 판에 올렸어. 그럼…… 고의로 개수를 조정하는 건가?”
“그런 거 같아. 바둑을 두는 속도가 어떻게 저렇게 일정할 수 있지?”
주변의 수련자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이미 사고력을 많이 소모한 남해기왕과 북해기왕은 정신이 멍했다. 바둑돌을 쥔 손도 떨리기 시작했다.
마음과 몸이 극도로 피곤해진 듯 보이는 모습이었다.
“스승님, 그만하시지요.”
“스승님, 그만하셔야 합니다.”
그들의 제자들이 초조해하며 말리려 했다.
하지만 두 기왕은 제자들에게 화를 내며 필사적으로 바둑을 두었다.
“비켜!”
“닥쳐!”
주변 수련자들은 고해가 유리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승부는 점점 고해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가장 기쁜 사람은 정동이었다.
무려 육백 판이다. 대결로 인해 짧은 시간 내에 엄청난 속도로 육백 판을 풀어냈다.
만약 이 속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풉!
갑자기 북해기왕이 입에서 피를 토했다. 바둑판이 피로 붉게 물들어버렸다.
“스승님!”
푸헉!
남해기왕도 입에서 시뻘건 피를 토했다.
“스승님! 괜찮으십니까?”
제자들이 황급히 뛰어왔다.
두 기왕은 이미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동작을 멈춘 고해는 미간을 찌푸리며 두 기왕을 쳐다보았다.
“두 분, 괜찮으십니까?”
북해기왕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 선생님, 참 대단한 실력이십니다.”
“바둑을 두는 일은 원래 제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두 분 모두 더 이상 무리하지 마십시오. 자리를 내어주신 두 분께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고해가 정중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두 기왕의 제자들이 분노를 토해냈다.
“고해, 감히 너 따위가 어디서 함부로 교육질이야!”
남해기왕과 북해기왕이 당황해서 동시에 소리쳤다.
“닥쳐라!”
“무슨 짓이냐!”
제자들은 눈을 부릅뜨고 고해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스승님……!”
그때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두 기왕의 뒤에서 들려왔다.
“너희들 제자는 지금 분이 안 풀려서 그러는 것이다. 고해가 진즉 승부를 끝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끌고 왔고, 그러다 보니 너희들이 피를 토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지!”
“응?”
사람들은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보았다.
흰옷을 입은 남자가 부채를 들고 서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회색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남해기왕과 북해기왕은 안색이 변하며 다급히 일어나 인사를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흰옷을 입은 남자가 그 둘을 제지시키고 입을 열지 못하게 했다.
고해는 흰옷을 입은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두 기왕의 표정을 보니 그들로 하여금 자신한테 도전장을 내밀도록 시킨 사람이 저자인 듯했다.
그때 흰옷을 입은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고 선생, 저 역시 바둑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니 실례가 안 된다면 저와도 한판 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고해가 그에 대해 답했다.
“바둑을 두는 건 언제나 환영입니다. 하지만 귀하를 어떻게 칭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관구라고 합니다!”
흰옷을 입은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관구?
주변 수련자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관구가 누구지?
천도해에서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고해는 의아한 표정으로 흰옷 남자를 바라보았다.
고해는 관구를 얕보지 않았다. 북해기왕과 남해기왕에게 명령할 수 있을 정도면 보통 인물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합시다. 고 선생님도 저의 실력을 알고 계셔야 하니 제가 먼저 열 판을 두겠습니다.”
관구가 웃으며 말했다.
고해는 의아한 느낌이 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관구의 부하는 순간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신속하게 열 판의 잔국을 집어 관구의 앞에 놓아주었다.
관구는 판을 살펴보더니 손을 내밀어 바둑돌을 잡았다.
착착착착착……!
갑자기 열 개의 흰색 바둑돌이 열 개의 잔국에 놓아졌다.
열 개의 잔국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변 수련자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관구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열 판을?”
“놀고 있네. 열 판을 동시에 어떻게 진행해? 어떻게 풀려고?”
“저 사람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사람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관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고해만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관구의 바둑을 두는 방식이 어떻게 자신의 생각과 똑같을 수가 있지?
착착착착착!
또다시 열 개의 바둑돌을 올렸고 잔국도 상응한 변화를 일으켰다.
착착착착착착!
열 번째 판에 열 개의 흰색 바둑돌이 놓여졌다.
“풀렸어. 첫 번째 판이 풀렸는데?”
“두 번째 판도 풀렸는데?”
“아니, 열 판 모두 풀렸는데?”
사람들은 경악을 멈추지 못했다.
열 개의 바둑판은 갑자기 대량의 구름으로 변하며 하늘을 향해 날아갔고, 공중의 거대한 부도 주변을 감쌌다.
“고 선생님, 어떠십니까?”
관구가 웃으며 물었다.
사실 관구는 구공자였다.
주변 사람들이 경악하여 관구, 아니 구공자를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정동이 직접 영석을 가져와서 관구에게 전해주었다.
“공자, 이것은 공자께서 받으셔야 하는 영석입니다. 공자의 바둑을 보니 참 절묘하더군요.”
정동이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관구는 정동을 힐끗 쳐다보더니 대꾸도 안 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정동은 안색이 굳어졌다.
구공자의 부하가 급히 뛰어오며 말했다.
“비켜, 우리 공자님 방해하지 말고!”
정동의 안색은 더욱 굳어졌다.
여긴 나의 정용종인데?
남해기왕이 그에게 말했다.
“종주님, 공자님을 방해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북해기왕도 한마디 했다.
“종주님은 방해하지 마시고 잠시 물러나 계시지요.”
“……!”
두 기왕의 명성은 천도해에서 정동보다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이 관구라는 공자를 따르는 모양이니 정동도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관구가 고해에게 물었다.
“고 선생, 어떠십니까?”
“참 보기 드문 실력을 가지셨습니다!”
고해가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하자, 관구가 웃음을 지었다.
“하하, 저를 너무 띄워주시는군요. 사실 아까 그런 식의 바둑은 고 선생도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을 뿐이잖습니까. 고 선생,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을 연구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예?”
고해는 순간 당황해서 관구를 바라보았다.
관구가 물었다.
“아직 잔국이 얼마 정도 남았느냐?”
그의 부하가 대답했다.
“아직 천육백 판이 남았습니다.”
“천 판을 대령하거라.”
천 판?
주변 수련자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관구를 미친놈 보듯 쳐다보았다.
하지만 관구의 부하들은 곧장 움직이며 명령을 이행했다.
우르르!
천 개의 바둑판이 줄줄이 놓이면서 주변을 전부 에워쌌다.
정동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관구가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설마 천 판의 문제를 동시에 풀겠다는 건 아니겠지?
고해도 신기해하는 눈빛으로 관구를 바라보았다.
관구는 수정대(水晶台)를 꺼내들었다. 수정대는 소용돌이 같은 문양이 있어서 신비로워 보였다.
“투입시켜라!”
구공자가 말했다.
“네!”
부하들은 신속하게 천 개의 잔국을 수정대의 소용돌이 속으로 투입시키기 시작했다.
윗면으로 들어가 밑으로 빠져나오는 형상이었다.
잔국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수정대의 소용돌이는 점차 사라졌고 이십구 종횡도선의 잔국으로 변신했다.
“이것은?”
고해가 경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자, 관구가 설명해 주었다.
“저의 바둑판은 천 개 잔국을 융합하여 하나의 바둑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지금 보고 계신 것은 천 개 잔국의 가장 완벽한 융합일 것입니다. 이것을 두는 건 마치 천 개의 잔국을 두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고해는 놀란 눈빛으로 바둑판을 쳐다보았다.
바둑판은 이십구 종횡으로 되어 있었고 수많은 바둑돌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 주위에는 천 개의 잔국이 에워싸고 있어 마치 바둑판의 힘으로 천 개의 잔국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고 선생, 그럼……!”
관구가 웃으며 말했다.
고해는 복잡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눈앞의 수정 바둑판을 바라보았다.
“고 선생, 먼저 하시지요!”
관구가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