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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119화 (119/243)

119화 꿈이 깨지다

고해는 의아해하며 관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검은색 바둑돌을 들어 서서히 올려놓았다.

착!

바둑돌을 올려놓은 순간, 주위의 천 개 잔국이 전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착착착착착착착!

천 개의 검은색 바둑돌이 놓였음에도 흰색 바둑돌은 미동조차 없었다.

관구가 웃으며 흰색 바둑돌을 들어 수정대에 올려놓았다.

착!

와르르!

천 개의 잔국에서 천 개의 흰색 바둑돌이 연이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변 수련자들은 경악하며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관구의 바둑돌이 잔국의 흰색 바둑돌을 대체하는 건가?”

“어떻게 이럴 수가?”

관구가 웃으며 말했다.

“총 삼천 개의 잔국에서 그저 천 개만 갖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 보고 계신 것은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의 삼분의 일밖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해치는 일은 없을 것이니…… 고 선생, 계속 진행할까요?”

고해는 고개를 끄덕이고, 깊이 숨을 들이쉰 후 바둑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바둑판에는 너무 많은 비밀들이 숨어 있었다. 고해는 보면 볼수록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옆에 있던 남해기왕과 북해기왕도 두 눈을 부릅뜨고 바둑판을 쳐다보았다.

그들도 서서히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착! 착!

고해와 관구가 차례대로 바둑돌을 올렸다.

주위의 천 개 잔국이 움직였다.

주변의 수련자들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었다.

“설마 진짜는 아니겠지? 동시에 천 개의 잔국을 푼다고?”

정동은 심정이 복잡해졌다.

착!

고해가 바둑돌 하나를 올렸다.

이십 번째 바둑돌을 올릴 때쯤 고해는 갑자기 정신이 황홀해졌다.

그의 눈앞에 거대한 모란꽃이 있었다.

붕!

고해는 자신의 의식이 모란꽃 속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을 느꼈다.

쿵!

모란꽃 속에서 거대한 울림 소리가 들려왔다.

고해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폈다.

그는 망망대해에 서 있었고, 비바람과 하늘을 찌르는 파도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환각인가?”

고해의 안색이 굳어졌다.

쿵!

고해의 몸이 파도에 떠밀려 갔다.

“아!”

그는 소리를 지르며 공중에서 떨어졌다.

착!

섬으로 뛰어오른 그는 경악하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모든 것이 진짜 같았고 너무 신기했다.

“고 선생, 참 대단한 능력을 지니셨습니다. 고작 스무 개의 바둑돌로 지금의 의식 세계에 진입할 수 있다니요?”

갑자기 관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해는 고개를 돌렸다.

섬 위에 흰옷 차림을 한 관구가 서 있었다.

고해가 경악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여긴 어딥니까? 저의 의식이 진입한 이곳은 대체 어디인 거요?”

관구가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대가 두고 있는 바둑판입니다. 눈을 감으시면 여기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고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붕!

정신이 돌아온 고해는 두 눈을 뜨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정용종의 유연곡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관구는 수정 바둑판의 맞은편에 앉아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한 괴이한 표정으로 고해를 쳐다보고 있었다.

고해는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고 선생 차례입니다!”

관구가 웃으며 말했다.

고해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다시금 바둑돌을 올려놓았다.

착!

고해가 바둑돌을 바둑판에 올려놓자, 의식이 다시금 망망대해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망망한 천지에 마치 자신과 관구 두 사람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고해가 경악하며 물었다.

“어찌 된 일입니까? 저의 의식이 왜 또 이곳에 들어오게 된 거요? 이곳은 바둑판의 세계요?”

“이것은 완전치 않은 이십구 세계입니다. 지금은 그저 의식만 들어왔을 뿐입니다. 만약 삼천 개의 잔국을 동시에 융합시켜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을 만들면, 의식뿐만 아니라 육체도 같이 진입할 수 있게 됩니다.”

“예전에 선천잔국계에서 봤던 구공자는 그럼 가짜였던 거요? 당신이 바로 진정한 혁천각의 구공자요?”

고해가 눈을 치켜뜨고 관구를 바라보며 물었다.

관구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고 선생, 참 지혜로우십니다!”

“이것이 그럼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의 세계요? 바둑판도 하나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거요?”

고해가 궁금해하며 묻자, 관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완전치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완벽한 이십구 바둑판이 창조해 낸 세계도 딱히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이십팔은 운수살진이고, 이십구는 창조세계입니다. 아니, 세계의 초기 형태라고 봐야겠군요.”

고해가 관구를 보며 다시 물었다.

“세계의 초기 형태? 대봉방에도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이 하나 있는데, 어떻게 정용종에도 있을 수 있는 거요?”

“맞습니다. 이것은 각주님이 나누어 놓은 것입니다.”

“또 관기 노인 짓이오?”

고해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관구를 보며 말했다.

“구공자, 저를 찾아와 바둑을 두는 게 단순히 바둑을 두기 위한 목적은 아니지요?”

관구는 미소를 지었다.

“고 선생 말이 맞습니다. 이번에 제가 찾아오게 된 것은 조화를 선물하고 싶어서입니다!”

“예?”

“비록 각주님은 돌아가셨지만 전승(傳乘)을 남겨두고 가셨습니다. 저도 하나를 전승받았고요. 이 속에는 각주님의 무한한 심혈이 들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고 선생님한테 전해주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관기 노인의 전승?”

고해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유년대사의 말에 의하면, 관기 노인은 그 당시 천하 최강 인물 중 한 명이라고 했었다.

그의 전승을 받으려고 수많은 수련자들이 미치고 날뛰었다고 했었는데, 그것을 자신에게 넘겨준다고?

고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구공자, 저한테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직도 선천잔국계에서의 ‘구공자’를 기억하십니까? 아쉽게도 너무 멍청한 놈이었습니다. 그한테 전승을 해줬지만, 그는 깨닫는 바가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고 선생님 정도의 지혜라면 확실하게 깨닫는 데까지 어렵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각주님 것을 전승해 드릴 테니 구공자가 되어주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고해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저더러 대타를 서달라는 것입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저 ‘구공자’로 생활하시면 되고, 당신이 바로 혁천각 ‘구공자’라는 것만 널리 알리시면 됩니다. 이름은 여전히 본명을 쓰셔도 되고요. 다만 혁천각의 일부 외부세력만 배정해 주시면 됩니다. 각주님의 전승을 받으시는 것은 그저 혁천각 구공자라는 명칭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고해는 관구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복잡한 심정으로 물었다.

“왜 저한테 그러는 것입니까?”

“딱히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거래를 하려는 것뿐입니다. 예전부터 동해 해적왕, 남해기왕, 그리고 북해기왕까지 그렇게 전승을 원했지만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고 선생님한테 전승해 드리겠다는데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관구의 말을 듣고, 고해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저는 깊게 믿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존재하지 않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라는 말이죠. 구공자, 당신의 제안은 확실히 매혹적입니다. 게다가 제가 노력할 것도 크게 없어 보이고요. 하지만 아직도 그 뒤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기에 지금 당장 허락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예?”

관구는 눈을 치켜떴다.

거절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듯했다.

“바둑이나 계속 진행합시다.”

고해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관구는 복잡한 심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는 두 눈을 감고 의식 속에서 빠져나와 계속 바둑을 두었다. 관구도 바둑 두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매번 바둑돌을 올릴 때마다 두 사람은 의식 세계를 넘나들었다.

“보이십니까? 각주님의 전승 중에는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도 있습니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전부 전승해 드리지요. 어떻습니까? 이것뿐만 아니라 다른 바둑판도 많습니다!”

관구는 계속 고해를 유혹했다.

지금까지 관찰해 본 결과 고해가 자신의 대타로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다.

고해는 바둑돌을 올리며 관구를 쳐다보았다.

“구공자, 제가 조심스레 예측해 봅니다만, 저를 대타로 내세워 어떤 재난을 뒤집어쓰라는 건 아닌지요?”

“네?”

관구는 눈을 치켜뜨고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가 이마를 찌푸린 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조건이 너무 간단하고 수확도 크니까 저는 그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즉, 구공자가 되면 위험하다.”

관구도 무거운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 선생도 아시다시피, 위험과 이익은 공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많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지요.”

“고작 재난이 싫어서 대타를 구하시는 것입니까? 그럼 구공자는 대체 어떤 재난을 겪고 계십니까? 왜 관기 노인의 전승을 해주려는 사람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입니까?”

고해가 침착하게 물었다.

관구는 침묵을 지키며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착! 착! 착!

외부에서 보면, 두 사람은 부단히 바둑돌을 올렸고, 천 개의 잔국도 부단히 변해갔다.

관구는 어두운 안색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가 이토록 설득하기 힘든 사람일 줄이야…….

두 사람의 대결은 한참 동안 계속 이어졌다.

“응?”

관구의 안색이 굳어졌다.

쿵!

이어서 고해가 바둑돌을 올리자, 갑자기 백 개의 잔국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풀었어? 고해가 백 판을 풀었어?”

누군가가 크게 놀라서 소리쳤다.

정동도 그 광경을 목격했다.

확실히 백 개 바둑판은 구름이 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게다가 공중에 있던 원본마저도 흩어졌다.

고해가 문제를 풀어냈다는 뜻이었다.

바둑판의 의식 세계에서.

관구가 고해를 쳐다보며 경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의 실수인가요?”

“예?”

고해는 의아해하며 관구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풀었다고요? 이걸 고 선생이 풀었다고요? 그럼 당신은 바로 팔……!”

관구의 눈이 갑작스럽게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무슨 뜻입니까? 팔…… 뭐요?”

고해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관구는 혼란 속에서 한동안 고해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참 지나고 나서야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제가 너무 많은 걸 생각했네요. 하하하하, 제가 너무 많은 걸 생각했어요! 애초부터 구오도에 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하하하하!”

“구공자, 그건 무슨 뜻입니까?”

관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의 삼분지 일을 이토록 쉽게 풀어낸 것을 보면 완벽한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많은 걸 생각했나 봅니다. 여기에서 대타를 찾는 게 아니었습니다. 허! 아마도 각주님이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고해는 의아한 표정으로 관구를 바라보았다.

“관기 노인이 저를 마음에 들어 하신다고요? 관기 노인은 돌아가시지 않으셨습니까?”

“돌아가시기는 했지만…… 각주님의 음모를 모르시죠? 그분께서 구오도에 대국을 남겨뒀다는 것은, 바로 입국하는 자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생전에 모든 사람들을 예측했던 것이지요.”

관구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당신의 출중한 바둑 실력으로는 절대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을 풀어내는 순간 무조건 각주님의 선택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하하하. 어쨌든 제가 각주님을 대신해 찾아준 셈이 되었군요. 고해 나리, 당신도 저와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하하하!”

관구의 웃음 속에서 씁쓸함이 묻어났다.

고해가 뭔가를 떠올리고는, 놀란 표정으로 구공자를 쳐다보고 말했다.

“팔이 그럼…… 팔공자를 말하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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