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습격
* * *
정예는 한 산봉우리에 서서 싸늘한 눈빛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모든 부하들을 동원해서 반드시 찾아내! 반드시!”
“걱정 마십시오! 구석구석 전부 수색하고 있습니다.”
한 부하가 공손하게 말했다.
“흥!”
정예는 냉랭하게 코웃음 치고 전면을 노려보았다.
그때였다.
저 멀리에서 한 정용종 부하가 소리쳤다.
“타주님, 종주님과 고해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여자도 있습니다!”
“뭐?”
정예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렇게 빨리?”
“네, 아예 대놓고 유연곡으로 가고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대놓고 걸어갔다고? 변장도 안 하고, 숨지도 않았다고?”
“네, 그 여자가 걷는 속도가 느려서 고해와 종주님도 천천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럴 리가……?”
정예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입니다. 곧 유연곡에 도착합니다!”
“유연곡으로 가보자!”
정예는 찝찝한 기분을 안고 유연곡으로 향했다.
* * *
유연곡에서도 난리가 났다.
“뭐야? 정용종이 뭐 하는 거야? 왜 대진을 펼치는 거야?”
“출구가 막혔어! 나가지 못한다고!”
“설마 상금을 전부 빼앗으려고 이러는 거야??”
“빼앗을 거면 왜 준 거야? 대진은 또 뭐고?”
고해의 뒤를 따라오던 천여 명의 수련자들도 정용종 대진을 보고 분노했다.
그러나 정용종 부하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쉽게 나서지 못했다.
도생기왕은 흑포를 입은 여자를 어루만지면서 천천히 걸어왔다. 뒤에는 한 무리의 제자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따라왔다.
“스승님, 정용종이 왜 이러는 걸까요??”
한 제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도생기왕이 손을 뻗어 제자의 입을 막았다. 그의 제자들은 조용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많은 정용종 부하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일품당 화타의 부하들도 유연곡으로 향했다.
왁자지껄하던 수련자들은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한 무리의 정용종 부하들이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고, 일품당 부하들도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해, 정동, 그리고 한 여인을 발견하고는 천천히 다가갔다.
용완청은 당주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얼굴도 자주 비추지 않아서 사람들은 용완청의 신분을 알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야?”
도생기왕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어 품에 있던 여자를 눌렀고, 그 여자는 아파서 신음 소리를 냈다.
“뭐야? 뭐 하는 것이냐? 저리 가라!”
정동이 분노해서 소리쳤다.
주변에 있던 정용종 부하들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쾅!
세찬 바람이 불더니, 한 그림자가 유연곡 중심에 나타났다.
한 늙은 할멈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정예였다.
“타주님!”
한 무리의 부하들이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일품당 화타주 정예?”
한 수련자가 정예를 알아봤다.
“정 타주가 여기에 왜 있어?”
“뭐 하는 거지?”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은 관심을 갖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수련자들은 지팡이를 짚은 정예가 맞은편에 있는 세 사람을 죽일 듯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동은 정예를 보고 움찔했다. 오랜 시간 함께 해왔기에 두려운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았다.
정예가 정동을 보고 싸늘하게 다그쳤다.
“정동,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저…… 저는……!”
정동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번에는 용완청이 냉랭하게 비꼬았다.
“정예, 정말 대단한 위력이구나! 흥!”
정예가 용완청을 노려보았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능력도 봉인된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나? 반역자 정동을 믿을 것이냐? 아니면 고해?”
고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걸어 나갔다.
“일품당 수타주 고해가 인사드리오!”
정예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수타주? 고해가 수타주라고? 누가? 하하하! 얼굴도 두껍구나!”
용완청이 싸늘하게 말했다.
“내가 책봉했다. 왜?”
정예도 냉랭하게 맞받아쳤다.
“타주를 책봉하려면 다른 타주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본부에는 등기했고? 아직 안 했지? 그럼 무슨 자격으로 수타주라는 말이지? 흥!”
고해가 말했다.
“정 타주님, 지금까지 일품당 부하들을 데리고 다닐 줄은 몰랐습니다. 이분은 일품당 당주님이시고, 당주님이 책봉할 자격이 없으면 일개 타주가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당주를 감금한 죄를 지었으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지요!”
웅성웅성!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저 여자가 일품당 당주라고? 새로운 당주?
정용종 부하들도 의아한 기색이 역력했다. 역시나 이들도 용완청의 정체를 몰랐던 것이다.
정동이 갑자기 소리쳤다.
“이모님, 아직도 모르겠습니까? 어서 당주님께 사정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겁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정동도 일품당 당주라고 하잖아? 그럼 정말 저 여자가 일품당 당주?”
“흥!”
정예가 지팡이를 짚자 순식간에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정동의 안색이 굳어졌다.
“정동! 감히 배신을 해? 죽고 싶으냐?”
정동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고해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침착한 모습의 고해를 본 정동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정용종은 이미 포위되었습니다. 흥! 당주님 외조부님의 명령 한 방이면 아무도 도망가지 못한다고요!”
“당주 외조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정예의 부하들과 정예도 깜짝 놀랐지만, 정예는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아! 그것 때문에 반역을 저지른 거였어??”
“왜요? 안 믿겨집니까?”
“흥! 이런 멍청한 놈! 용완청은 친손녀도 아니다! 그분에게는 많은 손녀들이 있는데, 용완청을 위해서 이렇게 멀리까지 온다고? 흥! 뭐? 매복? 굳이 매복할 이유가 있을까? 정말로 왔으면 어디 한번 나와서 나를 죽이라고 해봐!”
정예가 자신 있게 큰소리를 치자 정동의 표정이 굳어졌다.
“고해와 용완청을 데리고 도망가려고? 이런 미련한 자식! 용완청의 외조부가 왔으면 왜 도망을 가겠느냐?”
정예의 말에 정동의 표정이 변했다.
그래! 외조부가 있는데 왜 나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지? 설마 고해라 일부러 나를 속인 거야?
정동은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고해! 날 속여?”
“혼자 잘 생각해 보게. 죽고 싶으면 그쪽으로 넘어가든지!”
고해는 여전히 침착했다.
정동은 굳은 얼굴로 좌우를 둘러보았다.
정예가 머뭇거리는 정동을 향해 소리쳤다.
“이런 멍청한 놈! 얼른 건너오거라!”
정동은 고민하더니, 정예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이모! 제가 속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조금 있다 보자! 흥!”
싸늘한 정예를 보고 정동은 울상을 지었다.
고개를 돌린 그는 고해를 보며 화를 풀었다.
“고해! 감히 나를 속여? 정용종을 나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용완청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정동이 결국 저쪽에 붙었구나.”
“저런 사람이 바로 기회주의자입니다. 저런 사람은 결국 좋은 결과가 없지요. 결국 정예도 정동을 믿지 못할 것이고요. 당주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보다, 이제 어떡하지?”
정용종의 대진이 굳게 닫혔다. 아무도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고해와 용완청 둘이서 눈앞에 있는 수천 명의 적과 싸워야 한다. 적 중에는 원영경 수련자도 있었다.
용완청을 넋을 잃고 웃기만 했다.
고해는 눈앞에 있는 수련자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용완청을 보며 웃었다.
“하하하, 당주님, 잊으셨습니까? 제가 정정당당하게 당주님을 모시고 나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를 못 믿으시는 겁니까?”
“뭐?”
용완청은 복잡한 심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정예도 맞은편에 있는 고해를 보며 비웃었다.
“정정당당하게 걸어 나간다고? 하하하!”
정동도 옆에서 그를 거들었다.
“고해! 꿈 깨라! 네가 무슨 수로?”
고해는 한 발 나서서 주변의 수련자들을 응시하다가 도생기왕도 발견했다.
도생기왕은 흑포 여자를 어루만지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고해가 정동을 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정동! 일품당과도 맞서는 것도 모자라서, 당주 외조부님과 맞설 생각이냐! 흥! 정용종의 부하들도 너와 같은 생각이라고 생각하느냐?”
웅성웅성!
정용종 부하들이 웅성거렸다.
정예가 그 모습을 보고 큰 소리로 말했다.
“고해! 정동을 속이더니, 이번에는 정용종 부하들을 속이려고? 네가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자이더냐?”
“정용종 부하들을 속이려는 것이 아니라, 내 적을 찾을 뿐이다. 누구를 적으로 삼고, 누구를 봐줘야 할지 확실히 해두어야 하지 않겠느냐?”
“뭐?”
주변의 수련자들이 깜짝 놀랐다.
무슨 말이야? 누굴 봐줘? 고해가 아직도 자신한테 주도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고해의 표정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것을 본 정동도 섬뜩했다.
설마 정말로 용완청의 외조부가 오신 거야?
정예가 고해를 보고 코웃음 쳤다.
“봐준다고? 흥! 누구를?”
용완청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정용종 부하들, 그리고 화타주 부하들, 또 주변에 있는 수련자들! 나와 정예가 혈투를 벌여야 하니 살고 싶은 사람들은 한쪽으로 물러서도 좋다. 결과가 어떻든 너희들이 다치는 일은 없을 거야! 내가 보장하지!”
고해가 그렇게 말하자, 고해의 뒤를 따라오던 천여 명의 수련자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정용종에서 고해의 인정(人情)이 빛을 발했다. 일품당 내부 싸움에서 피를 보기 싫은 사람들은 전부 뒤로 물러섰다.
도생기왕의 제자들도 뒤로 물러섰다.
정예와 정동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해를 보고 있었고, 정용종, 일품당 화타 부하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야? 병사들을 구하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정예가 냉랭하게 말했다.
용완청은 근심 어린 눈빛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당주님, 저기 옆에 있는 책상 세 개를 옮겨주십시오!”
고해가 조용히 말했다.
“뭐야?”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책상을 옮긴다고? 왜?
용완청은 능력이 봉인되었으나 힘은 남아 있었다. 용완청은 재빨리 책상 세 개를 가져왔다.
고해는 책상 세 개를 붙여 놓았다.
한 무리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고해는 천천히 책상에 올라섰다.
“고해 미친 거 아니야? 뭐 하는 거야?”
“지금 장난해?”
“고해의 배짱은 어디 갔어?”
주변의 수련자들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책상 위에 올라간 고해는 싸늘한 눈빛으로 정예와 정동을 응시했다.
정동은 무서운 듯 정예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그러나 걱정되긴 마찬가지였다.
설마 사람을 잘못 고른 건 아니겠지?
정용종의 부하들도 정동을 따라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예도 고해를 경계하고 있었다. 비록 고해의 수련 능력은 낮으나 대봉방에서의 일을 잘 알고 있기에, 고해의 행동 하나하나를 예의 주시해야 했다.
책상 위에 올라선 고해를 본 정예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왜 저러는 거지?
“고해! 강한 척하지 말고 얼른 용서를 빌어! 그렇지 않으면……!”
정동이 고해를 설득하기 위해 입을 열자, 고해가 싸늘하게 말했다.
“정 종주! 애초 대봉방 이위도 자네와 똑같은 말을 했지! 흥! 그리고 송갑종의 송생평도 기세등등했고! 그다음 청하종의 이청하 역시 똑같았어! 이들의 결과를 알고 싶어?”
“뭐?”
정동의 안색이 굳어졌다.
“청하종도 네가 없앤 거라고?”
“내가 직접 청하종 종주의 머리를 베어냈다!”
고해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럴 순 없어! 네가 이청하의 상대가 되기나 해?”
그때였다.
고해가 갑자기 손을 펴더니 사람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