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무정한 몽태
도생기왕이 음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해! 어떻게 눈치챘나?”
그러고는 천천히 모자를 벗었다. 몽태였다.
“저 사람 누구야?”
수련자들이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몽태와 고해가 죽인 몽태는 역시 차이가 났다.
“몽태였구나?”
정예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고해가 또 바둑돌을 올렸다. 그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다만 잔국이 깨지기만을 바랄 뿐.
고해가 하늘에서 싸늘하게 웃었다.
용완청은 고해의 옆에 서서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저들이 왜 안 오지?”
“정예는 내가 잔국을 깨기만을 바라고 있을 겁니다. 저를 지금 죽이나 나중에 죽이나 똑같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십 년간의 원한입니다. 서로 싸우게 놔두지요.”
“몽태라고? 그럼 우리 스승님은?”
도생기왕 제자들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흥!”
몽태가 냉랭하게 반응하며 손을 휙 저었다.
쾅!
한 무리의 도생기왕 부하들이 순식간에 폭발했다.
“정예! 대단하구나! 벌써 이십 년이나 지났는데 변한 것이 없군. 여전히 못생겼어!”
몽태가 흑포 여인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흥! 너는 예나 지금이나 내 상대가 될 수 없다!”
정예가 냉랭하게 말하고는, 지팡이를 들고 몽태를 향해 날아갔다.
쾅!
커다란 장검이 날아왔다.
“죽어라!”
몽태도 맞받아쳤다.
쾅!
순간, 거센 바람이 몰아치면서 흙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났다.
정예가 뒤로 물러섰다.
“헉! 그땐 이위의 능력과 비슷했는데, 이십 년 만에 이렇게 강해지다니!”
“이십 년 전에도 똑같았다!”
몽태의 말에 정예가 눈을 부릅떴다.
“이십 년 전에도 변함없었다면 왜 그렇게 쉽게 붙잡혔던 거냐?!”
“만약 일부러 끌려갔다면?”
몽태가 냉랭하게 말했다.
“일부러?”
“만약 갇혀 있지 않았더라면 예전 당주님과 똑같은 결과를 초래했겠지!”
“뭐?”
정예의 표정이 변했다.
하늘에 있던 용완청의 표정도 변했다.
몽태의 품 안에 있던 여자도 손을 떨었다. 비록 표정은 볼 수 없었으나 깜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럼 예전 당주가 죽을 걸 알고 있었다는 거냐?”
정예의 표정이 변했다.
“모든 일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지 않느냐? 예전 당주까지 죽인 너희들인데 나를 죽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면 내가 죽지 않는 방법은 단 하나! 바로 너희들의 통제를 받는 거였지! 그렇게 너희들이 잡아갔기에 나는 죽음을 피할 수 있었고, 이십 년이나 숨어서 지낼 수 있었지! 하하하!”
“누구야! 누가 내 어머니를 죽였어?”
용완청이 몽태를 노려보며 말했다.
몽태는 고개를 들어 용완청을 보면서 말했다.
“당주님, 저도 정말 모릅니다. 뒤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건 알고 있으나 누군지 모릅니다. 정예는 알고 있지 않을까요?”
“뭐?”
정예는 몽태를 노려보았다.
고해가 바둑을 올리면서 싸늘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몽태! 풍령 때문에 이위의 통제를 받은 것이 아니라, 풍령은 단지 핑계에 불과했구나!”
몽태 품속에 있던 여자는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 여자는 풍령이었다. 풍령 역시 몽태가 자신 때문에 이위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니…….
고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불쌍한 풍령. 몽태한테 이십 년이나 당하다니……. 몽 타주, 일부러 감옥에 있었던 원인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비밀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요? 몽 타주만 알고 있는 비밀 말입니다!”
“무슨 비밀?”
정예가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고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몽태가 냉랭하게 말했다.
고해가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때, 보이지 않는 손이 비밀을 찾을 때, 그 비밀을 당주 어머님이 가지고 있던 게 아니라, 몽 타주 손에 있었던 거 아닙니까?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당주 어머님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몽 타주는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보이지 않은 손을 속이고, 이위를 속이고, 당주 어머님을 속이고, 우리 전부를 속였잖습니까?”
“고해! 너……?”
몽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정예는 고해와 몽태의 대화를 들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비밀인데……?
용완청도 깜짝 놀라면서 고해의 대답을 재촉했다.
“고해! 무슨 비밀인데 우리 어머니와 관계있다는 거야?”
고해가 손가락을 뻗어 한곳을 가리키며 냉랭하게 말했다.
“비밀은 바로 한 사람이죠. 몽태 가슴속에 있는 저 여자, 풍령! 풍령이 바로 용맥을 얻는 열쇠였던 겁니다.”
“뭐?”
모두가 몽태의 품속에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흑포를 걸친 여자가 움찔했다.
“몽태! 당신은 정말 비열한 인간이야! 예전 당주님께서 그렇게 믿으셨는데, 오히려 당주님을 죽음으로 내몰다니!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아내 풍령을 이위의 손에 이십 년이나 맡기고, 용맥을 위해 스승님을 대봉방에 묶어버렸고, 형제와 자매들을 전부 죽이지 않았나!
그러고는 감옥에서 이십 년 동안 숨어 지내다니. 그래서 뭐 좀 얻었나? 없지? 결국, 지금도 당신은 하나의 바독돌에 불과해! 흥!”
순간, 말을 마친 고해가 용완청을 안고 흰 구름을 향해 날아갔다.
“뭐 하는 거야? 아직 오백 개나 남았다고! 잔국도 풀지 못했는데 뭐 하는 거야?”
용완청이 말했다.
“누가 반드시 잔국을 깨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까?”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뭐!”
고해는 용완청을 안고 순식간에 하얀 구름으로 날아가 모습을 감추었다.
“안 돼!”
정예는 굳은 표정으로 하늘로 날아갔다.
몽태도 퐁령을 안고 하늘로 솟구쳤다.
조금 전의 구름이 순식간에 흩어졌다.
쾅!
정예도 지팡이를 흔들며 결계로 가려고 했으나 움직이지도 않았다.
결계 내부에서 고해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정 타주! 시간 내줘서 감사합니다. 하하하하하!”
고해는 박장대소하면서 용맥을 향해 다가갔다.
“이런! 고해! 거기 서!”
정예가 분노해서 소리쳤다.
몽태와 대치했던 이유도 고해가 얼른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을 깨버리게 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고해가 절반만 풀어버리고 바로 바둑판 세계에 들어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몽태! 전부 너 때문이야!”
정예가 분노 가득한 표정으로 몽태를 바라보았다.
몽태는 정예를 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흥! 자네가 무능력한 거야! 풍령, 그만 가자!!”
“뭐?”
정예가 눈을 부릅떴다.
고해가 바둑판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고해가 이 바둑판의 원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몽태도 가능하단 말인가?
그때,
윙!
풍령이 결계와 접촉하자, 풍령의 머리에서 모란꽃 색깔의 빛이 나오면서 몽태와 풍령을 비추었다.
후!
이렇게 쉽게 들어갔다고?
“안 돼!”
정예는 분노한 채 지팡이를 흔들었다.
쾅!
지팡이로 결계를 쳤으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정말로 퐁령이 관기 노인의 결계를 푸는 열쇠였단 말인가?”
정예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바둑판의 세계로 들어선 용완청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어떻게 들어왔어? 바둑판이 열리지 않았잖아?”
고해가 웃으며 말했다.
“바둑판이 꼭 열려야 될 필요는 없습니다. 아마 내가 들어올 위치를 조절할 필요가 없었다면 좀 더 빨리 들어올 수도 있었습니다!”
스윽!
두 사람이 떨어졌다.
바깥 세계에서 보기에는 내부가 부도만큼 커 보였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와 보자 이 세계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컸다. 무수히 큰 산천을 구름이 에워싸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고공에서 바다를 향해 떨어졌다.
풍덩!
바다로 추락하며 바닷물이 튀었다.
“콜록콜록!”
용완청은 사레가 들린 듯 기침을 해댔다. 고해는 그런 용완청을 끌고 해안가로 헤엄쳐 갔다.
용완청은 한바탕 기침을 한 후에야 조금 나아졌다.
정신을 차린 용완청이 사방을 둘러봤다.
그렇게 크지 않은 섬이었다. 섬 옆에는 직경이 만 장 크기나 되는 황금색 용이 있었고, 몸은 절반으로 잘려져 있었다. 이 용은 이 세계에 박혀 있는 것 같았다.
허공에는 대량의 구름과 안개가 가득해서 두 사람은 바깥 세계를 볼 수 없었다.
구름과 안개 때문에 모든 것이 모호했다. 그나마 제일 뚜렷하게 보이는 것은 금빛 찬란한 용맥이었다.
용완청이 그걸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정(丁)용종? 정(釘)용종?”
“당주님, 우리가 들어온 곳은 용맥과 가까이 있는 곳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당주님의 인용옥이면 용맥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고해가 용완청을 보며 물었다.
미간을 찌푸린 용완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용맥을 향해 갔다.
고해는 쓴웃음을 지었다. 용완청이 자기를 경계하는 걸 그도 모르지 않았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해는 거대한 용맥의 몸 옆으로 다가갔다.
오른손으로 거대한 용맥을 만졌더니 마치 사람의 혼을 빼앗는 듯한 힘이 고해의 마음속에서 전해졌다. 마치 자신이 굉장히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가 작아진 겁니까? 아니면 용맥이 커진 겁니까?”
예전 대봉방에서도 용의 꼬리가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로 알고 있었다.
“우리가 작아진 게 아니라, 용맥이 원래 이 정도로 두껍고 큰 거야.”
용완청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그때였다.
위잉!
복부 아래 절생도가 튀어나올 것처럼 가볍게 떨렸다.
미간을 찌푸린 고해는 절생도를 억누르며 용완청을 바라보았다.
용완청은 아직도 거대한 용맥을 둘러보고 있었다.
고해는 잠시 침묵을 지키면서 절생도를 꺼낼지 고민했다.
고해는 절생도가 용맥의 힘을 받으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용완청 앞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용맥의 힘이 절생도에게는 너무 큰 유혹이었다.
절생도는 고해가 머뭇거리자 기이한 힘을 내뿜으며 고해의 골격을 향해 이동했다.
‘응?’
지지직!
고해가 용맥의 골격을 만지자 갑자기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손바닥에 있던 골격이 천천히 길어지더니 자신의 피와 살을 찔렀고, 마치 가시처럼 살을 뚫고 나왔다.
쫘악!
손바닥의 뼈가 용맥의 체내로 파고들었다.
위잉!
용맥의 힘이 이 뼈를 따라 고해의 체내로 들어가더니, 온몸의 골격을 통해 복부의 절생도로 스며들었다.
쿠르릉!
순간 대량의 힘이 절생도로 들어갔다.
얼굴색이 변한 고해는 오른손을 떼고 용맥에서 그 뼈를 뽑아냈다.
뼈가 손바닥에서 반 자 정도 자라나 유달리 흉해 보였다.
‘절생도의 힘이 나의 골격을 바꿀 수 있을 정도라니.’
고해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절생도에는 자아가 있었다. 방금도 자신이 그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자 자신의 골격를 개조한 것이다.
하지만 절생도는 결국 자신의 뜻 아래에 있었다.
고해가 절생도에게 명령하자, 튀어나온 뼈가 서서히 작아지며 손바닥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처음으로 발견한 절생도의 능력이었다.
그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고해는 오른손을 뻗어 의식적으로 억제했다.
지지직!
고해의 오른손 골격이 빠르게 자라나더니, 가죽과 살을 뚫고 나와 긴 검 모양으로 자라났다.
보기에는 조금 기이해 보였지만, 어쨌든 검과 비슷했다.
영패 공간에서 날검을 한 자루 꺼낸 그는 골격과 날검을 충돌시켰다.
탕!
날검이 반으로 잘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