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투항서
“걱정하지 마세요. 고육생이라도 고해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용완청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만약 암습이라도 한다면?”
“암습이면 더욱 좋죠. 고해를 분노하게 할 테니……. 하하!”
“……?”
유년대사는 영문을 몰라 하는 용완청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해의 목숨은 굳건합니다. 저는 오히려 당주님이 걱정입니다. 조금 있다가 목단종에 들어가면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응. 알았어.”
* * *
두 시간 후, 백운호가 고부에 도착했다.
고부의 사람들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고해가 명령을 내린 후부터 사람들은 고해의 뜻을 읽은 것 같았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주인님이 천하를 통일한다고?
아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고해를 모시면서 고해의 능력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천하가 통일만 된다면 일개 총관에서 급이 높은 신하가 될 것인데, 누가 노력하지 않겠는가?
고해가 돌아오자 고부의 사람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진천산도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고해를 맞이했다.
“대인, 돌아오셨습니까? 고선무는 대군을 이끌고 전선으로 나갔습니다!”
* * *
열흘 후, 대금국, 조당 위.
조당의 분위기는 매우 엄숙했다. 군신들은 조용히 왕위에 있는 황제만 바라보고 있었다.
군신들은 두 줄로 서 있었다. 그들 중간에 있는, 황포를 입은 관료가 어두운 표정으로 황제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폐하, 진나라가 이미 고부에 넘어갔습니다. 고선무는 진나라 군인들을 이끌고, 아니, 고부의 군인들을 이끌고 우리 금국 국경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흉악한 기세로 네 개의 나라를 동시에 공격하고 있는데, 벌써 승기를 잡은 것 같습니다.”
금왕도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진나라? 진양의가 그렇게 쉽게 넘어갔다고? 반항도 없이?”
황포를 걸친 관료가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고해가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전적으로 협조했다고 합니다. 진나라 관료들도 빈번하게 교체되는데, 아마도 고해가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 같아 보입니다!”
“반항도 없었단 말인가?”
황포를 입은 관료가 공손하게 말했다.
“있었습니다. 일부 성주들이 반항을 했지만 곧바로 제압당했다고 합니다. 진나라 일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들립니다만, 빠르게 수그러지는 추세입니다. 진나라는 이제 없습니다. 모든 것이 고부의 손아귀에 넘어갔습니다.”
“백성들은?”
황포를 걸친 관료가 씁쓸하게 말했다.
“고부가 육 국의 갑부이지 않습니까? 근 몇십 년 동안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서 명성도 훌륭합니다. 일 년 전, 진나라가 대동란을 겪을 때, 백성들은 황실보다 고부의 말을 더 믿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금왕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고해, 이 야심 가득한 놈. 고부 하나로 오 국을 통일하려고?”
황포 관료가 말했다.
“폐하! 고부는 하나의 부에 속하지만, 그 영향력은 무시무시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부의 사업은 항상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고부는 고부로 불리고 있지만 결국 오 국에 숨어 있던 하나의 나라나 다름이 없습니다.”
“으음…….”
왕이 침음을 흘리자, 황포 관료가 이어서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고해가 수련계에 들어서면서 밑에 삼천여 명의 수련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일반 군인들이 혹시라도…….”
금왕이 싸늘하게 말했다.
“고해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흥! 고해한테 삼천 명의 악인이 있으면 또 어떠냐? 우리 뒤에는 정용종이 있고, 다른 나라들의 뒤에도 청하종과 송갑종이 있지 않더냐? 고해가 이런 종문을 건드리는 건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니라!”
순간, 대전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보고합니다. 삼황자께서 오셨습니다!”
군신들이 환하게 웃었다.
“뭐 삼황자(三皇子)? 정용종에 가서 수련한 삼황자가 왔다고?”
금왕이 외쳤다.
“어서 들어오라 하라!”
호위병들이 들것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들것 위에는 빨간 옷을 입은 남자가 누워 있었는데, 양쪽 다리에는 핏자국과 온몸에는 상처가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전부 흐트러져 있었다.
사람들이 경악하며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왜 저렇게 된 거지?
“삼황자?”
금왕은 사색이 되어 왕위에서 벌떡 일어섰다.
“황아(皇兒), 어찌 된 일이냐?”
삼황자는 태자가 아니었으나, 금왕의 눈에는 태자보다 더 중요했다. 왜냐하면 선인이 되어 나중에 더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 황자와 수련해서 돌아온 황자를 어찌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부황, 제가 돌아오자마자 전선에서 온 소식을 들었습니다. 더 지체할 수 없어서 곧바로 돌아왔습니다!”
금왕이 경악해서 말했다.
“왜 이렇게 다쳤느냐? 정용종에 있던 게 아니었느냐?”
“정용종이오? 하! 이제 없어졌습니다!”
금왕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없어져? 그게 무슨 말이야? 정용종에 수천 명 제자가 있었는데 없어졌다고?”
“고해가 정용종에 가서 정용종을 없애버렸습니다. 살아남은 자가 열댓 명이나 될까요? 저도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한 무리의 군신들이 경악했다.
“뭣이라?”
금왕이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고해? 아니…… 고해가 어떻게 정용종을……?”
“정용종이 다 뭡니까? 부황! 고해가 돌아와서 먼저 대봉방을 없애버렸고, 그다음은 청하종, 그리고 송갑종, 얼마 전에는 우리 정용종까지 없애버렸습니다.”
“……!”
“……!!”
고해가 연이어서 네 개 종문을 없애버렸다고?
대전 내부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금왕은 믿을 수가 없었다.
“설마…… 고해가 그렇게 대단하단 말이냐? 그는 선천경 아니었느냐? 그것도 얼마 전에 넘었거늘?”
삼황자가 말했다.
“듣기로는 송갑종 제자들이 제일 잔혹하게 죽었다고 합니다. 고해 혼자 오천 명의 제자들을 전부 죽였습니다!”
“……?!”
“……!!”
대전 안에 또다시 적막이 흘렀다.
그때, 한 전령이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보고드립니다!”
전령이 무릎을 꿇고 보고했다.
“폐하께 아룁니다. 금성에서 온 소식에 의하면 고선무의 대군이 금성을 뚫었다고 합니다!”
“……!”
“……!”
대봉방, 청하종, 송갑종, 정용종.
사대 종문을 고해가 하나씩 없애버렸다고 했다.
설마 천하를 통일하려는 건가? 그래서 금국을 봐주던 정용종도 없애버린 건가?
금왕은 안색이 창백해져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반항할 힘조차 없어지는 듯했다.
“고해! 고해!!!”
그때 대전 밖에서 북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둥! 둥! 둥!
금왕이 대전 밖을 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
한 호위병이 빠르게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폐하께 아룁니다. 고부상회 총관 당초(唐楚)가 폐하를 만나려다가 가로막히자, 저렇게 ‘진천고’(震天鼓)를 두드리며 폐하를 만나려고 합니다!”
삼황자가 경악하며 말했다.
“진천고는 민간에서 억울함이 있는 사람들이 두드리는 것 아닙니까? 그 어떤 원한이 있든지 진천고를 두드리는 사람들은 전부 장 팔십(杖八十)에 처하는데, 고부의 총관들이 진천고를 두드린단 말인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도 장 팔십에 대해 꺼내지 않았다.
금왕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들라 해라!”
금왕이 곧바로 말했다.
“아니다. 예부시랑이 직접 가서 전하거라!”
“예!”
한 관료가 곧바로 대전을 나갔다.
대전 내부의 분위기는 자못 무거웠다.
들것에 있던 삼황자의 안색도 복잡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부시랑이 한 백발노인을 데리고 들어왔다. 노인의 머리는 백발이었으나 정신은 매우 맑아 보였고, 두 눈은 매우 예리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흑포를 걸친 두 사람이 뒤에서 그를 보호했다.
예부시랑이 매우 깍듯하게 말했다.
“당 총관, 들어오시지요.”
백발노인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눈에서 활기가 넘치는 것 같았다.
금국에서 고부 사업을 하며 얼마나 많은 차가운 눈빛을 봤던가? 여기에 있는 군신들 역시 자신을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여겼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돈만 좋아할 뿐, 콧대는 하늘만큼 높은 자들.
그러나 지금은 나라 형세가 바뀌고 신분도 바뀔 수 있으니 백발노인의 마음이 왜 즐겁지 않겠는가.
대전에 들어온 백발노인은 먼저 금왕께 인사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던 흑포를 걸친 사람을 보며 말했다.
“오는 길 내내 보살펴줘서 감사합니다.”
흑포를 걸친 한 사람이 조용히 말했다.
“당 총관님, 저희도 부장님의 명을 받아 왔습니다. 총관님은 일만 잘 보시면 됩니다.”
백발노인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바로 그때서야 군신들도 노인의 뒤에 있던 두 호위병을 주시했다.
저들은 고해의 밑에 있는 악인들 아닌가?
악인들이 일반 백성을 보호한다고?
군신들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 광경에서 고해의 결심을 엿볼 수 있었다.
당초가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금국에 있는 고부 총관 당초가 폐하를 만나러 왔습니다.”
당초가 ‘만나뵙다’가 아닌 ‘만났다’로 인사를 올린 건 그만큼 자신의 신분이 곧 상승할 것이라는 표현이기도 했다.
금왕이 조용히 질문했다.
“당 총관. 자네는 고해를 대리해서 왔는가?”
당초가 웃으면서 말했다.
“예, 바로 우리 주인님이십니다.”
금왕이 싸늘하게 말했다.
“자네 고부가 우리 국경을 넘었는데, 자네가 감히 우리 조당에 들어와?”
금왕의 으름장에 당초는 벌벌 떨기는커녕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응수했다.
당초는 금국의 상업을 책임지는 총관이었다. 당초의 밑에도 무수히 많은 부하가 있었고, 나름 위엄을 갖춘 사람이었다. 금국이 고부에 넘어오기만 한다면 당초가 이곳을 다스릴 가능성이 컸다.
당 총관이 웃으면서 말했다.
“폐하, 오늘 제가 폐하와 입씨름을 하려고 온 것도 아니고 입씨름을 할 것도 없습니다. 삼황자도 여기에 있으니, 전부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금왕이 싸늘한 눈빛으로 당초를 노려보았다.
당초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폐하, 그리고 대신분들. 그런 눈빛으로 저를 볼 필요 없습니다. 우리 고부가 금국에 빚을 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금국이 우리 고부에 빚을 졌지요. 여기에 계신 폐하부터 군신까지 우리 고부의 돈을 빌린 적이 한 번도 없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군신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당초를 노려보았다.
“뭐라?”
“어허! 어디서……!”
그러든 말든 당초는 웃으면서 말했다.
“금국 정권이 든든하다는 말은 못 하겠지요? 근 십 년 동안 금국에 다섯 번의 홍수와 여섯 번의 가뭄이 있었지요. 국고가 텅텅 비었을 때 누가 백성들을 먹여 살렸습니까? 설마 잊으셨습니까? 우리 고부가 없었으면 금국은 벌써 흩어졌을 겁니다. 뒤에 정용종이 있다고요? 정용종이 금국을 신경 쓴 적이 있습니까?”
금왕이 싸늘하게 말했다.
“당 총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당초는 품속에서 천으로 된 족자를 꺼냈다.
“오늘 제가 저의 주인님을 대리하여 금국 황실에 투항서를 건넵니다. 여러분은 이번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잘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드는 건 막아야지요.”
금왕이 눈을 부릅떴다.
“뭐라? 투항서?!”
군신들도 소란을 피우며 분노했다. 당초를 생매장시키지 못하는 것을 한으로 여기는 표정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