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덕을 쌓다
* * *
두 달 후, 고부. 고해의 서재.
고해는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앞에는 고진, 상관흔, 진천산, 그리고 고부의 일부 총관들이 서 있었다.
고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의부, 금국과 노국이 우리 고부의 손에 넘어왔습니다. 아직 반란을 일으키는 자들이 있습니다만, 크게 지장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과도기에 겪은 진통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한 총관도 흥분한 채 말했다.
“네, 주인님! 몇몇 총관들이 전해오는 소식에 따르면 채국, 노국, 금국, 그리고 진나라까지 전부 투항했다고 합니다. 이제 조나라를 제외하고 전부 고부의 영역에 속합니다. 조 총관이 조나라에서 손을 쓰고 있고, 고 대장까지 조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니 일부 성주들도 투항했다고 합니다. 머지않아 조나라도 곧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해가 차를 마시며 조용히 말했다.
“조나라 뒤에 목단종이 있다. 목단종 제자들이 온다는 소식은 없고?”
고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그런 소식은 없습니다!”
고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수많은 수련자가 목단종에 모여들고 있습니다. 조나라를 신경 쓸 겨를이나 있을까요?”
고해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고선무한테 전하거라! 얼른 조나라를 공격하라고 해.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
고진이 대답했다.
“네!”
고해가 진천산을 보면서 말했다.
“진천산, 듣자 하니 대량의 수련자가 우리 고부에 들어오고 싶어 한다고?”
진천산이 대답했다.
“네, 대인, 두 달 전에 대인께서 다섯 원영경 요왕을 죽인 사실이 널리 퍼졌습니다. 이 사실이 전해지자 평소 모으기 힘들던 수련자들도 우리 고부에 들어오려고 합니다. 순식간에 천 명이 모여들었습니다.”
고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많은 사람이 모이면 관리하기가 힘들어질 테니 착실한 놈들만 골라서 받도록 해.”
진천산이 대답했다.
“네!”
고해는 상관흔을 보면서 말했다.
“상관흔, 수색한 건 어찌 되었느냐?”
상관흔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대인, 전력을 다해 신기영 제자들이 남긴 흔적은 찾았습니다만, 저놈들이 너무 교활해서…….”
고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못 찾았어?”
“네.”
“멈추지 말고 계속 찾아봐.”
“네.”
고해는 어딘가 불편한 듯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미간을 찌푸렸다.
고진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의부, 왜 그럽니까?”
고해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절생도가 다섯 원영경을 긁어먹은 후 힘이 축적되었으나, 새로운 단계로 돌파하지 못해서 생긴 현상이었다.
고해는 한 총관을 보면서 말했다.
“오 국의 가뭄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총관이 말했다.
“네, 주인님, 매우 엄중합니다. 만 리나 되는 논밭에서 수확을 하나도 거두지 못해 백성들은 나무껍질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배고픔을 견뎌왔는데, 많은 백성이 굶어 죽고 있습니다.”
고해는 미간을 찌푸리며 책상을 두드렸다. 아마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고해가 눈을 가늘게 좁히며 말했다.
“선을 행하는 것이 바로 덕을 쌓는 것이고, 기수를 모으는 것이라 했지.”
그때 총관이 이어서 말했다.
“주인님, 고부가 손을 써야 하나요? 비록 고부에 쌓아둔 곡식이 제법 많긴 하지만, 천하의 백성을 모두 먹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고해가 조용히 말했다.
“전력을 다해 재난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대인…… 소인이 통계를 내봤습니다만, 오 국의 국고와 우리 고부에 저장되어 있는 곡식을 탈탈 털어도 두 달밖에 버틸 수 없습니다. 두 달 후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해가 묵직하게 말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전력을 다해 재난을 막으라고! 각 점포에서는 곡식의 값을 올릴 수 없다고 전해라!”
“아…… 네.”
총관이 씁쓸하게 대답했다.
“나는 공덕이 필요하다. 수많은 공덕이 필요하단 말이야! 두 달 후의 곡식은 내가 차차 해결하도록 하지!!”
총관이 대답했다.
“네!”
* * *
누구도 금국의 멸망에 관심이 없었다. 백성들은 배고픔에 굶주린 채 하루를 살아가느라 나랏일에 관심을 가질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일부 성밖에 있는 산림의 나무껍질들도 전부 긁어지고 없었다. 먹을 수 있는 건 전부 먹어버렸다. 성 안팎으로 굶어 죽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느 한 마을의 가정집.
한 부녀가 남자 아이를 안고 흐느꼈다. 그 옆에 있는 늙은 부부 역시 눈물을 머금었고, 그 앞에 서 있는 중년 남자 역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중년 남자가 슬픔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미 옆 동네 왕 씨에게 말했어. 우리 애와 왕 씨의 아이를 바꾸자고. 얼른!!”
부녀는 남자 아이를 꼭 안고 울면서 말했다.
“안 돼! 절대 못 줘! 흑흑흑! 죽어도 못 준다고!”
품 안에 있던 남자 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엄마…… 나 배고파!”
중년 남자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말했다.
“아가야! 아빠가 미안하다! 그렇지만 우리 애를 왕 씨한테 주지 않으면 우리 가족이 전부 굶어 죽는단 말이야! 아버지, 어머니, 제가 불효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재난만 피하면 됩니다! 흑흑흑!”
부녀의 울음소리는 처량했다.
“안 돼! 싫어! 난 왕 씨네 아이를 안 먹어도 돼! 우리 애를 왕 씨네한테 줄 수 없다고! 절대 못 줘!”
바로 이때, 노인이 지팡이로 중년 남자를 때리며 말했다.
“이런 미친놈아!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가 있느냐! 우리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애를 주려고 해? 이 죽일 놈아!!”
노인이 중년 남성을 때리자 옆에 있는 노파가 제지했다.
“그만 때려요. 아들이 급해서 잠시 미쳤나 봐요. 옆집 이 씨네도 다른 사람과 아들을 바꿨다고 했잖수. 그래서 저 녀석도 잠시 말려든 것뿐이우.”
노인은 중년 남성을 때리다가 늙은 할멈을 보면서 씁쓸하게 말했다.
“여보, 우리 애를 어찌 왕 씨네에 먹인단 말이오? 아들아, 손자가 배고파하니 우리를 잡아 먹이거라.”
늙은 할멈은 처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중년 남자는 갑자기 노인의 다리를 붙잡고 울면서 말했다.
“안 됩니다. 아버지, 어머니!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노장이 울면서 말했다.
“옆집 이 씨네가 다른 사람과 아들을 바꿔 먹었다고? 사람을 먹은 후 또 배가 고파서 전부 목을 매어 죽지 않았더냐? 아들아! 차라리 우리를 먹거라! 우리 손자는 안 된다!”
중년 남자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아이를 안고 있던 부녀 역시 절망한 채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 며느리가 불효합니다. 우리 애를 왕 씨한테 줍시다! 흑흑흑!”
남자 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엄마, 나 배고파!”
가족 모두 죽음의 변두리에 서 있었다. 이들은 희망을 잃고 절망하고 있었다.
그 순간, 밖에서 꽹과리 소리가 들렸다.
챙챙챙!
“고로 선생이 창고를 열어 무료로 묽은 죽을 나눠주고 있다. 집에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그릇을 들고 농장에서 줄을 서라! 고로 선생이 창고를 열어 무료로 묽은 죽을 나눠주고 있다. 집에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그릇을 들고 농장에서 줄을 서라!”
밖에서 꽹과리를 두드리던 사람이 반복적으로 소리쳤다.
죽음의 변두리에 있던 가족들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밖에 뭐야? 고로 선생이 창고를 열었다고? 묽은 죽을 공짜로 나눠준다고?”
“고로 선생? 그 육국 갑부? 여보! 아들아! 며느리! 손자야! 우리 살았어!”
“창고를 열었다고? 묽은 죽을 공짜로 준다고?”
아들을 안고 있던 부녀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흑흑흑! 아들아! 흑흑흑!”
온 가족은 그릇을 들고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이 가족뿐만 아니라 대부분 가족이 전부 이 재난을 겪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빠르게 농장에 모여들었다.
거대한 농장에 백성들로 꽉 차 있었다. 이들은 가족과 함께 손에 그릇을 들고 달려왔다.
농장은 열 개의 큰 가마를 준비해 두었고 쉴 틈 없이 죽을 끓이고 있었다. 다 끓인 죽은 옆으로 옮겨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 가마가 텅텅 비면 또 새로운 물죽을 끓여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
배고픔에 굶주린 백성들은 열 개 대오로 줄을 맞췄고 하나둘씩 죽통 옆으로 다가왔다.
앞서 배고픔에 눈물을 흘리던 일가족 역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죽통 앞에 마주했다. 이들은 손을 바들바들 떨며 그릇을 내밀었다.
노인이 감격에 겨워 울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죽을 나눠주던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한테 고마워하지 말고 우리 주인님, 고해 대인께 고마워하세요!”
노장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했다.
“네! 네! 감사합니다. 고 선생!”
온 가족은 죽을 보면서 감격스러워했다. 그중 한 남자 아이가 미친 듯이 죽을 들이켰다. 호로록호로록 게 눈 감추듯 죽을 먹어 치웠다.
옆에 있던 부녀가 울면서 말했다.
“아들아! 드디어 살았다! 흑흑흑!”
죽을 나눠주던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릇을 가져오거라! 한 그릇 더 줄게”
부녀는 울먹이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말했잖소? 이건 우리 고 선생! 고해 대인께서 나눠주는 것이오.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오. 그러니 우리 주인님한테 감사의 인사를 전하시오.”
“감사합니다. 고 선생.”
온 가족은 죽을 보며 아까워서 먹지 못했다. 이들은 천천히 물러섰고 뒤에 있던 사람들이 계속하여 죽을 받았다.
한 구석진 곳에서 이들 가족은 천천히 죽을 먹었다. 죽을 먹으니 안색도 한결 좋아졌다.
노인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고 선생! 아들아, 며느리야! 여보, 그리고 손자야! 우리 고 선생께 절을 하며 인사를 드리자! 정말 생명의 은인이시다!”
“네!”
남자 아이 역시 어른들에 이끌려 동북 방향으로 절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저 멀리에 있는 고부의 방향으로 절을 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일가족이 절을 한 모습을 본 다른 백성들도 절을 하며 고로 선생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는 진나라, 채국, 노국, 금국에서도 똑같이 진행되고 있었다.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살리고 이들의 은인으로 되는 것은 선한 일을 통해 덕을 보는 것이고 공덕을 쌓는 것이기도 했다.
하나 또 하나의 감격이 하나의 공덕으로 변했고, 명명지중(冥冥之中) 속에서 하늘의 뜻에 이끌려 고부의 방향으로 향했다.
또 하나의 공덕이 기수로 쌓이면서 고해한테로 들어갔다.
고부, 충천탑!
고해는 충천탑에 앉아 각 곳의 자료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세찬 바람이 불어오더니 곧바로 고해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이 익숙한 느낌은 바로 공덕이었다. 하나 또 하나의 공덕이 몰려오면서 기수가 되어 고해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고해 역시 모공이 넓어지는 듯한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고해가 길게 호흡을 하며 말했다.
“기수. 역시 선행하고 덕을 쌓는구나! 좋은 일을 하고 돌아오는 보답이네! 하하! 이 느낌은 뭐지? 곧 돌파할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