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요정천(姚正天)
* * *
가뭄이 들던 그해, 백성들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고부가 창고를 열어 백성들의 배고픔을 달래주었고, 백성들은 이에 극히 감격스러워했다. 이런 고마움이 서로 모여 강을 이루었고, 곧바로 고부로 향했다.
고부, 충천탑!
고해가 폐관을 하면서 모든 사람과 일들이 탑 밖에 멈춰 섰다. 고진과 상관흔, 그리고 진천산이 충천탑에서 고해를 호위했다.
쿵쾅!
충천탑 안에서 금석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천산이 망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골격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 같은데? 대인께서 능력을 돌파하는 건가?”
상관흔도 알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움찔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탑 안에서 고해는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었다. 그의 주변에서는 골격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엊그제 정용종의 이십구 천지종횡대진에서 절생도를 휘둘러 고해의 몸에 엄청난 힘을 넣어줬다. 이후 난관에 봉착하면서 힘들이 수없이 쌓였고 질적으로도 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공덕이 가져다주는 기수로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고, 골격도 탈바꿈하고 있었다.
쾅!
세 시간 후! 고해의 몸속에서 거대한 소리와 들렸다. 몸이 움찔했다.
쿵!
거대한 소리가 울리면서 고해의 골격도 더는 부딪치지 않았다. 사각사각 미세한 소리만 들릴 뿐.
이 역시 한 시간 후에 전부 사라졌다.
고해의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고해는 두 눈을 슬며시 뜨면서 오른 주먹을 펼쳤다.
슥!
정신력을 집중시킨 결과 손바닥에서 뼈가 나오기 시작했다. 탈바꿈을 했으나 골격의 색깔은 여전히 은백색이었다.
뼈는 금속 윤택을 내고 있었으며 정교한 백은과 같았다. 하지만 백은에 비해 몇 배나 강했다.
고해는 손을 뻗어 장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슥!
백은 골격은 매우 쉽게 장검을 관통했다.
고해가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이건 외공을 다시 넘어선 건가?”
강력한 의지 덕분에 골격이 천천히 몸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칼에 베인 상처 역시 빠르게 회복되었다.
고해는 또 눈을 지그시 감고 단전을 느꼈다.
외공을 돌파한 후, 단전에 있는 진기 역시 한계에 이른 것처럼 곧 돌파할 것만 같았다.
온몸의 상쾌하고 편안한 느낌은 여전했다. 그러나 기수가 몸에 닿으면서 고해의 피부에서 황금색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고해는 눈을 감고 정신을 단전에 집중시켰다.
단전은 거대한 진기로 가득 차 있었다. 용 모양의 진기가 뱅뱅 돌면서 진원을 응집시켰다.
하지만 아홉 개의 주먹 크기와 같은 진원은 서로 배척하는 것처럼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후우우웅!
용 모양의 진기가 울부짖으면서 진용선천공을 극치로 내몰았다. 진기의 위력이 이 정도의 세기에서 멈춰버린 것 같았다.
흐읍!
순간, 황금색 빛이 단전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황금색 빛은 바로 천하의 곳곳에서 온 공덕이었다. 이 황금색 기수들이 천천히 아홉 개의 주먹만 한 진원으로 들어갔다.
위이이잉!
기수들이 아홉 개의 진원과 천천히 결합하기 시작했다.
쿵!
아홉 개의 진원이 서로 결합하더니 단전에서 거대한 힘이 솟아 나왔다.
쿵!
고해의 몸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리더니, 한 줄기의 기류가 흘러나왔다.
단전에서 수박 크기만 한 보라색 액체의 진원 구체가 천천히 회전했다.
그 위에서도 회오리바람이 천천히 불더니, 마치 체내의 진기를 전부 진원 구체에 넣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미 한계에 이른 듯 진원이 더 나타나지는 않았다.
진원이 경맥 사이로 옮겨가면서 임계점에 도달한 듯했다.
고해는 두 눈을 뜨고 자신의 양손을 보면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선천경 십단계! 선천경이 꽉 찼으니 이제는 금단경인가?”
기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었다. 고해는 지금의 몸 상태에 매우 만족했다.
고해는 생각에 잠겨서 혼자 중얼거렸다.
“시후? 하! 후천경일 때 조금만 더 일찍 나라를 세우려고 했더라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구나. 그럼 바로 선천경부터 시작했을 텐데…….”
고해는 씁쓸하게 웃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때는 각 종문에서 나라를 꽉 잡고 있어서 나라를 세울 수도 없었지.”
한숨을 길게 쉰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고해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상쾌함을 느끼고는 천천히 충천탑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진이 기뻐하며 말했다.
“의부, 돌파하셨습니까?”
고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기수를 얻은 고해는 역시 나라를 세우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또 열흘이 지났다. 이 기간에도 기수는 끊임없이 모여들고 있었다. 고해의 피부에서 황금색 빛을 발산하고 있어 마치 하늘의 신과도 같았다.
안 그래도 상쾌하던 기분에 기수까지 모여들고 있으니 고해는 자연스럽게 눈썹을 움찔했다.
기수들이 모여들어서 기분이 좋았으나 한동안 쓰지 못한 기수들은 천천히 흩어지면서 어느덧 낭비에 이르게 되었다.
고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수를 어떻게 저장하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낭비하는 기수들이 너무 많아.”
잠시 후, 상관흔이 왔다.
상관흔이 멋쩍게 웃으며 고해를 바라보았다.
“대인, 신기영 제자를 발견했습니다만…….”
고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상관흔이 말했다.
“아마 혈투를 벌인 것 같습니다. 바닥에 피가 흥건하고, 신기영 제자들의 시체도 널려 있었습니다.”
곧바로 두 악인이 들것에 갑옷을 입은 신기영 제자의 시체를 들고 왔다.
고해가 시체를 살펴보았다.
“한 방에 죽은 건가? 심장을 관통했나?”
상관흔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도 한 방에 저 멀리 날아가면서 풀숲에 떨어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다른 신기영 제자들도 이렇게 죽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시체는 보이지 않고 도망친 발자국조차 없습니다.”
고해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
그때 고진이 황급히 방으로 들어왔다.
“의부, 의부…!”
고해가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느냐?”
“의부, 밖에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 사람의 말로는, 고육생을 비롯해서 천 개의 머리를 베어왔다고 합니다. 의부님께 드리겠답니다.”
너무 이상하다. 사람의 머리를 들고 왔다고?
고해와 상관흔이 눈을 마주쳤다.
상관흔이 놀라서 물었다.
“대공자, 밖에 온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고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머리숱이 적은 백발노인입니다. 우리한테 매우 호의적이었습니다. 열 개의 상자에 천 개의 머리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들고 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고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가보자.”
상관흔과 고진이 그 뒤를 따랐다.
고해는 재빨리 고부 대진 밖으로 나왔다.
“주인님!”
“대인!”
주변에 있던 고부의 사람들이 고해를 발견하고는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모든 사람이 광장에 모여들었다.
광장에는 열 개의 커다란 상자가 열려 있었다. 그 안에는 피비린내 나는 머리가 들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예전에 이호연 옆에 있던 자였다.
이게 고육생이라고?
열 개의 상자 앞에는 넓은 포를 걸친 노인이 서 있었다. 머리숱은 얼마 없었고, 귀밑머리는 백발이었으며,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른 모습이었다.
백발노인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저는 요정천입니다. 고 선생께 인사 올립니다.”
고해가 의아한 듯 말했다.
“요 선생께 인사드립니다. 이 상자를 들고 온 목적은 무엇인지요?”
“여기에 있는 천 명은 신기영 제자들입니다. 듣기로는 사방에서 강자들은 불러 모아 고 선생을 죽이러 왔다고 합니다. 마침 저한테 걸려서 제가 전부 해결했습니다. 고 선생을 만나러 오면서 선물을 들고 왔지요.”
고해가 두 눈을 끔뻑이며 반응했다.
“네?”
요정천이 웃으면서 말했다.
“고 선생! 저도 이놈들한테 원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였어요. 하하! 일거양득이라고 하지요.”
고해 역시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미리 선물을 준비한 것이 아니라 오는 길에 얻어걸렸다고?
“요 선생과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요정천이 웃으면서 말했다.
“고 선생은 저를 알 수도 있을 텐데요?”
“네?”
“예전에 제가 삼천 명의 부하들과 함께 대봉방에 갔었습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 우연히 이호연을 만나서 어쩔 수 없이 바다에 뛰어들어 이호연과 혈투를 벌였지요. 그때 신기영이 내 부하들을 전부 죽여버려서 지금도 한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고 선생을 만나러 왔습니다.”
고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럼 요 선생이 그 해수 패하?”
그때 고해가 대봉방에 갇혀 있을 때, 해수 패하가 삼천 명의 해요들을 데리고 온 적이 있었다.
하늘을 찢으면서 마지막에 대지용맥을 빼앗지 않았던가?
요정천이 말했다.
“네, 바로 접니다. 신기영 제자들이 내 삼천 명의 부하들을 먹어 치웠습니다. 그러니 저도 여기 있는 천 명을 먹어버려야지요. 머리만 들고 와서 송구스럽습니다. 이번에 고 선생과 의논할 일이 있어서 왔는데 결례를 범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고해의 눈빛이 변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요 선생,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요정천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고 선생.”
요정천이 고해를 따라 고부로 들어갔다. 뒤에 남아 있던 악인들은 화들짝 놀랐다.
한 악인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말했다.
“해수, 패하?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정말로 해수 패하라고?”
“대인께서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 해수 패하까지 이렇게 예의를 차리다니.”
“요정천. 어쩐지 이름이 귀에 익다 했더니, 패하였구나.”
한 무리의 악인들은 감탄하면서도 자랑스럽게 여겼다.
고해의 얼굴이 곧 자신의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천도해의 해수 패하가 대인 앞에서 이렇게 공손하다니. 말이 되는가?
고해는 요정천과 함께 대청에 들어갔다. 옆에는 고진과 상관흔, 그리고 진천산이 자리를 함께했다.
고해가 요정천을 보며 말했다.
“요 선생, 앉으시지요!”
요정천이 격식을 차리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고진이 나와서 두 사람한테 차를 따랐다.
고해가 물어보았다.
“요 선생이 여기까지 온 목적은 용맥 때문은 아니지요?”
요정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용맥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관기 노인이 만든 대국은 건드리면 죽지요. 이번에 그것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에는 다른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고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고 선생께서도 제가 해수로 변신하여 삼천 명의 해요를 데리고 구오도에 갔던 일을 기억하시지요?”
고해가 미간을 움직이며 말했다.
“네, 저도 수시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요 선생께서 변신하는데 그렇게 크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삼천 해요가 길을 내주고 요 선생이 가는 곳마다 천둥 번개가 번쩍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결국…….”
요정천이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허세를 부렸지요. 하하하!”
고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이 대충 그렇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요정천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 저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