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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139화 (215/243)

139화 생사(生死)돌

“그날, 우리는 목단종에 갔었어. 그런데 적막만 흐르고 있는 거야. 그래서 뿔뿔이 흩어지는 제자들을 붙잡고 물어봤지.”

그랬더니 목단봉에서 괴상한 일이 발생했다고 했다.

“알아보니까 목단봉에 거대한 목단꽃이 모였대. 목단종 종주를 시작으로 한 무리의 제자들이 들어갔다가 다시는 나오지 못했어.”

“허어, 그런 일이…….”

용완청이 이어서 말했다.

“거대한 목단꽃에서 용의 신음 소리가 들렸어. 우리는 대지용맥의 소리인 줄 알았지. 조금 망설이다가 이호연이 한 번 들어가 보더니 별로 위험한 일은 없다고 말하지 뭐야. 그래서 들어갔는데, 글쎄 안에 관기 노인이 있지 뭐야!”

고해가 멍한 표정으로 용완청을 바라보았다.

“관기 노인이오?”

“아마도 관기 노인이 남겨둔 꼭두각시 같아. 관기 노인이 살아 있는 바둑과 죽은 바둑을 설치했어. 살아 있는 바둑을 하지 않으면 바로 죽어버리지. 살아 있는 바둑돌과 관기 노인의 꼭두각시가 대국을 펼치고 있고…… 죽은 바둑돌은 나도 잘 모르겠어.”

“살아 있는 바둑돌과 죽은 바둑돌?”

용완청이 슬퍼하며 말했다.

“우리가 처음에는 살아 있는 바둑돌 구역에 들어가서 관기 노인과 대국을 펼치려고 했어. 그런데 대국에서 지면 곧바로 이상한 대진에 들어가게 되면서 죽어버리더라고. 그 이후로 누구도 바둑돌을 올리지 못했지 뭐야.”

세상에 그런 괴이한 바둑이 있다니.

그럼에도 고해는 호기심이 점점 더 강해졌다.

용완청은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도 무서워서 나가려고 했는데, 나갈 수가 없었어. 죽은 바둑돌이거나 살아 있는 바둑돌,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해. 그런데 어떤 힘이 우리를 죽은 바둑돌에 밀어 넣었어. 그러자 순식간에 바둑돌로 변해버리는 거야. 나도 바둑돌로 변해버릴 뻔했지만, 유년대사가 온 힘을 다해 정용환을 나한테 주면서 나를 밀어냈어.”

고해가 흠칫하며 물었다.

“정용환이오?”

용완천은 곧바로 금환 하나를 꺼냈다. 그 금환은 송생평의 보물로, 그에게서 유년대사가 빼앗은 것이었다.

용완청이 말했다.

“유년대사가 이 정용환은 관기 노인이 제련한 보물이라고 했어. 그래서 이것 때문에 내가 도망칠 수 있었던 거야.”

고해가 물어보았다.

“바둑판으로 변해버리는 것을 직접 봤습니까?”

용완청이 겁에 질려 말했다.

“봤어. 일부는 백돌로 변했고, 또 일부는 흑돌로 변했어. 그들은 살아 있겠지? 흑흑!”

고해가 용완천을 위로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전에 저의 삼천 명 부하들도 돌로 변했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별일 없을 겁니다.”

용완청은 입술을 깨물고 머리를 끄덕거렸다.

고해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이제야 우리 고부로 찾아온 겁니까?”

고해가 정용종을 떠난 지 수 개월이 지났다.

용완청이 슬퍼하며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고 쫓아왔어. 나도 겨우 도망쳤다고!”

감히 용완청을 죽이려는 놈들이 있다니!

“쫓아와서 죽이려고 했다고요? 대체 누가 말입니까?”

용완청이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한 눈이 먼 늙은이였어. 아! 그리고 한쪽 눈만 있는 남자도 있었어.”

고해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을 떠올렸다.

“눈이 멀었다고? 그리고 한쪽 눈만 있는 사람?”

옆에 있던 고진이 재빨리 두 사람의 초상화를 그려 고해에게 건네주었다.

용완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맞아! 맞아! 바로 이 사람들이야!”

고해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위…… 위양?”

용완청이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

“이위? 예전 그 대봉방 방주? 그 사람 식물인간이잖아?”

“맞습니다. 위양은 이위와 몽태의 스승입니다. 아마 위양이 이위를 깨운 것 같군요. 그런데 이들이 당주님을 죽이려고 했단 말입니까?”

용완청이 기억을 되새기며 말했다.

“거대한 목단꽃에 관해 물어보려고 했던 것 같아.”

“위양. 하! 정말 신중하게 행동하는구나. 용맥이 거기에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쉽게 들어가지 않다니.”

고진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말은 위양이 일찌감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허나 목단꽃에 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으니, 저들도 고민이었겠군요. 그런데 당주님께서 나오시는 걸 봤으니, 어떻게 해야 나올 수 있는지 알고 싶어졌을 겁니다.”

용완청이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 그럴 것이야.”

비주는 빠르게 날아서 목단종에 도착했다.

윙!

비주는 곧 한 산봉우리에 멈췄다.

고해, 고진, 열 명의 악인과 용완청, 용완청 세 하인이 비주에서 내렸다.

상관흔은 비주를 몰고 빠르게 이동했다.

잠시 후 용완청이 깜짝 놀라 말했다.

“저 거대한 목단이 꽃을 피웠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꽃망울만 있었는데!”

저 멀리, 산봉우리의 가운데가 잘린 것처럼 평평한 산지에 삼천 장 크기의 목단꽃이 피어 있었다.

그리고 목단꽃 위의 하늘은 구름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꽃술에는 농후한 안개가 깔려 있었다.

가끔씩 거대한 바둑판 두 개가 보였는데, 하나는 하얀색,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검은색으로 되어 있었다.

하얀색 바둑판 앞에는 백발노인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검은색 바둑판에는 구멍 같은 것이 있었는데, 너무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목단꽃 주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산 바둑돌이나 죽은 바둑돌이나 전부 천명에 따라야 한다!]

고해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산 바둑돌? 죽은 바둑돌?”

하얀 바둑판이 있는 백발노인의 맞은편에 황금색으로 된 거대한 ‘생’(生) 자가 적혀 있었다. 구름이 끼긴 했지만, 여전히 빛이 났다.

검은 바둑판에도 똑같이 황금색 ‘사’(死)가 적혀 있었다.

목단종 주변의 산골짜기에는 사방에 수련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수련자들은 멍하니 목단꽃을 보기만 하고,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했다.

후우우웅!

목단꽃에서 용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진의 눈이 번쩍였다.

“용맥의 소리?”

용완청은 걱정에 찬 표정으로 목단꽃을 바라보았고, 옆에 있는 고해도 눈을 좁혔다.

수련자들이 시선을 돌렸다. 몇 사람이 고해를 알아보았다.

“저, 저 사람은…… 악마 고해?”

또 누군가가 말했다.

“저 사람은 일품당 당주 용완청이잖아? 유일하게 저기서 도망쳐 나온 사람.”

“고해? 고해가 왔어? 고해가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을 풀 수 있을까?”

“고해가 정용종에서 풀었잖아! 이번에도 풀 수 있을까?”

수련자들의 눈빛이 점점 변하고 있었다.

고해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역시 여기저기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고해를 노려보는 자들이 있었다.

그때, 목단꽃이 있는 죽은 바둑돌의 바둑판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흥! 멍청한 놈! 죽고 싶어?”

고해가 눈썹을 움찔했다.

“이건 몽태의 목소리?”

용완청이 놀라 물었다.

“몽태도 바둑판에 들어갔어?”

죽은 바둑돌이 있는 바둑판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몽태! 내 월요를 돌려줘!”

고해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이위? 이위와 위양이 전부 저기로 들어간 건가?”

또다시 분노에 찬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몽태! 너한테도 좋은 결과는 없을 거야! 위양! 내가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는가? 흥!”

고해가 저 멀리에 있는 죽은 바둑판을 보았다.

“이 목소리는…… 교룡 부혈?”

고해의 얼굴에 복잡미묘한 표정이 드리워졌다.

용완청이 걱정하며 말했다.

“왜 대사의 목소리는 없지?”

고해가 용완청를 위로했다.

“당주, 걱정하지 마십시오. 비록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모두 죽지는 않은 것 같군요. 유년대사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을 겁니다.”

용완청도 안정을 찾은 듯했다. 그러나 여전히 걱정에 차 있었다.

“맞아. 대사는 별일 없을 거야.”

그때 주위를 살피던 고진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의부, 주변의 시선들이 점점 악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한테로 오는 것 같은데요?”

고해가 주변을 둘러보자, 역시나 수련자들이 칼을 들고 경계하며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주변에 모인 수련자는 무려 오만 명이나 되었다.

고해가 냉랭하게 말했다.

“저놈들이 나에게 바둑을 두라고 협박하는 것 같구나. 허허!”

고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그런 것처럼 보입니다.”

용완청이 애원하며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 우리 들어갈까?”

“예, 가지요.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을 저도 한번 봐야겠습니다.”

용완청이 진심으로 말했다.

“고마워!”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별말씀을!”

“그렇지만 만약에 우리도 위험하면 어떡해? 고진은 여기에 남아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어.”

고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당주님, 주변의 눈빛들을 보세요. 저도 의부 옆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놈들이 저를 잡아다가 의부를 협박할 수도 있습니다.”

용완청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고해의 일행 열여섯 명은 천천히 목단으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지켜보던 수련자들의 표정이 복잡해 보였다. 앞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또 걱정되어 쉽게 움직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절반 정도 갔을까? 드디어 서른 명의 수련자들이 길을 막아섰다.

“고 선생, 목단 세계에 들어가는 겁니까?”

“우리도 고 선생과 함께 들어갔으면 합니다.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고 선생을 보호해 드리지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수련자들의 표정은 흉악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칼을 힘주어 움켜잡고 있었다.

그들은 삼십 명쯤 되었다.

용완청이 눈을 부릅뜨며 화를 내려고 하는데, 그보다 먼저 고해가 용완청의 앞으로 나섰다.

용완청이 해결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 싸우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몇만 명의 수련자들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금은 삼십 명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나설 것이 분명했다.

“여러분, 저희가 직접 들어가고 싶습니다. 길을 비켜주지 않으시겠습니까?”

고해의 말투는 침착했지만 싸늘했다.

고해가 매섭게 노려보자 수련자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도 그동안 고해의 명성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수련자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고 선생님, 저희는 구이도 만해종의 제자들입니다. 저희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해가 그의 말을 싹둑 잘랐다.

“당신들이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저희가 직접 들어가고 싶습니다. 누가 또 저희의 앞길을 막는다면 그땐 구오도의 사대 종문 제자들과 똑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부릅뜨고 상대방을 째려보는 고해의 눈빛이 더욱 싸늘하게 변했다.

그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구오도 사대 종문의 모든 제자라고 하면 이만 명이 넘지 않는가.

고해는 그들과 같은 상황을 맞이할 거라고 했다.

고해의 살기 어린 눈빛을 바라보며 사대 종문의 결과를 다시 생각해본 수련자들은 마음이 얼어버렸다.

고해는 싸늘한 눈빛으로 맨 앞에 있는 수련자를 째려보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

순간 수련자는 자신이 너무 당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는 쉽게 조종할 수 있는 인형이 아니었다.

구오도 종문 제자들 대부분이 그의 손에 죽었는데 자신이 왜 바보같이 나댔을까.

고해는 점점 수련자들과 가까워졌다. 그의 눈빛은 사람을 골라 삼켜버리려는 야수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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