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삼생만물
“축하하네. 지금까지 잔국에 도전한 사람 중 자네가 유일하게 잔국을 풀어낸 사람이네!”
관기 노인의 꼭두각시는 낮은 소리로 말했지만,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모든 사람의 귓속에 전해졌다.
수군수군.
외부에서 지켜보고 있던 오만 수련자들이 웅성거렸다.
“설마? 고해는 바둑돌을 올리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푼 거야? 이건 반칙이지!”
“불공평해. 삼 일만 앉아 있으면 잔국이 풀린다고? 그런 건 나도 할 수 있어!”
용완청과 고진도 망연한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관기 노인의 꼭두각시를 바라보았다.
잔국이 모두 풀렸다고?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관기 노인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자네는 이미 바둑판을 풀었으니 어서 바둑알을 올리게! 나의 전승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나?”
용완청이 기뻐하며 말했다.
“고해, 당신이 바둑판의 문제를 푼 거야? 당신이 전승받으면 살아 있는 바둑판과 죽은 바둑판은 끝나는 거야? 그럼 대사님도 풀려나는 거지?”
고진도 기뻐하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의부, 그게 무엇이든 일단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고해는 그 순간에도 바둑판 앞에 앉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고해는 구공자가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하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구공자가 된 후 사방을 돌아다니며 대타를 찾지 않았던가?
다른 사람은 무엇을 전승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고해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팔공자? 내가 전승받고 팔공자가 된다고?
고해는 침묵했다.
용완청이 초조해하며 말했다.
“고해, 얼른 전승을 받아. 그러면 대지용맥도 당신 것이 될 거야. 나의 인용옥을 줄게!”
대지용맥?
그것은 고해가 망설이지 않고 이곳에 오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전에는 대지용맥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요정천이 선물한 ‘천조요약’을 보고 대지용맥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날 대지용맥을 얻을 기회가 바로 앞에 놓였는데 이것을 포기할 것인가? 이번에 포기하면 또다시 기회가 돌아오기는 할까?
고해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주변의 수많은 수련자들은 고해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고해가 대체 왜 망설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한 고해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천천히 바둑알을 잡아서 천원에 올려놓았다.
쿵!
고해가 바둑알을 올리자, 목단꽃이 눈부신 황금빛을 내뿜고 서서히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바둑판과 죽은 바둑판을 제외한 모든 것이 투명해졌다. 마치 그가 투명하고 거대한 꽃 위를 밟고 있는 것만 같았다.
황금빛은 목단꽃 밑에 위치한 하나의 거대한 용 머리에서 뿜어져 나왔다.
목단꽃은 황금빛 거대한 용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머리만 삼만 장의 크기, 흉포한 표정으로 포효하는 용 머리는 목단꽃이 그 위를 짓누르고 있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초조함과 분노에 찬 표정만 지었다.
게다가 목단꽃과 용 머리 사이에는 여덟 가지 색의 주먹만 한 목단꽃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
여덟 가지 색 목단꽃은 서서히 회전했는데, 여덟 가지 빛이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그런데 그 빛 속에는 작은 글씨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저게 바로 대지용맥인가?”
“저 주먹만 한 목단은 뭐지? 위에 수많은 글씨가 쓰여 있는 것 같은데?”
“저 여덟 가지 색 목단꽃이 바로 관기 노인의 전승인가?”
웅성웅성……!
외부의 오만 명 수련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수백 명이 날아오르더니, 거대하고 투명한 목단꽃을 향해 돌격했다.
“내 것이야!”
“빌어먹은 놈, 내 것이니까 덤비지 마!”
“내 것이야, 내 것!”
그때였다.
휘이이이잉……!
목단꽃에서 가공할 흡입력이 발생하더니 날아들던 수백 명이 전부 죽은 바둑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 바둑알이 되어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계속해서 천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달려들었지만, 그들 역시 전부 죽은 바둑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제야 수련자들은 안정을 찾고 망연하게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불공평해. 왜 고해 일행은 살아 있는 바둑판에 들어갈 수 있고, 우리는 죽은 바둑판으로 빨아들이는 거냐고?”
“설마 고해가 살아 있는 바둑판을 풀었으니 다시 살아 있는 바둑판 구역에는 아무도 진입할 수 없는 것일까?”
수많은 수련자들은 거대하고 투명한 목단꽃 위를 바라보았다.
대지용맥과 관기 노인의 전승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욕망이 들끓었다.
하지만 볼 수는 있어도 만질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용완청은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았다. 그가 밟고 있는 바닥은 이미 투명해져서 용맥이 나타나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용맥보다 더 굉장한 물건이 있었다.
용완청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이것은, 이것은……!!”
고해가 용완청을 힐끗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관기 노인의 꼭두각시에게 물었다.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죽은 바둑판 쪽에는 왜 세 가지 바둑알이 있습니까? 검은색, 흰색, 그리고 투명한 바둑알까지. 관기 노인님이 정답을 남겨두지는 않으셨습니까?”
용완청과 고진 등은 고해의 질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왜 죽은 바둑판에 관해 묻는 걸까?
그런데 맞은편 백발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답은 남겨두었네. 자네의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삼은 만물의 근원으로 세 가지 바둑알은 세 개의 형태를 대표하는 것일세.”
고해는 인상을 찌푸리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세 개의 형태?’
한참을 생각하던 고해의 눈빛이 바뀌었다.
“삼은 만물의 근원이라 하셨는데, 삼은 만상을 망라하고 있는 것입니까? 예전에 불교에도 이와 같은 해설이 있다고 들은 적 있습니다. 불에는 삼세불이 있다고 하지요. 과거, 현재, 미래. 이 바둑판도 그런 것입니까?”
맞은편 관기 노인이 고해를 보며 웃었다.
“나도 잘 모르겠네. 본체가 나한테 남겨주고 간 것은 이것뿐일세. ‘삼(三)’, 만상을 망라하는 것. 모든 것은 자네가 직접 정답을 찾게. 계속 바둑알을 올려 본체가 자네에게 전승하는 것을 받아들이게!”
고해는 백발노인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바둑판을 보니 백발노인은 이미 백돌을 올려놓고 있었다. 깊은숨을 들이쉬며 고해도 다시금 바둑알을 올려놓았다.
착!
우르르!
거대한 투명 목단꽃이 크게 흔들리고 갈라진 흔적이 나타났다.
밑에 있는 주먹만 한 여덟 가지 색 목단꽃도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고해가 다시금 바둑알을 올린다면 여덟 가지 색 목단꽃은 거대한 투명 목단꽃을 깨고 고해에게로 다가올 것 같았다.
백발노인이 백돌을 올려놓고 계속하여 말했다.
“바둑알을 올리게!”
고해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 전승은 무엇입니까? 저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지요?”
“본체는 유언을 남겼지. 사실 자네가 아까 잔국을 풀었을 때 이미 최고의 전승을 받았네.”
“네?”
“자네는 벌써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을 깨닫지 않았는가? 거기다 ‘천도무상’을 깨달아서 자연스럽게 백성은 바둑알로 변하는 것도 깨달았지. 본체의 전승 중에서 ‘천도전승’이 바로 근본이고, 나머지는 미결일세.
저기 여덟 가지 색 목단꽃 내부는 그저 ‘술법전승’일 뿐이네. 술법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영원히 천도를 이길 수는 없지. 목단꽃은 꽃 중의 왕이고, 왕의 전승은 본체가 생각한 조정에서 벼슬하는 도리여서, 자네가 나라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네.”
“관기 노인은 그걸 알면서 왜 직접 나라를 세우지 않은 것입니까?”
“그것은 조정에서 벼슬하는 것이 본체가 가장 잘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세. 최고가 될 수 없었던 거지. 하지만 바둑의 예절로는 천하제일이 될 수 있었기에 관기 노인은 나라를 세우는 것을 포기하고 바둑 예절로 하늘과 바둑을 두게 된 것일세.”
“나라를 세우는 것이 관기 노인의 장점이 아니다? 그럼 이 전승도 최고라고 할 수는 없겠군요.”
“그래도 대부분의 황조(皇朝)와 제조군왕(帝朝君王)보다 강할 거네.”
“만약 아무도 이 잔국을 풀지 못했다면 최고의 전승인 ‘천도전승’(天道傳承)도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저 ‘술법전승’과 ‘용맥전승’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일단 계속 바둑알을 올리게. 여덟 가지 색 목단꽃이 체내에 들어가는 데 저항하지 말게. 여덟 가지 색 목단꽃 내부의 술법은 천만 가지이고, 모두 본체의 낙인이 새겨져 있지.
온몸의 긴장을 풀고, 저항하지도 말고 여덟 가지 색 목단꽃이 자네 기억을 읽은 다음 자네 체내에 본체의 낙인을 새길 수 있도록 가만히 있게나. 앞으로 자네는 혁천각을 전승받을 제자일세. 혁천각 제자는 자네가 조종할 것이고, 자네의 명을 받들 것이네.”
고해는 순간 실눈을 떴다.
“저의 기억을 읽고, 영혼의 깊은 곳에 관기 노인의 낙인을 새긴다?”
“그렇다네. 그것이 술법전승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세.”
고해는 손에 바둑알을 집고 있었다. 원래라면 바둑알을 올렸겠지만, 그 말을 듣고 손을 거두었다.
영혼 깊은 곳에 관기 노인의 낙인을 새긴다고?
그럼 앞으로 구공자처럼 팔공자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하는 것 아닐까?
고해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의 기억을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죽은 사람일지라도.
용완청은 고해가 바둑돌을 거두자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고해, 얼른 바둑알을 올려. 관기 노인은 이미 죽었잖아. 그 술법전승을 신주대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원하고 있는데 중단하는 거야?”
고해는 고개를 저었다.
“이익이 크지만, 위험성도 큽니다. 당주님은 관기 노인의 낙인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십니다.”
용완청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
그때 옆에 있던 고진이 깊은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의부, 아니면 제가 술법전승을 받는 건 어떻겠습니까?”
고해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진을 바라보았다.
“네가?”
“의부, 어머니의 죽음을 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무능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위해 복수하고 싶습니다.
아버지도 노력하고 계시는데, 제가 아버지의 걸림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도 조금은 부담을 나누고 싶습니다. 눈앞에 놓인 기회를 위험하다 해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 위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예전에 의부와 어머니가 눈 속에서 금방이라도 얼어 죽을 것만 같은 아이를 주웠을 때, 아이가 산 것이 이미 큰 복이었습니다. 게다가 이처럼 굉장한 전승까지 있으니 위험성이 큰들 어떻습니까? 아무리 위험해 봤자 죽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고해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는 고진이 모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안 된다!”
용완청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고해, 왜 그래? 관기 노인은 이미 죽었잖아. 뭐가 두려운 거야? 하늘의 천벌을 받고 관기 노인의 육체와 정신이 전부 쇠멸되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