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금단경
외부에 있던 고진은 그제야 뭔가를 깨닫고 말했다.
“이제야 알겠어. 의부가 조금 전에 넘긴 황금 바둑돌은 바로 의부 자신이야. 의부와 이호연의 결계가 굳게 닫혀 서로의 결계를 깨지 못하니, 의부께서 이호연이 마음껏 결계를 열 수 있게 꼼수를 쓰신 거였어!”
한 악인이 의아한 듯 물어보았다.
“대공자님, 무슨 말씀입니까?”
고진이 흥분하며 말했다.
“황금 바둑돌은 바둑을 두는 사람의 증명과도 같아. 그런데 세 번째 황금 바둑돌을 위양이 훼손해 버렸어. 의부가 가지고 있는 바둑돌은 황금 바둑돌의 분신이야!”
“예?”
“바둑을 두는 속성은 있지만, 예전의 황금 바둑돌과는 다르다는 거지. 의부의 황금 바둑돌은…… 바로 의부 자신이야! 그런 황금 바둑돌이 이호연의 결계에 들어갔으니 이건 마치 의부께서 이호연한테로 넘어간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지!”
그것도 이호연이 주동적으로 황금 바둑돌을 원하고 있던 터였다.
“하하하! 저기에 있는 황금 바둑돌은 허상의 황금 바둑돌에 불과해. 진짜가 아니라 가상의 바둑돌이란 말이지!”
바둑판에서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졌다.
그 광경을 본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해를 죽이려던 이호연이 순식간에 피습을 당한 것이다.
수련자들이 눈을 비비며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 이게 꿈은 아니지?”
꿈이 아니었다. 고해는 금택 광채가 나는 갑옷을 입고, 한 손에는 혈도를, 다른 한 손에는 골도를 들고 이호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라, 이호연!”
“죽어, 고해!”
이호연의 오른손도 고해를 향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황금 바둑돌 두 알이 날아갔다.
두 사람은 황금 바둑돌을 잡을 시간이 없었다.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 먼저였다.
쾅!
고해의 두 칼이 이호연의 우장과 부딪쳤다.
순간, 그들 발밑에 있던 돌들이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파자자작!
이호연은 당황한 표정으로 더듬거렸다.
“뭐, 뭐지?”
조금 전에 왼손이 칼에 베이면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해골들이 나타나서 그의 피와 살을 긁어먹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온몸을 긁어먹을 것 같았다.
그가 아무리 강해도 한 손으로 고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왼팔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이호연은 점점 초조해졌다.
이호연이 악을 쓰듯 소리쳤다.
“끊어버려!”
윙!
이호연의 왼쪽 어깨가 점점 황금색으로 변했다. 왼쪽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더니, 왼팔이 잘라져서 저 멀리 날아갔다.
검은 기운에 먹힌 왼팔은 어느새 뼈만 남아 있었다.
흑기운은 할 일을 다했다는 듯 골도로 돌아왔다.
이호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왼팔이 이렇게 없어지다니…….”
“다시 받아봐라!”
고해는 모든 힘을 혈도에 집중시킨 다음 이호연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이호연을 쉽게 베지는 못했다. 황금의 힘이 오른팔에 집중되면서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때 황금 바둑알 두 알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누구도 선뜻 주울 수 없었다.
유년대사와 용완청도 곤경에서 벗어나 이호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쿠궁!
하지만 굉음이 들리더니 결계에 가로막혔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뭐야? 아직도 결계가 있어?”
황금 바둑알이 고해와 이호연을 ‘바둑을 두는 사람’으로 묵인하면서 결계로 보호했다. 그 바람에 다른 사람들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은 목표물을 바꾸고 빠르게 모여들었다.
고해를 도울 방법이 없다면 신기영 제자들이라도 죽여야지!
신기영 제자들은 소름이 돋았다.
모두가 그들을 노려보면서 포위하고 있었다.
한 신기영 제자가 소리쳤다.
“멈춰! 오지 마! 영주님이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수련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흥! 처음부터 우리를 죽일 속셈이었잖아?”
“저들을 죽이자! 죽여!”
“죽이자!”
한편, 이호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해를 보며 말했다.
“어떻게 네가 내 손에서 나타날 수 있지?”
고해가 비웃으면서 말했다.
“잊었나? 몽태와 위양이 부혈과 싸울 때, 부혈은 반항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항할 수 없었던 거다. 투명한 바둑돌은 가상의 바둑알이고, 흑돌과 백돌이야말로 진짜 바둑알이었거든. 그래서 방어만 하고 공격은 할 수 없었지!”
이호연은 그 말을 듣고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 그 여유는 뭐냐? 뭐가 그렇게 자신만만하지? 공격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왜 그렇게 자신만만하느냔 말이다!”
고해가 차가운 조소를 지었다.
“이걸 공성계(空城計)라고 하지. 내가 자신만만하지 않으면 네가 걸려들까? 그리고 내가 어떻게 너의 결계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
이호연이 눈을 부릅떴다.
“용완청과 유년대사, 그리고 세 하인을 이용하여 나를 속인 건가?”
“내가 주동적으로 주면 네놈이 소중히 여겼을까? 사람은 힘들게 얻은 물건만 애지중지하지. 네놈도 마찬가지고. 하하하! 이호연, 힘들게 얻은 물건이라고 해서 전부 좋은 건 아니니라!”
“이 빌어먹을 놈이 사람을 바둑돌로 사용해서 나를 속여? 내 결계에 들어왔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너는 선천경에 불과해! 선천경 따위가 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죽기만을 기다려라!”
고해가 기성을 내지르며 전체 힘을 한곳에 끌어모았다.
“흐아아아아압!!”
이호연이 이를 갈며 말했다.
“혈도가 너의 힘을 원영경까지 끌어주겠지. 근데 원영경에도 차이가 있다는 걸 아느냐? 난 벌써 삼영(三婴)을 모았다. 삼영원영(三婴元婴)이란 말이다! 내 팔이 잘렸어도 너는 내 상대가 될 수 없어!”
쿵! 쾅!
이호연의 몸에서 황금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천천히 고해를 밀어냈다.
고해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하하하! 안 되겠지? 네놈이 금단경이 아닌 이상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이제 죽어라!”
이호연이 비열하게 웃었다.
고해도 모든 힘을 끌어모았지만, 이호연의 힘을 넘어설 수 없었다.
이호연이 싸늘하게 말했다.
“선천경은 선천경에 불과해! 절대 금단경이 될 수 없다! 죽어라!!”
바로 그때!
후우우우!
어디선가 세찬 바람이 불어오더니 한 줄기, 한 줄기 황금빛이 고해의 몸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호연이 깜짝 놀라서 눈을 치켜떴다.
“뭐야? 기수? 어디서 온 기수지?”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하하하! 조나라! 이건 조나라 백성들이 내게 건네는 감사의 인사다! 이건 조나라의 수많은 공덕이고, 조나라의 기수란 말이다! 기수! 마침 잘 왔어!”
쿵!
고해의 몸에서 거대한 소리가 들렸다.
단전에서 용 모양의 진기가 구체 모양의 진원에 달라붙었다.
삼만 명의 괴물 부하를 죽여 모은 진기가 전부 진원으로 변했다.
단전 속에서 불던 회오리바람도 구체 모양의 진원에 달라붙었다.
액체로 된 진원이 소용돌이처럼 빙빙 돌았다.
경맥의 모든 진기가 전부 진원으로 변했다.
순간, 진원이 고해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더니 모든 경맥을 따라 흘렀다.
후우우우웅!
진원이 경맥을 감싸면서 혼연일체가 되었다.
동시에 몸에 있는 모공이 전부 열리더니, 고해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고해가 낭랑하게 웃으며 말했다.
“혼연일체. 사람이 단을 녹이면 내가 바로 금단이다! 하하하하! 이게 바로 금단경이구나!”
위이잉!
순간, 혈도가 더 많은 힘을 고해의 몸속으로 보냈다. 고해 주변의 기운이 열 배 넘게 커졌다.
이호연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뭐, 뭐야? 아, 안 돼에에에!”
쿵!
거대한 소리가 울리면서 고해의 기운이 폭발했다.
모든 힘을 다해 칼을 휘두르자 핏빛 기운이 하늘로 솟구쳤다.
서걱!
이호연의 오른팔이 날아갔다.
“크아악!”
절생도에 베인 순간 흑기가 나타났다.
푸헉!
이호연은 피를 토했다.
두 팔을 잃은 그는 구덩이 속으로 쓰러졌다. 머리도 갈라진 듯 뇌수마저 흘러나왔다.
이호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아니…… 어, 어떻게, 어떻게 돌파한 거……?”
고해가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
“금단경이면 너를 죽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는 바닥에 떨어진 황금 바둑알 두 알을 주웠다.
그때쯤에는 외부의 전투도 일단락되었다.
용완청이 제일 먼저 환호했다.
“고해가 이겼다!”
육만 명의 수련자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우와!”
“죽여버려! 이호연을 죽여버려!”
“고 선생이 이겼다! 고 선생이 이겼어!”
“드디어 살았다!”
수련자들이 승리한 고해를 보며 환호했다.
고해는 양손에 골도와 혈도를 들고 싸늘한 눈빛으로 이호연을 내려다보았다.
이호연은 그 상태에서도 죽지 않았다. 그러나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저 겁에 질린 눈빛으로 고해를 바라볼 뿐이었다.
밖에 있던 수련자들은 경악했다.
다른 건 볼 수 없어도 고해와 이호연의 혙투는 생생하게 보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신기영 영주가 고해에게 패했다.
선천경을 돌파한 지 일 년밖에 안 된 고해가 거물인 이호연을 이긴 것이다.
그들은 이제 고해가 두렵게 느껴졌다.
고해는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다.
고해를 건드리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
모두가 흥분하고 있을 때,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하늘로 올라갔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절반은 흑포, 절반은 백포? 이건 미생인? 예전에 선천잔국계에서 본 적 있어!”
“뭐? 미생인이 저 나무 뒤에 숨어 있었던 거야”
주변의 수련자들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진도 미생인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놀란 그가 급히 인사를 올렸다.
“고부의 고진이 미생인께 인사 올립니다.”
미생인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죽은 바둑돌의 바둑판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경이의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뭐지? 왜 미생인은 바둑 분신이 필요 없는 거야?”
바둑판 안으로 들어간 미생인이 고해에게 다가갔다.
유년대사는 상처를 막으면서 멍하니 미생인을 보고 있었다.
“미생인?”
이호연은 반항할 힘도 없었다. 고해는 이호연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더니, 이내 황금 영패를 손에 쥐었다.
그때 용완청이 결계 밖에서 소리쳤다.
“신기영패가 아니야! 팔찌야, 팔찌! 인용옥이 팔찌 안에 있어!”
고해는 머리를 숙이고, 백골이 된 이호연의 오른쪽 팔목을 보았다.
백골이 된 팔뼈를 발로 차낸 고해는 팔찌를 주워서 살펴보았다.
슥!
그때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유년대사는 상처를 막으며 경이에 찬 눈으로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미생인…….”
미생인이 덤덤하게 말했다.
“유년, 왜 이렇게 되었는가? 유년답지 못하네?”
유년대사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건 관기 노인의 바둑판입니다. 나는 ‘바둑을 두는 사람’도 아닌데 별수 있습니까?”
미생인은 고개를 저으며 가까이에 있는 이호연을 내려다보았다.
용완청이 굳은 표정으로 미생인을 보며 물었다.
“미생인 선배님, 이번에 저승에서 뭐 좀 알아내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