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사소한 일이 많다
“용완청을 보호하겠다며 천도해에 갔다고 합니다!”
이신기가 눈을 좁혔다.
“용완청? 일품당주? 천도해? 젠장! 멍청한 것들!”
“네?”
이신기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놈도 일품당 당주 용효월이 죽은 걸 알잖아? 천도해는 위험한 곳인데 겁도 없이 가다니. 보잘것없는 종문이지만 그곳이 혁천각이 있던 곳이란 걸 왜 몰라?”
그는 어리석은 조카 때문에 은근히 짜증이 났다.
“관기 노인이 죽어서 엄청난 요괴들이 계략을 짤 텐데…… 거기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놈들이 어디 한둘이냔 말이다.”
“네? 그럼 어떡합니까?”
이신기가 냉랭하게 말했다.
“얼른 돌아오라고 서신을 보내라! 천도해는 쉽게 보면 안 돼!”
“예! 지금 바로 보내겠습니다!”
“아! 천도해에도 현무가 있을 것 같은데…….”
“현무의 몸체가 거북이와 뱀으로 합체되지 않았습니까? 거북이의 몸과 뱀의 몸으로 분리되어서 용으로 승천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신기가 냉랭하게 웃었다.
“용족으로 진화한다고? 하하! 현무지존이 살아 있을 때 현무족 사람들은 용으로 진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용은 용이고, 현무는 현무야. 현무의 힘은 용족에 밀리지 않아!”
“소인도 잘 몰랐습니다!”
“별거 없다. 하늘이 현무족의 신까지 없애버렸어. 한 종족의 신이 죽었으니 그 종족은 점점 쇠퇴해졌고 새로운 신을 원했지. 그러나 몇만 년이 걸려야 새로운 신을 만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열흘 동안 이동한 비주는 육지에 도착해서 한 궁전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궁전 밖에서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흐느끼고 있었다.
“삼촌, 큰형님의 복수를 해주십시오!”
“삼촌, 형님이 너무 잔인하게 죽었습니다.!”
“가주(家主)님, 호연이 잔인하게 죽었단 말입니다.”
“호연의 복수를 해주십시오!”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비주까지 들려왔다
비주에 있는 이신기의 눈동자도 흔들렸다.
그는 대성통곡하는 사람들과 옆에 있는 관을 바라보았다.
‘호연이 죽었다고?’
이부(李府)의 대전 내부.
이신기는 오른손으로 호랑이 머리를 한 의자 손잡이를 만지면서 신기영 제자들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대전 안에는 투박해 보이는 관이 놓여 있고, 그 앞에 많은 사람들이 공손하게 서 있었다.
이신기가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너의 말은, 고해가 호연이를 죽였다는 거냐?”
신기영 제자가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하하하하!”
이신기가 냉랭하게 웃고는 말했다.
“신기영을 맡겼더니 감히 나를 속이고 이런 엉뚱한 짓을 벌여?”
신기영 제자는 예상치 않은 이신기의 반응을 보고 겁에 질렸다.
“제, 제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옆에 있던 화려한 옷을 입은 남자가 그를 거들었다.
“삼촌, 큰형님을 죽인 사람은 고해입니다.”
이신기는 싸늘하게 웃으며 손으로 몇 사람을 가리켰다.
“여봐라! 이놈들을 당장 끌고 나가라!”
“예!”
한 무리의 부하들이 우르르 들어오더니, 신기영 제자들을 끌고 나가려 했다.
둘째 공자가 놀라서 소리쳤다.
“사, 삼촌, 왜 이러십니까?”
다른 신기영 제자들도 잔뜩 겁에 질렸다.
“왜, 왜 그러시는 겁니까?”
“공자님, 살려주십시오!”
“가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전부 둘째 공자님이 시켰습니다. 가주님, 살려주십시오!”
그러나 이신기는 명을 거두지 않았다.
“모두 끌고 나가서 죽여라!”
잠시 후.
밖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악!”
“악!”
“아악!”
비명을 들은 나머지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서 부들부들 떨었다.
둘째 공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삼촌……!”
이신기가 고개를 돌리면서 차갑게 말했다.
“너는 모든 걸 내려놓고 북해에 가서 섬이나 지키거라!”
둘째 공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사정을 해서라도 이곳에 남고 싶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사람이 그를 잡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둘째 공자, 대공자를 위하는 건 좋으나 주인님을 속이셨잖습니까? 주인님이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만족하세요.”
둘째 공자는 고개를 들어 이신기의 냉랭한 얼굴을 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신기는 싸늘한 눈빛으로 대전 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지금부터 이호연이 천도해에 가서 무슨 일을 했는지 설명해 봐라!”
입을 닫고 있었던 덕분에 살아남은 신기영 제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신기는 손으로 호랑이 의자를 두드리며 조용히 듣기만 했다.
신기영 제자의 설명이 끝나자, 대전 내부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신기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뒤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허허! 호연이 이놈, 정말 사고 하나는 제대로 쳤구나. 효월공주가 너의 손에 죽다니……. 하아아.”
이신기는 일어나서 관 앞으로 다가갔다.
스르륵.
관을 열자 냉기가 확 올라왔다.
이신기는 이호연의 시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머리는 폭발하여 없어졌고, 몸도 상처투성이였다. 거기다 양팔은 백골만 남아 있었다.
이신기는 싸늘한 표정으로 손을 뻗어서 천천히 백골이 된 팔을 잡았다.
미간을 찌푸린 그가 말했다.
“골수까지 빼먹은 건가?”
옆에 있던 한 남자가 말했다.
“가주님, 어찌 되었건 큰형님의 죽음은 고해와 연관이 있습니다.”
이신기의 눈이 가늘어졌다.
“고해…….”
그때, 대전 밖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신기는 명을 받아라!”
대전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바깥쪽을 바라보았다.
이신기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빠르게 대전을 나갔다.
대전 밖에는 관포를 입은 한 남자가 거대한 학에 서서 대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신기가 공손하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올렸다.
“초민 이신기, 천사님께 인사 올립니다.”
학 위에 있는 관료가 말했다.
“성왕님께 그대에게 삼 개월 내에 신기영을 다시 조직하라는 명을 내리셨다!”
이신기는 이마를 살짝 찌푸렸지만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신기영이 정리되면 성왕님을 뵙도록 하게! 그럼 이만 가보겠네!”
“조심히 가십시오.”
학이 땅에서 솟구치더니, 날개를 휘저으면서 저 멀리 날아갔다.
사람들은 이호연의 죽음을 벌써 까먹은 듯 싱글벙글했다.
이신기는 학이 날아간 곳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신기령은 어디 있느냐?”
한 신기영 제자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고해가 가져갔습니다.”
이신기는 눈살을 찌푸렸다.
“또 고해야? 하! 조도(朝都)로 가기 전에 고해를 만나야 하나?”
* * *
대한황조, 충천전.
고해는 머리에 평천관을 쓰고 흑룡포를 입고 있었다.
용상에 앉은 그는 이열로 늘어서 있는 관료들을 내려다보았다.
왼쪽에는 고진과 늙은 총관들이 서 있었고, 오른쪽에는 고선무, 진천산, 도파, 몽태 등이 서 있었다.
고해는 손으로 용상의 손걸이를 탁! 치면서 왼쪽에 있는 관료들을 노려보았다.
눈빛을 받은 관료들이 흠칫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고해가 냉랭한 눈빛으로 관료들을 보며 말했다.
“황조를 건립한 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 관직을 파는 사람들이 나타나? 흥! 돈만 있으면 관직을 살 수 있다는 건가?”
한 관료가 말했다.
“폐하, 영토가 너무 넓어서 관리가 허술한 곳이 많사옵니다. 인재 역시 나라를 관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옵니다. 하여 각 지역에서 국고도 채울 겸 그러한 일을 하는 것 같사옵니다!”
고해가 싸늘하게 조소를 지었다.
“관직을 사는 사람들이 전부 가족들 아니더냐? 허허! 국고를 너희들이 채운다고?”
관료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입을 닫았다.
고진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총관들을 대신하여 말했다.
“부황, 실제로 인력이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 때문에 행정에 공백이 생기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럼 일단 멈춰! 내가 너에게 과거시험을 준비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과거시험으로 인재들을 선발하면 되는 거 아니냐?”
고진도 바로 대답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몽태!”
고해가 부르자, 몽태가 한 발 나서며 대답했다.
“예.”
“벌써 한 달이 되었는데 금의위는 어찌 되어 가는가?”
“삼천 명을 모았습니다만, 아직 만족할 정도는 아닙니다. 일단은 그들로 운영을 하면서 천천히 키워나갈 생각입니다!”
고해가 영패 하나를 내밀었다.
“좋아! 짐이 너에게 구룡령을 하나 주겠노라! 각 지역에서 관직을 파는 자, 뇌물 받는 자, 작당하여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 백성을 반란시키는 자는 전부 대한 법률에 따라 엄벌하거라! 구룡령이 가는 곳은 내가 가는 곳이나 다름없다!”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몽태는 영패를 받고 자리로 돌아왔다.
옆에 있던 늙은 대신들은 굳은 표정으로 눈치만 봤다. 그들은 곧 불어닥칠 피의 폭풍을 예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파!”
“네!”
“병마를 데리고 각 성에 가서 금의위를 도와주거라!”
“폐하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도파에게도 명을 내린 고해가 고진을 보면서 말했다.
“구오도의 또 다른 다섯 개 구역과 교섭한 건 어떻게 됐느냐?”
고진이 말했다.
“부황, 세 곳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나머지 두 곳은 결정을 미적거리고 있습니다.”
“진천산!”
“예, 폐하!”
“네가 변방 부대를 이끌고 그 두 곳을 쳐라! 그리고 협조를 잘하는 세 곳에는 상을 주고 거두어들여라!”
“폐하의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고선무!”
“네!”
“짐은 능력 있는 군대가 필요하다! 네가 병사와 말을 선발하고 훈련시켜라!
“예, 폐하!”
“아무리 상대가 강해도 부숴버릴 수 있는 대군이 필요하다! 짐은 대한황조에 강력한 수련자뿐만 아니라 대군도 있기를 원한다!”
“폐하의 명을 받들어 강력한 대군을 만들어내겠사옵니다!”
아무도 고해의 명령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한 시종이 대전 밖에서 공손하게 말했다.
“폐하, 상관흔이 왔습니다!”
고해가 말했다.
“뭐? 들어오라고 해!”
상관흔은 대한황조의 관직을 수락하지 않으니 고해도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조회 시간에 무슨 일로 왔을까?
상관흔이 대전에 들어서자 대신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상관흔이 공손하게 말했다.
“폐하, 대전 밖에 요정천이 왔습니다. 불길한 징조가 보입니다.”
고해도 의아해했다.
“뭐? 요정천?”
건국 전, 고해가 요정천을 도와 거북이 등껍질 바둑판을 풀어주었고, 요정천은 고해에게 ‘천조요약’을 건넸다.
고해의 부탁이라면 발 벗고 나서겠다고 했는데, 지금 그 요정천이 왔다는 건가?
고해는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용상에서 일어나 상관흔과 함께 대전을 나섰다.
대신들도 고해를 따라나섰다.
요정천이 광장에서 고해를 보며 웃고 있었다.
“고 선생, 아니, 대한 폐하! 축하드립니다! 나라를 세우자마자 폐하가 되었군요!”
“요 선생, 과찬이십니다. 한데 여기는 무슨 일로……?”
“좀 안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만, 고 선생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네?”
“고 선생이 백수반도를 가지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천도해의 선천경, 금단경 수련자들이 몰려오지 않았습니까? 지금 고 선생이 대지용맥까지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원영경 섬주, 종주, 군왕들까지 지금 구오도로 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십 곳의 종문이 힘을 합쳐서 고 선생의 대지용맥을 뺏으려고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고해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이십 곳의 원영경 종문이?”
그때였다. 요정천이 황급히 고개를 돌려 밖을 보더니 말했다.
“이런! 제가 조금 늦게 왔나 보군요. 저들이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남쪽 방향에서 이십 개의 무지개가 나타났는데, 무지개가 가는 곳마다 강풍이 불었다.
곧 이십 개의 무지개가 충천전 앞에 나타났다.
세찬 바람이 불어서 눈도 뜨기 힘들 지경이었다.
고해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들자, 하늘에서 이십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