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신비한 상관흔
바람이 불면서 머리와 옷자락이 휘날렸다.
이십여 명의 남녀가 충천전 광장에 서서 굳은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천도해의 소식이 전해지자 종문에서도 고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심지어 오대 종문을 멸망시키고 이호연까지 죽였으니 고해의 실력을 가늠하기에는 충분했다.
금단경? 사람들은 고해의 수련 능력은 보지도 않았다. 그게 아니라면 원영경 수련자를 이십 명이나 보낼 이유도 없었다.
광장에 있던 한 장수가 소리쳤다.
“화살 준비!”
경비병들이 활을 당겼다.
고해가 손을 들어서 행동을 멈추게 했다. 옆에 있던 고진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고해가 냉랭하게 말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소이까?”
이십 명의 수련자는 요정천을 보고도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아마도 요정천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맨 앞의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고해를 보며 말했다.
“고 선생, 난 팔육도의 태원종 종주입니다. 듣기로는 고 선생이 대지용맥을 얻었다 하더이다.”
다른 수련자가 말했다.
“물어볼 것도 없어! 용맥이 없으면 황조도 세울 수 없잖은가! 대지용맥이 저 옥새 안에 있는 게 분명해!”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대지용맥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는지……?”
“대지용맥을 넘기면 목숨은 살려주지!”
“그래! 대지용맥을 넘기거라!”
사람들이 아우성치자,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손을 저으며 제지하고 말했다.
“고 선생, 대지용맥을 내놓으시지요.”
고해의 얼굴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여러분도 구오도 종문이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사람들 중 몇 명이 움찔했다.
고해가 부릅뜬 눈으로 그들을 보며 말했다.
“대지용맥을 빼앗으러 왔을 때는 뒷일도 각오하시고 왔겠지요? 제가 여러분들의 종문을 무참하게 없애버릴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그중 한 사람이 펄쩍 뛰며 분노했다.
“저놈의 망언은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같이 죽여버리지요!”
고해의 표정이 더욱 싸늘해졌다.
“하! 제가 대지용맥을 얻어다는 걸 아시면서도 저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고해의 말에 원영경 고수들이 멈칫했다.
절반이 넘는 수련자들이 기가 죽어서 눈치를 봤다.
그 순간, 한 수련자와 요정천이 눈을 마주쳤다.
요정천이 슬쩍 고개를 끄덕인 후 고해를 향해 소리쳤다.
“흥! 고해! 우리 종문까지 없애버리겠다는 건가? 사실이라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네! 여러분, 고해를 죽여버립시다! 이 황조 별거 없습니다!”
“좋아!”
“고해를 잡아라!”
슥슥슥!
여기저기서 원영경들이 칼을 꺼내 들었다.
바로 그때,
후우웅!
바람이 불어오고, 먹구름이 사방을 뒤덮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안 돼!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이야!”
동시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해를 잡으려고 달려들었다.
그 와중에도 고해는 뒷짐을 쥔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저 대진은 뭐야?’
요정천은 망연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쿵!
순간, 먹구름이 일대를 뒤덮고, 고해를 향해 돌진하려던 수련자들이 방향을 잃었다.
“어디 갔어? 이게 무슨 일이야?”
“방향을 잃은 것 같아! 위로 날아가!”
“악! 거기 아니야!”
원영경 고수들이 먹구름 속에서 헤매며 소리쳤다.
그때였다.
“역발산혜기개세!”
“역발산혜기개세!”
……!
마치 스무 명의 항우가 울부짖는 것처럼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쿵!
“으아아악!”
“살려줘!”
굉음과 비명이 끊이지 않고 계속 들렸다.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고 먹구름을 지켜보았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능력을 지닌 수련자들이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고해는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어찌 된 일이지?
몽태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해를 바라보았다.
이십 명의 원영경이 왔다. 비록 송생평처럼 볼품없는 원영경이지만 그래도 원영경은 원영경 아닌가!
그런데 이리도 쉽게 묶이다니!
그 와중에도 대진 안에서는 애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으악! 살려줘!”
“요 선생! 살려주게! 제발!”
요 선생?
대전 밖에 있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서 요정천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요정천이 고해를 향해 돌진했다. 그는 강력한 힘을 온몸에 모으고는 한 방으로 고해를 죽이겠다는 듯 달려들었다.
“죽어라, 고해!”
쿵!
굉음이 들리면서 대지가 흔들렸다.
순간, 고해가 천진신새를 꺼내 들더니 요정천과 맞섰다.
콰광!
요정천의 손이 터지면서 순식간에 천진신새에 깔렸다.
요정천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아니…… 어… 어떻게……?”
고해가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막았냐고?”
요정천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천진신새에 깔린 그는 변신하려고 꾸물거렸으나, 백만 관 무게의 천진신새에 깔려서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고해가 냉랭하게 말했다.
“여기 천진신새 안에 대지용맥이 있지요. 대지용맥은 구오도의 힘. 이건 천진신새가 누르는 힘이 아니라 대지용맥의 힘이외다!”
“이, 이런…….”
“하하하! 요정천, 감히 계략을 꾸미다니! 원영경을 이용하여 내 정신을 분산시키고, 그 틈을 이용해 나를 죽이려 했습니까? 내가 당신을 수상하게 여기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당할 뻔했습니다그려!”
요정천이 다급하게 눈을 굴리며 어물거렸다.
“저 이십 명의 원영경은 어떻게 대진에 갇힌 거요? 저는 사실 고 선생을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고 선생과 함께 저들을 물리치려고 했을 뿐입니다.”
쿵! 쿵! 쿵!
굉음이 들려왔다.
이십 명의 원영경 수련자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먹구름도 빠르게 흩어져 갔다.
먹구름이 사라진 곳에는 이십 구의 시체만 남아 있었다.
그들의 몸은 상처투성이였고 몇몇은 골격까지 끊어진 상태였다. 단전에는 혈동(血洞)이 생겼으며, 갑자기 늙어 버린 듯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다.
그 시신들 사이를 지나서 고진이 천천히 걸어왔다.
고해 앞에 멈춰 선 고진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부황, 놈들을 전부 처리했습니다. 저들의 단전도 파괴해 버렸습니다!”
대신들이 화들짝 놀라서 고진을 바라보았다.
“그럼 조금 전의 대진은 태자가 배치한 거란 말인가?”
몽태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보잘것없게 생각했던 태자가 이십 명의 원영경을 때려눕히다니.
고해 외에 자신이 최강자라고 생각했던 몽태는 고진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다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 눈이 번쩍였다.
“관기 노인의 전수, 그리고 계승?”
모두가 고해의 막강함은 알고 있으면서 고진은 눈여겨보지 않았다.
고진 역시 관기 노인의 전수를 받은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그가 어떤 능력을 전수받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선천경이 어찌 원영경을 저 지경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몽태는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고진을 바라보았다.
고진은 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고해에게 물었다.
“부황, 이자들은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겠습니까?”
고해가 냉랭히 말했다.
“황궁 밖에 있는 산벽(山壁)에 박아두거라! 우리 대한을 침범하려는 자는 이렇게 된다는 걸 만천하에 알려라!”
“예! 부황!”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요정천이 아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관기 노인의 전수를 받았단 말인가…… 크크크! 이제 알겠구려! 하하하! 내가 대한황조를 너무 과소평가했소이다! 그런데 내 공격은 어떻게 막았소이까?”
고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냉랭하게 말했다.
“우리 대한황조에 왔으면 제일 먼저 나한테 알렸어야지요. 상관흔을 통해서 보고하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요정천이 상관흔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몽태와 고진 등 사람들도 이상한 눈빛으로 상관흔을 보고 있었다.
그때 상관흔이 외쳤다.
“들고 와라!”
곧 한 무리의 부하들이 오백 장 길이의 골격을 들고 왔다.
고해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요 선생, 이건 누구 시체라고 보시오?”
요정천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건…… 교룡 부혈?”
교룡 부혈은 목단종에서 해골한테 뜯어먹히지 않았던가.
고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요 선생, 솔직히 부혈이 그대와 한 몸일 거라고 생각조차 못 했습니다. 현무? 거북이와 뱀? 거북이의 몸? 뱀의 몸? 서로 분리되어 용족으로 진화하고 싶어 했지요? 거북이는 진화하여 용머리에 거북이 몸을 한 패하가 되었고, 뱀은 교룡으로 진화하고.”
요정천이 깜짝 놀랐다.
“어… 어떻게 알았는가?”
“상관흔이 말하지 않았더라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뻔했지요. 하하하. 내가 이십구 천지종횡 바둑판을 깨는 것을 보고 나와 좋은 관계를 맺은 다음 대지용맥을 빼앗아 가려고 했던 것이지요? 해요를 남겨둔 것도 나를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라 감시하기 위한 것 아니었습니까?”
요정천이 화들짝 놀랐다.
“그, 그걸 어떻게?”
“상관흔이 그러더군요. 이 뼈와 요 선생한테서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고. 처음에는 저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확인해 보라고 했지요. 앞서 황실에 와서 요 선생이 왔다고 보고할 때서야 요선생과 부혈이 같은 몸체라는 걸 확실히 알았지요. 하하하! 그렇게 용으로 진화하고 싶었습니까?”
요정천은 믿을 수 없다는 눈치로 상관흔을 보며 말했다.
“상관흔? 아니, 나와 부혈의 기운은 이미 천지 차이가 나게 달라졌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걸 알아냈단 말이오?”
그때 상관흔이 고해를 보면서 말했다.
“폐하, 패하를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뭐?”
“요정천은 폐하를 속였습니다. 그때 묶여 있던 거북이 등껍질은 요정천의 아버지가 남겨준 물건이 아니라, 현무족의 거북이 등껍질이었지요. 저한테 쓸모가 있으니 폐하께서 요정천을 저한테 넘겨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고해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거라!”
상관흔은 천천히 요정천 앞으로 걸어갔다.
요정천은 망연한 표정으로 상관흔을 바라보았다. 그때 상관흔이 갑자기 요정천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요정천이 깜짝 놀라서 눈이 커졌다.
“이 호흡은…… 너… 너… 너 설마……!”
쿵!
상관흔이 손을 대자, 요정천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생기를 잃었다.
쿵!
순간, 요정천이 거대한 패하로 변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거대해질 것 같던 패하의 몸이 점점 작아지더니, 놀랍게도 손바닥만 하게 작아졌다.
고해는 천진신새를 넣고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상관흔을 바라보았다.
상관흔은 작아진 패하의 시체를 소매 안에 넣었다.
대신들은 물론이고, 몽태조차 상관흔의 행동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요정천이 천진신새에 깔린 것만도 놀라운 일인데, 상관흔이 식은 죽 먹듯이 간단하게 요정천을 제압하지 않는가 말이다.
고진 외에 이런 놀라운 인물이 또 있었다니.
‘도대체 내가 모르는 비밀이 얼마나 더 있단 말인가?’
몽태는 점점 고해가 두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