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황가 도박장
대지용맥의 유혹은 대단했다. 요정천이 말했던 것처럼 인근 해역에 있는 원영경 강자들이 너도나도 구오도로 향했다.
그들 중 일부는 금단경인 고해의 기괴한 혈도만 잘 피하면 고해의 목을 벨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기세등등했다.
하지만 대한황조에 도착한 그들은 곧 사기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수많은 수련자가 황궁 밖에 있는 높은 산에 서 있었다.
산 주변에는 장군들이 주둔하고 있었지만, 그들에 대해서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러나 산벽의 광경을 보고는 심장 박동이 급격하게 빨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산벽에는 육십여 명이 박혀 있었다.
일부는 이미 죽은 상태에서 햇빛에 타버렸고, 일부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단전만 파괴되어 있었다.
“저… 저건 팔육도의 태원종 종주? 원영경 강자잖아!”
“팔구도 원영경도?”
“저 사람들 전부 원영경이야!”
……!
원영경, 금단경. 선천경 수련자들은 소스라치게 놀란 눈으로 산벽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그때, 한 금단경 수련자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바로 옆에 다가와 있었는데, 그의 스승이었다.
“엇? 스승님, 스승님께서 어찌 오셨습니까?”
“고해가 대지용맥을 얻었다고 네 선배가 말하더구나. 대지용맥은 우리 종문에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다. 다른 사숙들도 곧 올 거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한 금단경 수련자가 말했다.
“스승님, 대지용맥을 빼앗으려 들어간 자들입니다. 육십여 명 전부 원영경 수련자라고 합니다. 잡힌 자들 중 원영경만 저기에 박아둔다고 합니다. 엇? 저길 보십시오! 또 다섯 명이 붙잡혔습니다.”
원영경만 박아둔다고?
하얀 옷을 입은 남자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금단경 수련자가 하얀 옷을 입은 남자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승님, 그래도 가실 것인지요?”
하얀 옷을 입은 남자는 눈치도 없는 제자의 뺨을 한 대 후려갈기고 싶었다.
‘이 멍청한 놈이!’
* * *
천도해의 해상에서는 해일이 일어나 하늘 높이 솟구쳤다.
이신기는 손에 황금 활을 든 채 비주를 타고 날아왔다.
피이잉!
활을 쏘자 이십 개의 화살이 나타나더니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거북이 몸에 명중했다.
으르렁!
거대 거북이가 포효하더니 등껍질로 화살을 막아냈다.
쿵쿵쿵!
그러나 화살이 끊임없이 거북이 등껍질에 명중하자 등껍질이 더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이신기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신, 정말 끈질기구나! 현무금갑을 감지하여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무신이 포효하며 말했다.
“현무금갑은 우리 족의 성물이다. 네가 그걸 더럽히고 있으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할 수 없으면 어쩔 건데?”
“흥! 그에 대한 소식이 만천하에 알려질 것이니라! 나처럼 현무지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 이신기!”
이신기가 싸늘하게 대꾸했다.
“미친놈아! 현무지존은 죽은 지 팔백 년이 지났다! 충성은 개뿔!”
으르렁!
무신이 으르렁거리며 이신기를 향해 달려왔다.
순간, 바닷물이 빙글빙글 돌면서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온 대지를 뒤덮을 것처럼 밀려갔다.
이신기가 싸늘하게 말했다.
“흥! 가자! 저 미친놈과 말할 시간 없어!”
말을 마친 그는 또 활을 당겼다.
이신기가 활을 쏘고, 부하는 빠르게 비주를 조종했다.
쿵!
이십 개의 화살이 또 거대한 거북이를 공격했다.
무신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거기 서라, 이신기! 내 현무금갑 내놔라!”
슝!
비주는 빠르게 날아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쿵!
솟아올랐던 바닷물이 와르르 떨어졌다.
남자의 모습으로 변신한 무신은 비주가 날아간 방향을 노려보았다.
“흥! 넌 도망갈 수 없다!”
그런데 쫓아가려던 무신이 멈칫했다.
“천도해? 여기가 천도해인가?”
한참을 고민하던 무신은 이를 악물고 천도해 해역으로 들어갔다.
* * *
대한황조, 황궁 밖의 산벽에 벌써 팔십여 명의 원영경 고수들이 걸렸다.
수련자들 중 많은 이들은 산벽에 걸려 있는 원영경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럼에도 모여드는 수련자들은 점점 많아졌다.
고해도 충천전 용상에 앉아서 그 사실에 대한 대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폐하, 태자가 황궁으로 들어오려는 자들을 막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지금도 점점 더 많은 수련자가 몰려오고 있사옵니다.”
“폐하! 수련자들이 저리 많이 몰려오니 참으로 큰일이옵니다!”
듣고 있던 고해가 말했다.
“고진!”
고진이 한 발 나서며 대답했다.
“네, 부황!”
“준비하라고 한 건 어떻게 됐느냐?”
“부황의 말씀대로 만들고 있습니다. 시설이 최상급인 만큼 황가 도박장을 보면 저들도 눈이 뒤집힐 것입니다.”
“완성 즉시 영업을 시작해라. 황가 도박장은 유일무이해야 한다. 이를 따라 하는 자는 없애버려라.”
“폐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고해의 명이 떨어지자 황궁 밖의 일부 구역이 본격적으로 개방되었다.
“폐하께서는 구오도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하신다 하시며, 멀리 마중 나가지 못한 것은 양해를 바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한황궁의 장소가 좁아서, 여러분들이 신분에 맞지 않게 민가나 숲속에서 자는 것이 마음 쓰인다며, 여러분을 위해 땅을 개척하여 황가 휴가촌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그곳에서 마음껏 쉬고 즐기길 바랍니다!”
대한의 병사가 북을 치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 말을 들은 수련자들은 황당하기만 했다.
“무슨 말이야? 황가 도박 휴가촌이라니?”
몇몇 사람이 대한황조 병사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황궁과 멀지 않은 곳에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한 수련자가 가까이에 다가가자, 한 병사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수련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럽게 지어진 건물과 멋진 풍경은 수련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밖에 있는 동굴과 객잔과 비하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다만 돈과 영석을 받을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환경이라면 약간의 영석은 별것이 아니었다.
방을 얻은 사람들은 주변을 구경하다가 흥미로운 광경을 목도했다.
한 광장에서 몇 사람이 소리치고 있었다.
“황가 복권 판매점에서 복권을 팔고 있습니다. 중품 영석 하나로 상품 영석 백 개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삼 일 후, 광장에서 당첨자를 가릴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공평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지니 어서 와서 구매하세요!”
“황가 경마장이 곧 문을 엽니다. 경마에 많은 영석을 걸수록 얻는 영석도 많아집니다. 사람들 앞에서 진행하는 경기이니 절대적으로 공평하고 공정합니다.”
“황가 도박장에서 도박을 시작합니다. 도박의 신이 되어보세요!”
대봉방이 도박으로 엄청난 재산을 만들지 않았던가.
고해 역시 그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먹여 살려야 할 사람들이 많으니까.
게다가 고해가 만들기로 한 도박 종류는 단순한 격투기만 했던 대봉방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복권, 경마 등 고해는 과거 자신이 살던 곳에서 횡행하던 도박 방식을 차용했는데, 수련자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책임자는 고진.
그런데 고진은 관기 노인이 전수한 방법으로 고해가 만든 도박장을 운영했다.
아마 관기 노인이 알게 된다면 저승에서 돌아올지도 몰랐다.
영업 첫날, 영석들이 대한 황궁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석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고해의 걱정도 사라졌다. 고해는 사람을 보내서 치안을 강화하고 영석을 지켰다.
가끔 일부 원영경 고수들이 산벽에 박히긴 했지만, 큰 말썽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련자들도 휴식을 취하고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했으며, 그 누구도 동굴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까짓 영석! 없으면 나중에 다시 구하지 뭐!
* * *
보름 후, 이신기가 구오도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신기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일반 수련자로 변신해서 고해의 세계에 들어갔다.
이신기가 수하 이십 명을 데리고 조용한 곳에 도착하자, 한 사람이 달려와서 맞이했다.
‘뭐지?’
이신기는 벌써 정체를 들킨 것 아닌지 걱정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뭐야?”
“안녕하십니까? 저는 황가 도박 휴가촌 홍보요원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 도박 휴가촌에 대해 설명해도 괜찮을까요? 반드시 만족하실 겁니다.”
이신기는 앞에 있는 남자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홍보요원?”
황가 도박장 홍보요원들은 전부 고해가 불러온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고부 산업에서 키운 인재들로 이번에 황가 도박장에 오게 되면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일은 힘들었지만, 열정은 더욱 세차게 타올랐다.
고해가 많이 일하는 자한테 더 많은 보수를 챙겨주고, 거기다 성과급도 지급했기 때문이다.
성과급은 돈으로 주기도 했고, 수많은 영석으로 주기도 했다.
소맥도 그런 홍보요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이 일을 했다.
그런데 그날, 저 멀리서 화려한 옷을 입은 자들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귀족 냄새가 솔솔 풍기는 거로 봐서 보통 수련자가 아닌 듯했다.
소맥은 부리나케 달려갔다. 옆에 있던 다른 요원들도 소맥을 보고 있었으나 다른 수련자들에게 더 신경 썼다.
소맥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황가 도박 휴가촌 홍보요원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 도박 휴가촌에 대해 설명해도 괜찮을까요? 반드시 만족하실 겁니다!”
“홍보요원?”
소맥이 설명했다.
“먼저 이쪽으로 오셔서 대한황궁 밖에 있는 돌벽부터 보시지요. 이곳에 온 수련자들이 꼳 한 번씩은 보고 가는 곳입니다.”
이신기는 소맥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본 게 아니라는 걸 확신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길 내내 많은 수련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작은 깃발을 들고 다른 수련자들을 부르고 있었다.
소맥이 그 광경에 대해 설명했다.
“아, 저건 관광객을 위한 안내인이 자신의 손님을 찾기 위해 깃발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놀러 온 수련자들이 너무 많아서 저렇게 하지 않으면 찾기가 힘들거든요.”
“……!”
이신기는 눈만 깜박거렸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행은 황궁 밖에 있는 산벽 근처에 도착했다.
산벽 앞에는 수천 명의 수련자가 서 있고, 홍보요원들이 그들에게 산벽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었다.
소맥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러분, 저기 박혀 있는 팔십 명이 넘는 원영경 수련자를 보셨습니까? 함부로 황궁에 들어가려던 자들의 최후가 바로 저 모습입니다. 아, 또 한 명이 박히고 있군요! 이제 구십 명이 채워졌네요!”
이신기 뒤에 있는 사람들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후우우!”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는 수천 명이 넘는 수련자들이 한숨을 쉬고, 침을 삼켰다.
이신기가 싸늘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닭을 죽여서 원숭이를 훈계하는 방식이라?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