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야수처럼 삼키다
잠시 후.
이신기 일행은 소맥의 안내로 순식간에 황가 도박 휴가촌에 도착했다.
앞장서 걸어가던 소맥이 웃으면서 말했다.
“여러분, 여기가 바로 황가 도박 휴가촌입니다. 저와 함께 저기로 가시지요!”
“가세!”
이신기는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었다.
곧 이신기 일행이 문 앞에 도착했다.
이백여 명이 제복을 입은 채 이 열로 서서 공손하게 인사했다.
“환영합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이신기 일행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맥이 그들을 보며 공손하게 말했다.
“여긴 휴가촌의 접수처입니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오늘 밤에 돌아가실 건가요? 아니면 장기로 머무실 건가요?”
이신기가 대답했다.
“장기로 하지!”
소맥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방은 모두 구 등급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방이 많이 나가서 별로 안 남았네요. 저기 보이는 방이 최고급입니다. 하룻밤에 상품 영석 하나로, 안에 수영장과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 과일과 음료, 술들이 있습니다. 그리도 돈을 조금 더 내면, 발안마와 온천도 즐기실 수 있지요!”
뒤에 있던 사람 하나가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하룻밤 묶는 데 상품 영석 하나라고? 날강도 아닌가?”
소맥이 웃으며 그자를 바라보았다.
“제가 구 등급까지 있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구 등급은 하룻밤에 하품 영석 열 개면 가능합니다. 대신 시설 차이가 조금 크지요.”
이신기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럼 제일 좋은 곳으로 안내해!”
소맥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 사람들 부자네 부자야! 조금 있다가 도박장까지 소개해 주면…… 크크! 성과급도 많이 받을 수 있겠어!’
그래도 표를 내지 않고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소맥은 이신기 일행을 데리고 별장에 들어섰다.
“식사부터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바로 도박장에 가보시겠습니까? 식당에 가시면 우리 숙수들이 최고의 요리를 선보일 것입니다. 도박장에 가면 복권, 경마 등의 온갖 도박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마 사흘 내내 해도 절대 질리지 않을 것입니다.”
소맥이 새로운 단어들을 말할 때마다 이신기 일행은 신주대지에서 온 자신들이 오히려 시골에서 온 촌놈처럼 생각되었다.
“일단 도박장부터 구경해 보지.”
이신기는 촌놈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먼저 도박장으로 향했다.
사흘 후.
별장에 있던 이신기는 저 멀리 보이는 대한황궁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대한황궁 하늘에는 많은 기수가 떠 있었다. 보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도무지 알 수가 없군. 무슨 생각인 거냐, 고해?’
그때 몇몇 부하들이 갑자기 들어왔다.
“영주님! 영주님, 동생이 고해의 부하들한테 맞았습니다.”
이신기가 그 부하를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뭐? 무슨 일이야?”
“황가 도박장에서 신기한 도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지고 있어서 화가 난 나머지 동생이 도박장이 사기를 친다면서 뒤엎으려고 했는데, 순간 대진이 나타나 동생을 엄청 때렸습니다. 마침 홍보요원 소맥이 왔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이신기는 얼굴이 부어오른 남자를 보며 말했다.
“뭐? 졌다고? 오기 전에 상품 영석 백 개를 들고 오지 않았더냐?”
그 동생이 머리를 숙이고 풀이 죽어 말했다.
“다…… 잃었습니다.”
이신기가 눈을 부릅떴다.
“그걸 전부 잃었다고? 여기에 재산을 탕진하려고 왔느냐?”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잃었습니다. 불과 삼 일 만에 이천 개의 상품 영석을 잃었습니다.”
이신기는 화가 잔뜩 난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뭐 좀 알아보라고 했더니 도박을 해? 그사이 그 많은 영석을 전부 탕진했다고?
옆에 있던 소맥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황가 도박장에 있는 수련자들이 지켜보지 않았습니까? 마지막 한 판에 삼백 개 영석을 걸면서 이런 일이 생겼지요.”
이신기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만 나가봐! 우리 할 말이 있어!”
소맥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네,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며 저를 불러주십시오.”
사흘 동안 소맥의 동료들은 소맥을 엄청 부러워했다. 역시 부자를 만나야 성과급도 많다면서.
소맥이 나가자, 이신기는 죽일 듯한 눈빛으로 부하들을 노려보았다.
“뭐 좀 알아냈어? 아니면 전부 도박장에서 시간을 보낸 거야?”
조금 전의 그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도박장에서 꼼수를 부리고 있습니다!”
“멍청한 놈! 나도 나름대로 알아봤다! 여긴 꼼수가 아니라 확률로 승부를 거는 곳이야! 너희들은 미친 듯이 영석을 걸었지?”
부하들이 고개를 숙였다.
이신기도 한바탕 훈계를 하자 화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황가 도박장을 바라보았다.
“고해, 제법이구나! 황가 도박장에서 영석을 야수처럼 삼키다니. 대한? 흥!”
* * *
고해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때 고진이 소맥을 데리고 왔다.
소맥은 극히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소맥 인사 올립니다. 황제 폐하 만세 만만세!”
고진이 보라색으로 된 작은 첩지를 건넸다.
“부황, 이신기가 보내왔습니다.”
고해는 미간을 찌푸리며 서류 검토를 멈췄다.
“이신기? 이호연의 삼촌?”
“예.”
고해는 신중하게 첩자를 받았다.
고진이 말했다.
“이신기가 황가 휴가촌에 온 지 나흘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있는 홍보요원이 안내했습니다.”
고해는 굳은 표정으로 소맥을 보며 말했다.
“뭐? 나흘? 그들이 나흘 동안 뭘 하고 있었느냐?”
소맥이 대답했다.
“이신기는 첫날에만 도박을 조금 즐겼고, 나머지 이십 명은 매일 도박장에 뛰어들었사옵니다. 그러다 영석을 전부 잃고 도박장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대진에 걸려 엄청 맞았사옵니다. 이신기는 그런 부하들을 나무라고 저에게 이걸 갖다 드리라고 했사옵니다.”
고해는 그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도박을 해서 전부 잃어? 심지어 수하들이 맞기까지 했다고?”
* * *
고해는 용포가 아닌 편안한 흑포를 걸친 채 상관흔과 고진을 데리고 이신기 일행을 만나러 갔다.
고해는 이신기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 선생,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셨는지요?”
고해는 주인 자리에 앉았고, 왼쪽에는 고진과 상관흔이 앉았으며, 이신기와 부하들은 오른쪽에 앉았다.
고해는 이신기를 경계했다.
비록 자신이 이호연을 죽이진 않았지만, 이신기가 행패를 부릴 수도 있기에 조심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신기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고 타주, 역시 대단하십니다. 황가 도박장 하나로 천도해의 영석을 전부 끌어모으는군요. 이러다 천도해에 영석이 남아나지 않겠습니다그려.”
그는 이호연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해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황가 도박장은 별다를 게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여기저기서 다른 사람들도 저희와 같은 도박장을 운영하겠지요.”
“흉내를 낸다고 어디 똑같이 됩니까? 하하! 이 멍청한 놈들이 조금 전에 이천 개의 상품 영석을 바쳤답니다.”
뒤에 있던 부하들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황가 도박장은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입니다. 이 선생과 비할 수는 없지요!”
순간, 이신기의 표정이 굳어졌다.
‘흥! 허튼소리! 영석을 싹쓸이하면서 입에 풀칠이나 한다고?’
고해는 이신기가 본론에 들어가지 않는 걸 경계하면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잠시 후, 이신기는 흥미를 잃은 듯 본론으로 들어갔다.
“고 타주, 한 달 전에 성왕이 나보고 신기영을 다시 만들라고 명하셨습니다.”
“아! 축하드립니다, 영주님!”
“그래서 고 타주가 가지고 있는 신기령을 회수하기 위해 왔습니다.”
고해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신기령이오? 예, 제가 이호연의 시체에서 신기령을 발견하긴 했지요.”
“발견하셨다니 다행……!”
“그런데 오는 길에 잃어버렸지 뭡니까. 찾고 싶으시면 이 길을 따라 예전의 목단종에 가보십시오. 잘 수색해 보시면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이신기의 안색이 굳어졌다.
뒤에 있던 부하들도 분노해서 일어섰다.
고해는 그 모습을 보고도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신기령이라면 헛걸음하셨네요. 영주님도 대건천조의 신기영 영주님이시고 저도 일품당 타주이니 결국 우린 서로 동료인 셈 아닙니까. 서로 어려움이 있으면 도와야 하지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
이신기 뒤에 있던 부하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고해! 너 우리……!”
이신기가 노성을 내질렀다.
“뭐 하는 짓이야!”
그의 부하들은 굳은 표정으로 조용히 있었지만, 여전히 눈을 부릅뜨고 고해를 노려보았다.
고해는 이신기의 부하들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 이신기의 말을 듣고 고해는 이미 이신기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을 신기영 영주라고 소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신기가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잘못 가르쳤나 봅니다. 송구스럽습니다.”
고해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부하들도 답답해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고해의 미지근한 반응을 본 이신기의 부하들은 화가 치밀었다.
도박장에서 영석을 잃은 것도 서러운데 고해 때문에 이신기에게 야단까지 맞았으니 더욱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이신기는 태연한 표정으로 고해에게 물어보았다.
“저의 신기령은 이제 찾을 수 없는 겁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영주님께서 직접 찾으러 가시면 의외로 쉽게 찾을지도 모르지요.”
이신기는 고해를 쳐다보았다.
비록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신기가 이호연의 죽음을 꺼내지 않은 이유는 일품당 당주의 죽음과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죽었지만, 이 역시 이호연의 손을 빌려 죽지 않았는가 말이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여기서 덮어야 할 것 같았다. 책임을 추궁하려다가 오히려 일만 커질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고해 역시 말하는데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더구나 황제의 신분을 내려놓고 일품당 수타주의 신분으로 자신과 만나고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일품당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듯했다.
마음을 정한 이신기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고 타주의 말이 맞습니다. 제가 먼 길을 오긴 했지만, 여긴 고 타주의 구역 아닙니까? 고 타주께서 일품당과 신기영은 동문이라 서로 도와야 한다고 하셨지요? 고 타주의 명령 한 번이면 천하가 움직일 텐데, 그러면 더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고해는 머리를 끄덕이며 흔쾌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지요. 제가 바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이신기 뒤에 있던 부하들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신기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자신 손에 있으면서도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는군.’
고해가 그런 이신기를 보며 말했다.
“영주님, 또 다른 요구가 있습니까?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전부 도와드리지요.”
이신기가 이를 악물며 답했다.
“고 타주께서 나를 도와 신기령을 찾아준다고 하시니,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물 하나를 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