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162화 (145/243)

162화. 위험한 상태를 평온하게 만들다

“예? 그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이신기는 금빛 찬란한 물건을 꺼냈다.

그건 다른 게 아니라, 얼마 전 북해에서 빼앗은 현무금갑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고해는 수련 정도가 낮아 그 물건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바로 인지하지 못했다.

이신기가 자신한테 그렇게 귀중한 물건을 줄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었고.

고해가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이게 뭡니까?”

뒤에 있던 부하들이 놀라서 말했다,

“영주, 현무금갑을 왜 고해한테……?”

얼마나 어렵게 얻은 현무금갑인데 고해에게 준단 말인가!

“그 입 다물어라!”

이신기가 부하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고해도 그 말을 다 들은 터라 눈이 번쩍였다.

‘현무금갑?’

옆에 있던 상관흔 역시 눈동자가 흔들렸다.

상관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폐하!”

사람들이 상관흔을 바라보았다.

상관흔은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공손하게 말했다.

“영주님께서도 먼 길을 오셨고, 저도 요즘 할 일이 없습니다. 제가 부하들을 데리고 신기령을 찾으러 가도 되겠습니까?”

고해는 현무금갑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상관흔이 현무금갑을 욕심낸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고해가 공손하게 말했다.

“영주님, 이렇게 된 이상 제가 영주님을 도와 신기령을 찾아드리지요.”

이신기는 차가운 눈빛으로 상관흔을 보더니 머리를 끄덕거렸다.

또 이틀이 지났다.

고해는 상관흔과 고진을 데리고 이신기를 만나 신기령을 내밀었다.

“하하하, 다행히 신기령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신기는 속으로 욱했지만 담담한 표정으로 받았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러고는 현무금갑을 건넸다.

고해는 현무금갑을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별말씀을. 일품당과 신기영은 가족 같은 사이 아닙니까? 서로 도와야지요. 하하하.”

그런데 현무금갑을 손에 들자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았다.

순간 하늘도 어두워지더니 마치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이신기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는 신주대지에서 만나지요.”

고해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러지요.”

후우웅!

곧, 비주가 나타났다.

이신기와 부하들은 망설이지 않고 비주에 올라탔다.

슈우우웅!

비주는 눈 깜짝할 사이 하늘로 날아가서 사라졌다.

비주 위에서는 한 부하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이신기에게 말했다.

“영주님, 도대체 왜 현무금갑을 고해한테 넘긴 겁니까? 누가 봐도 신기령은 고해의 손에 있었습니다.”

이신기는 두 눈을 가늘게 좁힌 채 대한황조를 내려다보았다.

“나도 알아. 그렇지만 저렇게 시치미를 떼는데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

“네?”

“현무금갑은 나도 나름대로 연구를 해봤다. 저걸로는 법보를 만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악재를 불러온다. 무신? 흥! 현무지존이 죽은 지 팔백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현무를 잊지 못하고 있다니……!”

“영주님, 그럼 일부러 화근을 저자들 쪽으로 유인하기 위해 현무금갑을 넘긴 겁니까?”

“그 이야기는 그만해라. 바로 조도에 가자! 성왕이 시간을 삼 개월밖에 주지 않았는데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네!”

고해는 비주가 멀어져가는 것을 보고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고진이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황, 이신기가 저렇게 착한 사람일 수는 없습니다. 저 현무금갑에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겁니다.”

고해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나도 안다.”

“예? 그럼 왜……!”

고해는 현무금갑을 상관흔한테 넘겼다.

“나도 신기령을 연구해 봤다. 별로 쓸모가 없더군. 하지만 이신기는 그 사용법을 알고 있겠지. 오늘 신기령을 가져가지 못하면 나중에 용완청을 앞세워서 찾아올 거다. 어차피 줘야 할 물건이었어!”

말하던 고해가 상관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더 중요한 건, 상관흔이 이 현무금갑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거겠지.”

상관흔은 고해를 보며 멋쩍게 웃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감사합니다, 폐하!”

“상관흔, 이 현무금갑을 어디에 쓰려는 거냐?”

상관흔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요정천을 끓여 먹지 않았습니까? 이것도 먹는 것입니다.”

“……!”

“……?”

고해와 고진은 의아했으나 더 캐묻지 않았다.

저걸 끓여 먹어?

* * *

구오도 밖.

쿵!

하늘을 찌를 듯한 해일이 일었다. 바다 주변의 산과 나무들이 바다에 잠겼다. 그러나 다행히도 주민 구역은 아니었다.

바닷물이 물러가자 무신의 모습이 보였다.

무신이 한 산봉우리에 서서 대한황궁이 있는 방향을 보고 있었다.

무신이 냉랭하게 말했다.

“멈췄어. 지존, 내가 반드시 그 조각을 지킬 거야! 거기에 때를 묻히는 자는 반드시 죽여버릴 거야!!”

쿵!

무신이 으르렁거리며 대한황궁을 향해 이동했다.

으르렁!

무신이 향하는 곳마다 먹구름이 드리워졌고 천둥 번개를 동반했다.

* * *

구오도에 점점 더 많은 먹구름이 깔렸다. 무신이 분노할수록 먹구름은 더욱 두터워졌다.

그런데 무신이 대한황조와 가까워질수록 현무금갑의 기운이 점점 약해졌다.

그렇게 강력하던 현무금갑의 기운이 점점 약해지다니.

뭐지? 벌써 법보로 만든 거야?

으르렁!

무신이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부지직, 부지직.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자 구오도에 있던 백성들은 겁에 질렸다.

황궁 인근 상성(商城).

금의위 지휘사 몽태는 상성의 정원에서 탐욕스런 한 무리의 관리들을 취조하고 있었다.

관리들은 묶여 있는 상태에서 눈을 부릅뜨고 몽태를 응시했다.

한 관리가 피를 토하면서도 몽태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몽태! 감히! 감히! 내 숙부가 바로 예부상서다! 예전에 폐하와 함께 천하를 흔들던 총관이란 말이다! 우리 숙부가 너를,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

몽태는 손에 책자 하나를 들고 있었고, 옆에는 금의위 병사가 있었다.

몽태가 말했다.

“폐하가 나라를 세우면서 조세를 삼 년간 감면하였는데, 너의 상성은 과중하고 잡다한 세금을 끊임없이 거두어들였다. 그래서는 백성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가 없단 말이지. 게다가 관리직을 팔아 가까운 사람들만 임명하고 백성들한테 가야 할 식량을 자기 주머니에 넣으며 사리사욕을 채웠지. 그래서 팔백 명의 백성이 굶어 죽었어!”

관리가 눈을 부릅뜨고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래서… 나, 나를 어, 어떡할 거냐?”

몽태가 싸늘하게 말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조사를 하고, 사후 보고할 권리도 있느니라. 죽여라!”

“네!”

관리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뭐? 감히 나를 죽여?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다!”

몽태가 그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너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너희 가족 전부를 죽일 거다. 우리 금의위가 하는 일이 그 뿌리를 뽑는 거거든!”

말을 마친 그는 정원을 나가버렸다.

관리는 겁에 질렸다. 뭐? 가족을 전부 죽여서 뿌리를 뽑는다고?

관리가 겁에 질려 소리쳤다.

“아…… 안 돼! 사, 살려줘!”

금의위 병사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빠르게 행동했다.

아직 조사를 받지 않은 관리들도 화들짝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고해가 고개를 돌리자, 관리들이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물러갔다.

관리들은 황궁에 있는 대신들에게 금의위를 탄핵해야 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탄핵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고해가 금의위를 만든 목적이 바로 관리를 감독하기 위함이다. 고해가 가만히 있는데 누가 감히 금의위를 건드리겠는가.

몽태는 사람을 마음대로 살리고 죽이는 권한을 쥐고 있으니 정말 편안했다.

이 대한황조를 신주대지에 있는 나라들과 비길 수 있을까?

‘흠, 나쁘지 않아.’

그때였다.

쿠구궁!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천둥 번개가 쳤다.

몽태는 굳은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뭐지?”

하늘을 보자 천둥 번개를 실은 먹구름이 대한황궁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몽태의 안색이 굳어졌다.

“누구야? 누군데 저렇게 기세등등하지?”

후우웅.

몽태는 하늘로 날아올라서 빠르게 황궁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나라를 개국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많은 적이 득실거린단 말인가.

몽태는 상대의 강함을 느끼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절대 강자의 기운이다! 누구지? 설마 대한황조가 이렇게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

대한황궁이 가까워질수록 먹구름도 점점 더 두터워졌다.

황가 도박 휴가촌에 있던 수련자들도 아연실색했다.

이 엄청난 기운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거란 말인가?

한편, 상관흔은 커다란 현무금갑 조각을 하나만 남기고 전부 먹어버렸다.

천둥이 치고 번개가 떨어지자, 상관흔은 미간을 찌푸리며 밖을 내다보았다.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건 현무의 기운인데…… 설마 무신?”

상관흔은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한 조각을 우아하게 삼켰다.

그러고는 옷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갔다.

쿠구궁!

굉음과 함께 무신이 대한황궁 앞에 도착했다.

무신이 대한황궁 앞에 서 있자 푹풍우가 휘몰아쳤다.

무신은 굳은 표정으로 두 눈에 힘을 주고 앞을 노려보았다.

그의 얼굴은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포악스러워졌다.

“뭐야? 없어졌어. 지존금갑의 기운이 없어졌어. 어떻게 된 거지?”

충천전 입구.

대신들도 화들짝 놀라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고진 역시 다급한 표정이었다. 관기 노인의 전승을 받은 그는 절대 강자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진법으로 이 절대 강자를 막을 수 있을까?

대신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폐하!”

머리에 평천관을 쓰고 용포를 입은 고해는 천천히 대신들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는 싸늘한 표정을 지은 채, 저 멀리에서 으르릉거리는 무신을 바라보았다.

고진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부황, 이건 이신기가 파놓은 함정 아닐까요?”

고해는 머리를 끄덕였다.

“아마 현무금갑이 저자를 끌고 왔을 거다.”

“역시 음흉한 자군요. 어쨌든 저자의 기운이 너무 막강합니다. 진법이 뚫리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현무금갑! 현무금갑은 어디에 있느냐?!”

맞은편에 있던 무신이 울부짖듯 물었다.

우르르릉!

무신이 소리치자 강력한 폭풍우가 대한황궁으로 향했다.

그 위력이 어찌나 거센지 황궁 주변에 있던 나무와 돌들이 하늘로 솟구쳤다.

휘이이잉!

순간, 대한황궁 위에 먹구름이 나타나더니 강력한 폭풍우를 막아냈다.

쿠과과광!

천둥 번개가 극심해지면서 대진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진이 다급하게 말했다.

“부황, 제가 상관흔한테 가서 현무금갑을 돌려주라고 할까요? 그렇지 않으면 대진이 뚫릴 수도 있습니다!”

고해가 소리쳤다.

“멈춰라!”

“네?”

“현무금갑은 상관흔의 물건이다.”

고진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여전히 초조한 표정이었다.

“예. 그건 그렇지요.”

고해는 무신을 보며 담담히 말을 걸었다.

“짐이 대한황조의 주인이오. 여긴 무슨 일로 오셨소이까?”

무신이 싸늘하게 말했다.

“황조? 기운도 없는 뭐 이런 개 같은 황조가 다 있어? 현무금갑이 여기에 있지? 돌려주지 않으면 여기를 쓸어버릴 것이니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