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출발
“그렇습니다. 현무족이 대한황조를 상징하는 동물이 되어 대한황조의 영예와 영광을 위해 앞장서겠습니다. 그러니 대한황조도 우리 현무족을 성장시켜 주십시오. 현무족이 대한황조가 천하를 다스리는 데 전적으로 협력하겠습니다.”
고해의 눈이 번쩍였다.
“사실 나라를 상징하는 동물은 널렸습니다. 신주대지에서 대건천조를 상징하는 건 바로 용족이지요. 우리 현무족은 혁천각을 수호하는 동물이었습니다. 혁천각을 상징하는 동물과 같았지요. 신주대지에서는 이렇게 연합하여 서로의 힘을 키우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다만 우리 현무족의 힘이 나약하여 폐하께서 탐탁지 않게 생각하실 수도……!”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탐탁지 않아 한다고? 그런 생각은 하지 마라. 내가 왜 그대를 보호하려고 했겠느냐? 나 역시 그대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보호하려고 했다. 내 눈에는 그대가 대한황조보다 더 중요해. 대한황조가 멸망하면 나한테는 대지용맥이 있으니 다시 만들면 된다. 그러나 내가 상관흔을 잃으면 어디 가서 또 상관흔과 같은 인물을 찾으란 말이냐?”
상관흔의 눈이 번쩍였다.
“폐하, 폐하의 뜻은?”
고해가 말했다.
“오늘부터 대한황조와 현무족은 연합을 맺었다. 당분간 상관흔은 정체를 숨기고 무신이 현무족의 사무를 처리해라. 나는 밖에 있는 사람들한테 그대를 혁천각의 제자라고 소개할 것이다. 혁천각의 칠공자라고 하면 저들도 입을 다물 거다.”
상관흔이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폐하!”
고해는 즐겁게 웃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 상관흔을 얻은 건 우리 대한의 행운이야.”
* * *
혁천각 칠공자, 상관흔.
소식이 전해지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놀랐는지 모른다.
황가 휴가촌에서 영석을 전부 잃고 찐빵만 먹고 있던 수련자들은 저 멀리에 있는 거대한 황궁을 보고 있었다.
한 무리의 수련자들이 말했다.
“고해의 운은 어디까지인 거야? 고진이 관기 노인의 전승을 전수받아 팔공자가 되었는데, 갑자기 칠공자가 나타났다고? 여기서 공자를 생산하는 거야, 뭐야?”
“고해가 혁천각을 삼키려는 걸까?”
“칠공자인 건 그렇다 치고. 저 강력한 무신이 칠공자를 알고 있었다고? 그럼 칠공자가 팔백 년 전부터 있었다는 말이잖아?”
관기 구자(九子)는 전설에 불과했다. 누구도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없었다.
관기 구자가 누구든지 간에 혁천각을 움직일 수 있었다.
대한황조에서 두 공자가 나타났다고?
고해의 바둑 실력 역시 대단한데, 설마 관기 노인이 다시 태어난 건 아니겠지?
혹시나 해서 상상만 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관기 노인이 하늘이 내린 벌을 받았기에, 다시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한황조의 운수가 너무 좋아 대지용맥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에 한탄하고 있었다.
대한황조의 관리들은 상관흔의 가짜 신분을 듣고는 안정감을 느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상관흔이 데려온 무신과 함께라면 태산도 거뜬히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정세가 안정되는 동안 고해는 매일 수많은 나랏일을 처리했다.
그리고 한 달 후, 드디어 모든 일이 안정 궤도에 들어섰다.
대한황조의 황제는 사람을 쓸 줄 알고 다스릴 줄 아는 것이 더 중요했다.
“폐하, 저와 무신이 상의를 해봤는데, 무신의 해궁을 구오도 인근으로 옮기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서로를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고해는 상관흔의 의견에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군. 마침 이호연의 비주도 여기에 있으니 최대한 빨리 옮겨라.”
고해와 상관흔이 담화를 나누고 있는데 고진이 들어왔다.
“부황, 당주님과 유년대사께서 오셨습니다!”
“뭐야?”
놀란 고해는 서재를 나가 두 사람을 맞이하러 갔다.
용완청은 궁금한 눈빛으로 손에 있는 카드를 보고 있었다.
걸어 나오던 고해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당주님, 유년대사님, 언제 오셨습니까?”
용완청이 궁금한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우리 어제 와서 황가 도박장에 하루 묵었어. 듣자 하니 그대가 이신기의 사람을 때렸다고?”
고해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예? 아, 그렇다고 봐야지요.”
“역시 대단해! 이신기는 부하를 엄청 아끼기로 유명해! 그 부하가 맞아서 얼굴까지 부었다던데, 고 타주는 괜찮아?”
유년대사도 감탄하며 말했다.
“고 타주, 황가 도박장이 정말 흥미롭더군. 마치 대형 영석 광산 같지 뭔가.”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유년대사님, 별말씀을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자리에 앉았다. 고진도 함께 자리에 앉았다.
시종이 향긋한 차를 가져왔다.
고해가 웃으면서 물어보았다.
“당주님, 대사님, 표정을 보니 이번에 신주에 가서 뭐 좀 얻으셨나 봅니다?”
두 사람의 표정이 변하더니, 용완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고 타주가 말한 방법대로 했더니 역시 뭔가 나왔어. 그 종이의 재질은 영주(颍州)의 변방 지대에서 자란 청려나무였어. 그리고 그 먹물도 영주에서 생산되는 거였고.”
고해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영주요?”
“영주는 우리 대건천조 열여섯 개 주 중 하나야. 바로 여양왕(吕阳王)의 봉지(封地)지. 영주는 일부 황조, 왕조와 잇닿아 있는 지역인데, 실마리는 바로 그 방향에서 나왔어. 그런데 그곳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섞여 있고, 강자들도 엄청 많은 곳이라 우리도 쉽게 손을 쓰지 못했어.”
“영주, 여양왕? 당주님께서 말씀해 주신 기억이 있습니다. 거문고를 탄다고 했었나요? 거문고를 한 번 튕기면 백만 대군이 죽는다고 했었지요?”
“응! 금기서화(琴棋书画), 고 타주는 바둑을 두고 여양왕은 거문고를 즐기지. 아, 맞다! 선천작국계의 백반도를 기억해?”
“당연히 기억하지요. 제가 복숭아들 따긴 했습니다만, 나무는 아직 그곳에 있습니다. 혁천각의 장로들이 이제 문을 닫았겠지요?”
용완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 닫았어. 그런데 여양왕이 백반도수를 빼앗아 갔어.”
고해는 깜짝 놀랐다.
“예?”
용완청이 기억을 되살리며 말했다.
“혁천각 장로들이 맞서 싸웠지만 역부족이었어. 혁천각 제자들이 보는 눈앞에서 백반도수 뿌리를 강제로 뽑고는, 대군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돌아갔어.”
고해가 멋쩍게 웃었다.
“정말 포악하군요.”
“당연하지. 여양왕은 우리 외할아버지와 함께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야. 우리 외할아버지의 의형제이기도 해. 대건천조에 왕작(王爵)이 몇 개밖에 없는데, 그중에서도 양주를 여양왕한테 줬지.”
고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건성왕의 의형제요?”
용완청이 멋쩍게 웃었다.
“미생인이 이미 양주 변방에 갔어. 나와 대사가 너를 찾아온 이유도 그 일 때문이야. 외할아버지께서, 일품당으로 하여금 내 어머니의 사인을 반드시 알아내라고 명령하셨어. 고 타주도 가야 해.”
“저도요?”
용완청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고해를 보며 말했다.
“맞아. 듣기로는 최근 들어 영주 변방이 좀 혼란스럽대. 한 황조가 대건천조와의 동맹을 파괴하고 다른 천조와 조약을 맺었다고 하더라고. 여양왕이 이 사실을 듣고 격노하여 전쟁 준비를 하고 있대. 고해, 갈 거야, 말 거야? 만약 안 가면 내가 외할아버지께 사정을 설명드릴게.”
고해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고진이 걱정하며 말했다.
“부황, 대한황조에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고해는 잠시 침묵한 채 생각을 정리하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천도해, 오랑캐들의 땅. 하! 도대체 얼마나 웅장하고 규모가 큰지 직접 보고 싶긴 합니다.”
고진이 다급하게 말했다.
“부황!”
고해는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다. 대한황조도 정상 궤도에 들어섰다. 나머지는 사소한 일이니 네가 감독해도 된다.”
“그렇지만……!”
“됐다! 대한황조가 첫걸음을 내디뎠으니 신주대지의 나라들은 어떻게 해서 발전하는지 봐야겠다. 네가 나라를 지키면 나도 걱정이 없다.”
고진도 더 이상 말리지 못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부황.”
용완청이 고해에게 견포 하나를 건넸다.
“아, 그리고 이번에 내가 고 타주를 위해 외할아버지께 공법 하나를 부탁드렸어. 원래는 대건 황실의 제자들만 수련 가능한 거야. 하하! 금단경에서 가장 으뜸가는 공법 중의 하나거든.”
고해는 견포를 받으며 깜짝 놀랐다.
“예?”
용완청이 설명했다.
“진룡선천공, 진령금단공은 우리 외할아버지께서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만들어 낸 특수한 공법이야. 그 위로는 없어.”
“감사합니다, 당주님!”
금단경 공법.
고해도 몇몇 종문을 멸망시킨 후 많은 공법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전부 성에 차지 않았었다.
“삼 일 후에 당주님과 함께 가지요. 그 전에 조정의 일을 좀 처리해야겠습니다.”
용완청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렇게 해.”
* * *
사흘 후.
고해는 고진에게 이호연의 팔찌를 건넸다.
“여기에 이호연의 비주가 있으니 네가 사용하거라. 영주의 은월성에 일품당 제자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일부 관리들을 데리고 은월성에 가야겠다. 신주대지 상황을 살피다가 은월성에 상회를 세울 거다. 만약 네가 해결하지 못할 일이 있으면 비주를 타고 건너와라.”
“예, 부황!”
고해는 상관흔과 무신, 그리고 대한의 관리 열 명을 데리고 용완청의 비주에 올라탔다.
대신들이 충천전 광장에서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폐하, 무사히 귀환하십시오! 황제 폐하 만세 만만세!”
백운호는 하늘로 솟구쳐서 순식간에 날아갔다.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당주님, 신주대지로 가기 전에 먼저 북해에 가도 될까요?”
용완청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유년대사는 무신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는 무신과 상관흔, 그리고 고해를 보며 경탄을 금치 못했다.
“무 장로, 오랜만입니다.”
비록 많은 전설을 듣긴 했으나, 무신을 보면서 또 감탄했다.
구오도를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개천궁의 절대 강자 무신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한단 말인가.
고해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무신은 웃기만 하고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유년대사는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비주는 빠르게 날아갔다.
보름 후, 무신이 거주하던 바다에 도착했더니 천둥 번개가 치고 해일이 일었다.
우르르릉!
저 멀리에서 용의 포악한 울부짖음이 들렸다.
“악! 안 돼!”
“저들을 죽여라!”
“엇, 장로님, 언제 오셨습니까?”
바다에서는 거친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펑!
삼십 장 크기의 현무가 폭풍 중심에서 황급히 도망치는 게 보였다.
“안 돼! 아악! 안 돼! 날 먹지 마!”
쿵!
순간, 뒤에서 거대한 흑룡이 눈을 이글거리며 나타나 입을 쩌억 벌렸다.
현무가 소리쳤다.
“안 돼! 날 먹지 마!”
막 돌아온 무신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흑룡을 향해 돌진했다.
“젠장!”
유년대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니, 이렇게 많은 용이 나타나다니. 설마 현무족을 잡으러 온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