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반전
“저게 철풍금이야? 왜 저렇게 커?”
“일 장 길이에 반 장 높이? 저게 뭐야? 저게 그 철풍금이야”
“철강으로 만든 칠현금인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지?”
사람들은 호기심을 안고 기다렸다.
여안은 고해를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몇몇 부하들과 함께 은밀한 곳에 숨어서 가려진 악기를 예의주시했다.
여안이 냉랭하게 말했다.
“철풍금? 저렇게 이상한 물건을 갖다 놓으면 우리 천하제일 금루를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가당치도 않은 소리!”
옆에 있던 강천익도 머리를 끄덕였다.
천하제일 금루의 명성은 한두 개의 악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악기 중에서 칠현금이 최고의 지위를 차지했다. 그 어떤 악기가 와도 칠현금보다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칠현금이 아닌 것을 보고 강천익도 한시름 놓았다.
용완청, 유년대사, 상관흔, 목신풍, 그리고 수련자들까지 궁금한 기색으로 검은 천을 보고 있었다.
목신풍이 궁금한 듯 물었다.
“고해는? 얼른 오라고 말해! 저렇게 이상한 물건을 가져다 놓고 사람은 어디 갔어?”
목신퐁도 저런 악기는 처음이었다.
종? 경? 북? 전부 저런 모양은 아니었다.
상관흔이 웃으면서 말했다.
“폐하께서 옷을 갈아입고 계십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목신풍은 이마를 찌푸렸다.
“옷을 갈아입는다고? 철풍금을 켜는데 옷을 왜 갈아입어?”
바로 그때, ‘이 거리 제일 금루’의 방에서 고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해가 나오자 사람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 이유는. 고해가 특이하게 생긴 우아한 옷을 입고 나왔기 때문이다.
용완청을 비롯하여 주변에 있던 여자 수련자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검은색 경장에 윤곽은 두드러졌고, 앞은 짧고 뒤는 길었다.
거기다 웃옷의 뒤는 마치 제비 꼬리처럼 펼쳐져 있었다.
또한 신발은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를 신고 있어 진중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
고해는 그렇게 정장 차림을 하고 철풍금 앞으로 다가갔다.
용완청이 동그래진 눈으로 물었다.
“그건 무슨 옷이야?”
상관흔이 설명했다.
“폐하의 말씀에 따르면 ‘연미복’(燕尾服)이라 합니다.”
“뭐?”
특별한 옷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맞은편에 있던 여안은 냉랭한 웃음을 지었다.
“웃음거리가 되겠군!”
강천익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옷을 잘 입었다고 악기가 잘 팔리나요? 허허!”
“준비는 어떻게 됐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한 무리의 고수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철풍금 전시가 끝나면 곧바로 비난하라고 했습니다.”
여안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그사이 고해가 천천히 철풍금 앞으로 다가갔다.
고해가 손을 휙 저었다.
몇몇 관리들이 검은색 천을 내리자 철풍금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리가 세 개로 된 거대한 악기였다.
위는 반들반들했고, 가만히 있어도 고귀해 보였다.
다만 외형은 삼각 책상과 비슷했다.
고해가 손을 흔들자 대한 관리들은 교육받은 대로 천천히 철풍금 덮개를 열었다.
순간, 현과 같은 물체가 나타났는데, 지극히 복잡해 보였다.
옆에 있던 관리가 손수건을 들고 왔다.
고해는 손을 닦고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저게 철풍금이야? 의자도 있어? 도대체 뭐지?”
“저게 철풍금이야? 비싸 보이긴 하네.”
“별로 쓸모는 없을 것 같아. 소리나 날까?”
수련자들은 못미더워하면서도 궁금한 눈으로 고해와 철풍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고해는 천천히 건반 덮개를 열었다.
오십이 개의 흰 건반과 서른여섯 개의 검은 건반이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여든여덟 개의 건반을 본 수련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맞은편에 있던 강천익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가 저렇게 많지요?”
여안도 눈을 가늘게 좁혔다.
“저걸로 뭘 하겠다는 거지?”
고해의 지극히 정중한 모습을 본 두 사람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고해가 연미복을 입고 정중하게 철풍금 앞에 앉은 모습을 본 수련자들도 숙연해졌다.
일부 수련자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조용해지자 따라서 조용해졌다.
맞은편에서 칠현금을 켜던 고수들도 조용해졌다.
고해가 덤덤히 입을 열었다.
“진을 치거라!”
“네!”
몇몇 일품당 부하들이 빠르게 진법을 펼쳤다.
진법은 투명한 색을 주변에 드리웠다.
강천익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저…저건 확장음 진법?”
“확장음 진법? 고해가 자신감이 넘치는군.”
확장음 진법은 곡의 소리만 밖으로 새어 나가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곳이 나오면 그 음악에 도취되어 버린다.
하지만 곡 자체만 밖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새로운 신곡이라면 모를까, 오히려 손해가 될 수도 있다.
확장음은 악기의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해가 곡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겠다는 것 같은데…….”
“흥! 대신 연주를 망치는 순간 ‘이 거리 제일 금루’도 망하겠군.”
수련자들은 괴이한 눈빛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가 손을 뻗어 첫 번째 음을 냈다.
딩!
순간,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고해만 바라보았다.
고해가 친 확장음 진법에 따라 철풍금 소리는 은월성 여기저기에 흘러나갔다.
한 수련자가 첫 느낌을 말했다.
“철풍금의 소리에 변화가 많구나!”
당당당……딩딩딩……당당당……!”
고해의 손가락이 움직이면서 나온 소리를 들은 수련자들은 괴이한 느낌을 떨쳐버렸다.
철풍금 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드는 것 같았다.
은월성에서 다년간 악기를 연주하고 또 음악을 들었던 사람들인지라 이들도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철풍금 연주가 계속될수록 눈을 감고 감상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고해는 주변을 바라보며 철풍금을 치더니, 어느새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고해는 금도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라 철풍금을 파는 사람에 불과했다.
그러나 장사를 하려면 홍보가 매우 중요했다. 반드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야 했다.
고해는 심사숙고하여 첫 곡을 골랐다.
수련자 중에는 금도(琴道)의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반드시 귓가에 맴도는 곡을 선택해야만 했다.
고해가 선택한 첫 곡은 ‘개논(喈惀) 변주곡’이었다. 지구에서 이상하게 중독되는 곡이기도 했다.
고해는 지구에 있을 때 수많은 음악을 들었었다. 최신곡을 들으면서 따라부르기도 했지만, 개논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개논’은 탄생부터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불패신화를 썼다.
철풍금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 음악 대가들은 이런 커다란 악기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서양의 천재 음악가들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
천재 음악가들은 전형적인 철풍금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여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천재 음악가들도 음악 창작 과정에서 개논을 결합했다.
‘운명교향곡’, ‘오종 개논변주곡’, ‘개논과 지그 디장조’에도 개논이 사용되었다.
‘개논’은 하나의 철풍금 음악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곡조였다.
마치 무술의 다양한 몸놀림처럼 수없이 변화 발전했다.
철풍금 음악가들은 개논 음악을 자신의 연주와 결합하거나 변주곡으로 사용해 왔다.
고해가 젊었을 때 들었던 음악이나 보았던 영화에서도 개논이 변주곡으로 사용되었다.
개논 곡조에는 수많은 버전이 있다.
고해가 젊었을 때 들은 바에 의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이천 개의 버전이 있다고 했다.
일반 사람들은 그 차이점을 잘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음악가들은 ‘개논’을 하나의 ‘성전’으로 여기고 있었다.
음악가라면 누구나 개논과 관련된 곡을 최소 한두 곡은 만들었다.
마법과 같은 곡조, 기적의 곡조, 천년 불퇴 곡조!
음악에는 국경도 세계도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비록 개논이 가장 훌륭한 곡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 금도의 길을 걷고 있는 수련자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었다.
고해 역시 이러한 느낌을 살려 철풍금을 홍보하려고 했다.
이 음악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사람들은 ‘개논’ 하면 곧바로 철풍금을 떠올렸다.
고해가 연주하는 곡은 바로 ‘개논과 지그 디장조’였다. 개논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버전이었다.
디디딩당! 딩딩딩……!
금도의 길을 걷는 수련자가 없어도 음악은 울려 퍼졌다.
많은 곡조가 중복되고 있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새로운 느낌이 들었고 계속 듣고 싶어졌다.
그 어떤 의경(意境)도 없이 오직 곡조만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은월성에 있는 수련자들도 비범한 음악적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의경도 없이 오직 곡조만으로 그 매력에 빠져버렸다.
‘이 거리 제일 금루’에서 고해를 비웃을 준비를 하고 있던 수련자들도 순간 숙연해졌다.
수많은 음악을 들어보았지만, 이런 음악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눈을 감기 시작했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자신만의 정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용완청과 유년대사, 상관흔도 음악 소리에 빠져들었다.
목신풍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어떻게 이럴 수가? 이게 무슨 곡이지?’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들은 적이 없는 노래였다. 근데 왜 이렇게 듣기 좋단 말인가.
여안과 강천익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두 사람은 모두 음률을 잘 알고 있었다. 음률을 잘 알고 있기에 이 곡조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곡조가 어느덧 자신들과 맞서는 지옥의 울부짖음처럼 들렸다.
여안이 망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어떻게? 다른 악기로도 연주할 수 있잖아? 그런데 왜 하필 철풍금이야? 이렇게 훌륭한 음악은 어디에서 온 거지?”
강천익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공자님, 이 곡조에는 희열과 슬픔이 있습니다. 의경도 없는 음악이 이런 효과를 나타낸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개논을 듣고 하던 일을 멈추었다.
충격이었다.
음악을 들었더니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고, 또 즐겁기도 하면서 슬프기도 했다.
‘천하제일 금루’에서 악기를 사려던 사람들도 멈칫했다.
“손님, 이 악기를 드릴까요?”
“조용히 하게!”
“손님, 아직 계산하지 않으셨습니다!”
“안 사겠네! 그러니 막지 마!”
천하제일 금루에 악기를 사러 왔던 사람들도 하던 행동을 멈추고 맞은편에 있는 ‘이 거리 제일 금루’에 있는 고해를 보고 있었다.
한 곡조가 끝나자 고해는 또 한번 중복했다.
듣고 또 들어도 절대 질리지 않았다.
‘이 거리 제일 금루’ 앞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철풍금 소리는 확장음 진법을 통해 은월성 여기저기에 울려 퍼졌다.
곳곳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음악을 들었다.
“왕 씨, 거문고 좀 멈춰 봐! 이게 무슨 노래야? 왜 이렇게 슬프지?”
“뭐가 슬퍼? 이건 흥겨운 음악이라고!”
“아니야, 아니야, 사랑에 얽매인 것 같아!”
“난 생이별하는 느낌인데?”
곡조의 은은한 구성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