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173화 (156/243)

173화. 산장 주인의 돌아온 의경(意境)

천하제일 금루의 근처에 있는 한 정원에서는 백의를 입은 여자가 얼굴에 너울을 쓰고 향을 피우며 칠현금을 닦고 있었다.

만약 여기에 수련자가 있었더라면 한눈에 천하제일 금루에서 칠현금을 켜던 ‘완아선자’임을 알아챘을 것이다.

개논 소리가 들리자 완아선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렇게 큰 소리는 완아선아의 휴식을 방해했고 그의 창작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반복되는 곡조를 들은 완아선자는 말로 형용하지 못할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완아선아는 경이에 찬 눈빛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 음표가 끊임없이 반복되는데 하나도 질리지가 않아. 도대체 누구지?”

확장음 진법은 은월성의 십분의 일까지만 흘러갔지만 은월산장까지는 가지 못했다.

은월산장 밖에는 수많은 고수가 모여 있었다. 그들은 은월산장의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고 있었다.

산장 내의 한 정자에 앉아 있던 늙은 주인은 자신의 칠현금을 닦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딩-!

산장 주인이 칠현금의 한 현을 튕기자 괴이한 음이 흘러나왔다.

수련자들은 화들짝 놀랐다. 그 이유는 수련자들의 칠현금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된 일이지? 칠현금에서 소리가 안 나!”

“내 것도 그래!”

“누, 누가 감히 내 연습을 방해하지?”

금도의 길을 걷는 수련자들은 화들짝 놀랐다.

누구의 실력이 이렇게 강력하단 말인가?

사람들은 황당한 반응을 보일 때, 은월산장에서 한 부하가 걸어 나왔다.

“조금 전의 소음술은 주인님께서 내보낸 것입니다. 주인님께서 음악을 감상하고 계시니 다들 조용해 주세요.”

수련자들은 망연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네? 네!”

산장 주인이 소음술을 펼치다니.

도대체 누구의 연주이길래 산장 주인이 감상까지 하는 걸까?

왜 내 귀에는 아무것도 안 들리지?

산장 주인은 들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들을 수 없었다.

산장 주인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칠현금을 튕겼다.

챙!

순간 산들바람이 불더니 ‘개논’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를 들은 은월산장의 부하들은 화들짝 놀랐다.

고해의 세 번째 ‘개논(喈惀)’ 연주가 끝났다. 그러나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산장 주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운묵아, 이 곡조 어떠냐?”

청색 옷을 입은 운묵이 놀란 듯 말했다.

“제 영혼을 파고드는 것 같습니다.”

산장 주인은 다른 사람들을 보며 물어보았다.

“그래? 너희들은 어떠냐?”

“생이별의 아픔을 느꼈습니다.”

“사랑에 눈뜨기 시작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혼자만의 즐거움? 저는 희열을 느꼈습니다.”

마치 서로 다른 물건을 본 것처럼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달랐다.

운묵이 또 입을 열었다.

“주인님, 제가 보기에는 사람마다 느끼는 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 곡조는 마치 하나의 이야기 같습니다. 처음 도입부에는 어떤 기억을 회상하고 스스로한테 그때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을 기억하는지 물어보는 것 같습니다.”

“그다음은?”

“다음은, 옛 시절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고, 그때의 사랑도 전부 사라졌다는 슬픔과 서글픔을 남겨주는 것 같습니다.”

운묵의 설명을 들은 주인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연주는 어설프지만 드문 곡조야. 철풍금이라… 이게 바로 철풍금 곡조인가?”

손을 휘젓자 고해의 철풍금 소리가 사라졌다.

산장 주인은 칠현금을 만지며 ‘개논’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연주보다 더 힘이 있었고 웅장했다.

산장 주인 앞에 있던 부하들은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고해의 연주에는 이런 의경이 없었지만, 산장 주인의 연주에는 이런 의경이 있어 더욱 슬프게 들렸다.

산장 주인이 물어보았다.

“운묵, 어때?”

운묵이 대답했다.

“주인님께서는 의경으로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연주하셨습니다. 곡이 반복되는 이유가 바로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 곡조만 있고 의경이 없다? 허허! 철풍금이라는 걸 치는 사람, 정말 재밌는 사람이군! 하하!”

운묵이 화들짝 놀랐다.

“네? 의경이 없다고요?”

“반드시 의경이 있어야 하느냐?”

“그렇지만 이건 매우 평범한 곡조 아닙니까?”

“평범한 곡조는 맞다. 그러나 작곡가와 금도의 길을 걷는 수련자가 같더냐? 하하!”

“네?”

“이런 곡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대회에 참가할 자격이 충분하지. 가서 초대장을 전해주고 오거라. 그리고 올 때 철풍금도 사와!”

운묵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그런데 곡조만 있는 사람한테 초대장을 건네주면 뭔가 좀…….”

“멍청한 놈아, 아직도 모르겠느냐? 저 사람은 고수를 넘어섰어. 가 보거라.”

“네!”

* * *

‘이 거리 제일 금루’.

고해는 다섯 곡을 연주했다.

딩!

마지막 음이 끝났다.

주변은 쥐죽은 듯 조용했고, 사람들은 아직도 음악의 매력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고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곡의 이름은 바로 ‘개논’입니다. 제가 총 다섯 번 연주했네요. 여기에 계시는 분들도 다양한 악기로 ‘개논’을 연주해 보시길 바랍니다.”

고해의 목소리는 확장음 진법을 통해 사면팔방으로 흘러갔다.

순간, 금도의 길을 걷는 수련자들이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래, 나도 칠현금으로 연주하면 되지!

일반 수련자들은 의경이 없는 곡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러나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연주를 통해 자신의 의경을 만들려고 시도할 것이다.

처음 들은 순간부터, 이 곡은 후세까지 전해질 곡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귓가에서 맴돌았다.

금도의 길을 걷는 수련자들은 자신의 칠현금을 꺼내 들고 ‘개논’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다섯 번 들었으면 충분히 기억할 수 있는 곡조였다. 피리로 부는 사람, 쟁으로 연주하는 사람, 퉁소를 부는 사람 등 다양한 악기로 연주해도 감동적이었다.

자신들의 악기로 연주할 때마다 사람들은 철풍금 연주를 떠올렸다.

근처의 한 정원에 있던 완아선자도 궁금한 듯 말했다.

“개논? 신기한 이름이네.”

수련자들은 고해의 연주를 들은 후 아무도 고해를 얕잡아 보지 않았다.

의경 없이도 사람을 감동시키다니!

용완청, 유년대사와 상관흔은 숨을 길게 내쉬더니 경탄의 눈빛으로 고해를 보고 있었다.

목신풍은 가슴이 꽉 막힌 느낌이었다.

고해의 철풍금 실력은 좋지 않아! 그렇지만 이 곡조가…….

천하제일 금루에 있던 여 공자와 강천익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천하제일 금루에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

강천익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철풍금 실력은 별로지만, 그 곡은 확실히…….”

강천익은 천하제일 금루의 총지배인이었다. 그 역시 금도의 길을 걷는 수련자로서 곡조의 신선함을 모를 리가 없었다.

여안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개논? 흥! 강천익! 비아냥거릴 사람들은 어디 갔어? 왜 아직도 안 가는 거지?”

강천익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그들한테로 걸어갔다.

몇몇 고수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가서 이 음악을 평가하라고?

그러나 천하제일 금루의 덕을 본 사람들이라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천하제일 금루를 나온 고수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듣기조차 민망하여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주변의 수련자들이 깜짝 놀랐다.

“뭐?”

누군가 그 고수를 알아봤다.

“왕 대사잖아? 덕성과 명망이 높은 분인데…….”

창문 돌출부에 있던 고해는 왕 대사를 보며 말했다.

“제가 연주한 개논 말입니까?”

왕 대사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래. 반복에 또 반복, 그리고 또 반복! 한 곡에 스물여덟 번이나 반복되는 구간이 있는 음악은 처음 보네! 정말 유치하군!”

또 누군가가 음악을 평가했다.

“의경도 없는 곡조는 소음에 불과할 뿐이네!”

누군가가 그를 알아보고 수군거렸다.

“저분은 진 대사군. 과거 은월산장에까지 진출하셨던 분이시지.”

고해가 냉랭하게 말했다.

“의경이 없으면 소음이라고요?”

“흥! 그리고 철풍금이라 했는가? 곡도 이상하게 들리고, 기술도 별로 필요 없겠구만!”

“이렇게 이상한 악기를 상품 영석 백 개에 판다고? 돈에 환장했어?”

한 무리의 고수들이 나와서 고해의 개논에 악담을 쏟아냈다.

개논에 심취되었던 수련자들은 혼란스런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곡조가 별로라니.

그것도 나름대로 음악을 한다는 사람들이 하는 말 아닌가 말이다.

문득 철풍금에 대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에 있는 여안과 강천익은 음흉하게 웃었다.

그래! 어떻게 판을 뒤집는지 두고 보겠어!

고해는 옆은 미소를 지으며 상관흔을 바라보았다.

그때,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멍청한 것들! 이런 음악이 너희들 귀에는 가치가 없어 보여? 멍청함이 극에 달했구나! 하하하!”

고해는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누구지?’

상관흔은 자기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는 표시로 고개를 흔들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중년 사내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사내는 출중한 외모에 말꼬리 모양으로 머리를 묶고 있었다.

몸에는 커다란 자홍색 포를 입었는데 우아한 기품을 뽐내면서 걸어 나왔다.

한 금도 고수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넌 누구냐?!”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 같은 멍청한 것들은 내가 누군지 몰라도 된다! 하하하!”

남자는 고해를 보더니 예의를 갖춰 말했다.

“오늘 ‘개논’이라는 곡을 처음 들어봤습니다만, 확실히 특이하군요, 이 곡조는 반드시 후세에도 전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사마장공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은월성에 오길 정말 잘했습니다. 한데 고 선생, 철풍금 소리가 굉장히 독특한데, 왜 한 곡만 연주하셨습니까?”

고해가 사마장공을 보면서 말했다.

“많은 것을 들려주기에는 아직 실력이 부족합니다.”

“혹시 다른 곡도 가능합니까?”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이지요.”

“하하! 그렇군요. 그럼 일단 열 대만 주십시오.”

“안내판은 보셨습니까? 물건은 반년 후에 넘겨드릴 수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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