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176화 (159/243)

176화. 고해에게 속다

* * *

은월성의 수련자들은 고해가 정말로 천하제일 금루를 감당해 낼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고해가 물건을 어디에서 갖고 올까?

개업할 때 거문고도 있을까?

거리에 수련자는 물론 다른 점포의 주인들도 모두 나와서 ‘이 거리 제일 금루’ 앞이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강천익도 선물을 준비하고는 굳게 닫혀버린 ‘이 거리 제일 금루’의 대문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거리 제일 금루’의 장식은 매우 신선했다. 바닥에는 반짝거리는 대리석을 깔았고 주변은 하얀색으로 칠해서 화려한 감을 더했다.

그 건물 밖에는 대한의 관리들과 일품당 부하들이 서 있었다.

“길시(吉時)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소리치자, 폭죽 소리가 터져 나왔다.

타다당! 타다다당!

시끌벅적한 가운데 고해와 용완청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대한의 관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끈을 자르겠습니다!”

개업식을 구경하던 수련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개업식까지 괴상하게 느껴졌다.

고해와 용완청이 가위로 끈을 잘랐다.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문을 열어라!”

타다다닥!

폭죽 소리가 울리면서 대문이 활짝 열렸다.

내부는 채광이 잘되었고, 중앙에는 태양광이 쏟아져 주변을 밝혀주었다.

고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 저희 금루 개업 삼 일 동안은 일 할 할인됩니다. 저희는 정가제를 도입했으니, 흥정이나 외상은 안 됩니다. 하하하! 성에서 가장 좋은 악기는 저희 가게가 제일 싸고, 성에서 가장 싼 악기는 저희 가게가 가장 좋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일 할 할인?

수련자들은 빠르게 점포 안으로 들어갔다.

강천익은 준비한 선물을 슬그머니 한쪽으로 치우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정말로 개업을 하다니. 설마 악기도 있는 건 아니겠지?’

그때 먼저 들어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와! 5층까지 꽉 찼어! 무슨 악기가 이렇게 많아?”

“이층에는 전부 거문고만 있어! 품질도 천하제일보다 떨어지지 않아! 어? 가격이 뭐 이래? 천하제일 금루의 절반 가격이잖아? 그런데 여기에서 일 할을 또 할인한다고?”

“이 퉁소도 나쁘지 않은데? 품질도 천하제일과 똑같군. 가격도 삼 할은 더 싸네. 하하하! 예전부터 사고 싶었는데, 이거나 하나 사야겠다!”

“뭐지? 영수증도 있어?”

오층까지 전부 대리석이 깔려 있었다.

벽에도 대리석을 붙여 아주 환한 분위기였다.

한쪽에서는 금도 고수들을 초대하여 편안한 곡을 연주하게 했으며, 고객들은 마음 편히 구경할 수 있었다.

판매원들도 깍듯하게 손님들께 악기의 장단점을 설명해 줬다.

그런데 가게 안에는 수많은 작은 가게들이 있었다.

강천익이 눈을 치켜뜨고 가게들을 둘러보았다.

‘저 가게는 끝머리에 있는 얼후네 가게잖아?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저건 사거리에 있는 칠현금 가게?’

‘저긴 전부 은월성의 이색 가게인데……?’

강천익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규모가 작은 가게들이라 해도 자신들만의 특징이 있는 악기들이 있었다.

그런 가게의 악기들이 전부 ‘이 거리 제일 금루’에 입점한 것이다.

한 청의를 입은 남자가 자신의 가게에서 강천익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야, 지배인님도 오셨어요? 예전에 지배인님이 극찬하시던 저희 가게 금관 장적(长笛, flute)입니다. 한번 보시지요. 저희 가게에서 가장 훌륭한 악기들입니다.”

강천익이 싸늘하게 말했다.

“내가 고해한테 물품을 넘기지 말라고 말했잖은가? 벌써 내 말을 잊었는가?”

하지만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물건을 넘긴 적 없습니다. 이건 제 가게거든요. 여기 간판도 있지 않습니까? ‘소진금관장적’! 하하하!”

강천익은 눈을 치켜떴다.

“무슨 말인가? 한번 보게! 물건을 팔면 돈은 전부 고해네 사람이 받지 않는가?”

“돈은 다시 돌려줍니다.”

“뭐?”

“고 선생이 그러는데, 여기는 백화점이라고 했습니다. 저희 제품들을 저희가 여기에서 팔 수 있다고 했지요. 여긴 인기도 많고, 또 저희 제품은 품질도 좋지 않습니까? 얼마나 많은 물건을 파는지는 저의 능력에 달렸지요. 다만 저희의 경우 판매액의 이 할을 공제하고 돈을 받습니다.”

“공제? 그럼 아무 제품이나 입점해서 팔 수 있단 말인가?”

“그럴 리가요? 고 선생이 제품을 고릅니다. 만약 엉터리 제품이 있으면 벌금도 내야 합니다. 여기서 영수증을 끊으면 저기 보이는 계산대에서 계산을 합니다.”

강천익은 아연실색해서 입이 벌어졌다.

“백화점? 공제? 고해가 이런 수법을 생각해 내다니!”

“그럼, 손님이 오셔서 이만……. 하하하, 개업일이라 그런지 장사가 잘되는군요!”

개업 첫날, 수많은 수련자가 모여들었다.

물건은 아름다웠고, 가격은 저렴했다. 영수증을 끊어서 품질도 보장해 주었다.

새로운 판매 방식에 반한 수련자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좋은 물건이 보이면 수련자들은 앞다투어 구매했다.

여러 곳의 계산대에는 돈을 내러 온 사람들이 길게 늘어섰다.

철풍금(piano) 예약은 줄었지만 금루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 소식은 마치 날개라도 달린 듯 은월성 전체로 퍼져나갔다.

강천익인 혼비백산해서 중얼거렸다.

“끝났다! 끝났어! 천하제일도 이제 끝났어!”

자금? 자금도 필요 없었다.

고해는 돈 분배와 관리만 하면 된다.

악기를 들여오는 것?

그것도 필요 없었다. 악기상들이 앞다투어 ‘이 거리 제일 금루’에 입점하려고 했다.

고해네 가게를 우습게 여기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이런 작은 가게들을 하나씩 따지면 천하제일과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가게마다 이색적인 악기와 특색 있는 악기가 있었다.

거기다 가격까지 저렴하니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왔다.

수련자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이것저것 비교해 본 수련자들은 천하제일 금루에 바로 등을 돌렸다.

강천익은 넋이 빠진 채 천하제일 금루로 돌아갔다.

천하제일 금루에는 손님도 별로 없었다.

여안은 차를 마시다가 들어오는 강천익을 보며 물었다.

“어때? 많은 사람이 들어가던데, 악기는 있어? 품질은? 놈들이 언제쯤 망할 것 같아?”

강천익은 착잡한 표정으로 여안을 바라보았다.

“공자님, 고해는 천재를 넘어선 자입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전날 철풍금을 연주한 것도 결국은 오늘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이번 일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저희 모두 고해한테 속았는지도 모릅니다.”

여안은 벌떡 일어나서 눈을 치켜떴다.

“무, 무슨 소리야? 우리가 고해에게 속았다니? 철풍금이라는 게 오늘을 위한 준비라니?”

강천익은 울상이 되어서 고개를 저었다.

“‘이 거리 제일 금루’야말로 돈을 쓸어 담는 기계입니다. 이대로 가면 천하제일 금루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 * *

은월산장의 장주는 운묵한테서 ‘이 거리 제일 금루’의 성대한 분위기를 전해 들었다.

장주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뭐라? 철풍금과 개논(canon)까지 전부 사전 준비였다고? 이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준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웃음거리로 생각하다가 철풍금이 나타나니 철풍금만 판매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전부 오늘을 위한 준비였지 뭡니까?”

“허어어…….”

“‘이 거리 제일 금루’의 명성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점포 주인들은 모두 그곳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고해네 점포의 물건은 마치 공짜인 것처럼 사람들이 쓸어 담고 있습니다.”

운묵은 담담히 말하면서도 감탄과 아쉬움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철풍금도 많은 돈을 벌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 거리 제일 금루’는 그보다도 훨씬 더 엄청난 돈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고해라는 사람, 정말 대단합니다. 금루를 홍보하기 위해 음악을 이용하다니요.”

장주는 곤혹스런 표정이었다.

개논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고해가 창작한 곡이 맞는지 의심을 했었다.

그러나 며칠 후, 개논의 새로운 변주가 나오자 고해가 만든 곡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그런 실력으로 장사를 하다니.

더 어이없는 건, 개논이 금루의 홍보를 위한 도구라는 점이었다.

운묵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해가 이런 수법을 사용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천하제일 금루’ 역시 속수무책이지요.”

장주가 그 말에 풀썩 웃었다.

“천하제일 금루…… 허허허! 이번에 제대로 망하겠구나!”

* * *

‘이 거리 제일 금루’가 개업한 이후부터 천하제일 금루의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강천익은 맞은편의 금루에 들어가기 위해 길게 늘어선 대오를 보며 이를 갈았다.

‘이 거리 제일 금루’가 개업한 지 구 일. 할인 기간이 지났음에도 그 인기는 멈출 줄 몰랐다.

그곳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쓸어 담는 사람은 고해였다.

입점한 점포들은 고해의 공제액에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입점이 되면 감격스러워했다.

열흘 동안의 매출이 지난 1년간의 매출과 맞먹었기 때문이다.

각 점포들은 금루의 규칙을 어기지 않으려고 자신들의 악기를 보완했다.

다른 곳보다 좋게 만들지 않으면 입점 대기자들이 물고 뜯으려고 할 테니까.

* * *

고해의 서재에 있던 용완청은 특이한 기호가 쓰인 종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뭐야?”

고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아라비아 숫자입니다. 우리 점포의 실적 보고서이지요. 예전에 부하들한테 작성하는 법을 가르쳐준 적이 있습니다.”

용완청은 머리를 끄덕였다.

“아, 그래?”

하지만 아무리 봐도 자신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목신풍은 왁자지껄한 금루 안을 보며 한숨만 늘었다.

철풍금을 예약 판매한 것만 해도 놀라웠다. 그런데 철풍금 예약 판매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부하들이 매일 바쁘게 움직인 후, 고해한테서 임금을 받을 때마다 더 힘을 내서 일하고 있었다.

목타 부하들이 마치 수타 부하가 된 것 같았다.

‘젠장! 이러다 부하들을 다 뺏기는 거 아냐?’

그래도 그는 여안보다 나았다.

쨍그랑!

천하제일 금루에 있던 여안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던졌다.

그가 분노한 채 말했다.

“열흘 동안 겨우 칠현금 여섯 개를 팔았다고? 이걸 실적이라고 가져온 거야?”

강천익은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여안이 그를 윽박질렀다.

“어떻게 할 거야? 어? 방법을 생각해 봐! 멍청이처럼 당하지만 말고!”

강천익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천하제일 금루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망한다고? 안 돼! 만약 할아버지께서 아시면 나를 때려죽인다고 하실 거야!”

안색이 창백해진 여안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강천익을 노려보았다.

“고해네 금루를 박살 내 버릴까?”

“안 됩니다. 만약 고해의 금루를 박살 내면, 고해네 점포가 없더라도 천하제일 금루는 망해버립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방법이 없을까?”

“저한테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뭔데? 말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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