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181화 (164/243)

181화. 판이 조금 작지 않습니까?

하세강이 웃으며 말했다.

“아, 다름이 아니라 여 공자의 요청으로 이곳 사업의 문제점을 조사하려고 왔습니다.”

고해가 미간을 찌푸리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사업의 문제점이오?”

하세강이 고해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분이 고 선생? ‘비창’으로 우리 은월성을 구한 분?”

“과찬이십니다. 그나저나 저의 금루에 문제점이 있다고요? 어떤 문제점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성주가 예의를 갖춰서 말하니 고해도 반감을 갖지 않았다. 다만 의아한 표정으로 성주를 보며 물었다.

여안이 갑자기 입을 열며 말했다.

“하하! 고해! 너의 점포는 내 거야!”

여안이 일어서자 뒤에 있던 부하들이 뒤를 따랐다.

고해가 미간을 찌푸렸다.

“뭐?”

고해가 싸늘한 표정으로 여 공자를 보며 말했다.

“여 공자, 천하제일 금루는 여 공자 구역이라고 쳐도, 은월성 전체가 언제부터 여 공자 구역이었습니까?”

온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온 땅에는 왕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다.

대건천조의 성지는 오직 성왕의 것이다.

누가 감히 함부로 내 땅이라고 말하는가!

여양왕이라도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그런데 여안이 냉랭하게 말했다.

“흥! 고해! 내가 시간이 없어서 말이야! 여긴 내 땅이니 얼른 사람들을 데리고 꺼져라! 이 금루는 이제부터 내 것이야!”

고해가 말했다.

“뭐? 여 공자,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오!”

여안이 한 늙은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함부로 말한다고? 흥! 자네가 이 사람한테서 건물을 사지 않았던가?”

한 노인이 전전긍긍하며 걸어 나왔다. 그 노인은 차마 고해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이때, 한 대한 관리가 걸어왔다.

“주인님, 저희가 건물을 살 때 저 늙은이한테서 샀습니다. 그리고 관부에 가서 등록도 마쳤고 명의변경까지 했습니다. 모든 서류가 저희한테 있습니다.”

고해는 미간을 찌푸리며 성주 하세강을 보고 있었다.

순간, 여 공자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주를 볼 필요 없습니다! 그 명의변경서는 가짜입니다!”

순간, 뚱뚱한 중년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생김새는 천하제일 금루의 강천익과 비슷했다.

고해가 물어보았다.

“귀하는?”

“나는 은월제일 기루(棋樓) 지배인 강천기입니다! 강천익은 우리 형님이지요!”

“은월제일 기루의 지배인? 저의 ‘이 거리 제일 금루’와 무슨 연관이라도 있습니까?”

강천기가 냉랭하게 말했다.

“당연하지요, 이 영감탱이가 이 건물을 나한테도 팔았었습니다. 저도 관부에 가서 등록을 마쳤고 명의이전까지 했지요. 서류도 저한테 있습니다. 제가 제 돈 주고 샀으니 제 건물 맞지요?”

강천기의 말을 들은 수련자들은 멍하니 있었다.

“뭐? 한 건물을 두 사람한테 팔았다고?”

“설마…… 그럼 관부에 등록한 것도 가짜란 말이야?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가만? 설마 여 공자가 ‘이 거리 제일 금루’를 빼앗으려고 조작한 거 아냐?”

“맞아.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

“정말 파렴치하구나!”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이 하나둘 욕하기 시작했다.

용완청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 숙,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죠? 저희가 등록하고 돈을 낼 때 아무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만.”

하세강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강 지배인이 먼저 샀으니 방법이 없지요. 이 늙은이는 제가 엄벌하겠습니다.”

고해가 여안을 보며 말했다.

“여 공자님, 저의 금루를 빼앗기 위해 온갖 궁리를 다했군요. 기껏해야 이 땅이나 가져가겠지요. 저희는 금루의 명성이 있는 한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개업할 수 있으니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안이 가까이 다가가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나도 알아. 그렇지만 상관없어. 다른 곳에서 개업해 봐. 내가 또 똑같은 방식으로 빼앗을 테니까. 흐흐흐흐, 절대 개업할 수 없게 만들 거다.”

주변의 수련자들은 여안의 말을 미처 듣지 못했다.

다만 옆에 있던 용완청이 이 말을 듣더니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너! 여안!”

고해는 용완청의 팔을 잡으면서 용완청을 제지했다.

고해가 성주를 보며 말했다.

“성주님, 오늘 이 일 때문에 오셨으면 공평하게 일을 보셔야지요.”

하세강이 정중하게 말했다.

“나라에는 국법이 있고 행동에는 규칙이 있지요. 강 지배인이 먼저 샀으니 당연히 강 지배인이 주인이오. 일품당이 낸 돈은 철저하게 조사한 후, 원금 그대로 돌려드리지요.”

돈을 돌려줄 테니 문을 닫으라?

고해의 표정은 굳어졌으나, 여안과 강 지배인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호시탐탐 고해의 점포를 엿보고 있었다.

성주가 병사들을 데리고 온 목적도 ‘이 거리 제일 금루’를 싹쓸이하려고 온 건가?

여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 내가 살길 하나를 마련해 주지!”

고해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

옆에 있던 강천기가 걸어 나오면서 말했다.

“이건 저의 계약서와 모든 서류입니다. 고 선생, 저와 내기할까요?”

“내기요?”

강천기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만약 고 선생이 이기면 매매계약서를 드리지요. 이 건물도 고 선생의 것이 됩니다. 그러나 만약 제가 이기면 곧바로 은월성을 떠나세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결국 자신을 쫓아내겠다?

고해가 미간을 찌푸리며 냉랭하게 말했다.

“제가 이기면 영업을 계속하고, 제가 지면 여기를 떠나라?”

용완청이 분노해서 나섰다.

“고해! 파렴치한 인간들의 말은 들을 것도 없어! 지금 바로 감찰어사한테 편지를 보낼 거야! 은월성이 누구의 관할인지 정확하게 따져봐야겠어! 권력을 앞세워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겠다고? 흥! 어디 은월성 병사들이 대건천조의 병사인지 여양왕의 병사인지 확실히 해보자고!”

하세강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여안은 냉랭하게 웃고 있었다.

그때 고해가 조용히 말했다.

“어떤 내기를 하고 싶으십니까?”

강천기가 냉랭하게 말했다.

“바둑입니다!”

고해의 눈이 살짝 커졌다.

“예?”

용완청도 화들짝 놀랐다.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강천기가 바둑이라고 했지?

강천기가 한 번 더 강조했다.

“바둑 말입니다. 바둑을 둬서 승부를 가리자는 겁니다!”

고해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바둑이라…….”

용완청도 어이가 없었다.

그 모습을 오해한 강천기가 기세등등하여 말했다.

“그렇습니다. 하하하! 제가 거문고 대결이라도 하자는 줄 알았습니까? 제가 바보가 아닌 이상 어찌 거문고 내기를 하자고 하겠습니까? 은월성에 있고 싶으면 바둑으로 저를 이겨보십시오.”

용완청은 입을 반쯤 벌린 채 여 공자 일행을 바라보았다.

‘미쳤군. 고해에게 바둑으로 승부를 보자니.’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녀와 생각이 달랐다.

대부분의 사람은 고해가 금도의 길을 수련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개논과 비창을 작곡해서 철풍금으로 연주한 사람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고해가 금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도 바둑 실력은 형편없을 거라 생각했다.

반면 상대는 바둑 고수들이 득시글거리는 기루(棋樓)의 주인 아닌가.

고해가 태연해진 표정으로 강천기를 보며 말했다.

“저와 바둑 대결을 하자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제대로 아셨군요. 하하하하.”

“아! 은월제일 기루도 여양왕의 사업입니까?”

강천기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기도(棋道)와 금도(琴道)는 천지 차이지요. 은월성에는 대부분 금도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기도의 길을 걷는 사람이 없다는 건 아닙니다. 얼마 전에 구공자가 대건천조에서 대국을 펼쳤습니다. 운 좋게도 제가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구공자를 아십니까? 그분은 관기 노인한테서 기도를 전수받은 사람이지요.”

고해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말했다.

“구공자요? 구공자의 바둑을 보면서 배웠단 말입니까? 거, 대단하군요.”

강천기가 기세등등해져서 목에 힘을 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관기 노인이 남긴 대국이지요. 이십팔 천지종횡 대국 말입니다.”

이번에는 고해와 용완청도 조금 놀랐다.

“이십팔 천지종힝 대국을 배웠다고요?”

“그렇습니다. 비록 아직 이십구 천지종횡 대국이 남아 있지만, 그건 내 실력으로는 아직 부족합니다. 대신 삼일 내내 이십팔 천지종횡 대국을 보면서 배웠지요. 비록 깨지는 못했지만 칠 할은 배웠습니다. 고 선생,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선택하시지요!”

여안이 나서서 강천기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아니면 지금 바로 금루를 떠나라! 다음에 개업하면 내가 축하하러 가도록 하지. 하하하하. 그게 싫으면 강천기와 대국을 펼치든가. 이기면 계속 영업을 하고, 지면 바로 꺼져버려! 자, 선택해!”

강천기가 고해를 보며 재촉했다.

“이십팔 천지종횡 대국을 본 후, 나도 절세 잔국 팔 편을 터득했습니다! 고 선생, 나와 대국을 펼치겠습니까?”

고해와 용완청은 표정 관리를 하느라 얼굴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천국을 마다하고 지옥에 뛰어들겠다?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마.

하지만 수련자들은 여전히 고해가 걱정되었다.

“고 대사님, 그의 말을 듣지 마세요!”

“고 대사님, 당신이 거문고 시장을 어디에 개업하든 저희는 무조건 거기에서 구매하도록 하겠습니다!”

“맞습니다, 고 대사님. 당신을 응원합니다. 장소가 바뀌어도 저희는 무조건 찾아갈 것입니다!”

“바둑으로 겨뤄? 나쁜 놈들! 그렇게 자신 있으면 고 대사님이랑 음악으로 겨뤄야지!”

주변의 수련자들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주위가 시끄러워지자, 성주 하세강이 소리쳤다.

“조용!”

주변의 병사들은 소란을 피우는 수련자들을 밀쳐 일정한 거리를 유지시켰다.

강천기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요, 두렵습니까?”

여안이 우쭐대며 비웃었다.

“어이, 고해. 두려운 거냐?”

고해가 인상을 찌푸리며 넌지시 말했다.

“바둑 대결이라……. 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만, 제가 어떻게 당신들을 믿지요?”

여안이 입술을 비틀며 비아냥댔다.

“뭘 믿고 말고야? 하자면 하는 거지.”

“제가 이기면 약속을 지키시겠습니까?”

여안의 눈에는 고해가 이미 궁지에 몰린 것 같아 보였고, 자신의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할아버지 명의를 걸고, 성주 하세강이 사회를 보고, 전체 백성이 증인인데 뭐가 의심스럽다는 거냐? 나의 할아버지를 못 믿는 거냐?”

고해는 하세강을 바라보았다.

“성주님, 사회를 맡아주시겠습니까?”

하세강은 고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들이 원한다면 나도 증인이 되어드리지요.”

고해는 짐짓 머뭇거리는 척했다.

여안이 싸늘하게 말했다.

“왜? 두려운가? 하지 못할 것도 없다 했으니, 이미 허락한 것 같은데? 흥! 번복이란 없다. 이제는 하기 싫어도 해야 돼!”

주변의 수련자들이 초조하게 소리쳤다.

“고 선생님, 그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안 됩니다! 하지 마십시오!”

고해는 손을 흔들며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여 공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 공자님이 이렇게까지 나오시니 한판 겨루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런데…… 판이 조금 작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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