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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182화 (165/243)

182화. 제가 바둑 좀 둡니다

여안은 순간 멈칫했다.

“응?”

“뭐?

강천익과 강천기도 눈이 커졌다.

고해가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제가 진다면 은월성을 떠나는 외에 점포도 그대로 넘겨드리겠습니다. 저의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걸 드리지요. 점포의 주인들도 계속 경영할 수 있게 얘기해 보겠습니다. 거기다 저의 연주 비법도 전부 남겨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여안은 눈을 크게 뜨고 고해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의아한 표정이었다.

강천익이 낮은 목소리로 여 공자에게 말했다.

“고해가 미친 건 아니겠지요? 돈을 빨아들이는 점포를 전부 넘기겠다니요?”

그때 고해가 마저 말했다.

“반대로 당신들이 지게 되면, 은월제일 기루를 저에게 넘기시죠. 어떻습니까?”

여안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이놈이 갑자기 왜 이러지? 왜 저렇게 침착하지?

“공자님, 속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강천익이 옆에서 속삭였다.

여안은 일일이 참견하는 그의 말에 짜증이 났다.

“비켜! 속긴 뭘 속아? 흥, 저놈은 절대로 강천기를 이길 수 없어!”

그런데 고해가 여안과 그의 사람들을 보며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그리고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뭐냐?”

“제가 바둑을 좀 잘 둡니다. 겁이 나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안이 그 말에 발끈했다.

“흥! 바둑을 잘 둬? 오냐, 너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바둑판과 바둘돌을 준비해라!”

“네!”

여안의 부하들이 바둑판을 가지러 갔다.

고해가 그 모습을 보며 몇 마디 더했다.

“기왕 내기를 하는 거, 명의를 넘겨주는 관원도 미리 불러주시죠. 서류도 미리 가져오고 말입니다. 대결이 끝나면 패배를 인정하고 이 자리에서 바로 소유권을 넘겨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거 좋지! 너도 서류를 모두 가져와라!”

“당연히 그래야지요.”

“여봐라! 가서 은월제일 기루의 서류들 전부 들고 오거라!”

여안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부하 몇 명이 뒤돌아서 달려갔다.

“네!”

고해도 대한의 관리를 시켜서 서류를 가져오게 했다.

곧 양쪽에서 서류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대결이 시작되기만 기다렸다.

작은 건물 위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사마장공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고해도 참. 왜 그런 내기를 굳이 받아들이는 거지?”

옆에 있던 부하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며 말했다.

“고해의 실력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럴 리가? 그의 실력을 보면, 지금까지 금도에만 전념했을 것이다. 기도를 안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거란 말이지. 그에 반해서 강천기는 전문적인 바둑 기사가 아니냐?”

사마장공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그 시각, 다른 건물에서는 완아선자가 조용히 방 안에 서 있었다. 그는 창을 통해 싸늘한 눈빛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이를 악문 그녀가 낮은 소리로 읊조렸다.

“흥! 바둑 대결이 거문고와 같은 줄 아느냐? 바둑으로도 개논이 가능한 줄 아느냐?”

그사이, 바둑을 둘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

대한 관리와 여안의 부하들은 각종 서류를 관청의 담당 관원들에게 넘겨주었다.

이제는 승패가 결정 나는 순간 소유권도 바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고해와 강천기가 바둑판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이제 두 사람의 대결 결과에 따라 거대한 사업의 주인이 결정될 것이다.

강천기가 자신 있게 웃으며 말했다.

“고 선생, 먼저 선공하시죠?”

고해가 미소를 지으며 검은색 바둑알을 집어 ‘천원 자리’(바둑의 정 중앙점)에 올려놓았다.

주변이 순간 시끄러워졌다.

웅성웅성.

“역시 고 대사님은 바둑을 둘 줄 모르시네. 첫 번째 바둑돌을 어떻게 천원에 둘 수가 있지?”

“천원 자리에 첫수를 두다니. 한 수를 낭비했잖아?”

수련자들은 기도에 대한 지식이 얕았지만 기초적인 지식 정도는 알고 있었다.

첫수를 천원 자리에 두는 것은 정말 중요한 기회를 한 번 낭비하는 거나 같았다.

사마장공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 첫수를 천원에 두다니. 유아독존이라는 건가? 그만큼 자신이 있는 건가?”

반면 완아선자는 코웃음 쳤다.

“흥! 그럼 그렇지.”

그리고 강천기와 여안 등은 고해의 바둑 실력을 비웃었다.

죽을 길을 찾아가는구나!

그때 강천기도 첫 번째 백돌을 바둑판에 올렸다.

착! 착! 착!

고해와 강천기는 조용히 한 수 한 수 바둑을 진행했다.

* * *

은월성 외부.

한 척의 비주(飛舟)가 멀리서부터 은월성을 향해 서서히 날아오고 있었다.

뱃머리에는 회색 옷차림의 늙은이가 서 있었고, 시선은 먼 곳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하가 그의 뒤에서 정중하게 말했다.

“묵 어르신, 두 시간 후 은월성에 도착합니다. 여 공자 일행이 은월성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묵 어르신이라 불린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허허허, 은월성이라. 천하제일의 거문고 시장과 어르신의 사업체가 있는 곳이지. 이번에 많은 군비를 챙겨가야겠어. 전쟁이 시작되면 돈 쓸 일이 많아지거든.”

“여 공자님이 은월성을 지키고 있으니 아무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은월성 산장 주인이 탄금대회를 주최한다고 들었습니다. 천하제일 금루가 잘될 수밖에 없지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천하제일 금루와 은월제일 기루는 장사가 잘될 수밖에 없지. 허허. 이번 군비는 걱정 안 해도 될 것이야.”

* * *

착!

고해가 마지막 바둑알을 구오(九五) 자리에 두었다.

그러고는 강천기의 흰색 바둑알 백 개를 따냈다.

한 번에 백 개의 바둑알을 따내다니.

그건 용을 도살하는 것이 아니라, 통째로 삼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치 얼마 전, 비창을 연주해서 먹구름을 파괴시키던 모습과도 같았다.

“휴!”

주변의 수련자들은 겨우 숨을 돌렸다.

시작할 때만 해도 고해가 패배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 고해가 절대적 우세로 판을 끝내버렸다.

바둑판에는 강천기의 갈 길 잃은 바둑알만이 남아 있었고, 나머지는 전부 고해가 먹어버렸다.

강천기는 경악을 금치 못한 채 온몸이 굳어졌다.

“아니야, 이건 아닙니다! 부정행위를 한 것이 분명합니다! 고해가 분명히 반칙을 했을 겁니다!”

어떻게 자신이 질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 돼!

강천기는 바둑판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고해가 수작 부린 곳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이럴 수는 없어. 말도 안 돼…….”

강천기는 점점 미쳐갔다.

완아선자도 어안이 벙벙했다.

경악한 그녀는 고해의 마지막 바둑알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이 승리하다니. 운이 좋았던 것일까?”

반면 사마장공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 첫 번째 바둑알을 천원에 두고 마지막 바둑알을 구오에 두다니. 이게 우연일까?”

부하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진짜입니다, 어르신. 첫 번째 바둑알을 천원에, 마지막 바둑알을 구오 자리에 두는 순간 승부는 결정 났습니다!”

사마장공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천도해에 사람을 파견해서 고해에 대해 알아봐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알아봐!”

“네? 어르신, 전에도 파견 보내지 않으셨습니까? 이미 파견 나간 사람이 있습니다.”

“더 보내! 그를 제외한 그의 가족에 대한 것까지 전부 알아봐라. 자세하게!”

“예!”

주변 사람들이 경악하든 말든 결과는 이미 나왔다. 고해의 승리였다.

고해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얘기했지요? 제가 바둑을 좀 잘 둔다고.”

수련자들은 이미 끝난 바둑판을 말없이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일부 사람들은 혹시라도 고해가 괴롭힘을 당하면 도와주려고 팔을 걷어붙였다.

대결 상대가 은월제일 기루의 주인 강천기다. 그의 바둑 실력은 엄청난 걸로 알려져 있었다.

은월성에서 바둑으로는 십대고수 중 한 명이 그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고해에게 한꺼번에 백 개의 돌이 잡히다니.

“고 대사님의 승리다! 얼른 은월제일 기루의 소유권을 고 대사님에게 넘겨라!”

“하하하, 멋집니다. 고 대사님의 바둑 실력도 만만치 않군요!”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용완청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문고 대결이었으면 금도의 예술적 경지를 모르는 고해가 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바둑으로 대결을 신청하다니!

죽으려고 작정했지!

역시 천도해가 멀긴 멀었다. 고해의 바둑 실력이 여기까지 전해지지 않은 걸 보면.

고해를 함정에 빠뜨리려다 스스로 똥통에 빠진 여안이었다.

용완청이 웃으며 말했다.

“하 성주님. 사회도 맡으셨고, 백성들도 증인으로 나섰고, 승부도 이미 갈렸으니 이제 소유권을 넘겨받아도 되겠습니까? 여 공자가 심지어 여양왕의 명의를 걸고 한 대결이지 말입니다!”

하세강은 난감한 기색이었다.

여안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어떻게 된 일이야? 강천기, 넌 무조건 이길 수 있다며? 네가 직접 말하지 않았느냐?!”

여안도 강천기처럼 미쳐가는 듯했다.

천하제일 금루보다 규모는 작아도 은월제일 기루 역시 은월성에 펼친 큰 사업이었다.

두 곳에서 매년 조부의 군사비용으로 막대한 금액을 지원했었다.

그런데 그 두 곳 모두 고해에게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이 일을 어떻게 조부에게 알린단 말인가!

여안은 조부가 얼마나 큰 처벌을 내릴지 예측할 수 있었다.

“아, 아닙니다, 여 공자님! 이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제 잘못이 아닙니다!”

강천기가 눈을 부릅뜨고 바둑판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여안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그의 눈빛은 마치 강천기를 죽일 것만 같았다.

“뭐가 잘못돼! 말해 봐! 너 때문에 은월제일 기루도 잃었어!”

주변의 부하들은 여안의 살기 찬 모습에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강천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 공자님. 한 판만, 한 판만 더 해보겠습니다! 제가 분명히 이길 수 있습니다!”

여 공자의 눈에 살기가 가득 찼다.

강천기가 다시 사정사정했다.

“저는 이십팔 천지종횡 바둑판도 본 사람입니다. 알지 않습니까? 고해는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저한테는 아직 잔국 팔 편이 있습니다. 잔국 팔 편이 있다고요. 무조건 이겨드리겠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여안은 충혈된 눈으로 강천기를 노려보았다.

“공자님, 저를 믿어주십시오! 고해의 모든 것을 빼앗아버리겠습니다! 제가 무조건 고해를 공자님 앞에 무릎 꿇게 만들겠습니다! 공자님의 분노를 시원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

여안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그때 고해가 다가와서 웃으며 말했다.

“공자님, 그럼 기루를 양도받겠습니다.”

여안은 강천기를 뿌리치고 고해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안 돼! 한 판 더 남았어!”

주변의 수련자들은 그 말에 분노를 터트렸다.

“뭐라고? 승부를 인정하시오! 여 공자! 패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요?”

“여양왕한테 어떻게 저토록 어리석은 손자가 있을 수 있어?”

“이랬다저랬다. 여양왕의 명성을 네가 다 갉아먹는군!”

하지만 고해는 여전히 웃음 띤 표정으로 말했다.

“여 공자님 말씀은, 다시 대결을 하자는 것입니까? 아니면 아까 말씀하셨던 여양왕의 명의를 걸고 한 대결을 무효로 하자는 것입니까?”

여안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첫판은 인정한다! 승부를 인정하고 네가 받아야 할 것은 마땅히 받아야지! 우리 집안이 은월성에서 벌이고 있는 사업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업을 내걸고 너에게 대결을 신청하겠다! 거절은 허용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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