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장수의 길은 사도(邪道)다
여안도 조급한 심정이었다.
천하제일 금루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은월제일 기루만은 무조건 지켜야 했다.
고해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이번에도 강천기와 제가 대결합니까?”
“그렇다! 이번에도 강천기와 대결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잔국이다. 강천기가 이십팔 천지종횡 바둑판에서 깨달은 잔편을 놓고 대결해라!”
한편, 용완청은 조용히 서서 아무 말이 없었다.
이십팔 천지종횡 바둑판의 잔편? 강천기 자신도 이십팔 천지종횡 바둑판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으면서 잔편으로 고해를 이겨보겠다고?
‘제대로 미쳤군.’
그래도 고해는 여전히 웃는 표정이었다.
“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만, 일단 소유권부터 먼저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저도 계속해서 바둑을 둘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안은 한쪽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소유권을 넘겨줘라!”
하세강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관원들이 신속하게 명의변경 작업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작업이 끝날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렸다.
고해가 말했다.
“여 공자님, 성주님과 백성들 앞에서 소유권을 넘겨주신 겁니다. 며칠 뒤, 다시 빼앗으러 오시면 안 됩니다.”
여안이 싸늘하게 말했다.
“흥! 진짜 네 것이 될지, 아직 모른다!”
고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한의 관리를 향해 말했다.
“사람들을 데리고 은월제일 기루에 가서 인수인계하도록 해라.”
“네!”
일부 일품당 제자들이 대한의 관리와 함께 여안의 부하들을 데리고 은월제일 기루에 인수인계를 하러 떠났다.
여안이 강천기를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강천기, 똑똑히 들어. 이번에도 지면 네 목을 베어버릴 거야!”
강천기도 단단히 각오를 다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걱정 마십시오, 공자!”
“가서 잔국을 준비해!”
여안의 말에 강천기가 말했다.
“저……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저에게는 팔 편의 잔국이 있지만, 잔국에는 각자의 특징이 있으니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팔 편 모두 준비해. 한 판씩 대결하고 그에 맞춰 사업체도 하나씩 내기에 걸 테니까. 네가 패배하면 사업 하나를 잃는 것이고, 네가 승리하면 고해가 앞서 가져갔던 것 포함해서 ‘이 거리 제일 금루’까지 전부 나한테 가져와야 할 거다!”
수련자들이 어이없다는 듯 소리쳤다.
“뭐? 그건 아니지. 계산을 어떻게 하는 거야!”
“여 공자의 나머지 사업들은 ‘이 거리 제일 금루’와 비교할 가치도 없잖아?”
“맞아. 그건 너무 불공평하군!”
성주가 크게 외쳤다.
“조용!”
군사들이 다시금 수련자들을 밖으로 밀어냈다.
여안은 충혈된 눈으로 고해를 노려보며 말했다.
“고해, 너는 대결을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고해는 한동안 여 공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끝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 공자님. 사실은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 마음속에 있던 화도 많이 풀렸습니다. 공자님도 손해 많이 보셨는데, 제가 봤을 땐 여기서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공자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지만 여안은 이대로 끝낼 마음이 없었다.
“안 돼! 무조건 대결해야 돼!”
고해가 강천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강 지배인, 여 공자님을 위해서 전부를 걸고 대결하고 싶으십니까? 저를 무덤으로 밀어 넣는 것만 생각하시고, 왜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강천기가 눈을 부릅뜨고 코웃음 쳤다.
“흥! 아까 당신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이십팔 천지종횡 바둑판은 당신의 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절대 이길 수 없을 겁니다.”
고해가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 이십팔 천지종횡 바둑판이오? 그거 별것도 아닌데, 당신은 그걸 너무 거대하게 생각하는군요.”
“하하하하, 그럼 한번 해보시든가!”
고해는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진실을 얘기해 준 것뿐인데, 이들은 왜 믿지 않는 걸까?
“알겠습니다. 그럼 소유권 증명 서류를 잘 준비해 두십시오. 서약부터 쓰고 시작합시다.”
맞은편 작은 건물 위에 있던 사마장공은 미간을 좁혔다.
“고해가 말한 것이 모두 진실이라면, 여 공자는 아직 우물에서 기어 나오지도 못했는데 또 떨어지겠군.”
다른 곳의 완아선자 역시 냉랭한 표정으로 고해 쪽을 바라보았다.
“흥! 이번에도 네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 * *
은월성, 남쪽 성문 근처.
한 척의 비주가 멈춰 서고, 한 무리의 검은 옷차림을 한 자들이 배에서 내려왔다.
그들의 맨 앞쪽에는 회색 옷차림의 노인이 걸어가고 있었다.
한 무리의 선학차 주인들이 그들에게로 몰려갔다.
비주에서 내린 사람들은 배를 접고 선학차에 올라탔다.
흑의를 입은 자 하나가 노인에게 물었다.
“묵 어르신, 바로 천하제일 금루로 가실 겁니까?”
묵씨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다. 은월제일 기루로 가자. 너무 오랫동안 바둑판을 만지지 않았어. 하하하!”
“네!”
성문 입구를 영패 하나로 쉽게 통과한 그들은 성의 도심 거리를 향해 달려갔다.
얼마 후, 선학차는 거대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그곳이 은월제일 기루였다.
“빨리, 빨리! 이 물건들도 빼버려!”
“얼른 빼!”
“반 시진의 시간을 주겠다. 그때까지 빼지 못한 물건들은 가져가지 못한다!”
건물 입구는 시끌벅적했다. 수많은 수련자가 건물을 에워싸고 있었다.
“은월제일 기루를 고 대사님께 넘겼다고?”
“잘됐네. 그러게 뭐 하러 고 대사님을 건드려서는. 쌤통이다!”
“쌤통이야!”
주변 수련자들이 즐거워하며 말했다.
선학차에서 내려오던 묵씨 노인은 얼굴이 굳어졌다.
흑의를 입은 부하 하나가 수련자들을 향해 다가갔다.
“이놈들! 지금 뭐 하는 것이냐?! 은월제일 기루에서 감히!”
야단치고 있던 대한 관리가 눈을 부릅뜨며 대꾸했다.
“은월제일 기루는 우리 어르신에게 넘어왔다! 너희야말로 뭐 하는 것이냐?!”
흑의를 입은 자는 분노하여 눈을 치켜떴다.
“뭐야? 이놈들이 감히 어디서……!”
“너희들은 누구냐? 여긴 이제 고 대사님의 것이다! 너희들이야말로 뭐 하는 것이냐?”
“여 공자가 시킨 거냐? 아까워서 다시 뺏으려는 거냐?”
수많은 수련자들이 흑의를 입은 자의 앞을 막았다.
묵씨 노인이 크게 소리쳤다.
“돌아와라!”
흑의를 입은 자는 인상을 찌푸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 안쪽에서 물건을 옮기고 있던 사람이 회색 옷 묵씨 노인을 알아보았다.
“어? 묵 어르신!”
묵씨 노인이 싸늘하게 말했다.
“너로구나.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은월제일 기루의 주인이 왜 바뀐 것이냐?”
그자는 우물쭈물하며 뭐라고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묵씨 노인이 실눈을 뜨며 말했다.
“허허허, 나한테도 숨기겠다는 거냐? 네놈이 배짱도 크구나!”
털썩.
안에서 나온 자는 후다닥 무릎을 꿇었다.
“묵 어르신,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여 공자님이 주인님을 데리고 ‘이 거리 제일 금루’에서 고해와 내기하여 기루를 잃었습니다!”
묵씨 노인이 냉랭히 말했다.
“내기? 배짱도 크구나! 강천기가 감히 어르신의 사업체를 가지고 내기를 해? 그의 형은? 강천익은 어디 갔어? 내가 똑바로 지키라고 하지 않았느냐?”
무릎을 꿇은 자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하제일 금루도 망했습니다!”
묵씨 노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이놈! 천하제일 금루가 왜 망해?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느냐? 여 공자는? 강천익과 강천기는?”
“아직도 ‘이 거리 제일 금루’ 쪽에 있을 것입니다. 계속 내기 중인 것 같던데……!”
“흥! 선학차에 타라. 그곳으로 우리를 안내해! 그리고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말해라! 하나라도 숨기면 너의 가족을 전부 죽여버리겠다!”
“예, 어르신!”
* * *
은월산장의 산장 주인은 정자에 앉아 이미 낡아빠진 칠현금을 천천히 연주하고 있었다.
칠현금 소리가 들리자, 주변의 산골짜기에서 풀들이 시들어 누렇게 변했고, 몽롱함 속에서 안개가 사람의 그림자처럼 흐느적거렸다.
뒤이어 시들어버린 삼림 속에서 한 줄기 초록빛이 나타나며 새싹이 돋았다.
쿵!
하지만 새싹의 힘이 너무 약해서 주변의 시들어버린 삼림이 순식간에 새싹을 삼켜버렸다.
산장 주인은 가볍게 웃었다.
“허허, 인연이 아닌가 보네. 슬슬 한계가 오고 있어. 이것도 하나의 벗어나는 방법이겠지!”
칠현금 소리가 서서히 멈췄다.
산장 주인은 힘없이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운묵을 바라보았다.
“왜, 오늘 성에서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운묵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고해가 지금 내기를 하고 있습니다.”
“내기? 거문고로 대결을 한단 말이냐?”
“아닙니다. 바둑 대결입니다.”
운묵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을 말해주었다.
산장 주인은 웃음을 터트렸다.
“바둑? 하하하하하. 바둑 좋지. 고해 녀석, 참 의외의 면이 있구나.”
운묵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주님, 고해의 과거가 꽤 수상합니다. 사람도 뭔가 이상하고요.”
“이상해야지. 이상해야 재밌지. 내가 한계에 처한 지금 죽기 전에라도 고해를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 추억을 안고 어둠 속에 잠기면 외롭지 않을 것 같아!”
“장주님이 진짜 떠나게 되면 저의 은월산장은 어떡합니까?”
“은월산장? 이미 너한테 넘겨주지 않았더냐? 내가 죽으면 네가 바로 새 주인이 되는 것이다. 아무도 거역할 수 없다.”
“하지만 장주님, 은월산장은 장주님 없이는 안 됩니다!”
“이놈아, 안 될 것이 뭐가 있느냐? 은월산장은 원래부터 너의 조상님이 개조한 것이니라. 난 그저 스승님을 대신해서 관리해 준 것뿐이고. 아쉽게도 종족의 씨가 말라서 지금은 너밖에 남지 않았지만, 네가 바로 진짜 혈통이니라. 걱정 마라, 은월산장의 모든 제자는 너의 말을 들을 것이야.”
“하지만……!”
“내가 마지막 하나 남은 천금 ‘백호’를 줘버려서 그런 것이냐?”
“아닙니다.”
“이놈아, 내가 그걸 줘버린 것도 다 널 위해서니라. 넌 아직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지 않느냐? 그러니 내가 죽고 나면 백호는 무조건 은월산장의 화근이 될 것이야.”
“저도 그건 잘 압니다.”
“비록 네가 음률 방면에서는 재능이 크게 뛰어나지 않지만, 제조 능력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섬세하니라. 그러니 나중에 더 섬세하고 멋있는 천금을 만들어냈으면 좋겠구나.”
“장주님, 장주님은 죽지 않고 계속 사실 수 있잖습니까?”
산장 주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살아남아?”
“그렇습니다. 금도는 천지조화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이라 했습니다. 장주님은 금도를 이용하여 불사의 삶을 사실 수 있지 않습니까?”
산장 주인이 눈을 부릅뜨며 다그쳤다.
“닥쳐라!”
운묵은 안색이 굳어버렸다.
“금도는 금도일 뿐이니라! 천지에는 천지만의 도리가 있고, 그 도리를 따라야 하느니라. 수운신문령(壽運神文靈)? 흥! 장수 수련자들이 수련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그건 올바르지 않은 사도(邪道)니라. 그들이 지금 어떻게 됐느냐? 온 천하에 장수사가 몇 명이나 남았더냐? 그들은 결국 영혼만 남기고 전부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그들을 따라 장수를 배우고 싶으냐?”
운묵은 눈시울을 붉히며 이를 악물었다.
“장주님은 저의 부모님과 같은 분입니다. 저는 장주님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산장 주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놈아, 사람은 어떻게든 죽게 되어 있단다.”
* * *
묵씨 노인 일행은 신속하게 ‘이 거리 제일 금루’에 도착했다.
오는 길 내내, 기루 직원은 고해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묵씨 노인은 이마를 찌푸렸다.
“그 고해란 자가 일품당의 수타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