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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패왕-186화 (169/243)

186화. 망령이 서린 백반도

성주와 호위 병사들은 자리를 떠났지만, 거리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에워싸고 있었다.

고해가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오늘 자리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만 물건을 구 할 할인해서 팔겠습니다!”

수련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와와! 구 할을 싸게 판다고?”

와아아아아!

수련자들이 서로 사려고 달려갔다.

고해 일행도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자리를 떴다.

방으로 돌아온 목신풍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 성주가 예전에는 그토록 전 당주님을 따랐었는데, 그가 여 공자와 손잡고 저희를 괴롭힐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전 당주님이 안 계시니 사람이 한순간에 변해버리는군요.”

용완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하세강을 숙(삼촌)이라고 불렀을 때,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돌아섰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고해는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이야?”

“하세강의 행동이 조금 이상해 보였습니다!”

“뭐?”

고해가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처음에는 여 공자의 편을 들어주었지만, 나중에는 여 공자를 감싸기보다 조금 어이없어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용완청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그게 어떻다는 거지?”

고해가 잠시 생각하더니 눈빛을 빛냈다.

“저희가 하 성주님께 인사드리러 가죠.”

용완청은 고해의 말뜻을 바로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해.”

* * *

하 성주는 대군을 거느리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묵객은 앞에서 걷고 있었고, 그의 뒤에서는 여 공자 등 일행이 따라가고 있었다.

묵객이 싸늘한 눈빛으로 여 공자를 보며 말했다.

“네가 질투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명심해라. 고해를 더 이상 건드리면 안 된다.”

“…….”

여안은 불만이 많은 표정이었다.

그래서 묵객도 더욱 차갑게 말했다.

“어르신은 지금 능력자를 갈망하고 있다. 원하는 자가 겨우 나타났는데, 네가 복수한답시고 그를 건드리면, 어르신께서 절대로 널 가만두지 않을 거다.”

여안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네…….”

그때 강천익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묵 선생님, 산장 주인이 이번에 장소를 은월해로 정한 이유가, 설마 뭔가를 눈치채고…….”

묵객은 실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지. 역시 순조롭지는 않겠어. 하지만 은월해는 원래부터 은월산장의 소유이니 그쪽에서 대회가 열린다고 하여 이상할 건 없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어쨌든 어르신의 일을 망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네.”

묵객이 이마를 씰룩이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먼저 은월산장에 가서 산장 주인을 막아보도록 하세.”

“예, 어르신.”

* * *

은월산장의 정자.

산장 주인이 기침을 하고 있었다.

콜록, 콜록, 콜록!

운묵이 그의 뒤에서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산장 주인은 살짝 웃어 보였다.

“걱정 마, 괜찮아. 늙어서 그래. 한 곡을 연주했을 뿐인데 너무 많은 힘이 소모됐어.”

운묵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말 은월해에서 대회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산장 주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은월해에서 할 거다. 그곳은 은월 선생이 생전에 남겨뒀던 곳이지. 허허, 여양왕아, 내가 모를 줄 아냐?”

운묵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말입니까?”

“넌 모르는 게 낫다. 그들은 나로서도 어찌할 수 없으니…….”

산장 주인이 쓴웃음을 짓고 말을 이었다.

“운묵아, 내가 떠나면 네가 은월산장을 잘 지켜야 한다. 은월산장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서는 절대 안 되느니라.”

“제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강력한 힘을 키우는 것만이 살길이다. 그동안 나는 은월산장의 힘을 키울 수가 없어서 천금으로 사람의 인정을 샀다.”

은월 선생이 있을 때만 해도 천금을 문밖에 내놓는다고 한들 아무도 훔쳐 가지 못했다.

천하의 모든 세력이 은월 선생을 존경했고 따랐다. 심지어 반역자들조차 은월 선생의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명심해라. 이곳을 지키는 길은 결국 힘밖에 없다.”

운묵은 씁쓸하게 말했다.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허허! 나는 네가 나보다 더 훌륭해질 거라 생각한다. 자신감을 가지거라.”

운묵은 이를 악물었다.

과연 자신이 산장을 지킬 수 있을까?

그때 산장의 제자 하나가 허겁지겁 뛰어왔다.

“주인님, 묵객이 주인님을 만나 뵙고 싶답니다!”

산장 주인은 눈썹을 치켜떴다.

“묵객이?”

“예. 묵객만 들어오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밖에서 기다릴 것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일이어서 본인이 직접 주인님을 만나 뵙고 얘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산장 주인은 한참을 망설이다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들여보내라.”

“네!”

얼마 후, 묵객이 산장 제자의 안내를 받고 정자에 도착했다.

묵객은 예의를 갖추어서 인사를 건넸다.

“장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산장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어나시지요. 힘이 없어서 멀리 마중 나가지 못한 점, 이해 부탁드리겠소이다.”

묵객의 시선이 운묵에게로 향했다.

“이분이 바로 소장주신가 보군요. 역시 영웅의 기질이 보이는 분입니다.”

운묵도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과찬이십니다.”

“장주, 이번에 제가 온 목적은 어르신을 대신해서 장주님께 큰 선물을 드리기 위해섭니다. 아마 이것이 장주님을 위기에서 벗어나게끔 도와줄 것입니다!”

산장 주인은 의아해했다.

“나를 도와준다?”

묵객은 운묵을 바라보며 눈짓을 했다. 자리를 피해달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산장 주인이 고개를 저었다.

“이 아이는 산장을 넘겨받을 사람이니 자리를 피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구려.”

묵객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다시 말했다.

“그럼 이 물건을 소장주께서 장주님께 전해주시오.”

그러고는 옥합을 하나 꺼내서 운묵에게 건네줬다.

운묵은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옥합을 받아서 산장 주인에게 가져갔다.

산장 주인이 말했다.

“열어봐라.”

“예.”

운묵은 옥합을 열었다. 순간 옥합 안에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옥합 안에는 황금색 복숭아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고해가 예전에 획득한 백반도와 똑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이 복숭아의 밑이 피처럼 빨갛게 물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운묵이 의아해하며 말했다.

“이게 뭡니까?”

묵객이 웃으며 답했다.

“백반도입니다. 선천잔국계에서 따온 것이지요. 이것을 먹으면 백 살을 더 살 수 있습니다. 즉 장주님의 수명이 백 살 더 늘어나는 것이지요.”

운묵은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네? 백반도요? 소문만 무성한 그 장수의 복숭아 말입니까?”

운묵이 장주를 바라보았다.

“어르신, 이제 백 년은 더 살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산장 주인은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왠지 모르게 불안한 표정만 가득했다.

“여양왕이 백반도수를 획득한 것입니까?”

묵객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선천잔국계에서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복숭아를 다 따가고 없었지만, 어르신께서 심혈을 기울여 재배한 탓에 또다시 열 개의 복숭아가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산장 주인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르신의 마음은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누릴 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

운묵이 놀라서 산장 주인을 바라보았다.

“장주님!”

산장 주인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만약 장수하려고 애썼으면 얼마든지 수명을 늘릴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저는 한 번도 억지로 수명을 늘릴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묵객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지 곤혹스런 표정이었다.

“잘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선천잔국계는 이백 년에 한 번씩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만약 얼굴에 철면피를 깔고 이걸 욕심냈었다면, 당시 관기 노인과 친분이 있던 제가 왜 못 얻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그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말도 꺼내지 않았지요.”

“왜 그러셨습니까?”

“장수는 결국 천하의 수명을 빼앗는 것입니다. 천하에 상처를 주는 일이지요. 백반도수는 백 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도 여양왕이 짧은 시간 안에 열매를 맺게 했다는 건…… 묵 선생도 그 내막을 알고 있겠지요?”

묵객을 인상을 찌푸린 채 바로 말을 못 했다.

그러자 운묵이 초조해하며 말했다.

“장주님, 장수가 뭐가 어때서요? 왜 안 드시는 것입니까?”

산장 주인은 운묵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선천잔국계의 백반도수라는 나무를 아느냐? 그 나무가 무엇을 자양분으로 쓰는지는?”

“네?”

“관기 노인이 있을 당시, 백반도수의 뿌리를 어둠 속에 심었다는 사실을 아느냐? 나무도 어둠 속에 있었고, 뿌리도 어둠 속에 있었지. 그런데 그 어둠 속의 자양분은 망령이니라. 뜻밖의 재난 때문에 죽은 망령 말이다.”

“망령……요?”

“망령이 다 쓰지 못한 수명을 자양분으로 해서 백반도가 자라는 것이니라. 당시에는 미생인이 어둠 속에서 그를 도와줬지. 허허허, 하나의 백반도에 얼마나 많은 망령이 들어 있는지 아는 내가 어찌 그걸 입에 넣을 수 있단 말이냐?”

“…….”

“망령을 복용해서 장수한다고? 그건 남의 수명을 빼앗아 장수하는 것이나 같으니라. 미생인이란 자도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를 게다. 천리는 순환하는 것인즉, 다만 아직 시기가 오지 않았을 뿐이야.”

운묵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크게 떴다.

산장 주인이 묵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전에도 백반도를 안 먹었는데, 이번이라고 먹을 것 같습니까? 백반도 밑이 빨갛게 물든 걸 보니, 여양왕은 산 사람의 피를 자양분으로 썼나 보군요.”

묵객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산장 주인만 바라보았다.

운묵이 경악하며 말했다.

“산 사람이오? 산 사람을 백반도수의 자양분으로 썼단 말입니까?”

산장 주인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직접 산 사람의 수명을 빼앗은 거겠지. 묵 선생, 다시 넣어두시구려. 저는 그걸 감당 못 합니다.”

묵객은 쓴웃음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장주님이 원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지요.”

산장 주인은 묵객을 바라보았다.

“볼일이 더 남았습니까?”

묵객은 산장 주인을 한참 쳐다보며 망설였지만, 끝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없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운묵아, 배웅해 드려라.”

운묵은 백반도를 묵객에게 돌려주며 대답했다.

“예.”

묵객은 천천히 인사를 올리고 운묵의 안내를 받으며 자리를 떠났다.

산장 주인은 묵객의 뒷모습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

“묵 선생, 그대가 탄금대회의 장소를 변경하고 싶어 하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은가? 나는 절대로 그대들이 은월산장을 파괴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네. 이번 대회는 무조건 은월해에서 개최할 것이야.”

묵객은 그의 결심이 얼마나 견고한지 알았음에도 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묵객이 얼마나 속 깊은 자인지 알 수 있었다.

“허허, 여양왕이 곁에 저런 부하를 둔 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구나.”

고개를 흔든 그는 옆에 있던 천을 집어 들고 자신의 낡은 칠현금을 닦았다.

* * *

은월성, 성주의 집.

성주의 집은 거대한 부유도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섬 주변은 수많은 호위병사가 지키고 있었고, 그 위에는 대형 궁전이 세워져 있었다.

고해와 용완청은 궁전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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