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은월해 1
성주 하세강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용 당주, 고 선생, 사람을 잘못 찾아왔네. 그동안 나는 계속 은월성에서 살았고, 용 당주의 어머니는 천도해에서 살해당했지. 그런데 내가 어찌 그때의 일을 알겠는가? 게다가 나는 원영경의 수련자일 뿐인데…… 설마 용 당주가 나를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
용완청은 실망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예전에 숙부께서 저희 어머니의 탄금대회에 자주 참석했었고, 그때부터 어머니가 숙부라고 부르라 했던 게 기억나서, 혹시나 숙부에게 단서가 있지 않을까 하고 찾아왔을 뿐입니다.”
하세강은 잠깐 멈칫거리고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너의 어머니는 참으로 절세미인이었지. 하지만, 그런 운명을 맞이할 줄이야…….”
용완청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숙부, 저희 어머니의 일을 유감스러워하신다면 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해가 용완청을 살짝 끌어당겼다.
용완청은 의아해하며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를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웃으며 하세강에게 말했다.
“성주님, 단서가 없다니 참 아쉽군요. 오늘은 실례했습니다.”
하세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는 무슨, 괜찮네.”
고해와 용완청은 인사를 올리고 자리를 떠났다.
용완청은 돌아가면서 고해의 행동에 대해 물었다.
“고 타주, 왜 내 말을 끊은 거야? 왜 우리 어머니를 추모하러 오지 않았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물어봤어도 대답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세강은 지금 감시당하고 있으니까요.”
“뭐?”
“주변에 있던 호위병사를 기억하십니까?”
“호위병사?”
“그 병사는 저희가 성주 집에 들어갈 때부터 줄곧 성주를 호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항상 따라다녔지요. 저희가 복도를 지날 때도 있었고, 대전에 들어갈 때도 쭉 같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낮에 금루에 있을 때도 하세강의 옆에 붙어 있었지요.”
용완청이 경악한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뭐? 그걸 다 기억하고 있단 말이야?”
“성주가 의심스러우니 당연히 그의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았지요.”
“고 타주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런데 성주가 감시를 당하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럼 앞으로 어떻게 조사해야 하지?”
“전에 봤던 요정 기억하십니까?”
“아, 그 요정?”
“하 성주한테도 자격이 있을 겁니다. 은월해에 가서 물어봐도 될 것 같습니다만.”
용완청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두 사람이 요월산장에 도착하자, 유년대사와 상관흔이 돌아와 있었다.
고해가 웃으며 말했다.
“상관흔, 이번에는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느냐?”
상관흔이 평소와 달리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 저희가 은월해까지 쫓아가 봤는데, 그곳에 현무지존의 머리가 있었습니다. 머리 하나가 떡하니 말입니다. 제가 만약 그걸 가질 수 있었더라면 원영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해는 멈칫하며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은월해?”
“예. 그곳에서 ‘죄를 지은 용’도 봤습니다. 전에 북해에서 여안과 함께 있었던 그 용 말입니다. 그들이 은월해에서 저희의 앞을 막고 있었습니다.”
* * *
은월성은 바다와 인접한 성지였다. 성지의 동북쪽은 망망대해였다.
고해 일행은 비주를 타고 망망대해를 향해 날아갔다.
갑판 위에는 고해와 용완청 일행이 모두 있었다.
고해, 상관흔, 용완청, 유년대사의 표정은 무거웠고, 목신풍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목신풍이 물었다.
“여기가 은월해인가?”
고해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곧 연주회가 열립니다. 미리 가서 상황 좀 파악해야겠습니다.”
목신풍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세.”
비주는 날다가 커다란 해역에 도착했다.
해역 주변은 작은 섬들로 가득했다.
용완청이 그 해역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은월해야. 은월산장이 봉쇄해 버린 해역이지.”
사람들은 머리를 숙이고 아래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배가 은월해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떤 수련자들은 선학을 타고 날아왔다.
목신풍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엇? 벌써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다니.”
용완청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마 은월성의 수련자들이겠지. 연주회가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왔을 거야.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만 오는 것이 아니라 초대장이 없는 수련자들도 와서 구경하고 가. 그러다가 예상치 못한 수확을 얻을 수도 있잖아?”
고해가 머리를 끄덕였다.
“요즘 제가 은월산장의 역사에 대해 좀 읽었습니다. 은월산장이 처음에는 이 해역에 있었더군요. 은월산장을 만든 은월 선생이 저기 섬들에 수많은 건물을 지으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후에 육지로 옮겨와서 은월산장을 발전시켰다고 했습니다.”
유년대사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네. 은월해역은 구오도의 크기와 비슷하네. 은월산장이 육지로 옮겨가긴 했으나 행궁(行宫)은 여전히 은월성 북쪽에 남아 있지. 은월 선생이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 은월산장 사람들도 이곳에 와서 생애 첫 거문고를 만들지.”
고해가 유년대사를 보며 물었다.
“은월해의 북쪽, 은월도, 그럼 남쪽은요?”
“남쪽? 남쪽엔 작은 섬밖에 없네. 은월산장에서 별로 관리를 안 해.”
고해가 상관흔을 바라보았다.
상관흔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저번에 저희가 남쪽에 갔었습니다. 아무런 장애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희 생각이 틀렸지요.”
비주는 빠르게 은월해의 남쪽으로 날아갔다.
연주회에 참가한 수련자들은 전부 북쪽으로 갔고, 남쪽에는 그 어떤 수련자도 오지 않았다.
상관흔이 밑에 보이는 섬을 보며 말했다.
“폐하, 보십시오, 품(品)자 모양의 섬 세 개입니다.”
고해는 밑에 있는 섬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안개가 짙게 깔려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다.
상관흔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처음에 저와 유년대사는 여기에 아무도 살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자 수많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더군요, 유년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건 하 성주의 부대라고 했습니다.”
“뭐?”
고해가 놀라자, 유년대사가 말했다.
“그해 수많은 사람이 용효월을 따라다녔지. 스님도 있었고, 하세강도 그중의 한 명이었지. 용효월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놈들을 연구해 봤는데 말이야, 저 군부대는 하세강의 부대가 확실해.”
고해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 한 수련자가 선학을 타고 날아가는 게 보였다.
슈욱!
순간, 세 개의 섬 중 한 곳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선학이 울부짖더니 밑으로 떨어졌다.
선학 위에 있던 사람이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뭐야?”
섬에서 한 무리의 선학이 열댓 명의 장군들을 태우고 날아왔다.
“잡아라!”
수련자는 겁에 질려 추락했다.
“누, 누구야! 난 지나가려고 했을 뿐인데…….”
선학은 화살에 맞아 죽었고, 그 수련자는 원영경도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어 아래로 추락해서 바다에 떨어졌다.
그가 헤엄쳐서 빠져나가려고 할 때,
크르르릉.
세 개의 섬 가운데서 하얀색 용 머리가 나타났다.
하얀색 용은 순식간에 그 수련자를 삼켜버렸다.
그 광경을 본 장군들은 다시 섬으로 돌아갔다.
목신풍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아니…… 어떻게……. 단지 지나갔을 뿐인데 저렇게 죽인다는 게 말이 됩니까?”
용완청이 두 눈을 차갑게 번뜩였다.
“역시 죄를 지은 용들이구나.”
상관흔이 말했다.
“저와 유년대사님이 군부대를 발견한 후, 천천히 바다로 향해 갔습니다. 바다에 도착하자마자 저 용들에게 발각되었지요, 유년대사님이 계셔서 저도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고해를 보며 말을 이었다.
“폐하, 여기가 확실합니다.”
고해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뱀의 머리는 무슨 쓸모가 있지?”
하세강의 주둔지에 여양왕의 용들이 있다. 도대체 저기엔 뭐가 있을까? 단지 뱀의 머리를 지키기 위해서?
“뱀의 머리에는 독이 있어서 봉인된 능력들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옆에 있던 목신풍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뱀의 머리는 또 뭐야? 봉인 해제는 또 뭐고?”
용완청과 유년대사도 현무지존의 뱀 머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관흔이 왜 그걸 갖고 싶어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 * *
비주는 구름 속에 숨어 있어 섬에 있는 군대들도 발견하지 못했다.
넓은 해역에는 오백 장 크기의 용 수십 마리가 있었는데, 그 용들의 머리에는 죄를 지었다는 징표로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팔백 장 크기의 흑룡은 커다란 암석에서 눈을 끔뻑이며 쉬고 있었다.
흑룡이 감았던 두 눈을 번쩍 뜨자, 주변의 바닷물들이 출렁거렸다.
흑룡이 두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뭐야? 또 왔어? 흥! 너희 셋. 따라와.”
커다란 용 네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하늘로 올라갔다.
바다 위 하늘.
목신풍이 눈을 부릅뜨고 고해를 보고 있었다.
“고해, 어떻게 된 일인가? 연주회를 위해 미리 와보는 거 아니었어? 이 죄를 진 용들은 뭐지?”
고해는 목신풍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미간을 찌푸린 채 해역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이번 연주회가 쉽지는 않겠네요.”
목신풍이 망연한 반응을 보였다.
“뭐?”
유년대사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다른 곳도 아니고 왜 하필 여기일까? 산장 주인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확실하네.”
고해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아래를 보며 말했다.
“설마…….”
순간, 해수면이 용솟음쳤다.
고해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지?”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하늘로 향해 올라왔다.
유년대사가 굳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조심해! 죄지은 용들이야!”
크으르릉!
용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용이 비주를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
윙!
비주가 순식간에 진법을 배치했다. 그러나 용의 기운이 너무 강력하여 비주가 한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목신풍이 비명을 질렀다.
“아악.”
고해와 상관흔은 난간을 잡고 있었고, 용완청도 몸을 고정시켰다.
유년대사가 갑자기 진법 밖으로 나가더니 커다란 손바닥으로 용의 꼬리를 쳐버렸다.
‘이런 빌어먹을!’
용은 움찔하기만 했다.
쿵!
죄지은 용 세 마리가 날아오더니 비주를 둘러쌌다.
유년대사는 비주 앞에 서서 경악한 표정으로 가장 큰 흑룡을 바라보았다.
고해의 안색이 굳어졌다.
“도깨비탈?”
앞서 북해에서 현무를 잡아먹던 용들 가운데서 가장 큰 흑룡의 이름이었다. 무신과 한 차례의 혈투를 벌인 후, 여안이 돌아갈 때 부르던 이름이었다.
도깨비탈이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 했더니 유년대사였군. 일품당 사람들도 있고.”
거대한 용들은 이를 갈며 비주를 노려보았다. 비주 역시 매우 컸지만, 그들과는 비교도 안 되었다.
네 마리의 용이 비주를 중간으로 몰아넣었다.
용완청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죄지은 용들이 내 비주를 가로막아?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거냐?”
도깨비탈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반역? 용 당주, 말이 좀 지나치군, 내가 어찌 반역을 일으키겠나? 다만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이러는 거지. 하하하. 그리고 그대들은 은월해에 오지 말았어야 했어. 그런데 왔으니,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크으르릉, 콰우우우!
거대한 용들이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