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경연대회
“됐다. 너의 힘으론 어림없다. 그가 한 번 숨기 시작하면 아무도 찾지 못하는데, 그런 그를 찾아서 제거한다고?”
“예? 그럼 사마장공이 일부러 자신을 노출했다는 겁니까?”
“일부러 보여주는 거야. 나를 압박하여 자신 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하려는 거지. 그가 있는 곳에서 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해. 그가 하는 일에도 간섭할 수 없지.”
“왜 그런……?”
강천익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묵객이 말했다.
“그는 군(君) 대표이고, 난 신(臣) 대표거든. 군의 신분이 신보다 높아. 그래서 내가 함부로 나서지 못하지.”
강천익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 네.”
“그가 은월해에 들어가면 내 부하들도 들어갈 거야. 그러나 난 이번 연주회에는 갈 수 없어.”
묵객은 고개를 돌려 강천익을 바라보았다.
“도깨비탈에 전하거라. 연주회 기간 누구도 바다에서 나오지 못하게 해. 용들이 스스로 나오지 않는 이상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거야.”
“예, 알겠습니다.”
* * *
순식간에 열흘이 지났다.
은월해에 수많은 수련자가 몰려들었다. 참가자격이 없는 수련자들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으로 날아왔다.
은월해 북구의 은월도. 선학들이 수련자를 태우고 날아왔다.
섬의 출구에서 신분 검사를 했다.
용완청, 상관흔, 유년대사는 이미 들어갔다. 고해만 느릿느릿 출입구 앞으로 다가갔다.
고해가 도착하자 주변의 수련자들이 고해를 알아봤다.
“고 선생!”
“고 대사!”
수련자들과 고해는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고해를 본 적 없는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은월산장에서 대진을 지키던 부하들도 고해를 보고 있었다.
산장 주인이 눈여겨본 고해를 산장 부하들이 모를 리 없었다. 부하들은 호의의 눈빛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초대장을 보여주며 신분 확인을 하고 있을 때, 고해가 정중하게 말했다.
“은월산장 식구 여러분, 산장 주인께서 주신 초대장 덕분에 이곳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산장 주인님의 건강은 좀 어떠신지요?”
다른 사람들은 천급 금인 ‘구진’이 어디에 있는지, ‘구진’이 있긴 있는지를 물어볼 때 고해는 산장 주인의 건강을 물어보았다.
이를 들은 은월산장 부하들 역시 고해한테 호감을 보였다.
“장주님은 건강하십니다. ‘개논’과 ‘비창’을 연주하신 고 선생이 오시니 주인님도 더없이 기뻐하실 겁니다.”
고해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그럼 다행이네요.”
고해는 사람들 틈에 휩쓸려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부하들도 고해의 초대장을 확인하지 않고 고해를 들여보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멈춰라!”
사람들은 소리가 나는 곳을 보고 있었다.
“누구지?”
완아선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한 무리의 수련자들은 차가운 눈빛으로 완아선자를 노려보았다.
완아선자가 고해를 가리키며 말했다.
“초대장을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왜 들여보내는 거지?”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완아선자를 바라보았다.
“뭐라는 거야?”
완아선자는 굴하지 않고 싸늘하게 말했다.
“난 일찌감치 여기에 왔다. 한 스님과 일품당 당주가 고해의 초대장을 들고 들어가는 걸 봤어. 초대장마다 표기가 되어 있지. 난 그게 고해의 초대장인 걸 명확하게 봤다. 그런데 초대장도 없는 고해를 왜 이렇게 당당하게 들여보내는 거지?”
“고 대사한테 초대장이 없을 리가 없지.”
“그래. 이 요녀야! 함부로 말하지 마라!”
한 금도 수련자가 고해를 두둔했다.
은월산장 부하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하려고 할 때, 고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완아선자, 이렇게 또 만나는군요.”
완아선자가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흥!”
고해가 웃으면서 완아선자를 보며 말했다.
“완아선자, 왜 내가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거지요?”
“당연히 자격 없지. 의경도 없는 사람이 무슨 자격이 있어? 초대장도 없이 들어가려고? 흥.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난 속일 수 없어.”
사람들의 시선이 고해에게로 향했다.
고해가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하하하하하하. 완아선자.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저번에 나한테 대패한 건 알고 있는데, 복수하려면 다른 이유를 가져왔어야지요. 과연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믿을까요? 하하하.”
사람들은 멍하니 있었다.
“그래, 이 요녀야! 핑계도 정도껏 대라! 만약 고 대사한테 의경이 없으면 너는 왜 졌어? 말이나 되는 소리를 해!”
“맞아! 고 대사한테 의경이 없으면 내 손바닥에 장을 지진다!”
“거짓말도 못 하는 요녀! 돌대가리냐?”
사람들의 욕설을 들은 완아선자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런 멍청한 것들, 아무것도 모르면 좀 가만히 있지!
고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완아선자, 구진을 욕심내고 있는 건 나도 이해하오. 그러나 정당한 방식을 들고 오시오. 이렇게 공평하고 공정한 연주회에 와서 뭐 하는 짓입니까?”
“요녀는 고해를 무서워하는 게 확실해. 그러니 고해를 모함하려고 하지.”
“구진을 위해 물불을 안 가리네. 욕심만 많아서는…….”
수련자들이 완아선자를 깎아내렸다.
완아선자는 너무 억울했다.
내 말이 사실이라고! 이 멍청이들아!
그때, 은월산장 부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완아선자, 저번에 은월성을 해치려고 했지요? 주인님께서 주신 초대장도 고맙게 생각하길 바랍니다.”
또 다른 은월산장 부하가 고해를 안내했다.
“고 선생, 안으로 드시지요.”
완아선자는 고해가 대진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수련자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은 완아선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이를 갈았다.
“고해! 가만두지 않겠어!”
고해는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완아선자, 사실을 말했지만 믿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속이 터질 지경이겠지?
“하하하하.”
드넓은 광장에서 고해와 용완청 일행이 만났다.
수련자들은 서로 안부를 물었다.
광장의 북쪽에는 초가집이 있었다. 초가집 밖에는 수많은 은월산장 사람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운목 역시 문 앞에 서 있었다.
“구진이 바로 저 초가집에 있다는 거야?”
“난 아직 천급 금을 본 적 없어.”
“산장 주인도 초가집 안에 있겠네?”
수련자들이 수군거릴 때, 고해 일행은 하세강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하세강은 보이지 않았다.
용완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안 왔나 봐.”
은월해. 은월도의 대광장.
광장에는 잔디가 깔려 있었다. 수련자들은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잔디밭에 앉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초가집을 바라보았다.
고해 일행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수련자들이 점점 더 많이 잔디 광장에 모여들었다.
용완청이 눈빛을 빛냈다.
“왔어!”
고해, 유년대사, 상관흔은 하세강이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의 옆에는 여안과 금도를 멘 방명후가 있었다.
유년대사가 말했다.
“옆에 여안이 있습니다. 조금 있다가 하 성주와 접촉하시지요.”
용완청이 머리를 끄덕였다.
여안 일행도 들어오면서 고해의 일행을 발견했다. 고해를 발견한 순간 싸늘한 기운이 흘렀다.
고해가 물어보았다.
“여안의 금도 실력도 강합니까?”
용완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여양왕의 손자라는 신분 때문에 들어온 거야. 하 성주 역시 신분 때문에 들어왔고. 금도 의경을 표현할 수 있지만 약해 빠졌어.”
고해는 머리를 끄덕였다.
하세강과 여안 등이 착석했다. 뒤에 들어오는 수련자들이 점점 적어졌다.
그때, 흰옷을 입은 남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고 선생 도착하셨군요. 반갑습니다.”
고해 역시 철풍금을 예약한 첫 번째 손님, 사마장공을 알아보았다.
고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마 선생이셨군요.”
사마장공이 미소를 지었다.
“용 당주님, 유년대사님, 안녕하셨습니까? 오랜만입니다.”
용완청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구신지?”
유년대사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혹시 사마장공?”
사마장공이 유년대사를 보더니 웃음을 지었다.
“유년대사님, 공무를 수행해야 하니 저의 신분은 비밀로 해주시지요.”
유년대사의 눈빛이 떨리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장공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고해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마장공이 떠나간 후, 용완청이 물었다.
“유년대사가 사마 선생을 알아?”
유년대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번 과거시험에서 하마터면 장원이 될 뻔했던 사람입니다.”
“뭐? 우리 대건천조의 장원?”
“장원이 될 뻔했지요. 문서 시험에서 감독관 모두가 사마장공이 장원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전시 때 그가 뭘 썼는지 성왕의 화를 불러일으켰지요. 그래서 결국 장원이 되지 못했습니다.”
“뭐?”
“시험장에서 쫓겨나긴 했으나 과거시험 출신입니다. 자금도 대건천조에서 재직하고 있습니다만, 장원 급제한 사람들보다는 위엄이 부족하지요. 그래도 사마장공은 평범한 인물이 아닙니다.”
고해는 미간을 찌푸리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사마장공을 바라보았다.
대건천조의 장원이 될 뻔했다고?
고해는 다시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구석진 곳에서 독기 품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완아선자와 눈이 마주쳤다.
고해는 그녀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선한 웃음도 완아선자의 눈에는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완아선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흥! 고해, 너의 모든 것을 까발리겠어. 의경도 모르는 사기꾼 같으니라고. 흥흥!”
딩-!
맑은 소리가 초가집에서 들려왔다.
사람들은 숙연한 표정으로 초가집을 바라보았다.
초가집에서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렸다.
“연주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좀 있으면 은월해를 봉쇄하게 됩니다. 그러면 연주회가 끝날 때까지 여기를 떠날 수 없습니다.”
소리는 순식간에 은월도 여기저기에 울려 퍼졌고, 나아가 온 은월해로 퍼져나갔다.
은월도 밖에 있는 수련자들도 숙연한 표정으로 노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끝날 때까지 나가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차 있었다.
초가집 문이 천천히 열렸다.
초가집 안에서 백의를 입은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노인의 얼굴에는 검버섯이 자랐고, 머리숱도 별로 없었다.
그가 바로 은월산장의 장주였다.
운묵이 곧바로 달려가서 노인을 부축했다.
“장주님, 안녕하십니까?”
“장주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주변에 있던 금도 고수들이 일제히 인사를 올렸다.
산장 주인은 운묵의 부축을 받으며 문 앞으로 나왔다. 그는 천천히 잔디에 앉아서 낡은 칠현금을 만지고 있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산장 주인은 고해와 눈이 마주쳤다.
산장 주인은 고해를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고 선생의 개논, 정말 잘 들었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고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끄럽습니다. 좋아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제가 나이가 많다 보니 새로운 곡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하.”
잔디밭에 있는 사람들은 조용히 있었다.
은월산장의 부하들도 산장 주인의 옆에 앉았다.
산장 주인은 수련자들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제가 많이 늙었지요? 아마 이번 연주회가 끝나면 저는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부탁 하나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