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사냥
* * *
두 시간 후. 육천 명에 이르는 병사와 장군들은 능력이 봉인된 채 감옥에 갇혀버렸다.
감옥에 갇힌 병사들은 성주가 반란을 일으키는 거라 생각했다.
고해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병사들이 있는 곳에 방음 진법 하나를 배치하고 자리를 떠났다.
유년대사가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이건 무슨 진법인가?”
“이십팔 천지종횡대진의 강화 버전입니다. 거기에 이십구 천지종횡대진이 조금 섞였습니다.”
유년대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걸 낚싯대라고 해도 되겠군. 하하하.”
“그렇지요. 이제 미끼만 있으면 됩니다.”
고해가 상관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왔어?”
상관흔이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하늘만 보고 있었는데, 그놈들이 구름 뒤에 숨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늘을 쳐다보았다.
용완청이 물었다.
“여안을 말하는 거야?”
고해가 웃으면서 답했다.
“예. 앞서 하 성주와 그렇게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여 공자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군요.”
유년대사가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용만 잡으려는 게 아니라, 여 공자까지 잡으려는 거였나?”
“예. 그래서 대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네가 뱀의 머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면 여양왕과 끝장을 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괜찮겠나?”
고해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누가 여양왕과 끝장을 본다고 했습니까?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하하!”
“뭐라?”
유년대사가 멈칫하더니 멋쩍게 웃었다.
“허, 허허허.”
염주 하나가 순식간에 구름 속으로 날아갔다.
쿠앙!
거대한 굉음이 울리더니, 염주가 어딘가에 막힌 듯 다시 돌아왔다.
유년대사가 냉랭한 표정을 지은 채 하늘로 날아갔다.
구름 속에서 비주가 나타나더니 저 멀리 달아났다.
유년대사도 손을 뻗어 비주를 꺼내고는 곧바로 쫓아갔다.
두 척의 비주가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갔다.
유년대사가 떠나간 후.
구름 속에서 두 사람이 나타났다. 역시나 여안과 방명후였다.
여안은 싸늘한 표정으로 유년대사가 탄 비주를 보며 말했다.
“유년대사가 가발까지 쓰고 모습을 숨기다니. 흥! 그런다고 내가 못 알아볼 줄 알고?”
방명후는 뭔가가 께름칙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여 공자, 모든 게 너무 순조롭게 진행됩니다. 우리가 유년대사를 유인하기도 전에 알아서 떠나는군요.”
“걱정하지 마라. 내가 비주에 병사들만 태워서 보냈으니 문제없을 거다. 가자. 지금 바로 가서 고해를 붙잡자.”
“그럼 용완청은요?”
여안이 냉소를 지었다.
“스스로 자신 무덤을 판 거지. 흥! 마침 내 여자 노예들 가운데 대건황실의 핏줄이 없었는데, 잘됐군.”
방명후의 안색이 굳어졌다.
‘여자 노예요?’
그는 여안이 말한 여자 노예가 무엇인지 아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더 말하지 않고 눈앞의 일부터 걱정했다.
“밑에 새로운 진법이 배치된 것 같습니다.”
여안이 싸늘하게 말했다.
“대진을 깨고 반드시 고해를 잡아야 한다. 놈들이 하루 사이에 대진을 만들어봐야 얼마나 강한 걸 만들었겠느냐? 유년대사가 돌아오기 전에 고해를 붙잡자.”
“예, 공자.”
방명후는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대진을 향해 다가갔다.
그가 대진으로 들어가는 순간, 대진이 살짝 움직이더니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여안이 주춤했다.
“엇?”
하지만 방명후는 기세등등하게 대진 안으로 들어갔다.
여안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한바탕 소동이 있어야 하는데?
향이 세 개 타들어가는 시간이 지날 때까지도 조용했다.
답답해진 여안이 투덜거렸다.
“안에서 뭐 하는 거야??”
같은 시각, 대진 속.
방명후의 몸은 피투성이가 된 상태였다. 강력한 운수 장군이 양손으로 방명후의 몸을 붙잡고 괴성을 질렀다.
“패왕거정(霸王擧鼎)!”
운수 장군의 두 팔에서는 무한한 힘이 뻗어 나왔다. 그 힘에 눌린 방명후는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가 고통스런 표정으로 소리쳤다.
“여 공자님! 얼른 도망가십시오!”
용완청은 방명후가 소리쳐도 아무런 대꾸가 없자 고해에게 물었다.
“밖에서는 안 들리는 거야?”
“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십팔과 이십구 사이에 있는 대진은 밖에서 보면 지극히 조용하지요. 어쨌든 방명후가 워낙 교활한 놈이어서 하마터면 놓칠 뻔했습니다.”
용완청이 머리를 끄덕였다.
고해가 상관흔을 보며 말했다.
“상관흔, 오랫동안 저놈의 목소리를 들었을 텐데, 어때?”
상관흔이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충분합니다. 이 정도면 저놈의 목소리를 모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관흔은 일부러 방명후의 목소리로 말했다.
용완청은 화들짝 놀라서 상관흔을 바라보았다.
“진짜 방명후 목소리 같네.”
밖에 있는 여안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방명후! 뭐 하는 거야?”
그때, 방명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공자님! 고해를 붙잡았습니다. 얼른 내려오세요!”
“그래? 그놈을 잡았다고? 와하하하!”
여안은 박장대소하며 대진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운수 장군이 튀어나오더니 여안을 움켜쥐었다.
“헉!”
결국 여안도 운수 장군한테 붙잡혀서 꼼짝을 못했다.
* * *
은월해의 품자형 섬에는 육십팔 마리의 용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흑룡은 얼마 전에 봤던 도깨비 탈이었다.
혈룡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대장, 저기 보십시오. 저기 세 섬 사이에 짙은 안개가 낀 것 같습니다.”
용들이 고개를 들고 안개를 바라보았다.
백룡이 불만을 늘어놓았다.
“대진 아니야? 하세강도 웃기는 놈이지. 저런 쓸모없는 병사들에게 밖을 지키게 하다니. 우리만 있어도 충분한데 말이야.”
흑룡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백룡이 도깨비 탈을 쓴 흑룡을 보며 말했다.
“대장, 요즘 너무 갇혀 있었더니 몸이 근질거리는데요?”
흑룡이 덤덤하게 물었다.
“근질거린다고? 뭐 하고 싶은 거라고 있어?”
“사람 고기를 먹고 싶습니다. 저번에 여안이 다른 용들을 데리고 현무를 잡으러 갔을 때 억울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사람을 먹겠다고? 왜 이곳에 들어왔는지 벌써 잊었나?”
“그건 아닙니다만…….”
백룡은 대건천조의 작은 마을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전부 잡아먹었다. 용족에게 사람은 정말 좋은 먹거리였다.
그런데 음흉한 용 한 마리가 그들을 신고했다. 그래서 결국 용 태자한테 걸려서 수룡이 되었다.
혈룡도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대건천조와 맹약을 맺기 전까지만 해도 용족은 사람을 마음껏 잡아먹었습니다. 그런데 맹약을 맺은 후부터 먹지 못하게 됐지요. 아니, 우리가 언제부터 남의 눈치를 봤습니까?”
청룡도 옆에서 거들었다.
“먹을 건 먹어야지요. 우리는 죄를 지은 용 아닙니까? 죄를 지었으면 확실하게 보여줘야지요. 저번에 제가 은월성 근처의 작은 마을에 가서 마을 주민 팔백 명을 잡아먹고 왔습니다. 보십시오,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흑룡이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또 나가서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저번에 대장이 북해에 가서 현무를 잡을 때 너무 심심해서 그만…….”
“하세강이 매달 천 명의 죄수들을 보내주는데, 그것도 부족하단 말이냐? 제멋대로 행동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이제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듣겠다는 거냐?”
“그게 저…… 다들 현무 잡으러 가니까…….”
쿠앙!
흑룡이 괴성을 지르더니, 청룡의 목을 밟아버렸다.
청룡이 빠져나오려고 꿈틀거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용들도 겁에 질려 가만히 있었다.
흑룡이 포악한 표정으로 청룡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어쩌다가 수룡이 되었는지 아느냐? 동료라는 흑룡들이 나를 배신해서 내가 전부 먹어버렸다. 너도 나한테 먹히고 싶은 거냐?”
청룡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사정했다.
“아, 아닙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흑룡이 다른 용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흥! 다들 잘 들어라. 제멋대로 행동하는 놈들은 내가 전부 먹어버릴 것이다!”
용들이 대답했다.
“예!”
“이번 상황만 잘 넘기면 너희들에게 사람을 먹여줄 거다.”
흑룡의 말에 용들이 환호했다.
“정말입니까?!”
“어떤 놈들입니까?”
“저번에 우리한테 도장을 던진 놈, 고해라는 놈이 천도해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니 천도해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잡아먹을 거다!”
“좋습니다, 대장! 함께 갑시다!”
그때 용 한 마리가 한쪽을 보며 말했다.
“대장! 방명후가 바닷속으로 들어옵니다.”
흑룡이 고개를 돌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명후가 여긴 왜 오는 거지?”
그때 방명후가 말했다.
“여 공자께서 오셨네! 잠시 올라오라고 하시네!”
“여 공자께서?”
“공자께서 상의할 일이 있으시다는군. 나 먼저 가보겠네.”
말을 마친 방명후는 몸을 돌려서 바로 바다를 빠져나갔다.
흑룡은 미간을 찌푸렸다.
혈룡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대장, 오늘 방명후의 태도가 조금 이상합니다.”
흑룡은 잠시 생각하더니 용들을 향해 말했다.
“잠깐 갔다 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라.”
흑룡은 해수면 위로 올라갔다. 해수면 위에는 구름 대진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가 대진에 들어서자, 열여덟 개의 염주가 그를 향해 날아왔다.
“헛!”
흑룡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염주에 맞았다.
쿠광!
열여덟 개의 염주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흑룡은 노한 표정으로 유년대사와 방명후를 노려보았다.
“방명후! 뭐 하는 짓이냐?! 유년대사한테 붙은 거냐?!”
방명후가 웃으면서 말했다.
“흑룡, 내가 너를 해치려는 게 아니라 네가 속은 거다.”
흑룡은 머리를 돌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운수 장군이 여안을 꽉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고해 일행이 있었다.
흑룡이 냉랭하게 말했다.
“또 너냐? 여 공자를 붙잡아서 나를 협박하겠다는 거냐?”
고해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여 공자를 붙잡았다고? 하하하. 흑룡,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여 공자가 나를 죽이려고 해서 난 방어만 했을 뿐이다. 그리고 잘 봐라. 난 여 공자의 털끝 하나도 안 건드렸다.”
여안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고해. 지금 뭘 하자는 거냐?”
“내가 찾을 물건이 있어서 말이야. 너희들을 해치려는 것은 아니니 가만히만 있어라. 그럼 돼.”
흑룡이 사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릴 해치지 않겠다고? 하하하! 네 주제에 우릴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네놈부터 잡아먹고 천도해로 가야겠다! 그곳에 가서 씨를 말려버릴 거다!”
고해가 미간을 좁혔다.
“우리 섬의 사람들을 먹겠다?”
순간, 흑룡이 포효하더니, 빠른 속도로 고해를 공격했다.
“그래! 일단 너부터 잡아먹을 것이다!”
그때, 유년대사가 손을 휙 저었다.
“이런 썩을 놈!”
쿠광!
거대한 손바닥이 나타나더니 흑룡을 내리쳤다.
쿵!
굉음이 울리더니, 흑룡이 유년대사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흑룡이 괴성을 질렀다.
“방명후! 뭐 하는 거냐! 어서 고해를 죽여!”
방명후는 고개를 돌려 고해를 바라보았다.
고해가 말했다.
“방명후, 나는 너와 여 공자를 죽일 생각이 없다. 하지만 네가 움직이기만 해도 여 공자는 죽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