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수신궁(水神宮)
“병마용?”
용완청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병마용이라니?”
고해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병마용이 아니라, 병마용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병마용은 흙으로 빚었지만 이건 청동인 것 같군요. 갑옷을 입은 청동인이라…….”
상관흔이 물었다.
“뭘까요? 똑같은 청동인이 백만 명이나 있다니요. 어? 맨 앞에 있는 사람이 깃발을 들고 있습니다.”
용완청의 눈이 동그래졌다.
“은월? 깃발에 은월이라고 쓰여 있어. 은월 선생이 만들어서 여기에 가뒀나? 그럼 저 용들이 이걸 위해 여기를 지키고 있었던 거야?”
유년대사가 이마를 찌푸렸다.
“이 얼음덩어리들은 그렇게 차갑지 않은 것 같군.”
순간, 상관흔이 입을 벌리면서 빨아들이려고 했다.
쿵쿵쿵!
거대한 뱀의 머리가 서서히 떠올랐다.
상관흔이 흥분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폐하,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먹고 싶습니다!”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먹어.”
상관흔이 뱀의 머리를 보며 말했다.
“얼음은 일단 놔두십시오. 조금 있다가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후우욱!
백 장 크기의 뱀의 머리가 한순간에 작아지면서 상관흔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유년대사가 화들짝 놀라서 멈칫했다.
“뭐지?”
상관흔과 함께 먹을거리를 찾으러 다니면서 저런 걸 왜 먹을까 싶었다. 그런데 오늘은 백 장 크기의 뱀 머리를 한순간에 먹어버렸다.
“뱀의 머리에 독이 남아 있네! 괜찮겠나?”
그때였다.
상관흔의 몸에 깃든 진원의 허영에서 거북이와 뱀이 흉악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상관흔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숨을 골랐다.
상관흔의 주변에서 청색 빛이 맴돌더니, 그의 몸에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상관흔의 몸에 흔들리고 거대한 물결처럼 몸이 파도쳤다.
유년대사가 깜짝 놀란 눈으로 상관흔을 바라보았다.
“원영경?!”
상관흔의 몸은 아직도 출렁이고 있었다. 아직도 원영경을 돌파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해는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앞서 했던 모든 일에 가치가 있게 느껴졌다.
고해가 상관흔을 보호하고 있는 동안, 유년대사는 얼음덩어리 근처로 가서 백만 청동 조각을 보고 있었다.
유년대사가 궁금한 듯 말했다.
“얼음이 맞을까요? 아무런 냉기도 없는데…… 만약 얼음이라면 용들이 왜 깨버리지 않았을까요?”
용완청도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게. 하나도 차지가 않아. 깃발에 있는 은월은 뭘까? 은월 선생이 남긴 걸까?”
유년대사는 검을 빼 들고 얼음을 깨보려고 시도했다.
검이 얼음덩어리와 부딪치려는 순간,
스스스스.
얼음의 냉기가 검을 타고 밀려들었다.
대경한 유년대사의 안색이 굳어졌다.
“이런!”
검을 타고 밀려든 냉기가 순식간에 유년대사의 몸을 얼려버렸다.
“대사!”
용완청이 놀라서 얼음을 깨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용완청의 손바닥이 얼어붙었다. 그뿐만 아니라, 냉기는 용완청의 진기를 따라 돌며 용완청의 몸 전체를 얼려버렸다.
한순간에 두 사람이 얼음 조각으로 변해버렸다.
원영경 수련자도 그 냉기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뒤늦게 그 광경을 본 고해가 굳은 표정으로 달려왔다.
“뭡니까?!”
용완청과 유년대사의 몸이 얼어붙어 있었다.
유년대사의 능력으로도 냉기를 막지 못하다니. 용들이 함부로 나서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상관흔이 머쓱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게 만지면 안 된다고 했는데……. 가지 마십시오. 제가 가겠습니다.”
고해가 상관흔을 보면서 말했다.
“상관흔, 괜찮아?”
“예, 폐하. 감사합니다. 이제 완전한 원영경으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힘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해의 표정은 어두웠다.
“용완청과 유년대사가 얼음 조각으로 변해버렸어. 무슨 일인지 아느냐?”
상관흔이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삼 일만 참으면 됩니다.”
고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이 얼음은 일반 얼음이 아닙니다. 이건 죽은 수신(水神)입니다.”
“죽은 수신?”
“예. 수운신문령에서의 신. 이건 수족 야수들의 신입니다. 종족은 멸종되었습니다만, 그들의 신은 남아 있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사라졌습니다. 종족이 멸종되면서 이 신은 의식을 잃었고, 결국 하나의 보물이 되어버렸지요.”
“보물이라고?”
“예. 일반 사람들은 만질 수 없습니다. 비록 신은 죽었으나 이 종족의 원한은 남아 있지요. 더욱이 신의 원한이 이 얼음덩어리로 발현되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냉기가 없었던 거고요.”
“그 신. 너한테 필요한 것이냐?”
“그렇습니다. 용족의 신끼리는 서로 알고 있지요. 그런데 폐하께도 쓸모가 있습니다. 저는 이미 뱀의 머리를 얻었으니 이건 폐하께서 받으시지요.”
고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나보고 받으라고?”
“신을 사용하면 신장에서 수신궁을 만들어 나중에는 원영을 축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원영은 일반 원영보다 수백, 수천 배 강하지요. 수계 법술은 굉장히 뛰어납니다.”
고해가 멍한 표정으로 뭔가를 떠올렸다.
“신장은 수에 속한다. 그러니 이걸로 신장에 충격을 주라 이건가?”
앞서 한 무리의 용을 먹었다. 하지만 몸이 더부룩하기만 하고 아무 효과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나 보다.
상관흔이 그에 대해 말했다.
“폐하, 신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죽은 신이긴 하지만 본능적으로 일정한 곳에 정착하기를 원하지요. 가장 최적화된 곳이 바로 사람의 신장입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신이 폐하를 도와 신장을 열어 수신궁전을 만들 것입니다.”
고해가 깜짝 놀랐다.
“뭐? 그게 가능하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상관흔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순간, 그의 미심에서 청색 빛이 나오왔다.
상관흔이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위이잉.
미심에서 나온 강력한 힘이 곧장 얼음덩어리에 충격을 줬다.
촤아아아아!
얼음덩어리가 물결처럼 출렁였다.
얼음덩어리들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그 안에서 청색의 군단이 나타났다.
상관흔이 소리쳤다.
“폐하! 신의 정수는 사람들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신장으로 들어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습니다! 받아들이십시오!”
고해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입을 벌렸다.
수우우웅!
순간, 청색 군단이 고해의 입속으로 몰려 들어갔다.
고해의 몸 전체에 얼음과 서리가 내렸다.
고해는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집중해서 얼음덩어리들을 받아들였다.
위이이잉!
쿠구구궁!
거대한 굉음이 내부에서 들렸다. 파란색 빛이 순식간에 신장에 구멍을 냈다.
마치 단전과도 같은 거대한 공간이 고해 앞에 나타났다.
그 순간, 그 공간이 파란색 빛으로 채워지더니 고해의 신장을 감쌌다.
고해의 신장도 파란색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후우우우!
온몸에서 한기가 밀려 나갔다. 조금 전까지 얼음과 서리가 내렸던 고해의 몸에서 냉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상관흔은 뒤로 한 발 물러서서 고해를 보호했다.
하나, 또 하나의 힘이 고해의 신장을 강화하여 몸속에서 수신궁전(水神宫殿)을 만들었다.
쿠구구궁!
얼음덩어리에서 나온 괴상한 기운마저 고해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 * *
해수면 위.
고해가 배치한 대진 안에서 방명후가 괴성을 질렀다.
“흐야얏!”
방명후를 꽉 잡고 있던 운수 장군이 터져 나갔다.
방명후는 한 손으로 여안을 잡고 있던 운수를 쳐버렸다.
“여 공자님, 조심하십시오..”
쾅!
운수 장군이 순식간에 터져 버렸다.
여안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후우. 드디어 벗어났군. 방명후, 빨리 저 대진을 깨버려라! 여길 벗어나야 해!”
고해가 수룡들을 전부 죽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방명후는 손을 뻗어 구름 대진을 내리쳤다.
쿠궁!
순간, 대진에 금이 가면서 구멍이 생겼다.
방명후가 소리쳤다.
“여 공자님, 얼른 나가야 합니다. 지금 구멍이 생기긴 했습니다만 언제 닫힐지 모릅니다.”
방명후는 곧바로 여 공자를 끌고 대진을 나갔다.
대진을 나오자마자 대진의 구멍이 막혔다.
두 사람은 토끼 눈으로 대진을 뒤돌아보았다.
별거 아닌 구름 대진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수많은 비밀스런 일이 벌어졌다.
“병명후, 얼른 여기를 벗어나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공자님, 제가 밑에 한번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방명후는 살기 가득한 눈으로 바다를 향해 들어갔다.
* * *
작은 섬에서는 사마장공을 선두로 회색 옷을 입은 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누군가 소리쳤다.
“어르신, 저게 바로 구름 대진입니다.”
사마장공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엇? 저 두 사람은?……?”
감시하던 부하가 말했다.
“방명후와 여 공자입니다. 대진을 나왔군요.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닐까요? 어? 방명후가 바다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 * *
살기 가득한 눈으로 바다에 뛰어든 방명후는 해구 앞에서 칼을 들고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해구에서는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방명후는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내부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는 해구 안에 있는 얼음 조각을 수없이 봤었다. 그런데 오늘은 양이 절반 정도밖에 없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만질 수 없는 얼음이었는데?”
유년대사와 용완청은 얼음 조각으로 변해버린 상태였다.
방명후는 흉악한 표정으로 역시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했다. 상관흔이라는 놈은 금단경에 불과했다. 자신이 능히 처리할 수 있었다.
그때, 상관흔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고개를 돌렸다.
“누구냐!”
방명후는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칼을 들고는 상관흔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금단경 정도야 손쉽게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칼질 한 방이면 상관흔 정도는 바로 죽일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런데 상관흔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현사백변! 돌진!”
위이잉!
순간, 그의 미심에서 청록색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십 장 크기의 뱀으로 변했다.
주변의 바닷물이 순식간에 녹색으로 변해서 방명후의 칼과 부딪쳤다.
스스스슥.
방명후의 칼에서 기이한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칼이 부식되면서 끊어져 버렸다.
녹색 뱀은 한 바퀴 빙빙 돌더니 갑자기 방명후 앞으로 기어갔다.
방명후는 깜짝 놀라서 손으로 쳐버렸다.
“뭐야?”
쾅!
녹색 뱀이 갑자기 터져버리자, 방명후는 겁에 질려 황급히 도망쳤다.
겁에 질린 방명후는 순식간에 바다 밖으로 뛰쳐나왔다.
여안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왜 그래? 몸은 왜 녹색으로 변했어?”
방명후의 얼굴에 고름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방명후가 덜덜 떨며 말했다.
“여 공자님, 얼른 여기를 벗어나야 합니다. 얼른요!”
방명후는 여안을 끌고 멀리 날아갔다.
푸허헉!
방명후는 날면서도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여안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중독된 거야? 무슨 독이길래 너의 수련 능력으로도 막을 수 없었단 말이냐?”
방명후는 비틀거리다 결국 쓰러졌다.
“얼른…… 얼른 가야 합니다.”
여안은 방명후를 데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