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욕쟁이 요정
* * *
멀리 있던 사마장공 일행은 황급히 도망치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어르신, 쫓아갈까요?”
사마장공이 눈을 가늘게 좁히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쫓아가도 소용없다. 그런데 바다 밑에 뭐가 있는 거지? 원영 오 단계인 방명후가 저렇게 황급히 도망치다니…….”
같은 시각 바다 밑.
상관흔이 방명후가 도망치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래, 도망쳐 봐라. 나의 뱀신에 중독된 이상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말을 마친 상관흔은 고개를 돌려 고해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얼음덩어리들이 힘으로 변하여 고해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 많던 얼음덩어리는 이제 십분지 일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고해는 신장의 구멍에 집중했다.
단전 공간의 경우 영모의 힘을 받아들여 보라색 빛을 발산하지만, 신장 단전의 경우 파란색을 발산하고 있었다.
고해가 마음속으로 흥분하여 말했다.
“신장아 열려라! 선천경 제이 단계!”
쿠궁!
얼음덩어리들은 계속해서 고해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만약 고해의 피와 살이 없었다면 누구나 고해의 신장에 나타난 파란색 빛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신정(腎精)이 넘치고 생기를 띄는 것 같았다.
고해의 하체가 단단해지고, 온몸에 끝도 없는 기운이 맴도는 것 같았다.
쿠구궁!
신장에 구멍이 뚫린 이후로는 앞서 삼킨 용들의 힘도 신장으로 흘렀다.
신장으로 들어간 힘들은 신장 구멍 안에 있는 얼음의 힘과 합쳐져 파란색 진원으로 변했다.
용완청과 유년대사의 몸에 있던 얼음과 서리도 고해의 몸속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제야 두 사람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용완청이 추위에 몸을 떨며 말했다.
“조,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유년대사도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얼음이 사라졌군. 어떻게 된 거지?”
상관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해를 보호하는 일에만 열중했다.
두 사람은 뒤늦게 고해를 발견했다.
고해의 몸체에서 파란색 힘이 맴돌고,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유년대사가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해가 지금 단계를 돌파하는 중인가?”
용완청과 유년대사, 상관흔은 조심스럽게 기다리면서 고개를 돌려 바다 밑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얼음이 없으니 백만에 달하는 청동인이 바다에 떠올랐다.
순간, 청동인이 들고 있던 은월 깃발이 나풀거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 깃발을 잡고 있던 청동인이 조심스럽게 움직이더니 한 차례의 공명음을 냈다.
위이이이잉!
그 공명음은 마치 다른 청동인을 깨우기라도 하는 듯했다. 갑자기 백만 청동인이 함께 몸을 꿈틀거렸다.
* * *
은월해에서는 백만 요정들이 나풀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청동인이 공명음을 낸 순간, 요정들이 미친 듯이 날개를 휘저으며 은월해 남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때쯤 완아선자는 끊임없이 연주하며 요정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황색 요정도 완아선자와 점점 가까워진 상태에서 눈을 감고 나풀나풀 춤을 추고 있었다.
완아선자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연주하며 왼손으로는 노란색 요정을 잡으려고 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손가락 끝이 요정에게 닿기 직전이었다.
‘그래. 이제 곧 구진의 영혼을 잡을 수 있어!’
그런데 그 순간, 위잉!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거의 모든 요정이 멈칫거렸다.
황색 요정도 눈을 번쩍 떴다.
“엇? 무슨 소리지?”
황색 요정이 환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은월해 남쪽으로 날아갔다.
완아선자가 놀라서 소리쳤다.
“안 돼! 거기 서!”
손에 닿은 구진의 영혼이 도망치고 있었다.
황색 요정뿐만이 아니었다. 청색 요정들도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빠르게 은월해의 남쪽으로 날아갔다.
완아선자는 분노해서 소리쳤다.
“누, 누가 감히 나를 방해하는 거냐!”
완아선자는 칠현금을 들고 구진의 영혼을 쫓아갔다. 하지만 점점 거리가 더 멀어지고 있었다.
“거기 서!”
완아선자는 황급히 비주를 타고 노란색 요정을 쫓아갔다. 그러나 황색 요정이 날아가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수많은 요정이 날아가는 광경을 본 수련자들은 화들짝 놀랐다.
수련자들은 요정들을 쫓아 나섰다.
* * *
산장 주인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찾았나? 찾았다니 다행이구나! 은월 선생이 남긴 은월군을 볼 수 있다니, 죽어도 여한이 없도다!”
손으로 은월산장 부하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던 운묵이 궁금한 듯 물어보았다.
“장주님, 은월군은 또 뭡니까?”
산장 주인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는 곧 세상을 떠날 사람처럼 얼굴이 창백했다. 몸에서도 이상한 냄새가 났지만 운묵은 조금도 싫어하지 않았다.
산장 주인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대건천조가 생기기 전에 은월 선생이 은월산장을 지키기 위해 ‘금용’(琴俑)을 만들었었다.”
운묵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금용이오?”
산장 주인이 머리를 끄덕였다.
“어떤 단계의 금용이었습니까?”
“원영의 최고 단계였지! 백만에 가까웠느니라.”
“네? 백만이나 되는 금용이 전부 원영의 최고 단계란 말입니까? 아니…… 그…… 그건…….”
운묵이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산장 주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구진과 똑같다. 은월산장이 강대해지면 그건 중요한 보물이 되고, 은월산장이 쇠퇴의 길을 걸으면 보잘것없는 물건이 되는 게야.”
“장주님, 그럼 저의 조상님께서 그것 때문에 은월산장을 이 해역에서 옮긴 것입니까?”
산장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들이 강하니까 가져가라고 해라. 다만 너희들을 연루시키지만 않으면 된다.”
“예?”
“만약 여양왕이 가져가다가 문제가 생기면 은월산장도 안전하지 않다. 그래서 내가 이번 연주회를 여기에서 개최한 것이지. 이곳에는 여양왕의 부하뿐만 아니라 다른 조도에서 온 관리들도 있다. 그 관리들이 찾지 못했다고 해도 우리 은월산장의 잘못은 아니지. 그런데…… 그들이 찾아냈다. 드디어 찾았어! 하하하!”
운묵은 입을 닫고 침묵했다.
산장 주인이 운묵의 손을 잡더니 쉰 목소리로 말했다.
“운묵아, 이제 알겠느냐? 스스로 힘을 키우지 않으면 강자들한테 전부 빼앗기는 법이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조차 잃을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한테 기대지 말고 너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한다. 너는 은월 선생의 혈통이라 반드시 세상을 뒤흔들 거문고를 만들 수 있을 게야.”
운묵은 눈시울이 불거진 채 말했다.
“장주님, 괜찮을 겁니다.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어렸을 때, 운묵의 부모님이 죽은 후 산장 주인이 그를 돌봐주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곧 운명을 다한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반드시!
* * *
고해의 일행이 있는 바다 밑.
한 무리의 청동인이 공명음을 울리더니 순식간에 음의 결계를 만들어서 천천히 확신시켰다.
드르르륵.
공명음 소리에 바다 밑 암석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유년대사가 어두워진 표정으로 소리쳤다.
“당주! 뒤로 물러서세요!”
용완청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해는 어떡해!”
한편, 고해의 신장에서 뱅뱅 돌던 파란색 힘이 순식간에 파란색 진원 구체로 변해버렸다.
그건 바로 진룡금단공이었다.
위이이잉!
진원 안에서는 파란색 용이 경맥을 둘러싸고 뱅뱅 돌았다.
단전에 있는 영모 진원에서는 보라색 용이 경맥을 둘러싸고 돌아다녔다.
그 두 가지 힘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떨어져서 만나거나 겹치지 않았다.
그런데 체내에서 뱅뱅 돌아다니던 그 힘들이 점점 더 커졌다.
어느 순간, 고해의 눈이 번쩍 뜨였다.
“금단경 제삼 단계구나!”
“폐하, 얼른 여기를 벗어나야 합니다!”
상관흔이 소리쳤다.
용완청도 고해를 끌며 말했다.
“고해, 드디어 일어났구나! 얼른 서둘러!”
위이잉!
음파가 진동하더니 고해를 향해 날아왔다. 고해 주변에 있던 돌들이 산산조각 나며 깨지기 시작했다.
안색이 굳어진 고해가 뒤로 물러섰다.
“무슨 일입니까?”
유년대사가 말했다.
“금용이네, 금용이야!”
“금용? 금용이 뭡니까?”
“금용은 청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칼도 거뜬히 막아낼 수 있다네. 실력은 어떠한지 모르겠네만.”
위이잉!
청동인이 진동하고 있었다.
용완청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빨리 가자니까!”
그 순간, 저 멀리에서 청색 빛이 반짝였다.
“저건…… 청색 요정이잖아?”
빠르게 날아든 청색 요정들이 뜻밖에도 청동인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청동인들의 두 눈에서 빨간색 빛이 나왔다.
청동인들이 뻐근한 듯 목을 돌리기 시작했다.
용완청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움직였어! 움직여! 저것들이 살아 있는 거야?”
유년대사가 말했다.
“예, 당주! 요정들이 저들을 정신적 육체로 삼은 것 같습니다.”
청색 요정들은 하나둘씩 금용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고해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금용들이 요정을 불러들였단 말인가?
고해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대진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같은 시각.
고해가 있는 해수면에서 수많은 금도 수련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멀리에서 날아오던 요정들이 별똥별처럼 바다로 떨어지고 있었다.
사마장공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저건 뭐지?”
“어르신, 저 대진 밑에서 나는 소리가 요정들을 불러들인 것 같습니다.”
“요정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설마 은월해에 있던 요정들이 전부 날아오는 건 아니겠지요?”
“도대체 저 대진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한편, 완아선자는 다급히 쫓아가며 소리쳤다.
“거기 서! 가지 마! 멈추라니까!”
사람들이 그녀를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완아선자잖아?”
“뭐 하는 거지?”
사람들의 눈에 완아선자가 황색 빛을 쫓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사마장공은 그 황색 빛의 정체를 눈치챘다.
“저건…… 구진의 영혼?”
황색 요정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더니, 순식간에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 요정은 영혼체이기 때문에 진법에 구애받지 않았다.
황색 요정은 청동인이 내는 소리를 따라 날아갔다.
바로 그때,
덥석.
누군가가 황색 요정을 손으로 잡았다.
황색 요정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황색 요정을 잡은 사람은 고해였다.
그는 조금 전 요정 무리가 들어오는 걸 보고 기회가 찾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대진에서 기다리던 그는 황색 요정이 날아들자 재빨리 잡았다.
“구진의 영혼을 이렇게 쉽게 잡을 줄은 몰랐군.”
고해는 자신의 금도 수준을 알기에 황색 요정을 잡겠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상관흔을 도와 뱀의 머리만 얻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구진의 영혼이 제 발로 찾아오다니!
구진의 영혼이 다급하게 말했다.
“풀어줘! 얼른 풀어줘!”
고해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늘이 준 선물을 거절해서야 쓰나? 하하하!”
황색 요정이 눈을 부릅뜨더니 갑자기 침을 뱉으며 말했다.
“퉤! 풀어줘 얼른! 아니면 내가 너희 가족까지 욕할 거야!”
“…….”
고해는 황색 요정이 침을 뱉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이게 정말 구진의 영혼 맞아?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