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200화 (183/243)

200화. 구진의 연기

운묵은 움직이지 않는 구진을 보며 절망한 표정을 지었다.

“거의 다 왔는데…….”

쿵, 쿵, 쿵.

수많은 청동 금용들이 잔디밭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맨 앞에서 날아오던 청동인이 갑자기 멈칫했다. 흉악하던 표정도 갑자기 겁에 질린 표정으로 변했다.

뒤에서 따라오던 청동인들도 하늘에서 멈춰 섰다.

가부좌한 채 있던 구진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구진은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청동인들을 응시했다.

운묵이 다급하게 말했다.

“조금만…… 조금만 도와줘, 구진. 얼른…….”

구진이 냉랭하게 말했다.

“꺼져!”

휘잉!

운묵의 몸이 저 멀리 튕겨 나갔다.

은월산장의 부하들이 달려가서 운묵을 부축했다.

“소장주!”

구진은 운묵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하늘에 있는 청동인들을 응시했다.

구진의 입가에 차가운 냉소가 번졌다.

“계속 쫓아오지, 왜 멈췄어?”

청동 금용들은 몸을 돌려 도망가려고 했다.

그런데 구진이 냉랭하게 말했다.

“도망가겠다? 이제 와서 도망가? 하하하! 너희들 모두 내가 만든 요정들이야! 간이 배 밖으로 나왔지. 감히 나를 잡으려고 해? 어디 도망갈 수 있으면 가 봐!”

구진이 손을 휙 저었다.

구진의 손에서 투명하고 가느다란 선이 나오더니 순식간에 청동 금용들을 묶어버렸다.

구진이 분노한 채 소리쳤다.

“왜? 이제야 겁이 나느냐?”

구진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하늘에 있던 청동 금용들이 서로 부딪쳤다.

탁!

두 청동인의 머리가 부딪쳤다.

탕! 탕! 탕!

하늘에서는 청동인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끊기질 않았다.

어느 순간, 구진이 짜증을 내듯 말했다.

“이런 젠장! 너희들 고통을 모르지? 안에서 다 나와!”

구진이 손을 확 당겼다.

슈슈슉!

하늘에 있던 청동 금용들이 땅으로 추락했다.

그 순간, 투명하고 가느다란 현에 손가락 크기의 청색 요정들이 매달려 있었다.

한 무리의 요정들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구진을 바라보았다.

“흥! 날 잡아먹으려고 했던 것들이 불쌍한 표정을 짓기는! 멍청한 놈들, 전부 내 입 안으로 들어와!”

구진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입을 쩍 벌려서 백만 요정들을 게 눈 감추듯 빨아들였다.

작은 요정들이 없는 청동 금용들은 순식간에 바다에 빠져버렸다.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은 그 광경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천급금, 구진이 산 사람이야?”

그때 구진의 뒤에 있던 고해가 냉랭하게 불렀다.

“구진.”

고해에게 등을 보이고 있던 구진은 고개를 돌렸다.

순간, 구진이 뜬금없이 뒷머리를 만지며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악! 머리가 아파! 어떡하지? 영혼과 몸체가 합체되고 있어. 변이가 발생한 건가? 예전 일이 생각이 안 나. 어떡하지?”

주변에 묶여 있던 금도 수련자들은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구진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의 그 오만이 하늘을 찌르던 구진은 어디로 간 거야?

왜 갑자기 저러는 거지?

고해는 천천히 구진 앞으로 걸어갔다.

구진을 부축한 그가 말했다.

“구진, 괜찮아?”

구진은 머리를 움켜잡고 힘없는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누구시죠?”

고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물었다.

“나 기억 안 나?”

구진은 눈알을 떼구르르 굴리고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고해를 보며 말했다.

“아! 기억이 나네요. 친절한 느낌으로 봐선…… 음…… 내 몸속에 당신의 피가 흐르고 있지요?”

“그래. 맞아.”

구진은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친절하시다니,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네요. 그렇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구진은 활짝 웃으며 갑자기 고해의 품속에 안기려고 했다.

“저한테 이렇게 친절하고…… 당신의 피가 흐르고 있다면, 그럼 당신이 내 아빠?”

찰싹!

고해가 구진의 뺨을 쳤다.

구진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빠, 왜? 왜 때려요?”

고해가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말했다.

“기억 안 나? 내가 너의 생각과 성격을 다시 만들어서 넣어줄까?”

순간, 구진이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주인님. 뭐든 분부를 내려주십시오.”

“…….”

“…….”

“…….”

사람들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구진을 바라보았다.

용완청도, 유년대사도, 상관흔도 입이 살짝 벌어진 채 멍한 표정이었다.

뭐야, 저게? 구진이 왜 저래?

그럼 고해한테 그런 말을 한 것이 다 거짓? 그냥 기억상실인 척했던 거야?

고해도 어이가 없었지만, 짐짓 인상을 쓰며 명령을 내렸다.

“일단 저 사람들부터 풀어줘.”

“넵! 주인님.”

구진이 착한 아들처럼 대답하고 손을 휙 저었다.

금도 수련자들을 묶고 있던 끈이 풀어지면서 수련자들이 다시 자유의 몸으로 돌아갔다.

분노한 수련자들은 바로 칼을 빼 들었다.

“운묵! 은월산장! 우리 가문과 은월산장은 이제부터 단교다!”

“은월산장!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다!”

금도 수련자들은 욕을 퍼부었다.

완아선자 역시 한쪽으로 몸을 숨기고는 사나운 표정으로 운묵을 노려보았다.

운묵은 씁쓸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우리 은월산장도 끝인 건가?”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꿇어라!”

산장 주인의 삼혼이 입을 연 것이다. 지금의 삼혼은 투명체가 아니라 녹색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운묵이 화들짝 놀라며 산장 주인의 삼혼을 바라보았다.

“장주님……?”

산장 주인의 영혼체는 화를 내며 운묵을 노려보았다.

운묵은 굳은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주변에 있던 금도 수련자들은 싸늘한 눈빛으로 산장 주인을 응시했다.

순간, 산장 주인의 영혼체가 모두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은월산장의 부하들이 소리쳤다.

“장주님!”

그러나 산장 주인은 무릎을 꿇고 금도 수련자들을 향해 절을 하며 말했다.

“여러분, 제가 부족하여 생긴 일입니다. 부디 여러분의 너그러운 용서를 비나이다.”

운묵이 울면서 외쳤다.

“장주님! 일어나십시오!”

산장 주인은 한평생 누구에게도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심지어 대건 성왕과 대면했을 때도 산장 주인은 고고했었다.

여양왕이 왔을 때도 평소처럼 대해줬다.

반면 은월산장을 방문한 수련자들은 산장 주인 앞에서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그러나 오늘, 산장 주인이 모든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주변에 있던 수련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유년대사가 씁쓸하게 말했다.

“장주님, 이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장주님의 잘못도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화가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에도 산장 주인이 무릎을 꿇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장 주인의 영혼체가 말했다.

“은월산장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습니다. 전부 다 제가 못나서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제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백 번이라도 무릎을 꿇겠습니다.”

은월산장의 부하들은 무릎을 꿇고 대성통곡했다.

“장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장주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운묵이 울면서 무릎걸음으로 장주에게 다가갔다.

“장주님, 장주님 잘못이 아닙니다! 전부 저의 잘못입니다! 그러니 일어나세요!”

산장 주인은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잘못 가르쳐서 그런 것이니라. 너희들의 잘못이 곧 내 잘못이고, 은월산장의 책임이 곧 내 책임이니라.”

산장 주인은 다시 한번 절을 하며 애원했다.

“여러분, 너그러이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못나서 그렇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시지요.”

금도 대사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장주, 저도 얼마 전까지 장주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하지요. 얼른 일어나세요.”

“장주님, 일어나세요.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없던 일로 합시다.”

산장 주인은 수련자들의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이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는데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산장 주인이 절을 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운묵은 산장 주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장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산장의 부하들도 무릎을 꿇고 울었다.

산장 주인은 몸을 일으키고는 운묵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다, 운묵아. 오늘 일로 한 걸음 더 성장하면 된다. 그리고 은월 선생의 말을 잊지 마라. 반드시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 됨됨이가 우선이니라.”

운묵은 흐느껴 울었다.

“흑흑흑흑.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 때문에 장주님이 무릎까지 꿇다니요. 흑흑흑.”

산장 주인의 영혼체는 천천히 산마장공 앞으로 향했다.

“사마 선생,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가 부족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 때문에 사마 선생의 삼혼이 많이 다쳤군요, 그 대가로 저의 천혼과 인혼을 드리겠습니다. 몸을 좀 추스르시지요.”

주변에 있던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뭐? 뭐라고?”

운묵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산장 주인을 보며 소리쳤다.

“장주님, 안 됩니다!”

위이잉!

산장 주인의 영혼체가 세 개로 나누어지더니, 그중 두 개가 소용돌이쳤다.

세 번째 영혼체가 입을 열었다.

“천혼과 인혼에는 금도 의경도 있습니다. 사마 선생께서 몸을 추스르기를 바랍니다.”

천혼과 인혼은 순식간에 사마장공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옆에 있던 수련자들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산장 주인을 보고 있었다.

“사마장공에게는 화가 복이 되어 돌아왔구만.”

“산장 주인의 의경이면 엄청나지. 십분지 일만 받아도 대단한 거야.”

주변의 금도 대사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사마장공을 바라보았다.

사마장공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곧바로 평정심을 찾았다.

산장 주인의 천혼과 인혼은 마치 보약처럼 사마장공의 삼혼을 회복시켰다. 사마장공의 다쳤던 삼혼이 회복되자 사마장공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사마장공은 실눈을 뜨고 산장 주인을 바라보았다.

“장주님,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산장 주인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고해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고 선생, 내가 역시 사람 하나는 잘 봤습니다. 이렇게 많은 대사 가운데서 고 선생이 영혼을 얻으셨구려.”

고해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고 선생, 조금 전에는 고마웠습니다. 고 선생이 아니었으면 운묵이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을 겁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완아선자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고해는 멋쩍게 웃으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산장 주인은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곧바로 운묵과 산장 사람들을 응시했다.

산장 주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죽은 후 운묵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산장의 사람들이 흐느끼며 울었다.

“장주님, 흑흑흑흑.”

“운묵아, 내가 하늘에서 보고 있을 테니 반드시 잘해야 한다. 산장을 너한테 맡길 테니 은월산장에서 거문고를 만들도록 해라. 할 수 있겠느냐?”

운묵은 바닥에 무릎 꿇고 대성통곡했다.

“네,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가장 훌륭한 거문고를 만들겠습니다. 장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흑흑흑.”

산장 주인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산장 주인의 영혼체가 서서히 사람들 앞에서 사라졌다.

운묵과 부하들은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장주님, 흑흑흑.”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