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거래(去來)
고해와 유년대사는 서로 마주 보더니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목신풍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게다가 청동인을 압송하던 사마장공 부하들이 도둑들한테 당했다고 합니다.”
용완청이 화들짝 놀랐다.
“도둑?”
유년대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가 감히 조정으로 가는 물건에 손을 댄 거지?”
목신풍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고해가 물어보았다.
“이건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 곧 산장 장주님의 추도회지요?”
목신풍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곧 할 것 같네.”
고해가 말했다.
“작별 인사를 하러 갑시다. 이번에 은월성에서 산장 장주님의 보살핌도 받지 않았습니까?”
모두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가세.”
* * *
효월산장 밖.
완아선자는 선학을 타고 효월산장을 지날 때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에 고해가 있다.
그는 사기꾼인가, 은인인가?
완아선자의 마음도 복잡했다. 자신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한테 무시를 당하고 피까지 토해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런데 이런 사람이 위기의 순간에 나를 구해주다니.
그때는 하늘과 땅도 자신을 외면했었다. 아무리 스승님을 불러도 소용없었다.
그렇게 절망하고 있을 때 그 사기꾼이 나타났다. 삼혼이 막 흔들거릴 때 말이다.
완아선자가 혼자 중얼거렸다.
“쳇! 흥! 사기꾼, 어디 끝까지 해보자고.”
완아선자는 선학을 타고 빠르게 성문으로 날아갔다.
* * *
얼마 전만 해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던 은월산장이 지금은 스산하고 한산했다.
은월산장의 부하들은 전부 은월산장의 대청에 모였다.
주변은 백색 천으로 도배되었고 은월전에 산장 주인의 빈소를 마련했다.
은월전 중앙에는 산장 주인의 관이 놓여 있었다.
상복을 입은 운묵은 무릎을 꿇고 산장 주인이 남긴 물건을 하나씩 만지고 있었다.
운묵은 물건을 하나씩 가슴에 품은 다음 화로에 태워버렸다.
운묵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은월산장의 식솔들은 빈소 밖에서 무릎을 꿇고 흐느꼈다.
그때 한 부하가 운묵에게 말했다.
“소장주, 일품당의 용완청 당주님과 유년대사, 고 타주가 장주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운묵이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모셔라.”
“네.”
곧 고해 등 세 사람이 빈소 안으로 들어왔다.
용완청이 일품당 당주였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고해를 앞에 세웠다. 이를 본 유년대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해 일행은 그 누구와도 인사를 하지 않고 산장 주인의 관 앞에서 향을 피웠다.
향을 피운 세 사람은 산장 주인께 세 번 절을 올렸다.
운묵도 세 사람과 맞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고 선생, 용 당주님, 그리고 유년대사님.”
고해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소장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운묵은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해가 정중하게 다시 말했다.
“산장 주인의 보살핌을 많이 받아서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운묵은 의아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빈소 밖에 있는 한 정자에 자리를 잡았다.
운묵이 물어보았다.
“고 선생, 무슨 일입니까?”
고해가 말했다.
“은월도에서 소장주와 산장 장주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철풍금 장사를 할 때 산장 주인께서 저의 캐논을 좋게 봐주신 덕분에 ‘이 거리 제일 금루’가 번창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거리 제일 금루’를 버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네?”
“‘이 거리 제일 금루’는 곧 지점을 신설하려고 합니다. 만천하에 ‘이 거리 제일 금루’를 세울 겁니다.”
“그래서요?”
“‘이 거리 제일 금루’에는 전부 밖에서 온 거문고뿐입니다. 우리만의 거문고가 없지요. 그래서 말인데, 소장주께서 우리 금루에 거문고를 납품하면 어떨까요?”
운묵이 싸늘한 눈빛으로 고해를 쳐다보았다.
“거문고를 공급해 달라고요? 우리 은월산장을 삼키겠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은월산장은 영원히 소장주님의 은월산장이지요. 언제든 우리 금루와 거래하고 싶지 않다 생각되시면 손을 떼셔도 됩니다.”
운묵은 미간을 찌푸렸다. 의외였다. 언제든 손을 떼도 된다면 은월산장은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거래하는 동안 은월산장의 무너진 명성도 되찾아드리지요. 그리고 소장주의 소망도 반드시 이뤄드리겠습니다.”
운묵의 눈이 커졌다.
“저의 소망이라고 하셨습니까?”
“예. 소장주가 장주님을 위해 거문고를 만들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장주님이 환생하여 돌아왔다고 해도 누구로 환생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 금루에 오셨다면 어떡할까요? 만약 우리 금루에 은월산장의 거문고가 들어온다면 환생하여 돌아온 사람도 소장주가 만든 거문고를 사지 않을까요?”
운묵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만 된다면 원이 없을 것 같았다.
고해가 운묵을 보며 다시 말했다.
“그동안 우리 금루의 성과를 보셨을 겁니다. 저 고해를 믿고 진중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운묵은 평정심을 찾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금루 하나로 정말 큰 그림을 그리시는군요.”
고해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목표는 있어야지 않겠습니까? 소장주, 일단 오십 년 계약을 맺기로 하지요. 판매액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금루가 별로라고 생각되시면 언제든 계약을 해지하시면 됩니다. 어떻습니까?”
운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금루도 은월산장의 거문고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해만이 은월산장의 거문고를 중시했다.
지금의 은월산장으로선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할 수 있었다.
마침내 운묵이 입을 열었다.
“오십 년이라……. 좋습니다. 하지요.”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운묵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계약서를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소장주께서 승낙하셨는데 무슨 계약서가 필요하겠습니까?”
“제가 말을 바꾸면 어떡하려고요?”
“저는 저의 안목을 믿습니다. 만약 산장 장주님이 살아 계셨다면 계약을 어길까요?”
“장주님은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그런 분께서 가르친 사람이 소장주님입니다. 제가 산장 장주님을 믿듯이, 소장주님은 물론이고 은월산장의 신용과 명예도 믿습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운묵은 고해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고해가 산장 주인을 추모한 뒤 묵객도 여안을 데리고 산장 주인의 장례식장에 왔다.
하지만 볼일만 마치고 바로 떠났다.
묵객은 운묵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운묵이 이미 은월산장의 거문고를 고해에게 납품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탄식했다.
옆에서 같은 말을 들었음에도 여안은 짜증만 냈다.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봅니다. 흥! 이제는 누구도 은월산장의 거문고를 탐내지 않는 걸 모르나 봅니다.”
“어리석은 놈.”
“네?”
“죽은 장주가 은월산장을 맡았을 때는 지금만도 못했다. 하지만 은월산장은 결국 천하의 존중을 받았지. 너의 할아버지와 대건성왕마저도 예의를 갖출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산장 주인은 죽기 전에, 거문고를 제조하는 데만큼은 운묵이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 게다가 운묵은 은월 선생의 혈육이야.”
여안은 묵객의 말에 불만이 많았다.
“하지만 운묵의 재능은 눈에 띌 정도가 아닙니다.”
묵객은 혀를 찼다.
“쯔쯔쯔, 내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하겠냐.”
그러고는 앞만 보며 걸었다.
여안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묵객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놈이 뭐가 대단하다고…… 하여간 늙으면 판단력이 흐려진다니까…….’
* * *
고해는 산장 주인의 장례식을 다녀온 후 바로 일을 진행했다.
먼저 상관흔에게 지시를 내렸다.
“상관흔, 목신풍이 이천 명의 목타 제자를 남겨주기로 했으니 네가 잠시 맡도록 하고, 같이 ‘이 거리 제일 금루’를 지켜라. 은월성의 사업은 잠시 너에게 맡겨놓으마.”
상관흔은 많은 걸 묻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폐하.”
“고진이 구오도 소식을 전해올 거다. 그럼 내가 쓴 성지 세 개를 그자에게 주고 고진에게 전하라고 해라.”
“예.”
“그리고 또 다른 성지를 하나 줄 테니, 소식을 전하러 오는 사람에게 보라고 해라.”
상관흔은 멈칫했다.
“네? 소식을 전하러 올 사람이 누군데 그에게 성지를?”
고해가 미소를 지었다.
“너도 나중에 알게 될 거다.”
상관흔을 의아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고해는 상관흔에게 뒷일을 맡기고 구진, 용완청, 유년대사, 목신풍과 함께 천 명의 목타 제자를 거느린 채 효월산장을 떠났다.
고해가 떠난 지 이틀째 되던 날, 묵객과 사마장공이 사람을 보내 고해를 초대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고해가 떠난 뒤였다.
* * *
망망대해 위를 한 척의 배가 빠르게 달리고 있다.
배 위에는 비단옷을 입은 관원들이 서 있었고, 맨 앞에는 대한황조의 금의위 사령관인 몽태가 서 있었다.
몽태는 화칠로 봉인한 편지 봉투를 꺼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편지 봉투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결심을 굳힌 듯 편지 봉투를 열었다.
옆에 있던 부관 하나가 흠칫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령관님, 그건 태자께서 폐하께 쓴 편지 아닙니까?”
몽태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부하를 째려보았다.
“그래서?”
“아, 아닙니다.”
부관은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했다.
그 후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몽태는 편지 봉투 안에서 편지를 꺼내 읽었다.
[부황, 이것은 제가 도저히 결정할 수 없어 올리는 상주서입니다. 몽태가 이걸 부황께 전해드릴 테니 결정해 주십시오. 요즘 몽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최근 들어 외부 섬 종주와의 연락도 잦아졌습니다. 아무래도 대한을 벗어날 꿍꿍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분석한 결과는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 몽태한테 편지를 전해 받으면 부황께서 직접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편지를 읽은 몽태의 눈빛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봉투에 넣고 다시 화칠로 구워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그때 부관이 소리쳤다.
“사령관님! 저기가 바로 은월성입니다!”
몽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안색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폐하께서 여기에 점포를 차렸다고 하던데, 그게 무슨 점포인지 알 수가 없으니…….”
몽태의 말에 부관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은월성은 인구가 일 억이나 된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폐하를 찾으려면 고생 좀 할 것 같습니다.”
“천천히 찾아보자꾸나.”
배는 은월성 밖에서 멈췄다.
우뚝 솟은 성벽을 본 금의위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청난 성벽이로구나.”
“우와! 대체 높이가 얼마나 되는 거야?”
“응? 저게 성루인가? 성루가 무너진 것 같은데? 수련자들이 고치고 있군.”
“저자들은 모두 진법사인가? 모든 주춧돌에 진을 치는 것처럼 보이는데?”
선학차 주인들이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여러분은 이 마을 사람이 아닌가 봅니다. 재건축 중인 이 성벽은 고 대사님이 직접 투자하신 겁니다. 백성의 돈은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