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또 다른 행궁
콰광!
거룡에게 당한 듯, 굉음과 함께 녹석인의 몸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하지만 부서졌던 바위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뭉쳐서 일어나더니 거룡을 향해 돌진했다.
콰르르릉! 쿠궁!
거룡은 거대한 울음소리와 함께 녹석인에 의해 머리가 깨졌다. 하지만 거룡은 녹석인처럼 부활할 능력이 없는 듯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걸 보고 목신풍이 말했다.
“녹석인이 어디서 어떻게 유래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이 종류의 괴물들이 제일 귀찮다네. 칼로 찌를 수도 없을 만큼 몸이 단단한 데다가 무너뜨려도 다시 부활하거든. 그래서 다른 황조들이 모두 신록황조를 부러워하지.”
한편, 여양왕은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백의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걸음을 옮겨 하늘로 솟구쳤다.
후우웅!
백의의 남자는 상공에 서서 싸늘한 시선으로 황보조가를 바라보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순간, 칼날처럼 날카로운 형태의 엄청나게 강력한 기운이 신록성을 향해 날아갔다.
쿠아앙!
거대한 기운은 큰 울림소리와 함께 신록성을 향해 돌진했다.
우르르릉!
대지에 길이가 천 장 정도 되는 구멍이 생겼고 수많은 바위가 하늘 높이 튀어 올랐다.
거대한 기운을 담은 칼날은 또다시 신록성을 향해 돌진했다.
순간, 신록성에 파란빛 결계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칼날 같은 기운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 결계조차 금방이라도 깨질 것만 같았다.
백의의 남자가 싸늘하게 말했다.
“황보조가! 끝까지 성에서 숨어 있을 건가!”
고해와 그의 일행은 그 광경을 보고 안색이 굳어졌다.
백의를 입은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아까 기운은 또 뭔가?
어떻게 공격 한 방에 대지가 저렇게 엄청난 길이로 갈라질 수 있지?
용완청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그 남자를 아는 듯했다.
“오순 태자야!”
고해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오순 태자요?”
“그래. 용족의 태자 오순일 거야. 오순은 큰 죄를 범하고 수룡이 되었어. 그래서 현재의 용족 태자는 더 이상 저자가 아니지. 지금은 여양왕이 잠시 저자를 맡고 있는 거야.”
고해는 흉악한 모습을 한 흰옷 남성을 쳐다보았다.
그때, 유년대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순은 개천궁 중에서 엄청난 강자인데, 황보조가와 싸우게 되면 원영경밖에 안 되는 황보조가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황보조가가 원영경밖에 안 됩니까?”
원영경이 개천궁의 강자를 이길 수 있을까?
한편, 황보조가는 한참을 침묵하다 끝내 입을 열었다.
“신록황조의 백성 여러분! 제가 무능하여 오늘과 같은 재난을 일으키게 되었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을 마다할 생각이 없는데 저의 능력이 부족하여 여러분의 힘을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자신의 모든 힘을 빌려줄 수 있는 분들은 오른손을 들어주십시오! 만약, 제가 무모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가만히 계셔도 좋습니다!”
쿠궁!
황보조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공의 기운이 강하게 흔들렸다.
그의 말이 기운을 통해서 백성에게 전달되었다.
“폐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저의 힘을 받으십시오!”
“저희는 영원히 폐하를 응원합니다!”
사람들의 외침이 신록황조의 곳곳에서 전해졌다.
고해 일행이 자리하고 있는 근처에는 작은 마을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그곳의 주민들 모두 오른손을 들고 있었다.
그들이 든 오른손은 하늘에 있는 노란빛을 찌를 것만 같았다. 곧 그들은 기력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백성들은 계속하여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었고, 그들의 기운은 전부 신록황조에게 스며들었다.
우르르르릉!
기운이 하늘 상공에 모여들면서 하나의 소용돌이를 이룬 후 황보조가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황보조가의 주변에 엄청난 기운이 형성되었다.
신록황조 백성들의 힘을 얻은 황보조가는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는 오른손을 뻗으며 오순을 향해 돌격했다.
“여양왕! 나의 신록을 궤멸시키고 싶으면 직접 나설 것이지, 왜 보잘것없는 벌레를 앞세우는 것이냐!”
모멸감을 느낀 오순의 눈에 분노가 가득 찼다.
그는 포효하며 주먹을 뻗었다.
쿠과광!
황보조가와 오순은 서로 주먹을 맞댄 채 대결을 벌였다.
거대한 기운이 천지에 파동 쳤다. 그 기운이 하늘을 뚫고 대지로 쏟아지며 모래 폭풍을 일으켰다.
둘의 대결로 인해 녹석인과 거룡의 싸움도 잠시 멈춰졌다.
황보조가는 아무렇지 않게 제자리에 서 있었다. 반면 오순은 천 장 정도 떨어진 곳까지 날려갔다.
그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고, 눈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고해는 그 광경을 보고 부릅뜬 눈이 파르르 떨렸다.
“원영경밖에 안 되는 황보조가가 이미 천궁을 깬 오순과의 대결에서 완승을 하다니!”
유년대사가 옆에서 말했다.
“황보조가는 신록천하의 모든 기력을 빨아들였네. 천하의 백성들 전부 황보조가에게 자신의 기력을 빌려주었지. 그러니 황보조가의 힘은 당연히 하늘을 찌를 정도가 된 거네. 이게 바로 수운의 장점일세. 한 나라의 군자거나, 아니면 한 종문의 종주는 자기 관할의 모든 사람의 힘을 빨아들일 수 있으니, 더 강한 적들과도 싸울 수 있다네.”
고해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황보조가는 체내의 힘이 워낙 거대해서 멀리서 지켜보면 마치 불에 활활 타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한 나라의 주인이다. 그럼 나도 저런 방식으로 싸울 수 있다는 말 아닌가?’
아직은 방법을 몰라서 쓰지 못하는 것일 뿐.
황보조가는 눈을 치켜뜨고 여양왕을 노려보았다.
“여양왕! 이런 벌레들 말고 네가 직접 덤벼라! 나의 신록을 무너뜨리겠다고 하지 않았나? 나를 죽이라면 직접 덤벼라!”
몸을 추스른 오순이 눈을 부릅뜨고 다시 달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여양왕이 천천히 손을 들어서 오순을 가로막았다.
“됐다.”
오순은 불만이 많음에도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여양왕이 황보조가를 보며 말했다.
“황보조가! 신록황조를 멸망시키는 게 어려울 것 같으냐? 난 너의 재능이 아까워 지금까지 봐준 것이다! 하지만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와하하하하! 여양왕, 지금 나를 말로 굴복시키겠다는 거냐? 난 너의 살코기를 뜯어 먹고 너의 피를 마시며, 네 가죽에 누워 잘 것이다!”
분노한 여양왕이 싸늘하게 말했다.
“흥! 아주 멍청하고 꽉 막혔구나!”
그는 앉은 채 주먹을 뻗었다.
순간, 허공에 검은 안개가 피어나고, 안개 속에서 거대한 검은 주먹이 나타나며 황보조가를 뒤덮었다.
휘이잉!
황보조가는 눈을 부릅뜨고 크게 외치며 주먹을 휘둘렀다.
“부숴버려라!”
콰아아앙!
두 주먹의 충돌로 터져 나온 굉음은 오순과 겨룰 때보다 열 배는 더 컸다.
또한 엄청난 진동을 일으켜서 주변의 산마저 미친 듯이 흔들렸다.
고해 일행의 근처 계곡도 순식간에 갈라지며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유년대사가 다급히 소리쳤다.
“물러서!”
백운호는 신속하게 뒤로 물러섰다.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여양왕이 앉아 있던 의자도 갈라지기 시작했다.
여양왕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여영왕이 옷소매를 휘저으니 전쟁터 중심의 자욱한 먼지들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전쟁터의 중심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 구덩이를 중심으로 갈라진 깊은 틈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었다.
사방을 지키고 있던 군사들은 언제 구덩이로 빠질지 몰라서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황보조가는 이미 성루에 내려섰다.
그는 입가에 묻는 피를 닦으며 싸늘하게 여양왕을 노려보았다.
“여양왕! 한 번 더 할 건가?! 나의 신록황조 백성들이 힘을 회복하는 즉시 다시 새로운 힘을 나에게 보태줄 것이다! 나의 힘은 영원히 차고 넘칠 것이니라!”
여양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록 의자는 깨졌지만, 여양왕은 상처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싸늘하게 황보조가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흥! 너한테 신록천하의 힘이 있다는 거지? 그럼 난 너의 신록천하를 궤멸시킬 것이다! 한 마을, 한 마을씩 멸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국운도 종말을 고하겠지! 그때 가서 네가 무엇에 의존할지 지켜보마!”
황보조가가 비웃으며 말했다.
“잔소리 말고 덤벼라!”
하지만 여양왕은 더 싸울 마음이 없는 듯 싸늘하게 명령을 내렸다.
“북을 울려 군사들 모두 돌아오게 하여라! 그리고 변경을 전부 봉쇄하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라! 신록성의 주변을 꼼꼼하게 살피고 아무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
장군과 병사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예! 폐하!”
“임시로 이곳에 거처를 만들어라! 난 여기에서 신록성을 지켜볼 것이니라!”
황보조가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여양왕이 임시 거처를 짓고 머물겠다는 것은 자신을 감시하겠다는 뜻이다.
그러고는 대군을 보내서 신록황조의 마을을 하나하나 집어삼키려 할 것이다.
마을 하나가 줄어들면 기운이 하나 줄어드는 것이고, 빌릴 수 있는 백성들의 힘도 줄어든다.
‘참으로 난감하구나!’
한편, 고해 일행은 휴전을 선포한 쌍방을 지켜보았다.
목신풍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황보조가가 비록 한 나라의 기운을 갖고 있다지만, 그의 세력으로 봤을 땐 여전히 여양왕의 상대가 아닌데 여양왕은 왜 굳이 휴전을 선포하고 모든 것을 멈춘 거지?”
고해가 무겁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말했다.
“여양왕의 세력은 강하지만, 전쟁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가끔은 대국을 살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지요.”
“뭐?”
“병법에 있듯이 적의 열 배의 힘을 갖고 있으면 적을 둘러싸야 하고, 다섯 배의 힘을 갖고 있으면 바로 공격해야 하고, 적과 똑같은 힘을 갖고 있다면 어떻게든 적을 물리쳐야 합니다. 여양왕의 세력이 강대한 건 분명하지만, 지금은 둘러싸는 것이 유리합니다.”
사람들은 전부 의아하게 고해를 바라보았다.
“응? 병법? 무슨 병법?”
고해는 멈칫거렸다.
자신이 말한 건 손자병법이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설명하지?
할 수 없이 고해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제가 만들어낸 병법입니다. 여양왕 쪽의 세력이 훨씬 강대하니 강제적으로 공격해도 성공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아십니까?”
유년대사가 말했다.
“최종적으로는 여양왕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겠지만, 그 역시 전쟁 와중에 큰 손실을 볼 거네. 황보조가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대항하겠지만, 결국은 패배하게 되겠지. 그럼 여양왕도 자신의 원기에 큰 상처를 입을 거네.”
용완청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은 신록성을 에워싸고 내부의 군사와 백성들의 기력이 점점 약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쉽게 거머쥐겠다는 건가? 예전에 너의 멸송 계획도 이와 같은 효과를 봤던 것 같은데? 그때는 군사로 둘러싼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으로 둘러쌌었지만.”
고해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여양왕의 계획은 완벽합니다. 거기다 군사를 파견하여 신록황조의 마을을 공격하라고 했으니……. 허허, 여양왕은 확실히 평범한 사람이 아니군요.”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나?”
목심풍의 말에 고해가 대답했다.
“일단 철수합시다. 지금 상황으로는 저희도 신록성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으니, 돌아가서 천천히 생각해 봅시다.”
그때, 용완청이 무언가를 떠올리며 말했다.
“아 참! 여기에 어머니의 행궁이 있어. 그쪽으로 가.”
고해가 멈칫했다.
“이곳에도 행궁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