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209화 (192/243)

209화. 또 다른 사실

정화 파파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늙긴 했어도 앞은 잘 보여. 하하. 예전에 은월산장 주인께서 너를 데리고 왔었단다. 하지만 그땐 몸체만 있고 영혼은 없었지.”

“네? 저를 데리고 왔었다고요?”

“산장 주인은 잘 지내시지?”

고해 일행은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목신풍이 말했다.

“얼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정화 파파는 너무 놀란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했다.

“뭐?”

목신풍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말해줬다.

정화 파파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한숨을 내쉬던 정화 파파는 갑자기 풀이 죽은 듯 어깨가 처졌다.

산장 주인이 죽었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정화 파파의 표정은 슬픔에 젖었다.

목신풍이 넌지시 물어보았다.

“스승님, 가시나무 대진을 배치한 이유가 여양왕의 파병 요구를 막기 위한 것입니까?”

정화 파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화 수요가 무슨 힘이 있다고 전쟁에 나가겠느냐? 에휴, 이번 대겁(大劫)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구나.”

“대겁이오?”

정화 파파는 옅은 한숨만 쉬었다. 별로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별거 아니다.”

정화 파파는 그렇게만 말하고 용완청을 돌아다보았다.

“용효월의 딸이라고? 엄마랑 똑같이 생겼구나.”

용완청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좀 알아보려고 합니다. 도와주세요.”

정화 파파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의 엄마가 나를 고모라고 불렀었다. 나와 둘도 없는 관계였지. 그렇지만…… 에휴, 너는 나를 할머니라고 부르거라.”

“네할머니.”

“제가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 쉬어야겠습니다. 오늘은 여기에 계시다가 가세요.”

산장 주인의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고해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저희는 효월산장을 좀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정화 파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해 일행이 나간 후, 정화 파파는 나무 구멍의 문을 닫았다.

몇몇 수요들이 친절하게 말했다.

“여러분, 저의 어깨에 타세요,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고해 일행은 웃으면서 반겼다.

“감사합니다.”

수요는 엄청난 속도로 효월산장을 향해 걸어갔다.

고해가 목신풍을 보며 말했다.

“목 타주님, 정화 파파와 은월산장 주인이 관계가 좋았나 봅니다.”

“음……. 난 잘 모르겠네, 자넨 아는가?”

목신풍이 수요를 향해 묻자, 수요가 고개를 흔들었다.

“예전에 은월산장 주인과 파파는 매우 다정했었습니다. 산장 주인이 거문고 연주도 해줬지요. 그런데 두 분이 서로 싸우신 후 다시는 만나지 않았습니다.”

“예?”

“아! 용효월이 올 때마다 산장 주인의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산장 주인한테는 파파의 소식을 전해줬다고 들었습니다.”

용완청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우리 어머니가 두 분의 연결고리였다고?”

목신풍도 놀란 표정이었다.

“어쩐지 파파께서 전 당주님을 좋아하신다 했어. 전 당주님이 없으셔도 일품당에 초대장을 준 이유가 따로 있었구나.”

모든 일이 하나로 연결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고해 일행은 고개를 돌려 나무 동굴을 바라보았다.

용와청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파파께서 한평생 기다리셨고, 한평생 그리워하고 원망하셨네. 그런데 결국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셨으니……. 휴우우.”

얼마 지나지 않아 고해 일행은 효월산장에 도착했다.

초신이 뒷짐을 지고 고해 일행을 바라보았다.

“빨리 왔군.”

말을 마친 초신은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고해 일행은 초신과 많은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다.

고해는 습관대로 용효월과 관련된 서적이나 책을 찾았다. 그 책 속에 단서가 있을지도 몰랐다.

용완청이 책들로 가득한 방을 가리켰다.

“여긴 우리 어머니의 서재였어.”

고해가 안을 보고 이마를 찌푸렸다.

“응? 여길 누가 뒤졌지?”

목신풍이 목타 수하들을 데려와 물어보았다. 목타 수하가 말했다.

“초 타주께서 당주님의 사인을 찾으신다면서 들어가셨습니다.”

고해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신풍이 물어보았다.

“구진은 왜 같이 오지 않았나?”

고해는 아무렇게나 말하고는 주변의 서적들을 훑어보았다.

“수요들을 괴롭히러 갔습니다.”

목신풍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뭔가를 깨닫고 더 묻지 않았다.

고해 일행은 당분간 효월산장에 묵기로 했다.

초신은 그 어떤 실마리를 찾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해는 매일 자료들을 훑어보거나 용완청과 함께 산책에 나섰다.

정화곡은 정말 아름다웠다.

노을 아래에서 고해는 용완청을 부드러운 눈길로 쳐다보았고, 용완청 역시 고해가 열심히 자료를 찾거나 뭔가를 할 때면 다정한 눈빛으로 고해를 바라보다가 혼자 피식하고 웃었다.

그 외 시간에는 정화 파파와 담소를 나누었다.

며칠 동안 정화 파파의 기분도 많이 좋아졌다. 다만 얼굴은 조금 더 늙어 있었다.

여러 번의 담화 끝에 용완청은 정화 파파를 따르게 되었고, 어떤 일은 정화 파파한테 알려주었다.

정화 파파가 말했다.

“황보조가?”

용완청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전부 고해가 알아냈습니다. 황보조가가 우리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알 수도 있다고 해서 이번에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고해가 저기에 있는 자료들만 전부 확인하면 어떻게 해서든 황보조가를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정화 파파가 웃으면서 말했다.

“황보조가는 내가 잘 알지. 너의 엄마가 여기를 올 때마다 같이 온다고 했었어. 너의 엄마를 많이 좋아했단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때 너의 엄마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어. 들어보니 엄청 훌륭한 사람이지 뭐냐.”

용완청이 다급하게 물었다.

“정말입니까? 저의 아버지를 아십니까?”

정화 파파는 고개를 저었다.

“누군지는 나도 몰라. 너의 엄마가 입을 꾹 다물었어. 내가 황보조가를 불러올게. 굳이 찾으러 가지 않아도 된다. 황보조가도 불쌍한 아이야. 예전에는 순진한 마음으로 너의 엄마를 쫓아다녔는데, 지금은 살기가 가득해. 그래도 네가 왔다고 하면 아마 올 거야.”

“네? 왜요?”

정화 파파가 웃으면서 말했다.

“너의 엄마를 좋아하면 당연히 너를 포함한 전부를 좋아한다는 말이지. 너의 아버지만 빼고. 하하.”

“감사합니다. 파파.”

정화 파파가 갑자기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너, 고해라는 놈을 좋아하지?”

용완청은 얼굴이 새빨개져 말했다.

“네? 파파, 무슨 말씀이신지……?”

정화 파파가 웃었다.

“하하하하. 내가 다 봤어. 이 나이 먹도록 헛살지는 않았단다. 하하. 너도 고해를 좋아하고, 저 고해라는 놈도 너를 좋아하는 게 분명해. 서로 내색만 하지 않고 있을 뿐. 고해, 결혼은 했어?”

용완청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몇십 년 전에 그의 아내가 죽임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정화 파파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여운 사람이 또 있었구나. 에휴…….”

* * *

신록성.

황보조가는 서재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중신들이 서 있었다.

한 대신이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폐하, 여양왕이 우리 신록성의 사방을 막아버려서 소식을 내보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양왕이 신록왕조의 다른 성지들을 공격한다고 합니다. 저희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황보조가가 덤덤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이미 각 성지에 소식을 보냈다. 그들도 준비하고 있어.”

대신이 화들짝 놀라서 눈이 커졌다.

“예? 소식을 보냈다고요? 어떻게 말입니까?”

황보조가는 싸늘한 눈빛으로 대신을 응시했다.

대신이 고개를 황급히 숙였다.

“제가 말이 빗나갔습니다.”

황보조가는 머리를 끄덕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음파 대진은? 열렸나?”

또 다른 대신이 말했다.

“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누가 와도 절대 우리의 대화를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 그럼 다들 가서 쉬거라.”

대신들은 공손하게 대답한 후 서재를 빠져나갔다.

서재에는 황보조가와 회색 장포를 입은 사람만 남아 있었다. 그자는 얼굴까지 가리고 있어서 생김새를 볼 수 없었다.

황보조가는 회색 장포를 걸친 사람을 보며 말했다.

“녹석신, 이번에 고생했어.”

“폐하, 그런 말씀 마십시오. 폐하께서 저를 구해주셨고, 저의 이름을 국호라고 명하지 않으셨습니까? 그에 비하면 별거 아닙니다.”

황보조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나 혼자 여양왕에게 선전포고를 했는데, 그가 이렇게 신록황조까지 끌어들이다니…….”

“자책하지 마십시오. 폐하가 아니더라도 여양왕은 우리를 죽이려고 했을 겁니다.”

황보조가는 머리를 끄덕였다.

녹석신이 말했다.

“폐하, 오늘 정화 수요가 정화 파파의 편지를 들고 왔다고 합니다.”

황보조가가 눈을 들었다.

“뭐? 정화 파파?”

록석신이 밖을 향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데리고 들어와.”

“네.”

순간, 책상 앞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더니 갑자기 정화 수요가 뛰어나왔다.

정화 수요의 눈은 가려져 있었다. 정화 수요가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황보조가를 만나기 전에는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벗겨.”

구멍에서 함께 나온 녹석인이 정화 수요의 안대를 풀었다.

수요의 눈이 번쩍 뜨였다.

“황보조가?”

옆에 있던 녹석인이 갑자기 예의를 갖춰 말했다.

“대군끼리 교전 중이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나무 수요는 입 안에서 편지를 꺼냈다.

“괜찮습니다. 황보조가만 만나면 됩니다. 정화 파파께서 이걸 꼭 황보조가의 손에 쥐여 주라고 하셨습니다.”

황보조가는 편지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편지를 읽더니 나직이 말했다.

“용효월의 딸 용완청? 어머니 복수를 하려고 여기에 왔다고? 뭐야, 하세강을 통해서 실마리를 찾았고…… 그래서 나더러 오라, 이건가?”

수요가 정중하게 말했다.

“파파께서 황보조가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용완청은 용효월의 딸입니다. 파파께서 용완청을 손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용완청을 이 위험한 곳에 보내는 것을 걱정하셨지요. 황보조가께서 아직도 용효월을 생각하신다면 함께 정화곡으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황보조가는 머리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용효월…… 용완청…….”

녹석인이 갑자기 그를 말렸다.

“폐하,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황보조가가 담담히 말했다.

“위험은 내가 여양왕한테 선전포고한 다음부터 줄곧 존재했네. 용완청은 어렸을 때 한 번 본 적이 있지. 용완청은 아마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어때? 용효월과 닮았던가?”

수요가 말했다.

“예. 비슷합니다. 다만 용효월보다 활발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활발? 허허. 열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낳아준 아버지도 누군지 모르는 애야. 그 어린 녀석이 여동생까지 챙겨야 했으니, 활발하지 않은 게 정상이지.”

수요가 물어보았다.

“그럼…… 가실 겁니까?”

황보조가가 웃으면서 말했다.

“용효월과 닮았다고 했지? 그럼 반드시 가야지. 다만 내가 할 일이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게.”

“네. 알겠습니다.”

0